오늘도 나는 연필로 글을 썼다. 컴퓨터에 글을 쓰기 전에 글의 구도를 잡을 때 나는 연필을 자주 쓴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연필을 잡는다. 밑줄을 긋기도 하고, 중요한 대목 옆에 강조 표시도 한다. 성경을 읽을 때는 색연필을 사용할 때도 있다.
나는 연필을 잡을 때마다 황홀하다. 내가 무엇을 손으로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그런 단순한 행동도 할 수 없을 때가 곧 오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특히 연필을 잡는다는 것은 나의 전체 삶이 담겨 있는 행위다. 평생 연필을 쥐고 살았으니 말이다. 연필을 잡을 때마다 어릴 때의 장면들이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나는 삼선국민학교에 입학해서(당시는 초등학교라 하지 않았다.) 5학년 1학기 때까지 다녔다. 오십년 전 일이다. 그때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는 아직도 생생하다. 언젠가 매일묵상에 그걸 쓸 날이 올 것이다.
당시 연필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 연필의 질은 형편없었다. 흑심이 너무 거칠어서 글씨를 쓸 때는 침을 묻혀야만 했다. 때로는 공책이 찢어지기도 했다. 책받침도 필수품이다. 부자집 아이들의 연필은 달랐다. 간혹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연필을 들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침을 묻히지 않아도 되고, 연필 끝에 고무가 달려 있었고, 나무도 부드러워서 칼로 깎기도 쉬웠다. 연필 따먹기는 우리의 일상이었다.
저 연필을 보라. 저것은 우주다. 나무와 흑심과 도료와 고무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양은 철판은 우주에서 온 것이다. 저 연필을 내가 손에 쥐고 글을 쓸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이가 들면서 사물에 애착이 깊어지는 것 같다. 그것이 사랑인가, 애착인가. 아마 내가 사물이 되어간다는 무의식이 그렇게 작동되는가보다. 올해도 연필과 더 친해지고 싶다. 어쩌면 저 연필은 나 자신인지 모른다.
은혜가 아니라 저주라는 걸 알고 기도하십시오.."라는 녹취 말씀이 있어서...
고후1:20 님,
예표론에 대한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셨네요.
죄송한 말씀을 드리면,
예표론도 하나의 성서해석 방법론이긴 하지만
현대신학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겁니다.
교부들이 주로 그런 해석을 취했는데,
그것도 특별한 경우에 한정됩니다.
가능하면 예표론은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자칫 하면 이현령비현령 해석으로 떨어질 수 있거든요.
위에서 솔로몬을 그리스도의 예표로 거론하신 구절들도
별로 설득력은 없어 보입니다.
다시 죄송하게도 ...
다윗은 그게 가능하지요.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라는 게
신약성서기자들이 구약을 해석한 관점이니까요.
근데 솔로몬은, 음,
좀 아니올시다, 거든요. ㅎㅎ
솔로몬은 다윗 족보의 한 사람으로 들어갈 뿐이에요.
족보에 열거된 이들이 모두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요?
족보를 다루고 있는 마 1:3절은 이렇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유다와 다말은 시아버지와 머느리의 관계인데,
그 이상한 관계는 창 38장에 소상히 나와 있네요.
고후 님의 저 대글을 보고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참고적으로 제가 일천번제를 중심으로 솔로몬에 대해서 쓴 글이 있어서
여기 링크 하니 혹시 관심이 있으면 읽어보세요.
좋은 한 주간이 되시기를...
고후 님,
재미있습니다.
성서를 바라보시는 관점이요.
한 가지만 질문합니다.
마태족보는 요셉의 것이고
누가족보는 마리아의 것이라는 주장이 확실한가요?
그 근거가 무엇인가요?
그렇게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긴 합니다만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저도 한 교단이나 특정신학을 추종하는 거는 아니에요.
성서를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것뿐이에요.
족보를 다루는 눅 3:23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누가는 족보를 시작하면서 분명히
예수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하고,
요셉의 아버지를 헬리라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마태족보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요셉 족보 아닌가요?
좋은 하루 되세요.
2C120님, 정말로 본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신학에 대해 별로 공부하지 못하셨다면 한국복음서원에서 나온 책들은 일절 안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가 한동안 지방교회에 관심을 가져 거기에 출석도 해보고 관련된 분들과 교제도 나누어보았습니다만, 지방교회의 주장들은 상당부분 성경을 왜곡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겉보기에는 아주 영적인 것 같고, 성경을 깊이 모르는 사람들이 처음 듣기에는 그들이 신령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한꺼풀만 깊이 들어가보면 영적인듯한 가르침들이 사실은 아전인수격의 공허한 성경해석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위트니스 리의 책들이 그러한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성경에 대해 깊이 모르시는 분들은 이들의 주장중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스스로는 감별해내지 못하므로 처음부터 아예 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깊은 혼란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들의 주장이 어찌나 교언영색한지 저도 지방교회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에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지방교회의 가르침은 신론, 인간론, 교회론 등의 조직신학적인 면에서도 일일이 다 지적하지 못할만큼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장로교 주요교단들이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했겠습니까... 지금은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려도 전혀 공감하지 못하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성경에 대해 그리고 신학에 대해 조금씩 깊이있게 배워나가시다 보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눈이 열리시리라 생각합니다.
(ps) 회복역 성경은 성경용어 혹은 일부 내용들을 지방교회의 교리에 맞게 각색한 것이며, 각주의 내용 역시 위트니스 리의 왜곡된 성경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서 전혀 권할만한 것이 못됩니다. 이후로는 한국복음서원 책이나 회복역 성경을 추천하는 발언은 일절 삼가하여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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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negraaff(CRI)-Passantino(AIA) & Fuller Statements (E).pdf [File Size:183.0KB/Download1,566]
- 2. Hanegraaff-Passantino-Fuller (한국어).pdf [File Size:683.0KB/Download29]
- 3. the Statement of the Local Church.pdf [File Size:214.4KB/Download16]
- 4. (지방)교회 신앙 변증서(한국어).hwp [File Size:167.5KB/Download49]
- 6. 회복역 성경 서평 (E.K.).docx [File Size:34.4KB/Download222]
- 5. A Longer Response To an Open Letter.pdf [File Size:182.8KB/Download60]
저는 솔로몬이 역사적으로 실제 있었던 인물일까...하는 의문이 있는데요,
솔로몬 예표론은 못 들어본 내용이라 읽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회복역 성경이란 것도 잘 모르겠어서 인터넷을 찾아봤습니다.
일단 자주 가는 사이트의 리뷰 내용도 그렇고,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영어판을 몇 부분 읽어봐도 그렇고, 소위 말하는 축자역인 것 같네요. 번역자/그룹이 누구누구인지 공개가 안되어 있는 것도 좀 꺼려지구요.
이런 번역이 위 댓글에 옮겨놓으신 리뷰처럼 극찬을 받을 만한 지는, 글쎄요. 팔이 안으로 좀 굽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검색을 좀 더 해봤더니 번역 문제 보다는, 과도한 혹은 부적절한 각주 문제를 지적하는 글들이 보이네요. 각주 전체를 이 교파(?)를 만드신 분이 혼자 작성하신 거라고 하던데, 정확한 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러 글에서 지적된 각주 하나만 들어보자면
Revelation 2:9 note 5 .... Through all the centuries since then, religious people have followed in
their steps, persecuting those who genuinely seek and follow the Lord in
spirit and life, while still considering that they are defending the
interests of God. Roman Catholicism and Protestantism, as well as
Judaism, all fall into this category, having become an organization of
Satan as his tool to damage God's economy.
제게는 각주라기 보다는 선언으로 읽히네요. 축자적인, 다르게 생각하면 굉장히 보수적인 번역본이 이런 역동적인(?) 각주와 나란히 있는 모습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이것이 이 분의 본 마음이라고 한다면, 교파를 새로 세우게 되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1.
(3)
The Recovery Version is controversial in large part because of its extensive footnotes, which promote Local Church theology.
첫째,
셋째,
//
"이 분의 본 마음...새로운 교파.." 하는 님의 '이해'에 도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 쓰신 내용을 보니 이미 지방교회에 상당히 심취하신 분이군요. 그런분에게 게시판에서 짧은댓글로 논쟁해봐야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겪어봤습니다. 저 자신이 지방교회에 한때 심취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 잘 이해합니다. 링크하신 내용들은 이미 예전부터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에 대해 짧은 댓글로 반박해봐야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아마 한동안은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전혀 귀에 안 들어오실 거에요.
지방교회가 좋으시다면 그냥 지금처럼 지내십시오. 다만,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합동과 통합, 고신, 합신이라는 장로교 대표교단들(이 네 교단을 합치면 사실상 한국 장로교회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함)의 공식적인 결의사항이며, 이러한 조치는 아직까지 취소되거나 해제된 바가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장로교 뿐만 아니라 감리교에서도 지방교회는 경계할 대상, 예의주시할 대상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함께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ps) 윗글중 지방교회를 옹호한 것으로 언급하신 "교회연합신문" 은 대표적인 친이단 신문들중의 하나라는 것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통합측에서는 교회연합신문에 대해 "어떤 이단옹호 언론보다도 더욱 경계해야 할 대상" 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 http://blog.naver.com/kona5?Redirect=Log&logNo=150070851380
원 글에서 많이 벗어나는 것 같아서 길게 쓰지 않겠습니다만,
제 판단으론 일반적인 성경 번역이나 주석 작업에 대해, 2C120님이 "과문"하신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편집부] 이런 식으로 역본이 나오는 것은, 거칠게 말해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번역판이 나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른 주요 번역본에 어떤 경력을 가진 역자들이 참여하는 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 한 번 찾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축자 번역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번역본을 만드는 본래의 목적을 놓쳤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지, 특정 교파에서 나온 번역이라거나 하는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과도한 주석에 대한 우려도, 번역이나 해석을 넘어서 특정한 주장을 과격한 언어로, 교차검증 없이 전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범위의 주석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거죠. 성경 본문은 축자적으로 읽다가, 정작 그 주석은 여러 문맥을 고려해서 적당하게(?) 읽어줘야 되는 상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 닥터케이 님, 안녕하세요
또 염려의 댓글을 주셨군요.. ^^
"글 쓰신 내용을 보니" "지방교회에 한때 심취한 적이 있다가
그 지방교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라고 하시면서
"한때" 親지방교회 입장이었다가 이제 反지방교회 입장이 되셔서
"지방교회"(?) (사실 "지방교회"라는 게 "00교회" 하는 식의 고유 명사 명칭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아주 부적합한 거라 생각되고 또 그 교회 생활하시는 분들도 그런 어휘 표현은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여간..)에 대한
성토 댓글들을 붙이신 닥터케이 님께서는 그러나,
그 친(親)/반(反)의 입장 변화와는 달리
논의 방식에 있어서는 일관된 면을 "보이시는 분이군요."
즉,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들지 않고 상대/독자 심리를 자극해 설득하려는 심리적 오류,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논리적인 타당성과는 무관하게 권위자(이 경우 특정 교파의 주요/대표 교단)의 견해이기 때문에
무조건 자신 주장이 타당하다고 하는 부적합한 권위에의 오류와,
타당한 근거 제시 없이 군중 심리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기대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려고 하는
군중에의 호소에 의한오류를 통해,
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분이신 듯하네요.
"지방교회가 좋으시다면 그냥 지금처럼 지내십시오. 다만, .....를 함께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참고하라고 하신 내용과 (PS)로 부기하신 내용은 "이미 예전부터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제게 뭐 새삼 참고될 것은 없겠는데요, "다만"
댓글 주신 닥터케이 님의 그같은 글쓰기 성향에 대해선
일면식도 없이 이 게시판에서 마주치게 된 상황이니 만큼 당연히 모르고 있던 터라,
권유해 주신 대로 잘 "참고"하겠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주요/대표 교단"이 안티 입장이 되어 정죄했다더라 는 그 사실 이외에
별달리 자신 쪽으로부터의 근거를 댈 수 없고
"그 교회가 좋으시다면 그냥 지금처럼 지내시라, 다만,
다른 주요/대표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햇다는 건 참고하시라"는
정도의 조언을 하시는 분 말씀에 대해서는
"그 교회에 심취(?)했기 때문에 전혀 그런 이야기가 귀에 안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런 정황을 보여 주시는 분의 조언이라면
그 같은 분의 사고나 글쓰기 성향에 대한 부분만 참조해 두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PS)
"심취"(?)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님의 글을 대하고
님께서 "심취(?)와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라"시면서 참조하라고 조언한 내용보다는,
닥터케이 님께서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심취"해 계신 건지 그저, 그 부분이
사실 쬐끔 궁금해지긴 했습니다.
샬롬.
첫째,
둘째,
셋째,
우선,
다음으로,
다음으로,
2C120 님의 문장력이 남달라보입니다.
아주 오랜 동안 사유와 글쓰기 훈련을 거친 분이라는 사실이
쓰신 글에서 느껴집니다.
그래서 제가 내용은 둘째 치고
글 자체에 흥미를 느꼈나봅니다.
닥터케이 님과 달리
저는 님께서 지방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저는 지방교회에 대해서 잘 모르니
제가 먼저 시작할 수는 없구요.
님께서 먼저 해보시겠어요?
논의, 또는 논쟁이 되려면 좀더 구체적인 주제가 필요하잖아요.
지방교회가 정통교회(?)에 대립되는 가장 큰 주제가 뭔지요.
삼위일체를 부정하시는지,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는지,
인간을 영과 육이 아니라 영, 혼, 육이라는 삼분법으로 보시는지,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같은 교단 구분을 부정하는지....
구약을 역사비평적으로가 읽는 게 아니라
예표론에 의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제가 지방교회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뭘 말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러니까
좀 수고스러워도 꼭지글을 달리해서 말씀해주세요.
좋은 주말, 주일을 맞으세요.
지금 이곳은 창 밖 주말 날씨가 참 환하답니다..
지방교회에 대해서 조사를 한 것을 잠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방교회는 중국에서 작은무리운동(The Little Flock Movement)으로 중국선교에
큰 영향을 끼쳤던 워치만 니 로부터 그 기틀을 잡기 시작하여
그의 제자이자 동역자인 위트니스 리 에 의해서 구체화된 교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방교회의 교리적 문제는 가장 크게는 삼위일체,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등입니다.
삼위일체를 볼때에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육체로 있었던 동안에는 하나님이 아니었으며
부활한 이후에야 하나님과 연합되어 신성을 갖게 되었다고 가르칩니다.
명백한 기독론의 오류입니다.
또한 이와 관련해서 하나님은 구약에는 신성만 있으시다가
신약에 예수님을 통해 육신화 되었고 또 부활하여 인성과 신성이
결합된 영으로 변화하였다는 변형된 양태론을 주장합니다.
이는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견해입니다.
인간의 타락과 관련해서 삼분설을 주장합니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체로 나뉘어지며 이 가운데 육은 사단의 포로가 되었고
이것이 혼에 영향을 주고 결국은 영도 죽게 만든다는 성경과는
전혀 관련없는 내용을 주장합니다.
사실 이 견해는 훗날 김기동에게 전달되어
베뢰아 사상(특히 귀신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기존교회를 바벨론의 음녀로 규정하고 부인하며
지방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침례를 받아야 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례나 침례나 형식이 중요하지 않는데도
그렇게 주장을 합니다.교회론에 있어서는 목사직을 부인하고
변질된 만인제사장설을 믿지요 그때그때마다 설교자를
세우는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회복교회, 레마 코리아,
회복역 성경(RV: Recovery Version), 워치만 리 연구소 등이
지방교회와 연결된 단체나 자료들입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는 교세가 아직 약하지만 활발히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회복교회 즉 지방교회는 변질된 이단종파입니다.
그리고 위트니스 리의 사상은 우리나라의 베뢰아와 구원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권신찬, 박옥수, 김기동 등이 여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국내 이단과도 상당한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사한 지방교회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
한국교회내에서도 개혁해야할 여러문제점이 많고 신학공부의 부재로 인해
이단사상을 제대로 분별하지 않기에 생기는 현상중에 지방교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내에 반골기질이 있으신 분들중에 이런 지방교회 이론을
받아들이고 빠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닉네임 <삼송>에 의하면
하급반 교과서 / 김 명수
워치만 리가 세운 교회와 후세에 세운 지방교회와는 엄염히 분리된 측면이 있지요
그리고 워치만리의 사상에 대해서는 그순수성과 인격에 대해서는 배울점이 많지요
그러나 지방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방식과 순수성 그리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어떤 운동과는
별개로 신학적인 내용에 대해서 제가 위에 적은 글과 다른 내용이 있으면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위에 적은 내용이 전부 다는 아니지만 한국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지방교회는 기존교단의 신학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교단의 신학즉 근본주의 신학과 보수주의 신학관이 옳다라고 전제로
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회복교회 즉 지방교회가 추구하는 사상은 위트니스리의 교회
라고 할만큼 그분의 사상이 절대 진리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적은 글은 본인 댓글에 반박글로 적은 것이 아니라 지방교회에 대해 이단이라고
할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 적은 글입니다. 아니면 다른 의견을 개진하시면 됩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며칠 안 들어온 사이에 댓글이 더 많아졌네요. 저는 아직 철이 덜들었는지 너무 감정적으로 가지만 않는다면 이런 분위기도 좋아라 합니다. 마침 시간이 조금 있으니까 이미 길어진 것, 저도 보태보죠.
‘너는 회복 교회를 깎아내릴 목적으로, 별 근거없이 우기기만 하고 있는 거 아니냐’
대략 이런 판단을 하신 것 같은데요. 이게 안풀리면 제가 어떻게 글을 쓰던 제대로 전달이 안될 것 같아서 말씀드리자면, 초대 교회도 유대교의 한 분파로 시작했고, 지금 교파 수가 손꼽을 만큼만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새 교파인지 아닌지, 이단인지 아닌지 저는 별다른 감정이 없습니다. 생각이 다르면 교파를 세울 수도 있겠죠. 예시로 든 각주 관련 댓글을 제가 “시니컬하게” 썼다고 하셨는데요. 물론 그렇게 읽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제가 이걸 쓴 사람이고, (다른 글쓰기도 아닌) 성경 각주에 이렇게 강력하게 쓸 정도로 현 교회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여긴다면, 교파를 만드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느낌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회복역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죠. 지금 네슬-알란트 28판을 번역하고 각주를 단다고 합시다. 그럼 일단 생각나는대로만 적어봐도, 신약(신)학 전공하신 분 있어야 되구요, (신약) 해석학 하신 분, 구약(신)학 하신 분, 그리스어/라틴어 하신 분, (신약)사본학/고대 중근동 언어 하신 분, 현대 우리말 전공하신 분이 적어도 한 분 씩은 필요합니다. 더해서 다양한 교파에서 학자들을 구할 수 있다면 좋겠죠. 소위 주요 번역본들은 이런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분들을, 복수로 모아서 번역 작업을 합니다. “Witness Lee & Editorial Team” 이렇게 역자가 나왔다면 다른 분들은 도움 주신 정도고, 한 분이 작업하셨다는 뜻일 텐데요. 일단 이 분이 이런 각각의 분야에 전부 능통하셨다고는 현실적으로 믿기 어렵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혹은 익명 그룹으로 작업해서는 개인적인 bias를 피하기 어렵다는 게 제가 꺼려진다고 쓴 이유입니다.
‘그런 세세한 학문 별로 필요없어. 네가 뭐라고 하던, 회복역은 최고의 번역이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번역 몇 개를 대조해 보죠. 회복역(RV)을 포함해서, 각각의 본문은 해당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행 5:17, 개역개정]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TR=NA28] Ἀναστὰς δὲ ὁ ἀρχιερεὺς καὶ πάντες οἱ σὺν αὐτῷ, ἡ οὖσα αἵρεσις τῶν Σαδδουκαίων, ἐπλήσθησαν ζήλου
[RV] And the high priest and all those with him, the local sect of the Sadducees, rose up and were filled with jealousy;
[NASB] But the high priest rose up, along with all his associates (that is the sect of the Sadducees), and they were filled with jealousy.
[KJV] Then the high priest rose up, and all they that were with him, (which is the sect of the Sadducees,) and were filled with indignation,
[NRSV] Then the high priest took action; he and all who were with him (that is, the sect of the Sadducees), being filled with jealousy,
[NIV] Then the high priest and all his associates, who were members of the party of the Sadducees, were filled with jealousy.
[행13:1, 개역개정]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TR/NA28] Ἦσαν δὲ τινες/- ἐν Ἀντιοχείᾳ κατὰ τὴν οὖσαν ἐκκλησίαν προφῆται καὶ διδάσκαλοι ὅ τε Βαρναβᾶς καὶ Συμεὼν ὁ καλούμενος Νίγερ καὶ Λούκιος ὁ Κυρηναῖος Μαναήν τε Ἡρῴδου τοῦ τετράρχου σύντροφος καὶ Σαῦλος
[RV] Now there were in Antioch, in the local church, prophets and teachers: Barnabas and Simeon, who was called Niger, and Lucius the Cyrenian, and Manaen, the foster brother of Herod the tetrarch, and Saul.
[NASB] Now there were at Antioch, in the church that was there, prophets and teachers: Barnabas, and Simeon who was called Niger, and Lucius of Cyrene, and Manaen who had been brought up with Herod the tetrarch, and Saul.
[KJV] Now there were in the church that was at Antioch certain prophets and teachers; as Barnabas, and Simeon that was called Niger, and Lucius of Cyrene, and Manaen, which had been brought up with Herod the tetrarch, and Saul.
[NRSV] Now in the church at Antioch there were prophets and teachers: Barnabas, Simeon who was called Niger, Lucius of Cyrene, Manaen a member of the court of Herod the ruler, and Saul.
[NIV] Now in the church at Antioch there were prophets and teachers: Barnabas, Simeon called Niger, Lucius of Cyrene, Manaen (who had been brought up with Herod the tetrarch) and Saul.
일단 이 두 구절은 “local church”가 어떤 특정한 해석을 가지나 궁금해서, 회복역 성경에서 찾아봤습니다. οὖσα/ οὖσαν의 번역이 애매하긴 한데 (신약에서 각각 6번씩 나옵니다), 다른 역본들과는 달리 “local”로 번역했네요.
[요7:39, 개역개정]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TR/NA28] τοῦτο δὲ εἶπεν περὶ τοῦ πνεύματος οὗ/ὃ ἔμελλον λαμβάνειν οἱ πιστεύοντες εἰς αὐτόν οὔπω γὰρ ἦν πνεῦμα Ἅγιον/-, ὅτι ὃ/- Ἰησοῦς οὐδέπω ἐδοξάσθη
[RV] But this He said concerning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to Him were about to receive; for the Spirit was not yet, because Jesus had not yet been glorified.
[NASB] But this He spoke of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 Him were to receive; for the Spirit was not yet given, because Jesus was not yet glorified.
[KJV] (But this spake he of the Spirit, which they that believe on him should receive: for the Holy Ghost was not yet given; because that Jesus was not yet glorified.)
[NRSV] Now he said this about the Spirit, which believers in him were to receive; for as yet there was no Spirit, because Jesus was not yet glorified.
[NIV] By this he meant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 him were later to receive. Up to that time the Spirit had not been given, since Jesus had not yet been glorified.
영어 번역들은 축자역에 가깝다고 알려진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 물론 그리스어로 된 성경을 주로 읽는 분들께는, 회복역이 그리스어 본문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해준다는 장점이 있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을 대다수 분들에게는 다른 번역과 비교해 볼 때 축자 번역에 가까우면 위 경우처럼 읽기 불편하거나 오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요1:14, 개역개정]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TR=NA28] Καὶ ὁ λόγος σὰρξ ἐγένετο καὶ ἐσκήνωσεν ἐν ἡμῖν καὶ ἐθεασάμεθα τὴν δόξαν αὐτοῦ δόξαν ὡς μονογενοῦς παρὰ πατρός πλήρης χάριτος καὶ ἀληθείας
[RV]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tabernacled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reality.
[NASB]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saw His glory,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KJV]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NRSV]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lived among us, and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as of a father’s only son, full of grace and truth.
[NIV]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Son,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두 그리스어 판본에 차이가 없는 것 중 하나를 뽑았습니다. 다른 역본은 “dwell”이나 혹은 “live”로 쓴 부분을, “tabernacled”로 번역했네요. 그리스어 본문 없이 영역본만 읽는다고 할 때, 이 번역이 과연 최선일까요? 사전 상으로는 tabernacle이 동사로 쓰이면 뜻이 조금 달라진다고 하는 것 같고, 한편으론 σκηνόω는 신약에 다섯 번 나오는데, 회복역에서도 한 번은 “dwell”로 번역되어 있네요.
또한 다수 역본과 다르게, ἀλήθεια 가 ‘’truth”가 아닌 “reality”로 번역되었네요. 찾아보니까 요한복음과 에베소서, 요한1서 (중 부분)에서만 이렇게 번역하고, 나머지 80여 군데에서는 그냥 “truth”로 되어있군요. “Spirit of reality” 가 “Spirit of truth”보다 더 나은 번역일까요?
[요 3:13, 개역개정]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TR/NA28] καὶ οὐδεὶς ἀναβέβηκεν εἰς τὸν οὐρανὸν εἰ μὴ ὁ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καταβάς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 ὁ ὤν ἐν τῷ οὐρανῷ/-
[RV] And no one has ascended into heaven, but He who descended out of heaven, the Son of Man, who is in heaven.
[NASB] No one has ascended into heaven, but He who descended from heaven: the Son of Man.
[KJV] And no man hath ascended up to heaven, but he that came down from heaven, even the Son of man which is in heaven.
[NRSV] No one has ascended into heaven except the one who descended from heaven, the Son of Man.
[NIV] No one has ever gone into heaven except the one who came from heaven—the Son of Man.
이번에는 TR과 NA판의 차이가 있는 예를 하나 골라봤습니다. 우리말 본에는 없는 구절인데요, 의외로 네슬-알란트 판을 따르지 않고 KJV와 같이 긴 본문을 지지하고 있네요. 단순한 문장이지만, 저는 NRSV나 NIV가 그리스어 본문의 구조를 살리면서도 뜻을 이해하기 쉽게 번역했다고 생각합니다.
원문과 가급적 비슷하게 옮기는 것이, 좋은 번역의 한 척도가 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원 언어를 배우기 쉽지 않고 현재 쓰는 언어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축자적 번역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위의 몇몇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보수적인 역본을 포함한) 다수의 번역과는 다른, 독특한 번역도 쉽게 발견할 수 있구요. 그런 의미에서 회복역이 “현존하는 최고의 스터디 바이블”이라고 극찬하는 리뷰는 (쓰신 분이 그 교회를 다니는가와 관계없이) 좀 기울어진 평가라고 댓글을 쓴 것이었습니다.
빈이 님,
님은 님의 세 번째 댓글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살펴 보니 회복역은 축자역에 가까운 번역인 듯하다.
그런데
따라서 그런 면에서 볼 때
번역본 집필의 본래 취지와 목적을 놓쳤다고 판단이 된다’는 것이었고
‘번역에 참여한 역자들에 관한 개별 정보 (실명, 학력 정보, 경력 정보 등)가
일일이 명기되어 있지를 않으니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나타나는 있다는 것에 편승해 그것을 또한
회복역 성서에 대한 님의 폄하 발언 근거로 들었었지요.
인터넷 검색에 나오더라’ 는 것.
주의 인도하심과 평강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선생님!정말 글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그러나
쓰신 글이 너무 길어요 글이나 말이 길면 핵심을 이해를 못할때가 많지요
제가 너무 날카롭게 글을 적어서 마음이 상했다면 용서하십시요
저는 빙빙둘러서 말을 잘 못합니다. 알고 싶은 것에 대한 핵심을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면 그에 대한 근거를 대실줄 알았기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님께서 적으신 글은 지방교회가 대한 정당성 당위성을 역설하신것 같으시구요
신학적으로는 해명을 잘 못하시군요
제가 이단이라고 한 자료는 예장 통합에서 만든 자료를 다른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조금 다르게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제가 제시한 글에 대해 정확한 말씀을 하실줄 알았는데요
그냥 진리다 영적이다 생명이다 그리고 본인의 체험만 말씀하면 저와
대화의 진전이 없지요
저는 님을 비난하려고 한것이 아니라 알고 싶었습니다. 지방교회에 대해서요
그러나 삼위일체, 기독론, 구원론은 지방교회가 기존교단 교회들과는 해석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점만 설명 부탁드립니다.
기존교단에 대해서 설명하시라는 것이 아니라 간단히 제가 적은 글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만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해다 공부를 안해봐서 그렇다 라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평한다 이런 류의 말은 사양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다른교단은 이단을 철회했다고 하는데요 글쎄요 미국내에서도 정말
논쟁이 많지요 미국은 워낙 종교다원주의 국가라서 미국에서 그런다고 해서 한국에서도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긴글 쓰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저도 대학시절에 BBS(brothers bible study라는 대학선교단체)를 통해서(가입한것은 아니고 이웃서클이었지요)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를 알았습니다.
그당시에 읽었던 '영에 속한 사람'이나 '좌행참'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은 제 기억에도 남습니다. 당시에 저도 BBS에 소속된것은 아니었지만 BBS를 접촉하면서 많은것을 배웠지요...
그때 열심히(?) 기도도 하던 때였던지라 그때의 기도제목중 하나는 가난한 대학생이 갖고 싶었던 책을 가질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지금은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는 위트니스리의 전집이었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을 읽을 당시만 하더라도 워치만 니에 대한 저의 평가는 아주 대단했습니다.
사실 다비안들은 대부분 아시고 계시겠고, 정목사님도 잘 아시겠지만, 워치만 니를 몰라도 위트니스 리를 몰라도 다비안은 솔로몬의 예표론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미 성경관이 다르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저도 기독교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서 거의 모든 번역본은 다 읽어봤습니다. 더군다나 몰몬경이나 통일교의 원리강론도 재미로 봤지요...쿠란도 일부 읽어보고 있습니다. 집에는 아직 회복역이 있습니다. 회복역을 원리강론이나 쿠란과 비교하는것은 아닙니다.
빈이님의 말씀처럼 원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더 날뛰는 킹제임스파도 있긴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사실 일반인들은 성경의 각 번역본의 차이를 단순히 읽어나가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삼위일체를 부인하기 위해서 변개된것인지 아니지를 어떻게 구별하겠습니까? 내용도 이해를 못하는데요... 다만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는것입니다.
바람처럼 강물처럼님의 말씀처럼 BBS분들은 특히나 외형적으로 봤을때는 다른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선량해 보였습니다. 더 부드러웠고 더 공손했었지요... 사람이 겸손하고 진정성이 있다고 해서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이 다 진실이라고는 전혀 확신할수 없습니다. 완전히 별개의 것이겠지요...
성경관 하나님에 대한 견해 종교관 등등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워니만 니와 위트니스 리입니다. 당시에는 저도 그들의 영성(?)에 놀라서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가르침에 귀를 귀울였지만, 지금은 전혀 아닌것은 단순히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경험해서 아는 그런 과정을 지나온 흔적때문일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때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를 그대로 믿는것과 그것이 그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그것이 아니고 그것은 좀 다른것이라고 믿는것의 차이라는것을 다비안들은 아실것입니다.
솔로몬의 예표론이 마치 하나님의 경륜에 포함되어서 그렇게 미리 정해진대로 흘러진것이라고 믿는 분과
그런 예표론은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서 역사적으로 후대에 형성된것이라고 믿는 차이가 아주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글이 길어질까 걱정입니다. 몇일전부터 스마트폰으로 봤다가 그냥 지나치려다 결국 컴앞에서 몇자 적게 되는군요..
2C120 님을 잘못된 신앙이라고 말씀드리는것도 아니고 이단종파라고 말씀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모든 종교가 다 구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더 친해지고 더 재미있는 관계를 형성할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두 분 대화를 대하는 저도 감사합니다. '웃음' 님께도 주(主)의 평강이 함께하시길 바라면서... ^^
글이 길쭉한 것이 스마트폰으로 보는 분들을 위한 배려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이 우선이군요. 점점 컴은 사라지고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해도 스마트폰에 최적화가 되는게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 크기에 따라 보이는게
제각각입니다. 아마도 목사님의 스마트폰 크기에서는 꽉 차게 보일지 몰라도(예측)
화면이 넓은 제 스마트폰에서는 여백이 생기네요.
그냥 컴퓨터 화면 게시판에 ba 태그 없이 쭉 글을 쓰면 (보통 쓰던 방식으로) 스마트폰 화면서서는
자동으로 줄바꿈이 되어 폰 화면 크기에 상관없이 빈 여백이 안생기던데요.(제 경험)
xe 보드가 여러모로 쓸모가 많기는 한데 컴과 스마트폰 사이에 호환부분은 좀 모자란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