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1월2일(수)

조회 수 7377 추천 수 0 2013.01.02 21: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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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연필로 글을 썼다. 컴퓨터에 글을 쓰기 전에 글의 구도를 잡을 때 나는 연필을 자주 쓴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연필을 잡는다. 밑줄을 긋기도 하고, 중요한 대목 옆에 강조 표시도 한다. 성경을 읽을 때는 색연필을 사용할 때도 있다.

나는 연필을 잡을 때마다 황홀하다. 내가 무엇을 손으로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그런 단순한 행동도 할 수 없을 때가 곧 오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특히 연필을 잡는다는 것은 나의 전체 삶이 담겨 있는 행위다. 평생 연필을 쥐고 살았으니 말이다. 연필을 잡을 때마다 어릴 때의 장면들이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나는 삼선국민학교에 입학해서(당시는 초등학교라 하지 않았다.) 5학년 1학기 때까지 다녔다. 오십년 전 일이다. 그때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는 아직도 생생하다. 언젠가 매일묵상에 그걸 쓸 날이 올 것이다.

당시 연필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 연필의 질은 형편없었다. 흑심이 너무 거칠어서 글씨를 쓸 때는 침을 묻혀야만 했다. 때로는 공책이 찢어지기도 했다. 책받침도 필수품이다. 부자집 아이들의 연필은 달랐다. 간혹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연필을 들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침을 묻히지 않아도 되고, 연필 끝에 고무가 달려 있었고, 나무도 부드러워서 칼로 깎기도 쉬웠다. 연필 따먹기는 우리의 일상이었다.

저 연필을 보라. 저것은 우주다. 나무와 흑심과 도료와 고무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양은 철판은 우주에서 온 것이다. 저 연필을 내가 손에 쥐고 글을 쓸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이가 들면서 사물에 애착이 깊어지는 것 같다. 그것이 사랑인가, 애착인가. 아마 내가 사물이 되어간다는 무의식이 그렇게 작동되는가보다. 올해도 연필과 더 친해지고 싶다. 어쩌면 저 연필은 나 자신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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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13.01.03 12:50:35

글이 길쭉한 것이 스마트폰으로 보는 분들을 위한 배려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이 우선이군요. 점점 컴은 사라지고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해도 스마트폰에 최적화가 되는게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 크기에 따라 보이는게

제각각입니다. 아마도 목사님의 스마트폰 크기에서는 꽉 차게 보일지 몰라도(예측)

화면이 넓은 제 스마트폰에서는 여백이 생기네요.

그냥 컴퓨터 화면 게시판에 ba 태그 없이 쭉 글을 쓰면 (보통 쓰던 방식으로) 스마트폰 화면서서는

자동으로 줄바꿈이 되어 폰 화면 크기에 상관없이 빈 여백이 안생기던데요.(제 경험)

xe 보드가 여러모로 쓸모가 많기는 한데 컴과 스마트폰 사이에 호환부분은 좀 모자란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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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03 13:28:09

나무 님,

글을 좁게 쓴 이유는

스마트폰 사용자와 상관없이

컴 화면에서도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근데 나무 님 설명을 듣고 보니

앞으로 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글쓰기를 좀 신경 써야 될 것 같네요.

앞으로 사람 사이의 소통을 위한 도구가 어떻게 변해갈지

상상하기 어렵군요.

주님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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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2013.01.03 13:03:10

우리 집에 굴러 다니는 것이 저 연필입니다.

애물 단지입니다.ㅎ

여기 저기서 많이 들어오니

아이들이 귀한 줄도 모르고 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요하시면 연필 한타스 선물로 드릴까요..ㅎㅎ

심을 조금 깍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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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03 13:30:39

달팽이 님,

어디서 연필이 들어옵니까?

나는 심을 뾰족하게 하지 않습니다.

나무만 깎고 뭉퉁한 심을 그대로 씁니다.

에너지 절약 차원이기도 하고, ㅎㅎ

굵은 심이 쓰기 편하다는 실용적 차원이기도 합니다.

[레벨:16]맑은그늘

2013.01.04 03:59:54

20-30시대를 연필없이 살아오다가 요즘에 와서야 연필을 사용하네요.

책을 보면서 밑줄도 긋고, V표시도 하고,...

제 삶이 정목사님의 반의 반반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저도 연필을 자주 들고 자주 사용하고 싶습니다.

소소한 그렇지만 삶의 큰 역할을 했던 연필을 소개해주시니 제 스스로 어떤 느낌과 앞으로의 동기부여가 되는군요.

달팽이님 연필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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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12 14:45:04

호미 님도 연필을 사용하는군요.

만년필이나 볼펜과는 전혀 다른 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연필을 사용하나 봅니다.

연필은 그야말로 인간 정신 문명사와 함께 한 도구에요.

좋은 주말을!

[레벨:7]2C120

2013.01.12 0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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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12 14:46:44

2C120 님,

안녕하세요?

닉네임이 멋지군요.

이혜인 수녀님의 좋은 시를 소개해주셨네요.

느낌이 확 와 닿는군요.

종종 읽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레벨:7]2C120

2013.01.13 21: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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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13 23:07:59

아, 그렇군요. 고후 1:20절 님.

나모스라는 카페는 처음 듣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다비아와 친구가 되셨네요.

반갑구요.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레벨:7]2C120

2013.01.13 23:28:32


아이쿠, 이런... !
닉네임 사용처에서 그냥 실명을 표기해 버리시다니...!
워낙이 드러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만 또,
실명이 온라인 상에 그대로 표기되어 버리는 실수(?)를 결국 하게...
만들고 마셨사옵니다....
 
그런데 목사님,
조금 전 처음으로 <두려워 말라>란 제목의 설교 녹취록을 들어 보았는데..
"솔로몬이 문제가 많은 왕이었거든요... 자기 자식을 솔로몬 왕처럼 해 달라는 거는
은혜가 아니라 저주라는 걸 알고 기도하십시오.."라는 녹취 말씀이 있어서...
솔로몬이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측면이 있다 라는 면과 관련 지어 볼 때
조금 극단적인 내지는 좀 부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어, 조심스럽게 한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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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13 23:41:36

아이쿠, 이런...!

닉을 자판으로 치려다보니 좀 복잡해서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친다는 게,

이런 사고를 저질렀습니다.

아마 여기에는 ... 님을 아는 분이 없지 않을까요?

성이 희성이시긴 합니다.

 

설교 원고에는 솔로몬에 대한 언급이 없었는데,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발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가끔 설교 그런 사고를 칩니다.

이해해주세요.

근데 솔로몬이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만 더 부연 설명해달라고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금 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혹시 나중에라도 기억이 나시면...   

 

[레벨:7]2C120

2013.01.14 03:27:26

 
우선, 사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계보의 기록이 있고,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그 같은 계보(족보)의 기록이 없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는데요.
 
‘왕국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구주이시라는 것에 대한 증언’을 주제로 하고 있는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예수가 ‘왕가의 합당한 후손이며, 왕가의 합법적인 계승자’임을 말해 줍니다. 그처럼 합법적 왕가에 속한 이에게는 참으로 자기의 근원과 혈통을 말하는 족보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마태는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왕, 곧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증언하기 위해 이 왕의 조상들과 그분의 신분을 보여 주고, 그분께서 다윗의 보좌의 합당한 계승자이시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한편, ‘죄들에 대한 용서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구주이시라는 것에 대한 증언’을 주제로 하고 있는 누가는 예수를 ‘합당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제시합니다. 그같이 ‘이 땅에서 유일하게 합당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사신 그분에 대한 온전한 그림을 제시하기 위해서도 족보가 필요합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합당하고 정상적인 사람이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분의 세대들을 보여 주고, 그분께서 인류의 구주가 되실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노예—구주이시라는 것에 대한 증언’을 주제로 하는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노예로 팔린 사람’, 곧 하나님을 위해 신실하게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종(노예)으로 묘사되면서, 노예에게는 족보가 필요 없기 때문에 마가복음에서 족보는 제시되지 않습니다. 마가는 종(노예)이신 예수님에 관해 기록하면서 그분께서 나신 유래를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생명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을 그분의 몸인 교회를 통해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 생명으로 오신 하나님—구주이시라는 것에 대한 증언’을 주제로 하고 있는 요한복음에서도, 저자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바로 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예수님의 인간 계보를 제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 자신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생명이 되신 분으로 계시된 그런 분에게는 혈통이 없습니다. 그분은 영원하시고 생명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으십니다(히 7:3).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 그러므로 요한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태초에 계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선언합니다.
 
사복음서에 나타난 두 계보(족보)와 관련해 마태복음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왕이신 왕국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구성되는데, 그 후손들은 아브라함의 육체의 후손들 및 믿음의 후손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에 있는 그리스도의 계보는 창조된 족속의 조상인 아담으로 시작하지 않고, 부름 받은 족속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 시작하며, 하나님의 왕국은 창조된 아담의 족속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이스라엘 사람들’(롬 9:6~8)과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갈3:7, 9, 29)을 포함하는, 부름 받은 아브라함의 족속으로 세워지는 것을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솔로몬’이 그리스도의 예표로 계보상 제시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 1:1, 삼하7:12~14, 마 9:27, 마 12:23, 마 12:42, 마 15:22, 마20:30~31, 마 21:9, 14, 마 22:42, 45, 눅 1:32, 요 7;2, 계 22:16).
 
솔로몬은 ‘다윗의 자손(the son of David)’이신 그리스도’(마 22:42, 45, 계 22:16), 곧 다윗의 보좌와 왕국을 물려 받아 상속하는 분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삼하 7:12하, 13, 렘 23:5, 눅1:32~33).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솔로몬은 주로 두 가지 일을 했는데, 하나는 왕국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것이고(왕상 6:2), 또 하나는 지혜의 말을 한 것입니다(왕상 10:23~24, 마 12:42).
마태복음 12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지혜를 갖고 계시며 지혜의 말씀을 하신 것을 보게 되며, 이 장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을 솔로몬보다 위대한 분으로 언급하셨습니다(42절). 솔로몬보다 위대한 이가 계셨고 그분 예수님은 지혜의 말씀을 하셨으며 그 어떠한 인간의 말도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만큼 지혜롭지는 못합니다.
특히 마태복음 12:38~42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보내신 예언자로서(신 18:15, 18), 예언자 요나보다 더 크신 분이자, 아울러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고 지혜의 말을 했으며, 이방 여왕이 그에게 왔었던 솔로몬(왕상 6:2, 10:1~8)보다 더 크신 분으로 계시되면서,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있어 부활 후 교회 건축을 통한 완전한 구원 사역과 연관되는 예표로 나타납니다.
삼 일 후에 물고기 뱃속에서 밖으로 나와 그 세대에게 회개하는 표적이 됨으로써(욘 1:2, 17, 3:2~10), 바로 그 같은 방면에서, 이스라엘에게서 이방인으로 향하시고 삼 일 동안 땅에서 장사되어 계신 다음 부활하시어 이 세대에게 구원을 위한 표적이 되신 그리스도의 예표인 요나(욘 1:2, 17, 3:2~10)가 언급되고 나서(마 12:38~41),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고 지혜의 말을 했으며, 이방 여왕이 그에게 왔었던 솔로몬(왕상 6:2, 10:1~8)이 언급되면서 솔로몬 또한, 교회를 건축하시고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드시며 지혜의 말씀을 하시고 이방의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분께로 돌아와 구원을 얻게 되는 그리스도의 예표로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마 12:42).
마태복음 12:38~42에 있는 이 두 예표, ‘요나’와 ‘솔로몬’의 두 예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이시자, 아울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12장 18절과 21절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에게서 이방인들에게로 향하실 것임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연대기적으로 볼 때는 솔로몬 왕이 예언자 요나보다 앞에 나오지만, 영적인 의미로 볼 때 마태복음에 기록된 것과 같이 요나가 먼저 나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의 기록이 역사의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니라, 교리의 순서에 따른 것임을 보여 주는 측면이기도 한데, 영적인 의미에서의 교리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먼저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했고, 그 다음에 그분은 교회를 건축하시고 지혜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은, 제가 이해하고 있는 한도 내에서의 부연 설명 일부가 되겠는데요..
전문적 신학과 무관한 저로선, 보다 더 적절한 해석이 있으면 경청하고 또 생각해 보겠습니다… ^^
그리고
Living Stream Ministry
'Recovery version Bible'의 footnote들과 'Life-Study' 원문을 참조하시거나(http://www.lsm.org),
한국어로는 '한국복음서원'에서 발간된
'회복역 성경'이나 성경 전서 라이프-스터디 중 '마태복음 라이프-스터디'를 참조하시면
제 이해 내용과 관련해
좀더 구체적인 설명을 만날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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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14 11:40:43

고후1:20 님,

예표론에 대한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셨네요.

죄송한 말씀을 드리면,

예표론도 하나의 성서해석 방법론이긴 하지만

현대신학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겁니다.

교부들이 주로 그런 해석을 취했는데,

그것도 특별한 경우에 한정됩니다.

가능하면 예표론은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자칫 하면 이현령비현령 해석으로 떨어질 수 있거든요.

위에서 솔로몬을 그리스도의 예표로 거론하신 구절들도

별로 설득력은 없어 보입니다.

다시 죄송하게도 ...

다윗은 그게 가능하지요.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라는 게

신약성서기자들이 구약을 해석한 관점이니까요.

근데 솔로몬은, 음,

좀 아니올시다, 거든요. ㅎㅎ

솔로몬은 다윗 족보의 한 사람으로 들어갈 뿐이에요.

족보에 열거된 이들이 모두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요?

족보를 다루고 있는 마 1:3절은 이렇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유다와 다말은 시아버지와 머느리의 관계인데,

그 이상한 관계는 창 38장에 소상히 나와 있네요.

고후 님의 저 대글을 보고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참고적으로 제가 일천번제를 중심으로 솔로몬에 대해서 쓴 글이 있어서

여기 링크 하니 혹시 관심이 있으면 읽어보세요.

좋은 한 주간이 되시기를...

http://dabia.net/xe/278344#comment_321402 

[레벨:7]2C120

2013.01.14 15:56:51


 

 
아, 정용섭 목사님. 친절한 답신 감사합니다.
 
근데 우선,
솔직 거듭 또 솔직 솔직한 말씀으로,
‘공부를 많이 한’ 게 아니라 정반대로
공부를 전혀/거의 못한 사람이라서 바로 그 점이,
대화에 있어
‘죄송’하다면 좀 ‘죄송’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추구(the search after God and Reality)에 있어,
관련 내용이 ‘현대 신학’ 내지 일정 교단에서
인정 받고 있는 내용인가 아니면 ‘별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추구에 있어
성경 진리에 대한 판단의 준거에 관련한 무게 중심은
신학 사조의 흐름이나 교단의 인정 여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기회가 되면 차후에,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라는 게 신약성서 기자들이 구약을 해석한 관점이니까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솔로몬은 다윗 족보의 한 사람으로 들어갈 뿐,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 볼 수는 없고
그런 말은 설득력이 없고 좀 아니올시다’가 되는지,
그런 관점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계신 분들의
설득력 있는 더 구체적 내용을 들어도 보고 찾아도 보고 싶습니다만
현재 그저 제가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주신 말씀과 관련해 조금 더 부언하면,
 
(1)
누가의 기록은 다윗의 아들 나단 곧 마리아의 조상의 계보인데 비해 마태의 기록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 곧 요셉의 조상의 계보입니다. 한 계보는 마리아의 노선 즉 아내의 노선이며, 다른 계보는 요셉의 노선 즉 남편의 노선인 것으로 마리아와 요셉은 모두 다윗의 후손이지만 그들은 동일한 선조로부터 두 가계로 이어졌습니다. 한 가계는 솔로몬의 가계이며 다른 가계는 나단의 가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 두 가계들의 후손인 마리아와 요셉은 정혼했고 그리스도를 낳았으며, 그리스도는 솔로몬과 나단 모두를 통해 다윗의 후손으로 여겨지며 이것이 바로 그분이 두 족보를 가지고 있는 이유이나, 솔로몬의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는 그리스도를 낳은 마리아와 그의 후손 요셉의 결혼을 통한 간접적인 것이므로(마 1:16) 엄밀히 말해서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조상이 아니라 할 수도 있겠고 솔로몬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직접적이지 않은 것이라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은 그리스도가 솔로몬의 자손일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라고 거듭 예언하고 있으며(삼하 7:13~14, 16, 렘 23:5)
그 같은 연유로 해서 그리스도의 계보에 명시된 솔로몬이
 
(2)
그리스도의 일정 부분을 예표하고 있다는 측면과 관련해서
 
‘그리스도의 족보에 열거된 이들이 모두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신
말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계보로 명기된 이들’과
‘그리스도의 계보에 명기된 이들로서 그리스도의 일정 측면을 예표하는 이들’이
같은 의미로 취급될 수는 없다는 전제가 우선 확인되어야 하는 걸 말씀 드려야 할 듯합니다.
 
 
아울러,
창 38장과 관련해 마태복음 1장 3절에 대해 제가 이해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담의 계보에는 어떤 여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창 5:1~32)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 계보에는 다섯 여자가 언급되고 이 다섯 여자 중에서 마리아만 이 선택된 족속의 후손으로서 순결한 처녀였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녀에게서 직접 태어나셨습니다(마 1:16). 나머지 여자들—다말, 라합, 룻(마1:5),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마 1:6)—가운데에는 이방인도 있고, 재혼한 사람도 있으며, 그 중에 셋은 심지어 죄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다말은 근친상간을 했고, 라합은 창녀였으며, 밧세바는 간음을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심지어 죄 많은 사람들과 관계 있으시다는 것을 가리키며, 또한 전형적인 죄인들에게도 ‘왕이신 구주’이시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링크 걸어 주신 참조, 잘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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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14 17:12:04

고후 님,

재미있습니다.

성서를 바라보시는 관점이요.

한 가지만 질문합니다.

마태족보는 요셉의 것이고

누가족보는 마리아의 것이라는 주장이 확실한가요?

그 근거가 무엇인가요?

그렇게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긴 합니다만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저도 한 교단이나 특정신학을 추종하는 거는 아니에요.

성서를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것뿐이에요.

족보를 다루는 눅 3:23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누가는 족보를 시작하면서 분명히

예수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하고,

요셉의 아버지를 헬리라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마태족보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요셉 족보 아닌가요?

좋은 하루 되세요.  

 

[레벨:7]2C120

2013.01.14 16:29:11

목사님,
이 '연필'에서의 댓글과 설교 모음 게시판의 '두려워 말라'란 제목 게시글에서
기왕에 실명 표기해 놓으신 부분은 좀 고쳐 주셨으면..? 하는 부탁 말씀 드려 봅니다. ^^
글 흔적이나 이름을 사이버 상에 남겨 두는 걸 워낙 영 내키지 않아 해서...
댓글이든 게시글이든 사이버 상에 공개 글 흔적 남겨 두는 건 가능하면 피하자...로 가는 주의인데

어쩌다 그만 또.... 목사님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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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14 16:38:35

"비밀글입니다."

:

[레벨:7]2C120

2013.01.14 22:18:27

'근거'와 관련해 지적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언급하신 부분과도 연관된 얘기가 아닌가 해서
저도 한 가지만 삼가 질문 드리고자 합니다.
"족보를 다루는 눅 3:23은 이렇습니다.....그렇다면 마태족보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요셉 족보 아닌가요?"
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족보와 관련된 그 누가복음 구절들의 마지막 구절인 38절을 보면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되어 있으니
그 같은 논리에 의한다면 38절은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로 되니까 결국
"기본적으로는 요셉의 족보이자 아담의 족보이고 하나님의 족보 아닌가요?"가 될 텐데
그렇다면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자.... 아담의 아들이고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가 되고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의 아들.....들의 아들인 요셉의 아들이다"로 족보 해명이 될 터인데
그 같은 귀결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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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14 23:34:18

고후1:20절 님이 결론을 잘 내리셨군요.

마태족보와 누가족보 이야기는

자꾸 따지기 시작하면 모순에 빠져버립니다.

거기 나오는 조상들 숫자도 다르고 이름도 다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분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태어나신 분이라는 사실을

복음서 기자들이 강조하려고 그 족보 이야기를 기록했다고 보는 게 좋습니다.

그 족보 이야기를 근거로 솔로몬 예표론을 제시하면

좀 곤란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솔로몬에 대한 저의 비판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렀군요.

그만 해도 되겠지요?

즐거웠습니다.  

 

 

[레벨:7]2C120

2013.01.15 13:26:02


안녕하세요 정용섭 목사님,
답글 주신 것 지금 막 보았습니다.
근데,
저로서는
 
1.
‘예수님이 구체적인 이스라엘 역사에서 태어나신 분’이라는 객관적 사실의 토대 위에
우리의 주관적 이해에 있어서도
‘모순에 빠져 버리는’ 일 없이 정곡을 찌르는 영적 의미로 제시된 이야기가 또한
족보 내용이란 점을 놓고 오히려 대화하려던 참이었고 ^^
 
2.
‘족보 이야기(만)을 근거로 솔로몬 예표론을 제시’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솔로몬 예표와 관련해 참조된다고 생각되는 그 일부 내용 중 족보 이야기를 말씀 드린 것이었으며
 
3.
목사님께서 참조하라고 링크 걸어 주신 내용 중 왕상 3:9에 관해
목사님께서 언급하신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관련한 비판 부분에 대해서도
위 2의 맥락에서 좀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제가 내린 결론 방향이 아닌 것이
제가 내린 결론 방향인 것처럼 목사님에 의해 마무리 된 답변을 어떻게 대하게 되었습니다마는...^^
 
다음에 혹 기회가 허락될 때
모쪼록 유익한 대화의 시간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 사이트에 막 들어와서 아직은 게시물 대여섯 편 정도밖에 읽어 본 게 없어서
시간 되는 대로 종종 들러
좋은 교제 모습들에서 좀더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추운 겨울, 모쪼록 더욱 건강하시고 평강의 나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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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16 10:09:12

2c120 님, 잘 알겠습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성서를 읽고 계신 님을 통해서

저도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춥습니다.

그래도 낮은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곧 봄이 오겠지요.

주님의 평화가...

[레벨:14]닥터케이

2013.01.16 10:19:54

2C120님, 정말로 본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신학에 대해 별로 공부하지 못하셨다면 한국복음서원에서 나온 책들은 일절 안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가 한동안 지방교회에 관심을 가져 거기에 출석도 해보고 관련된 분들과 교제도 나누어보았습니다만, 지방교회의 주장들은 상당부분 성경을 왜곡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겉보기에는 아주 영적인 것 같고,  성경을 깊이 모르는 사람들이 처음 듣기에는 그들이 신령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한꺼풀만 깊이 들어가보면 영적인듯한 가르침들이 사실은 아전인수격의 공허한 성경해석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위트니스 리의 책들이 그러한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성경에 대해 깊이 모르시는 분들은 이들의 주장중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스스로는 감별해내지 못하므로 처음부터 아예 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깊은 혼란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들의 주장이 어찌나 교언영색한지 저도 지방교회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에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지방교회의 가르침은 신론, 인간론, 교회론 등의 조직신학적인 면에서도 일일이 다 지적하지 못할만큼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장로교 주요교단들이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했겠습니까... 지금은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려도 전혀 공감하지 못하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성경에 대해 그리고 신학에 대해 조금씩 깊이있게 배워나가시다 보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눈이 열리시리라 생각합니다.

 

(ps) 회복역 성경은 성경용어 혹은 일부 내용들을 지방교회의 교리에 맞게 각색한 것이며, 각주의 내용 역시 위트니스 리의 왜곡된 성경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서 전혀 권할만한 것이 못됩니다.  이후로는 한국복음서원 책이나 회복역 성경을 추천하는 발언은 일절 삼가하여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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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16 23:14:49

닥터케이 님,

지금 시츄에이션이 지방교회와의 연관인가요? ㅎㅎ

그 지방교회라는 이름을 듣기는 했지만

이제야 그 특성을 조금 느낄 수 있네요.

닥터케이 님은 정통 신학에 서 계신 분인 줄 알았는데,

전력이 좀 화려하시군요. 음.

요즘 교회 출석은 어디로 하시는지요.

혹시 대구에 볼 일이 있으시면

일부러라도 주일로 일정을 잡아서

샘터교회 예배에 한번 오세요.

주님의 은총이 금년 한 해에도 풍성히 임하시기를...

[레벨:14]닥터케이

2013.01.17 12:53:56

목사님, 잘 지내시지요? 아버지께서 소천하신 이후로는 대구에 갈일이 잘 없어서 샘터교회에 한번 들리는게 쉽지 않네요... ㅠㅠ

제가 한때 영적 방황의 세월을 다양하게 보냈던 전력이 있습니다. 뭐, 지금도 광야와 같은 생활입니다만... (^^;)

언제 한번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들리도록 해보겠습니다. 아니면 영천으로 방문드리거나...

늘 평안하시길...

[레벨:7]2C120

2013.01.17 01:43:04


닥터케이님, 안녕하세요
님 댓글 지금 읽었습니다. 이단 신앙에 빠질까염려해 주신 대해 우선 감사 드리면서 ^^
제게 주신 말씀에 대해 답변 드리겠습니다.

1.
“정말로 본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신학에 대해 별로 공부하지 못하셨다면” 하신 부분에 대해
답변 드리면,
그렇습니다. 저는 전문적 신학도나 전문 교파에서의 목회와는 무관하게 살아 온 사람입니다.

 
2.
“정말로 본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신학에 대해 별로 공부하지 못하셨다면 한국복음서원에서 나온 책들은 일절 안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라고 하신 부분에 대해 답변 드리면, 제가 알고 있는 한 오히려 신학을 전공하고 “성경에 대해 깊이 아신다”고 볼 수 있는 목회자 분들이, living stream ministry(http://www.lsm.org) 나 living stream ministry(약칭 LSM)의 한국어 출판부인 한국복음서원에서 간행된 메시지들을 통하거나 지방교회 교인들과의 만남들을 통해 진리/생명 면에서 비로소 사역에서의 전진된 빛을 만나 교단 목회자로서의 생활을 접고 지방교회 교인들이 된 분도 상당히 계시며, 무엇보다도 님의 제언에서 보이는 그 같은 태도와 자세, 곧 본인이 스스로 점검,확인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이의 일부 의견을 좇아 보라고 종용하시는 그런 부분은 진리 추구에 있어 바람직해 보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3.
“지방 교회의 가르침은 신론, 인간론, 교회론 등의 조직신학적 면에서도 일일이 다 지적하지 못할 만큼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장로교 주요 교단이 지방교회를 다 이단으로 규정했겠습니까…” 라고 하신 부분에 대해 답변 드리면,
 
첫째, 어떤 부분에 있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문제점이라고 생각되는 그 부분은 “일일이 다 지적”되고 논의되어야 마땅하지, “일일이 다 지적하지 못할 만큼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습니다” 정도로 얼버무려 호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
 
둘째, 오죽하면 장로교 주요 교단이 지방교회를 다 이단으로 규정했겠습니까…” 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알고 있는 한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는 지방교회가 과거에 일부 장로교단에 의해 이단시된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 부분은 이미 교회연합신문 등에서도 진상이 밝혀진 바 있고, 또 미주 쪽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풀러 신학대학교 및 이단관련 연구소인 CRI(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공식 성명을 통해 밝혀진 바 있으며, (해당 내용 중 일부를 직접 들어 보실 수 있도록 링크 걸어 둡니다. CRI(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연구소장인Hank Hanegraaff의 라디오 대담입니다. Youtube에 나와 있네요. http://youtu.be/nqexHO_VVa8),
일부 한국교단 측의 오류를 근거로 삼아“오죽하면…”으로 몰아부치려 하는 자세는 단순 군중심리를 유도하려는 듯해 더욱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말씀 드린 대로 우선, 저는 막 이 사이트에 들어와 아직까지는 대여섯 편 정도 게시물 읽어 본 것밖에는 없고 서너 편 정도 대략 훑어 본 상태에서 이<연필>이란 게시물을 대했을 때 마음 속에 떠오른 시 한 편이 있어 댓글로 올렸다가 워낙 공개 글 흔적 따위를 사이버 온라인 상에 남겨 두는 걸 영 내키지 않아 하는 사람이 그만 참으로 본의 아니게 이처럼 긴 댓글 내용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만, 그 후 두세 네 편 더 게시물들을 읽어 보니 관점이나 내용에 있어 저로서는 얘기하고 싶은 부분들이 있는 글들이 눈에 띄는데요, 그러나 그런 부분에 있어 닥터케이 님과는 다른 제 입장을 말씀 드리자면, 막연히 “나의 관점, 이해와는 다르니 문제점이 있다”로 치부해 버릴 것이 아니라 그런 부분이 있다면 저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는 가능한 기회가 허락되는 한은 서로 의사소통되어야 하는 게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다음으로,
<연필>이란 이 게시물의 댓글을 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인터넷에서 대구성서아카데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한 번 검색해 보았더니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석사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어떤 목회자는 정용섭 목사님을 “사탄의 종”이라고도 표현하며 매도해 둔 게 보이더군요, 다시 말해, 진리추구 방면에 있어서 “오죽하면 장로교 주요교단들이….”와 같은 접근 자세를 가지고, “이후로는 한국복음서원 책이나 회복역 성경을 추천하는 발언은 일절 삼가하여 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라고 하신 닥터케이 님의 그런 입장이라면'정통 신학을 한 목회자'라는 이로부터 “사탄의 종”으로 질타된 이 대구성서아카데미 또한 일반 신도들에게는 접근 금지 구역으로 추천, 종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4.
“회복역 성경은 성경용어 혹은 일부 내용들을 지방교회의 교리에 맞게 각색한 것이며, 각주의 내용 역시 위트니스 리의 왜곡된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서 전혀 권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라고 하신 닥터케이 님께서 “지방교회의 교리(?)”나 “위트니스 리의 성경 해석”과 그 “왜곡(?)”에 대해 과연 얼마나 확실히 잘 알고 계시는지 의문인데요, 이하 첨부파일은 AMAZON SITE에 있던 Book Review의 번역 내용입니다. 이 book review를 쓴 분 역시 지방교회(local church)교인이 아닌 분이니 그 점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5.
local church 관련해서 한국어 번역도 포함된 첨부 파일을 참고하시라고 올려 두겠습니다. 첨부파일 링크를 눌러 열어 보실 수 있고 참고로 읽어 보실 수 있겠습니다.
참고 되시길....
 
6.
아울러,
윗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각 정통 교단 전문가들(미국 종교 연구소 소장이자 감리회 소속 목사, 성공회 신학교 및 필라델피아 신학교 교수, 워싱턴 대학 비교 종교학 교수, 풀러 신학교 대학원 교수, 프린스턴 신학대 교수, 카톨릭 사제이자 에수회 일원 등등)의 공동 증언으로 발간된 <The Experts Speaks>도 참조해 볼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책은 한국복음서원에서 <윗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관한 전문가들의 증언>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된 듯하네요.
 
샬롬.
 


첨부

[레벨:7]빈이

2013.01.17 04:23:35

저는 솔로몬이 역사적으로 실제 있었던 인물일까...하는 의문이 있는데요,

솔로몬 예표론은 못 들어본 내용이라 읽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회복역 성경이란 것도 잘 모르겠어서 인터넷을 찾아봤습니다.

일단 자주 가는 사이트의 리뷰 내용도 그렇고,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영어판을 몇 부분 읽어봐도 그렇고, 소위 말하는 축자역인 것 같네요. 번역자/그룹이 누구누구인지 공개가 안되어 있는 것도 좀 꺼려지구요.

이런 번역이 위 댓글에 옮겨놓으신 리뷰처럼 극찬을 받을 만한 지는, 글쎄요. 팔이 안으로 좀 굽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검색을 좀 더 해봤더니 번역 문제 보다는, 과도한 혹은 부적절한 각주 문제를 지적하는 글들이 보이네요. 각주 전체를 이 교파(?)를 만드신 분이 혼자 작성하신 거라고 하던데, 정확한 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러 글에서 지적된 각주 하나만 들어보자면


Revelation 2:9 note 5 .... Through all the centuries since then, religious people have followed in their steps, persecuting those who genuinely seek and follow the Lord in spirit and life, while still considering that they are defending the interests of God. Roman Catholicism and Protestantism, as well as Judaism, all fall into this category, having become an organization of Satan as his tool to damage God's economy.


제게는 각주라기 보다는 선언으로 읽히네요. 축자적인, 다르게 생각하면 굉장히 보수적인 번역본이 이런 역동적인(?) 각주와 나란히 있는 모습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이것이 이 분의 본 마음이라고 한다면, 교파를 새로 세우게 되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레벨:7]2C120

2013.01.17 10:50:09

 

'빈이' 님 댓글 잘 읽었습니다.

1.
“저는 솔로몬이 역사적으로 실제 있었던 인물일까..하는 의문이 있는데요” 하셔서...
그 의문의 근거란 어떤 걸까.. 궁금해지네요. ^^
 
2.
회복역 성경에 관해 빈이 님께서 언급하신 내용에 대하고 제 생각을 알려 드리면,
 
(1)
우선
빈이 님이 “번역자/그룹이 누구누구인지 공개가 안 되어 있는 것도 좀 꺼려진다”고 하신 것처럼,
제가 검색해 본 인터넷에서도
“The editions used do not provide the names of the translators or any details of the translation philosophy. They merely state that the text translation and language notes are by the Editorial Section of Living Stream Ministry.”라고 되어 있는데,
(27 March 2006에 Murray Grindlay라는 분이 포스팅한 것이자
Dale이라는 이의 Apologetica라는 블로그에서 다시 포스팅 된 것이군요
“I have not read all of the footnotes, but …”하면서
자신이 읽은 footnote 들을 다소간 “부적절하게”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글”이 보이는데
(그 인용들과 언급들에 대해 생각을 밝히려면 너무 길어질 듯해 생략입니다…)
그러나
“번역자/그룹이 누구누구인지 공개가 안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첫 페이지 서문 말미에 <Witness Lee & Editorial Section (of LSM)이라고 명기되어 있고, "번역자/그룹"이란 건, 명기되어 있는 바로 그 번역자/그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 아니냐 싶네요.
편집 출판부 그룹에서 번역 출판에 참여한 한 명 한 명의 실명이 다 명기되어야만
신뢰성이 높아지는 건가? 싶어 의아해집니다.
아울러 저도 여러version 성경들을 놓고 같이 비교하며 보고 있지만 제가 과문이라 그런지 모르겠으나, 해당 성경의 “details of the translation philosophy” 라는 것도 대략 서문에 진술된 정도 이상으로 해서, 별도로 번역 방침이나 이념이라며 제공된 성경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2)
Amazon Site에서 인용한 book review에 관해서 “이런 번역이, 위 댓글에 옮겨놓으신 리뷰처럼 극찬을 받을 만한 지는, 글쎄요. 팔이 안으로 좀 굽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라시는데,
이미 밝힌 대로 제가 알고 있는 한 그 review 쓴 이는 local church 에서 교회 생활하는 분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지라,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을 저 경우에 끌어다가 흠집내 보기 하려 하기엔 좀 “부적절한” 원용이라 생각되지 않는지요? ^^

(3)
님 댓글을 대하고 님이 “찾아 보셨다는 그 인터넷”을 저도 "검색"해 봤더니,
님이
“번역 문제보다는, 과도한 혹은 부적절한 각주 문제를 지적하는 글들이 보이네요…
“각주 전체를 이 교파(?)를 만드신 한 분이 작성하신 거라고 하던데, 정확한 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러 글에서 지적된 각주 하나만 들어보자면”이라고 하시면서
인용하신 각주 “Revelation 2:9 note 5....”는
Local church를 cult로 취급한 Apologetics Index라는 웹 페이지로서, 
//
The Recovery Version of the Bibleis published the Living Stream Ministry, the publishing arm of the Local Church which, theologically, is a cult of Christianity.
The Recovery Version is controversial in large part because of its extensive footnotes, which promote Local Church theology.
The Bible that the Local Churchoffers in the United States is called the Recovery Version [4] of the New Testament and is unique, both for its theology and for its massive doctrinal commentary, which exceeds the actual biblical text on many pages. Study note #5 for Revelation 2:9 reads: "Roman Catholicism and Protestantism, as well as Judaism, fall into this category [opposing God], having become an organization of Satan as his tool to damage God's economy."
//
라고 얘기한,
Source: Apologia Report, Volume 7: Number 3, January 28, 2002 이고,
 
인용하신 대로
계시록 2장 9절에서 “synagogue”에 대한 각주 내용 중 일부 끄트머리만 놓고 인용하면서
그걸 이단으로 규정할 수 있는 대표적 예로 제시해 놓았고, 2003년 3월 11일에 포스팅 된 것이네요
 
이에 대해
제 견지로는,

첫째,
해당 인용은 전체 다 보는 것이 더 좋을 듯해서 각주 전체 내용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군요.
//
The goal of God’s economy is to have a unique temple on earth to testify of God and of the oneness of God’s people. In the Old Testament, the place that God chose for the establishing of His unique temple was Jerusalem. Because God’s people became fallen, divided, and scattered, numerous fallen, divided centers of worship were raised up; these became synagogues. These synagogues were the places in which the Jews worshiped God mainly by studying their scriptures, the Old Testament. However, because of their stubbornness in clinging to their traditional religious concepts, the Jews became one with Satan in opposing God’s way of life, by which Satan, their synagogues opposed the Lord Jesus (Matt. 12:9~14; Luke4:28~29; John 9:22), then the apostles (Acts 13:43; 45~46, 50; 14:1~2, 19; 17:1, 5~6), and then the churches. Therefore, the Lord called them “a synagogue of Satan.” Even when He was on earth, He considered the synagogues to be of Satan, as implied in Matt. 12:25~29 and John 8:44. Apparently, those in the synagogues were worshipping God; actually, they were opposing God. They persecuted and killed God’s true worshippers, yet they considered that they were offering service to God (John 16:2). Through all the centuries since then, religious people have followed in their steps, persecuting those who genuinely seek and follow the Lord in spirit and life, while still considering that they are defending the interests of God. Roman Catholicism and Protestantism, as well as Judaism, all fall into this category, having become an organization of Satan as his tool to damage God’s economy.
//         
다시 말해,
인용하신 각주 마지막 내용은
각주 전반부에도 언급된 바, 마 12:25~29 와 함께
롬 2:17~29, 고후 3:6절과 관련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걸로 보이고,
 
둘째,
제 경험을 비춰 보면
제 경우 처음 기독교신앙에 관해 추구하게 되었을 무렵 1983년 가을에, 이 계시록 2~3장과 관련해 <The Orthodoxy of the Church> by Watchman Nee (‘한국복음서원’에서 ‘교회의 정통’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습니다) 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었고, 그 같은 전체 문맥의 “역동적인” (^^) 이해의 흐름 안에서
이 구절 각주도 조명되면 더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셋째,
“제게는 각주라기보다는 선언으로 읽히네요. 축자적인, 다르게 생각하면 굉장히 보수적인 번역본이 이런 역동적인(?) 각주와 나란히 있는 모습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이것이 이 분의 본 마음이라고 한다면, 교파를 새로 세우게 되겠구나... 싶기도 합니다.”라고
시니컬 한 어조로 말씀하셨는데 ^^,
인용하신 계 2:9의 각주와 관련해 “이 분의 본 마음”을 일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내용으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있군요.
1982년 6월 장로들 모임에서의 메시지인데
<영을 따라 그리스도를 사는 것의 중요성>이란 책으로 나와 있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
"우리는 지방 교회가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먼저, 지방 교회는 한 지방 안에 있는 참된 모든 믿는 이들이다.
둘째, 한 지방 교회 안에는 조직이나 지위나 계급적인 순위가 없다. 장로들은 성도들 가운데서 특별한 계급이라거나 특별한 부류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장로들은 성도들의 노예들이기 때문에 다른 성도들보다 그들 자신을 더 낮게 생각해야 한다. 많은 믿는 이들이 지방이라는 합당한 터 위에 모이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모두 여전히 지방교회들의 구성원들이다. 우리는 자신들이 특별하며 또한 우리와 함께 모이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보다 못하다고 생각함으로써 우리 자신을분파가 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믿는 이들은 사랑스런 우리의 형제들이요 자매들이다.
우리는 결코 '지방교회'라는 말을 고유명사로 만들어서 우리 자신을 다른 믿는 이들과 분리시키지 말아야 한다. 언제든지 믿는 이들이 다만 믿는 이로써 모일 때 그것이 그 도시 안에 있는 지방교회의 모임이다."
//

"
이 분의 본 마음...새로운 교파.." 하는 님의 '이해'에 도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인용해 드렸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레벨:14]닥터케이

2013.01.17 12:23:38

글 쓰신 내용을 보니 이미 지방교회에 상당히 심취하신 분이군요. 그런분에게 게시판에서 짧은댓글로 논쟁해봐야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겪어봤습니다. 저 자신이 지방교회에 한때 심취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 잘 이해합니다. 링크하신 내용들은 이미 예전부터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에 대해 짧은 댓글로 반박해봐야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아마 한동안은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전혀 귀에 안 들어오실 거에요.

 

지방교회가 좋으시다면 그냥 지금처럼 지내십시오. 다만,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합동과 통합, 고신, 합신이라는 장로교 대표교단들(이 네 교단을 합치면 사실상 한국 장로교회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함)의 공식적인 결의사항이며, 이러한 조치는 아직까지 취소되거나 해제된 바가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장로교 뿐만 아니라 감리교에서도 지방교회는 경계할 대상, 예의주시할 대상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함께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ps) 윗글중 지방교회를 옹호한 것으로 언급하신 "교회연합신문" 은 대표적인 친이단 신문들중의 하나라는 것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통합측에서는 교회연합신문에 대해 "어떤 이단옹호 언론보다도 더욱 경계해야 할 대상" 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 http://blog.naver.com/kona5?Redirect=Log&logNo=150070851380

 

[레벨:7]빈이

2013.01.17 12:48:52

원 글에서 많이 벗어나는 것 같아서 길게 쓰지 않겠습니다만,

제 판단으론 일반적인 성경 번역이나 주석 작업에 대해, 2C120님이 "과문"하신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편집부] 이런 식으로 역본이 나오는 것은, 거칠게 말해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번역판이 나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른 주요 번역본에  어떤 경력을 가진 역자들이  참여하는 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 한 번 찾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축자 번역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번역본을 만드는 본래의 목적을 놓쳤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지, 특정 교파에서 나온 번역이라거나 하는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과도한 주석에 대한 우려도, 번역이나 해석을 넘어서 특정한 주장을 과격한 언어로, 교차검증 없이 전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범위의 주석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거죠. 성경 본문은 축자적으로 읽다가, 정작 그 주석은 여러 문맥을 고려해서 적당하게(?) 읽어줘야 되는 상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레벨:7]2C120

2013.01.18 00:34:19

, 닥터케이 님, 안녕하세요

또 염려의 댓글을 주셨군요.. ^^

"글 쓰신 내용을 보니" "지방교회에 한때 심취한 적이 있다가

그 지방교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라고 하시면서

"한때" 親지방교회 입장이었다가 이제 反지방교회 입장이 되셔서

"지방교회"(?) (사실 "지방교회"라는 게 "00교회" 하는 식의 고유 명사 명칭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아주 부적합한 거라 생각되고 또 그 교회 생활하시는 분들도 그런 어휘 표현은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여간..)에 대한

성토 댓글들을 붙이신 닥터케이 님께서는 그러나,

그 친()/()의 입장 변화와는 달리

논의 방식에 있어서는 일관된 면을 "보이시는 분이군요."

,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들지 않고 상대/독자 심리를 자극해 설득하려는 심리적 오류,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논리적인 타당성과는 무관하게 권위자(이 경우 특정 교파의 주요/대표 교단)의 견해이기 때문에

무조건 자신 주장이 타당하다고 하는 부적합한 권위에의 오류와,

타당한 근거 제시 없이 군중 심리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기대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려고 하는

군중에의 호소에 의한오류를 통해,

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분이신 듯하네요.


"
지방교회가 좋으시다면 그냥 지금처럼 지내십시오. 다만, .....를 함께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참고하라고 하신 내용과 (PS)로 부기하신 내용은 "이미 예전부터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제게 뭐 새삼 참고될 것은 없겠는데요, "다만"

댓글 주신 닥터케이 님의 그같은 글쓰기 성향에 대해선

일면식도 없이 이 게시판에서 마주치게 된 상황이니 만큼 당연히 모르고 있던 터라,

권유해 주신 대로 잘 "참고"하겠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주요/대표 교단"이 안티 입장이 되어 정죄했다더라 는 그 사실 이외에

별달리 자신 쪽으로부터의 근거를 댈 수 없고

"그 교회가 좋으시다면 그냥 지금처럼 지내시라, 다만,

다른 주요/대표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햇다는 건 참고하시라"

정도의 조언을 하시는 분 말씀에 대해서는

"그 교회에 심취(?)했기 때문에 전혀 그런 이야기가 귀에 안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런 정황을 보여 주시는 분의 조언이라면

그 같은 분의 사고나 글쓰기 성향에 대한 부분만 참조해 두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PS)

"심취"(?)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님의 글을 대하고

님께서 "심취(?)와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라"시면서 참조하라고 조언한 내용보다는,

닥터케이 님께서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심취"해 계신 건지 그저, 그 부분이

사실 쬐끔 궁금해지긴 했습니다.

샬롬.

[레벨:7]2C120

2013.01.18 01:25:09

 

빈이 님, 안녕하세요

첫째,
저도 "원글에서 많이 벗어나는 것 같아서 길게 쓰지 않겠습니다만, 제 판단으론"
"회복역 성경이란 것도 잘 모르겠어서 인터넷을 찾아 봤다"시면서
인터넷 검색에 나오는 비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며 그에 근거해 댓글을 다신, 즉
화제 대상에 대해 "모르겟어서..."하신 '빈이' 님께서는
화제 대상과 관련해 님이 그처럼 '과문'하다면
인터넷에서 들은 말이나 그에 근거한 피상적인 검색 정도가 아니라
화제와 관련한 발언에 있어 필요한 시간과 고려를 통한 기초적 "교차 검증" 작업을
님 스스로 먼저 거치고 나서나
해당 화제에 대한 님의 "평가" 발언을 개진하는 수순을 보여 주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둘째,
"번역자/그룹이 누구누구인지 공개가 안 되어 있는 것도 좀 꺼려지구요"라며
비난의 화살을 성경 번역/편집자 쪽으로 돌려 보이시길래
공개되어 있지 않은 게 아니라 <Witness Lee & Edotorial Team (in LSM)>으로 명기되어 있음을
기왕에 환기시켜 드렸었는데요, 그랬더니
<Witness Lee &...> 부분을 빼 버리고 나서는
"[편집부] 이런 식으로 역본이 나오는 것은,
거칠게 말해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번역판이 나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른 주요 번역본에 어떤 경력을 가진 역자들이 참여하느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한 번 찾아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라고 하는군요. ^^
또,
번역자로서의 적격성(?)에 관한 측면으로,
"다른 주요 번역본에 어떤 경력을 가진 역자들이 참여하는지 한 번 찾아 보시라" 하셨는데,
'빈이' 님이 선호할 만한 "역자들의 경력"이란 건 님의 글 내용으로 보아 대략 짐작이 갑니다만,
"회복역이란 것도 잘 모르겠어서..."라고 님이 말씀하신 대로
님은 화제인 회복역 자체에 대해 "과문"할 뿐만 아니라
번역자 "Witness Lee"의 "경력"(?)에 대해서도 "과문"한 듯해 보이니
님이 선호하는 "역자 경력"과 Witness Lee의 "경력"(?) 비교를 통해
회복역 번역자와 LSM 편집팀에 대한, 그같은 상대적 폄하, 비난을 제시하시려면
회복역 해당 번역자에 대해서도 "과문"하신 님은
본인의 그 "과문"하신 부분부터 먼저 정리해 보고 나서야 그런 평가(?) 발언을 내놓으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하기야, 그 부분에서
본인 선호에 따른 "역자 경력"에 대한 기준이야 또 그야 물론 님 "마음"이겠지요.
마찬가지로,
"다른 주요 번역본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한 번 찾아보시라"라면서
회복역 성경 번역 "과정"에 대한 혐의를 제기하셨군요.
회복역 성서와 다른 주요 번역본 성서의 번역 "과정"에 대한 비교 평가 발언, 즉
과연 "다른 주요 번역본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한 번 찾아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라는
님의 그 같은 발언 곧,
님이 다른 성경 번역본들의 번역 "과정"과 대조해 상대적으로 폄하 평가될 수 있는 걸로 얘기한
바로 그 회복역 성서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친 것인지"부터도 "과문"한 님 입장에서
내놓을 수 있는 발언이라기엔
상당히 "거친" 말을 하신 걸로 보이네요.

셋째,
"축자 번역을 높게 평가 하지 않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번역본을 만드는
본래 목적을 놓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특정 교파에서 나온 번역이라든가 하는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라 하셨는데,

우선,
"번역본을 만드는 본래의 목적이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님께서 의견 개진하신 부분은 그 진술의 타당성에 관한 논의부터가
관점의 다양성에 근거한 이견들이 있을 것으로 보이고,

다음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번역본을 만드는 본래의 목적을 놓쳤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지,
특정 교파에서 나온 번역이라거나 하는 문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라고 한,
님의 그 같은 표현을 통해
일단
독자인 저로서는,
“각주 전체를 이 교파(?)를 만드신 한 분이 작성하신 거라고 하던데, 정확한 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이 분의 본 마음이라고 한다면, 교파를 세로 세우게 되겠구나…싶기도 합니다”라시면서
새로운 “교파”(?) 창단에 대한 혐의로 논의를 끌고 가시려다가
답변을 받고 나서 여의치 않은 듯 보이자, 이번에는
“특정 교파(?)에서 나온 번역이라든가 하는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라는 표현을 통해
“(신종) 교파”(?)에 대한 혐의의 여운을 끝내 남겨 두고자 하시는 모습, 곧
‘빈이’님 글쓰기에 있어서의 “본래 목적”이란 게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고 잘 “판단”해 볼 수는 있었습니다만,
 
기왕에도 말씀 드린 대로, “거칠게 말”하고 있는 님의 그 같은 진술은
독자들에게 님 글쓰기의 “본래 목적”과 “본 마음”에 관해 참고가 되는 단서는 제공할 수 있었을지라도
축자 번역인지, 특정 교파(?)에서 나온 번역인지 스스로 제대로 살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었던 정보 내용을 가지고 비방성 댓글로 문제 제기한 사람이
화제인 회복역 성경을 놓고 내놓을 만한 “평가”(?) 발언은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마찬가지로 과도한 주석에 대한 우려도, 번역이나 해석을 넘어서 특정한 주장을 과격한 언어로,
교차검증 없이 전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범위의 주석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거죠.
성경 본문은 축자적으로 읽다가, 정작 그 주석은 여러 문맥을 고려해서 적당하게(?) 읽어줘야 되는 상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라 하셨습니다만
 
우선,
“주석의 과도 혹은 빈약”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지,
“언어의 과격함’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지,”
“특정한(?) 주장”으로 간주되는 기준은 무엇인지,
“교차 검정의 유무”에 대한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범위의 주석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보는
그 일탈 기준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지적, 곧
님이 지닌 기준에 대한 제시부터 진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네요.
기준 제시도 없는 비난이란 것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성경 본문은 축자적으로 읽다가,
정작 그 주석은 여러 문맥을 고려해서 적당하게(?) 읽어줘야 되는 상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라 하셨는데,
님이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비난정보에 근거해 제기한 발언은
“정작 그 주석은 여러 문맥을 고려해서”의 상황까지는 고사하고 그 주석 자체까지도
한 개 주석의 끄트머리 부분만 달랑 잘라
앞뒤 없이 그걸 놓고 “적당하게”(?) 비난해 주려고 나선 형국이었기 때문에
그 한 개 주석 전체를 인용해 드린 것이었던 것 뿐이었고
또한 그 해당 성경 페이지 안에서 관련 주석들을 함께 놓고 고려해도 물론 이해 가능하겠지만
보다 전진된 이해를 위해 참조 메시지 글까지 하나 더 언급해 드렸던 것이었던 것 뿐이었건만
되려
“그 주석은 여러 문맥을 고려해서 적당하게(?) 읽어줘야 하는 상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란
답변을 대하게 되었는데, ^^
그 같은 “거친” 발언 내용이나 발언하는 모습과 자세야말로
화제인 회복역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교차 검증”을 거치시고 내놓은 발언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그분의 평강이..
 

[레벨:14]닥터케이

2013.01.18 23:19:50

지방교회의 문제점에 관해 구체적인 지적을 하지 않은것은,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여러번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이미 헤어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드신 것으로 사료되므로 2c120 님과 소모적인 논쟁을 벌여봐야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논거를 일일이 제시하지 않은 것이며, 혹시나 장로교단의 이단판정에 대해 모르실까봐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입니다. 지방교회가 좋으면 지금처럼 계속 믿으시면 됩니다. 그러나 혼자 믿으시는건 상관없지만 이곳에서 지방교회의 가르침을 전파하시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레벨:7]2C120

2013.01.19 02:32:12

 
닥터케이 님,
 
처음부터도 밝혔지만
닉네임으로든 실명으로든
하잘 것 없는 글 나부랑이 흔적 인터넷에 남겨 두는 것
질색으로 아는 사람이 그만 어쩌다
댓글로 시 한 편을 올려 두는 반응을 해 보이는 실수를 했다가
이처럼게시물 원글의 주제와도 무관한 긴 글로 이어지게 되는
불상사를 만나 보게 되었습니다만,
이 인터넷 공간에서의 다른 회원을 대하는 예의(!)에 있어
닥터케이 님께서는 좀 심각한 착각이 있으신 듯해서
한 마디 더 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첫째,
“이미 헤어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드신 것으로 사료되므로
님과 소모적인 논쟁을 벌여 봐야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논거를 일일이 제시하지 않은 것”이라
하셨는데,
 
먼저,
이쪽은“소모적인” 웬 “논쟁”(?) 따위를 하고 싶은 생각이란
추호도 없는 사람이란 걸
아직 모르셨다면, 말씀해 오신 계제에 답변으로 알려 드리구요,
 
다음으로,
“논거를 일일이 제시하지 않은” 이유라는 게 그처럼,
상대가“이미 헤어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사료되었기 때문”이라면,
상대가“이미 헤어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든 것”은 아니다 라고“사료”된 경우에는
“논거를 일일이 제시”해서 “소모적인 논쟁을 벌여 보”는 게
“유익이 있”더라 고 판단되기도 하셨던가 봅니다? ^^
재미있습니다.
또,
“논거를 일일이 제시하는 것”은 다 “소모적인 논쟁”의 일부인 거라고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군요? ^^
더 재미있습니다.
 
 
 
둘째,
“이미 헤어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드신 것으로 사료되므로....
지방교회가 좋으면 지금처럼 계속 믿으시면 됩니다.
그러나 혼자 믿으시는 건 상관없지만
이곳에서 지방교회의 가르침을 전파하시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셨는데,
 
우선,
2C120 란 닉네임의 소유자는
“이곳에서 지방교회의 가르침을 전파하시는 일”(?)에 대한 관심이나 의도가
전혀 없을 뿐더러,
 
‘대구성서아카데미’이라고 해서 ‘성서아카데미’로 표방되는 이 공간에서
개인 고유의 판단과 분별에 대해
일면식도 없는 이로부터
“님이 믿고 싶으면 그렇게 믿어도 된다”느니,
“그렇게 혼자 믿고 싶고 믿는 건 상관없다” 느니 따위의,
이래라 저래라 식의 자의적 명령이나 통제 발언을
들어야 할 이유가 하등 없고,
 
아울러
이 인터넷 공간에서의 회원 활동 즉
게시물 열람이나 댓글 쓰기를 통한 반응 등에 있어서도
자신의 기호나 판단과는 다르다 해서
내 취향이나 생각과 다른 글은 보고 싶지 않으니 그렇게 해 달라 는 따위의
웬 일면식도 없는 이로부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더욱이,
이 공간이든 어디든
그 어떤 사람도 님으로부터
님의 선호나 판단과 일치하지 않는다 해서
“이미 헤어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든”(?) 사람이라느니,
거기가“좋으면 지금처럼 계속 믿으면 된다”느니 하는 둥의,
중증 환자 취급이나 한심한 놈 취급하는 냥 하는 그런 경멸적 표현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아시기 바랍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타인에 대한 언어 예절, 더 기본적으로는
마음가짐에 있어서의 예의 좀 지키시란 얘기네요.
 
 
 
무어든 또는 누구든, 불합리/불의나 무례한 상황 내지 사람에 대해서는
제가 원래 아주 좀 신랄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가능하면
불합리, 부정과 무례가 범람하는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도 피하는 편인데
이 사이트와 들어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진지한 교제를 미처 나누기도 전에
님의 그 같은 무례부터 맞닥뜨려 유감이구요,
알아 들으시기를 저도 “바랍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3.01.19 09:16:20

2C120 님의 문장력이 남달라보입니다.

아주 오랜 동안 사유와 글쓰기 훈련을 거친 분이라는 사실이

쓰신 글에서 느껴집니다.

그래서 제가 내용은 둘째 치고

글 자체에 흥미를 느꼈나봅니다.

닥터케이 님과 달리

저는 님께서 지방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저는 지방교회에 대해서 잘 모르니

제가 먼저 시작할 수는 없구요.

님께서 먼저 해보시겠어요?

논의, 또는 논쟁이 되려면 좀더 구체적인 주제가 필요하잖아요.

지방교회가 정통교회(?)에 대립되는 가장 큰 주제가 뭔지요.

삼위일체를 부정하시는지,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는지,

인간을 영과 육이 아니라 영, 혼, 육이라는 삼분법으로 보시는지,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같은 교단 구분을 부정하는지....

구약을 역사비평적으로가 읽는 게 아니라

예표론에 의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제가 지방교회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뭘 말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러니까

좀 수고스러워도 꼭지글을 달리해서 말씀해주세요.

좋은 주말, 주일을 맞으세요.

[레벨:7]2C120

2013.01.19 13:58:04


 
이미 ‘불상사’라 표현했습니다만
 
이 공간 게시판지기는 아닌 사람이긴 하지만
다시 말씀 드리면,
 
‘불상사’라 함은,
 
    우선, 저로서는
걸맞지도 않은 게시판 자리에서 그 게시판 모양새에도 별 도움(?)이 안 되어 보이는
지방교회 내지 그 출판물 성토 내용의 댓글들에 대해 응하는 것이 부적절해 보였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부적합한 게시판 자리에서든 어떻든
대화하자고 청해 온 말들이니
그에 응대하게 되었단 뜻이자,
 
아울러,
애당초 솔로몬 얘기 관련해서는
이쪽 실명을 게시판을 표기해 버리신 정용섭 목사님 실수에 대해
바로잡아 주십사 하고 비밀글 댓글로 말씀 드리게 된 김에 겸사해서
목사님 설교에서의 솔로몬 관련 발언도 한 줄 짧게 언급해 드렸던 것이 그만
정목사님께서 그에 관한 답변을 공개 게시판으로 하시는 바람에
이 게시물 원글 화제와는 무관하게 보이는 내용 즉
솔로몬 예표에 대한 관점 및 더 나아가
지방교회와 그 출판물/교인들에 대한 성토,비난성 댓글로 이어지게 된 것이니 만큼,
게시판 모습이 이처럼 원글 화제와 빗간 모양새가 되어 버린 것은
게시물 원글 화제를 대하고
마침 마음 속에 떠오르던 애송시 한 편을 댓글 반응으로 응답한
이쪽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지방교회와 그 출판물/교인 성토에 뜻이 있어
댓글들로 그런 생각들을 밝히시고 싶은 분은
게시물 원글 화제/주제에 빗가지 않게
다른 공간을 이용해 주심이
게시물 원글 쓰신 분에 대한 예의에 있어서나
이 인터넷 게시판 공간 운용에 있어서나
보다 합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정 목사님께서 댓글을 통해
“지방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하신 부분에 대해
답변 드리자면,
이 인터넷 공간이
“지방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설명”을 위해 별도로 제공된 공간도 아닌 터에
난데없이 남의 제사에 들어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식으로
    지방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웬 풀이를 해 가며
    “논의, 또는 논쟁”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은데요 ^^
다만,
정용섭 목사님과는 달리
저는
정용섭 목사님의
'글 자체' 내지 문체보다는 그 내용에 오히려 많은 흥미를 느끼게 된 만큼
혹 기회가 주어진다면
목사님 설교를 대한, 작은 한 지체인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영 안에서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미 제시하신 여러 편들의 설교 말씀 등 메시지들 속에 있는
그 ‘구체적인 주제’와 ‘내용’에 관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교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의 혈액순환과 성장을 위한
절장보단(截長補短)과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계기에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런 교제에 있어 저의 생각은
어쩌면 지방교회 쪽의 가르침에 근거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또는
어쩌면 그와는 무관하게
영 안에서 제게 주어진, 저만의 시각에서 나온 것도 물론 있을 것으로 짐작되며
 
   아울러
   "회복 교회" 또는 "지방 교회"라고들 부르고 있는 교회에 관해서는
“지방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설명”이라든가
“논의, 또는 논쟁” 쪽을 통한 접근이 아닌
그들이 실행하고 있는 ‘진리’와 ‘생명’의 실제에 관련한 양 면을 다 관심하는 방향에서
접근하시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저로서는
그 양 면에서의 ‘균형’에 대한 부분이
회복교회(‘지방교회’라고들 세간에서 칭하는)를 대할 때
염두에 두는 잣대이자,
추구에 있어 여러 면에서 너무나 부족한 스스로와, 또
다른 교회들/교인들 모습을 살펴 볼 때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곳은 창 밖 주말 날씨가 참 환하답니다..
목사님께서도 좋은 주말, 주일 맞으시기 바랍니다. ^^
 

[레벨:11]삼송

2013.01.19 20:39:39

지방교회에 대해서 조사를 한 것을 잠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방교회는 중국에서 작은무리운동(The Little Flock Movement)으로 중국선교에

큰 영향을 끼쳤던 워치만 니 로부터 그 기틀을 잡기 시작하여

그의 제자이자 동역자인 위트니스 리 에 의해서 구체화된 교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방교회의 교리적 문제는 가장 크게는 삼위일체,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등입니다.

삼위일체를 볼때에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육체로 있었던 동안에는 하나님이 아니었으며

부활한 이후에야 하나님과 연합되어 신성을 갖게 되었다고 가르칩니다.

명백한 기독론의 오류입니다.

또한 이와 관련해서 하나님은 구약에는 신성만 있으시다가

신약에 예수님을 통해 육신화 되었고 또 부활하여 인성과 신성이

 결합된 영으로 변화하였다는 변형된 양태론을 주장합니다.

이는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견해입니다.

인간의 타락과 관련해서 삼분설을 주장합니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체로 나뉘어지며 이 가운데 육은 사단의 포로가 되었고

이것이 혼에 영향을 주고 결국은 영도 죽게 만든다는 성경과는

전혀 관련없는 내용을 주장합니다.

사실 이 견해는 훗날 김기동에게 전달되어

베뢰아 사상(특히 귀신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기존교회를 바벨론의 음녀로 규정하고 부인하며

 지방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침례를 받아야 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례나 침례나 형식이 중요하지 않는데도

그렇게 주장을 합니다.교회론에 있어서는 목사직을 부인하고

변질된  만인제사장설을 믿지요 그때그때마다 설교자를

세우는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회복교회, 레마 코리아,

회복역 성경(RV: Recovery Version), 워치만 리 연구소 등이

지방교회와 연결된 단체나 자료들입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는 교세가 아직 약하지만 활발히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회복교회 즉 지방교회는 변질된 이단종파입니다.

그리고 위트니스 리의 사상은 우리나라의 베뢰아와 구원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권신찬, 박옥수, 김기동 등이 여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국내 이단과도 상당한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사한 지방교회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

한국교회내에서도 개혁해야할 여러문제점이 많고 신학공부의 부재로 인해

이단사상을 제대로 분별하지 않기에 생기는 현상중에 지방교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내에 반골기질이 있으신 분들중에 이런 지방교회 이론을

받아들이고 빠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레벨:7]2C120

2013.01.20 04:46:15

 
안녕하십니까
“대구 성서 아카데미”라고 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매일묵상” 게시판에서
해당 인터넷 사이트 닉네임 <삼송>이란 이가
지난 2013년01월19 일 20시39분 39 초에
<자신이 지방교회에 대해서 조사를 한 것을 잠시 말씀드린다>면서 게시한 내용에 대하여
잠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닉네임 <삼송>에 의하면

<지방교회는 중국에서 작은무리운동(The Little Flock Movement)으로 중국선교에
큰 영향을 끼쳤던 워치만 니 로부터 그 기틀을 잡기 시작하여
그의 제자이자 동역자인 위트니스 리 에 의해서 구체화된 교파라고 할 수 있다>고 하며
닉네임 <삼송>은
<지방교회의 교리적 문제는 가장 크게는 삼위일체,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등이다>라고 주장했는데
닉네임 <삼송>의 그 같은 주장에 의하면
<지방교회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한다>고 하고, 또
<지방교회는 예수님이 육체로 있었던 동안에는 하나님이 아니었으며
부활한 이후에야 하나님과 연합되어 신성을 갖게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하며,
<따라서 (닉네임 <삼송>의 의하면) 명백한 기독론의 오류>라고 합니다.
아울러 닉네임 <삼송>은
<또한 이와 관련해서 <지방교회에서는 하나님은 구약에는 신성만 있으시다가
신약에 예수님을 통해 육신화 되었고 또 부활하여 인성과 신성이
결합된 영으로 변화하였다는 변형된 양태론을 주장한다>고 하면서
<이는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견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닉네임 <삼송>에 의하면
<지방교회는 인간의 타락과 관련해서 삼분설을 주장하는데,
<인간은 영과 혼과 육체로 나뉘어지며 이 가운데 육은 사단의 포로가 되었고
이것이 혼에 영향을 주고 결국은 영도 죽게 만든다는 성경과는
전혀 관련없는 내용을 주장한다>고 합니다.
닉네임 <삼송>은
<사실 그런 견해는 훗날 김기동에게 전달되어
베뢰아 사상(특히 귀신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한 원인이 되었다>면서
<기존교회를 바벨론의 음녀로 규정하고 부인하며
지방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전했습니다.
닉네임 <삼송>의 이어지는 말에 의하면
<지방교회는 세례나 침례나 형식이 중요하지 않는데도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침례를 받아야 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하며
<교회론에 있어서는 목사직을 부인하고
변질된 만인제사장설을 믿으므로 그때그때마다 설교자를
세우는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회복교회, 레마 코리아,
회복역 성경(RV: Recovery Version), 워치만 리 연구소 등이
지방교회와 연결된 단체나 자료들인데
이들은 우리나라에서는 교세가 아직 약하지만 활발히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고
회복교회 즉 지방교회는 변질된 이단종파이다>라고
자신 생각을 밝힌 닉네임 <삼송>은
<위트니스 리의 사상은 우리나라의 베뢰아와 구원파에 큰 영향을 끼쳐
국내의 권신찬, 박옥수, 김기동 등이 여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므로
지방교회는 그 국내 이단과도 상당한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라고
자신의 조사(?)내용을 마무리하면서
<한국 교회 내에서도 개혁해야 할 여러 문제점이 많고 신학공부의 부재로 인해
이단사상을 제대로 분별하지 않기에 생기는 현상 중에 지방교회가 있게 된 것이다>라
<생각한다>며
<교회 내에 반골 기질이 있으신 분들 중에 이런 지방교회 이론을
받아들이고 빠질 위험성이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상은
유비통신에 관한 소식으로 잠시 건너뛰게 된 “연필”이 전해 드린,
오늘의 “매일묵상” 뉴스였습니다.
이상,
닉네임 <삼송>의“기질”에 대한 행간 정보 내용과 함께
들을 소리 못 들을 소리 듣느라 피곤해지셨을 청취자 분들의 귀를 위해
위로 차, 시 한 편 더해 드리니 들으시면서 그럼 이만...
늦은 밤 편안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
 
 
 

하급반 교과서 / 김 명수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하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씁쓸한 우리들의 책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레벨:11]삼송

2013.01.20 18:03:03

워치만 리가 세운 교회와 후세에 세운 지방교회와는 엄염히 분리된 측면이 있지요

그리고 워치만리의 사상에 대해서는 그순수성과 인격에 대해서는 배울점이 많지요

그러나 지방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방식과 순수성 그리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어떤 운동과는

별개로 신학적인 내용에 대해서 제가 위에 적은 글과 다른 내용이 있으면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위에 적은 내용이 전부 다는 아니지만 한국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지방교회는 기존교단의 신학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교단의 신학즉 근본주의 신학과 보수주의 신학관이 옳다라고 전제로

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회복교회 즉 지방교회가 추구하는 사상은 위트니스리의 교회

라고 할만큼 그분의 사상이 절대 진리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적은 글은 본인 댓글에 반박글로 적은 것이 아니라 지방교회에 대해 이단이라고

할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 적은 글입니다. 아니면 다른 의견을 개진하시면 됩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레벨:1]고진감래

2013.01.20 07:25:24

요즘 다비아에서 정목사님글 읽기만 하고 속으로 많이 느끼고 생각하며 돌아갔는데

이번 게시물은 댓글들이 아주 흥미롭네요.

의도가 어땠든지간에 설전의 형식으로 대화가 진행되는걸 보면서

언변과 필력의 내공들이 느껴져 제 가슴이 뛰는군요.

이번 글의 주제가 <연필>이었다는게 참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놀랍네요.

더 많이 공부해서 저도 언젠가 '연필들'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덕분에 많이 느끼고 갑니다.


샬롬 주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레벨:12]피트

2013.01.20 09:29:30

젊은날 몇번 형제교회에 참석해서 예배를 드린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생생히기억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이런것이 아니었을까?

정말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주님오시는 종말의 그날이 되어야 모든것이 드러날테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판단을 보류해주시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샬  롬! 

[레벨:7]빈이

2013.01.22 19:17:24

며칠 안 들어온 사이에 댓글이 더 많아졌네요. 저는 아직 철이 덜들었는지 너무 감정적으로 가지만 않는다면 이런 분위기도 좋아라 합니다. 마침 시간이 조금 있으니까 이미 길어진 것,  저도 보태보죠.


 ‘너는 회복 교회를 깎아내릴 목적으로, 별 근거없이 우기기만 하고 있는 거 아니냐’ 

대략 이런 판단을 하신 것 같은데요. 이게 안풀리면 제가 어떻게 글을 쓰던 제대로 전달이 안될 것 같아서 말씀드리자면,  초대 교회도 유대교의 한 분파로 시작했고, 지금 교파 수가 손꼽을 만큼만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새 교파인지 아닌지, 이단인지 아닌지 저는 별다른 감정이 없습니다. 생각이 다르면 교파를 세울 수도 있겠죠.  예시로 든 각주 관련 댓글을 제가 “시니컬하게” 썼다고 하셨는데요. 물론 그렇게 읽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제가 이걸 쓴 사람이고, (다른 글쓰기도 아닌) 성경 각주에  이렇게 강력하게 쓸 정도로 현 교회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여긴다면, 교파를 만드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느낌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회복역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죠. 지금 네슬-알란트 28판을 번역하고 각주를 단다고 합시다. 그럼 일단 생각나는대로만 적어봐도, 신약(신)학 전공하신 분 있어야 되구요, (신약) 해석학 하신 분, 구약(신)학 하신 분, 그리스어/라틴어 하신 분, (신약)사본학/고대 중근동 언어 하신 분, 현대 우리말 전공하신 분이 적어도 한 분 씩은 필요합니다. 더해서 다양한 교파에서 학자들을 구할 수 있다면 좋겠죠. 소위 주요 번역본들은 이런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분들을, 복수로 모아서 번역 작업을 합니다. “Witness Lee & Editorial Team” 이렇게 역자가 나왔다면 다른 분들은 도움 주신 정도고, 한 분이 작업하셨다는 뜻일 텐데요. 일단 이 분이 이런 각각의 분야에 전부 능통하셨다고는 현실적으로 믿기 어렵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혹은 익명 그룹으로 작업해서는 개인적인 bias를 피하기 어렵다는 게 제가 꺼려진다고 쓴 이유입니다.



‘그런 세세한 학문 별로 필요없어. 네가 뭐라고 하던, 회복역은 최고의 번역이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번역 몇 개를 대조해 보죠. 회복역(RV)을 포함해서, 각각의 본문은 해당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행 5:17, 개역개정]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TR=NA28] Ἀναστὰς δὲ ὁ ἀρχιερεὺς καὶ πάντες οἱ σὺν αὐτῷ, ἡ οὖσα αἵρεσις τῶν Σαδδουκαίων, ἐπλήσθησαν ζήλου
[RV] And the high priest and all those with him, the local sect of the Sadducees, rose up and were filled with jealousy;
[NASB] But the high priest rose up, along with all his associates (that is the sect of the Sadducees), and they were filled with jealousy.
[KJV] Then the high priest rose up, and all they that were with him, (which is the sect of the Sadducees,) and were filled with indignation,
[NRSV] Then the high priest took action; he and all who were with him (that is, the sect of the Sadducees), being filled with jealousy,
[NIV] Then the high priest and all his associates, who were members of the party of the Sadducees, were filled with jealousy.

[행13:1, 개역개정]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TR/NA28]  Ἦσαν δὲ τινες/- ἐν Ἀντιοχείᾳ κατὰ τὴν οὖσαν ἐκκλησίαν προφῆται καὶ διδάσκαλοι ὅ τε Βαρναβᾶς καὶ Συμεὼν ὁ καλούμενος Νίγερ καὶ Λούκιος ὁ Κυρηναῖος Μαναήν τε Ἡρῴδου τοῦ τετράρχου σύντροφος καὶ Σαῦλος  
[RV] Now there were in Antioch, in the local church, prophets and teachers: Barnabas and Simeon, who was called Niger, and Lucius the Cyrenian, and Manaen, the foster brother of Herod the tetrarch, and Saul.
[NASB] Now there were at Antioch, in the church that was there, prophets and teachers: Barnabas, and Simeon who was called Niger, and Lucius of Cyrene, and Manaen who had been brought up with Herod the tetrarch, and Saul.
[KJV] Now there were in the church that was at Antioch certain prophets and teachers; as Barnabas, and Simeon that was called Niger, and Lucius of Cyrene, and Manaen, which had been brought up with Herod the tetrarch, and Saul.
[NRSV] Now in the church at Antioch there were prophets and teachers: Barnabas, Simeon who was called Niger, Lucius of Cyrene, Manaen a member of the court of Herod the ruler, and Saul.
[NIV] Now in the church at Antioch there were prophets and teachers: Barnabas, Simeon called Niger, Lucius of Cyrene, Manaen (who had been brought up with Herod the tetrarch) and Saul.

일단 이 두 구절은 “local church”가 어떤 특정한 해석을 가지나 궁금해서, 회복역 성경에서 찾아봤습니다. οὖσα/ οὖσαν의 번역이 애매하긴 한데 (신약에서 각각 6번씩 나옵니다), 다른 역본들과는 달리 “local”로 번역했네요.


[요7:39, 개역개정]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TR/NA28] τοῦτο δὲ εἶπεν περὶ τοῦ πνεύματος οὗ/ὃ ἔμελλον λαμβάνειν οἱ πιστεύοντες εἰς αὐτόν οὔπω γὰρ ἦν πνεῦμα Ἅγιον/-, ὅτι ὃ/- Ἰησοῦς οὐδέπω ἐδοξάσθη
[RV] But this He said concerning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to Him were about to receive; for the Spirit was not yet, because Jesus had not yet been glorified.
[NASB] But this He spoke of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 Him were to receive; for the Spirit was not yet given, because Jesus was not yet glorified.
[KJV] (But this spake he of the Spirit, which they that believe on him should receive: for the Holy Ghost was not yet given; because that Jesus was not yet glorified.)
[NRSV] Now he said this about the Spirit, which believers in him were to receive; for as yet there was no Spirit, because Jesus was not yet glorified.
[NIV] By this he meant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 him were later to receive. Up to that time the Spirit had not been given, since Jesus had not yet been glorified.

영어 번역들은 축자역에 가깝다고 알려진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 물론 그리스어로 된 성경을 주로 읽는 분들께는, 회복역이 그리스어 본문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해준다는 장점이 있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을 대다수 분들에게는 다른 번역과 비교해 볼 때 축자 번역에 가까우면 위 경우처럼 읽기 불편하거나 오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요1:14, 개역개정]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TR=NA28] Καὶ ὁ λόγος σὰρξ ἐγένετο καὶ ἐσκήνωσεν ἐν ἡμῖν καὶ ἐθεασάμεθα τὴν δόξαν αὐτοῦ δόξαν ὡς μονογενοῦς παρὰ πατρός πλήρης χάριτος καὶ ἀληθείας
[RV]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tabernacled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reality.
[NASB]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saw His glory,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KJV]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NRSV]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lived among us, and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as of a father’s only son, full of grace and truth.
[NIV]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Son,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두 그리스어 판본에 차이가 없는 것 중 하나를 뽑았습니다. 다른 역본은 “dwell”이나 혹은 “live”로 쓴 부분을, “tabernacled”로 번역했네요. 그리스어 본문 없이 영역본만 읽는다고 할 때, 이 번역이 과연 최선일까요? 사전 상으로는 tabernacle이 동사로 쓰이면 뜻이 조금 달라진다고 하는 것 같고, 한편으론 σκηνόω는 신약에 다섯 번 나오는데, 회복역에서도 한 번은 “dwell”로 번역되어 있네요.
또한 다수 역본과 다르게, ἀλήθεια 가 ‘’truth”가 아닌 “reality”로 번역되었네요. 찾아보니까 요한복음과 에베소서, 요한1서 (중 부분)에서만 이렇게 번역하고, 나머지 80여 군데에서는 그냥 “truth”로 되어있군요. “Spirit of reality” 가 “Spirit of truth”보다 더 나은 번역일까요?



[요 3:13, 개역개정]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TR/NA28] καὶ οὐδεὶς ἀναβέβηκεν εἰς τὸν οὐρανὸν εἰ μὴ ὁ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καταβάς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 ὤν ἐν τῷ οὐρανῷ/-
[RV] And no one has ascended into heaven, but He who descended out of heaven, the Son of Man, who is in heaven.
[NASB] No one has ascended into heaven, but He who descended from heaven: the Son of Man.
[KJV] And no man hath ascended up to heaven, but he that came down from heaven, even the Son of man which is in heaven.
[NRSV] No one has ascended into heaven except the one who descended from heaven, the Son of Man.
[NIV] No one has ever gone into heaven except the one who came from heaven—the Son of Man.

이번에는 TR과 NA판의 차이가 있는 예를 하나 골라봤습니다. 우리말 본에는 없는 구절인데요, 의외로 네슬-알란트 판을 따르지 않고 KJV와 같이 긴 본문을 지지하고 있네요. 단순한 문장이지만, 저는 NRSV나 NIV가 그리스어 본문의 구조를 살리면서도 뜻을 이해하기 쉽게 번역했다고 생각합니다.

원문과 가급적 비슷하게 옮기는 것이, 좋은 번역의 한 척도가 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원 언어를 배우기 쉽지 않고 현재 쓰는 언어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축자적 번역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위의 몇몇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보수적인 역본을  포함한) 다수의 번역과는 다른, 독특한 번역도 쉽게 발견할 수 있구요. 그런 의미에서 회복역이 “현존하는 최고의 스터디 바이블”이라고 극찬하는 리뷰는 (쓰신 분이 그 교회를 다니는가와 관계없이) 좀 기울어진 평가라고 댓글을 쓴 것이었습니다.

[레벨:7]2C120

2013.01.26 13:44:00


빈이 님,

빈이 님은 “이런 분위기를 좋아라 한다”고 적었네요.
그런 표현을 보면서 독자로서 절로 미소 짓게 되는데요..
“좋아 합니다”란 표현과 “좋아라 합니다”란 표현의 뉘앙스가 참 많이 달라서 말이지요. ^^
맛깔스런 모국어 표현의 그런 차이는, 아마 모국어 소통 화자들끼리만 공감할 수 있는 거겠죠? ^^
근데
이미 여러 번 지적한 대로
이 게시물 원글 화제와는 어떻게 하다 보니 그만 빗간 내용들이 이렇듯 이어지고 있는 건
게시판 모양새를 어쩐지 좀 아니올시다…로 가게 하는 상황인지라                                               
님이‘좋아라 한다’는 이런 대화는 적절한 다른 게시판에서 이어지는 게 더 낫겠다 싶고,
해서,
개인 회원으로서의 님의 그 같은 기호나 성향을 기꺼이 좀 내려 놓고
적절한 다른 대화 공간에서 얘기를 이어나가는 것이
게시물 원글 올리신 필자 분이신 정용섭 목사님이나
게시판 대하는 분들을 대하는
보다 합당한 예의이자 회원 글쓰기 활동이 될 듯싶다는 생각이네요… 마는,
 
그래도 님은 이 게시판 공간에서 그렇게 계속 말하고 싶어하시니..
그에 따라 제 생각을 여기서 답변하도록 하지요.
 
 
님은 님의 세 번째 댓글에서
 
(1)
이쪽 댓글 내용을 볼 때 <‘너는 회복 교회를 깎아 내릴 목적으로,
별 근거 없이 우기기만 하고 있는 거 아니냐’ 대략 이런 판단을 하신 것 같다>
라고 하며,
그러나 님으로서는 그렇지 않았으니 그 사실이 “안 풀리면” 안 될 것 같으니
근거에 대해 다시 말해야겠다 면서,
 
(2)
님으로선 그 교회가 “새 교파인지 아닌지, 이단인지 아닌지”
그런 부분에 대해선 “별 감정이 없다” 따라서
이 정도 각주 내용이라면 “새 교파를 세우겠구나…”라고 했던
님의 이전 댓글 표현은
신종 교파 혐의나 이단 혐의에 관련된 진술이 아니었고 다만,
각주에서 그처럼 강력한 표현으로 현 교회 상황을 심각하게 지적할 정도라면
“교파를 새로 세우게 되겠구나…”라 싶어 그런 느낌 그대로를 적은 것 뿐이었다.
 
(3)
회복역‘역자의 적격성’과 회복역 번역 ‘과정’에 관련해
회복역을 놓고 표명한 님의 폄하/비난 발언도,
회복역이
“사계의 전문가 학자들” 번역진으로 구성된
“복수 참여 번역 작업”이 아닌 듯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그런 내 생각에 대해) ‘그런 세세한 학문 필요 없어.네가 뭐라고 하든, 회복역은
최고의 번역이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번역 몇 개를 대조해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근거를 아래 내용에서 보여주겠다.
 
(4)
내가 제시하는 다음 세 구절 행 5:17, 행 13:1, 요 7:39, 요 1:14, 요3:13 을 다른 번역본들과
비교해 보시라 내가 보기엔 회복역이 현대어 영어 번역으로는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다
대조 확인해 보시라
 
라고 하셨네요.
 
 
 
그 각각에 대해 이쪽 생각을 알려 드리면
 
(1)에 대하여 :
 
우선
님은 이쪽의 두 번 댓글 답변 내용을 통해 이쪽이
<‘너는 회복 교회를 깎아 내릴 목적으로, 별 근거 없이 우기기만 하고 있는 거
아니냐’ 대략 이런 판단을 하신 것 같다>라고 했네요.
 
이쪽이 이전 두 댓글에서 지적했던 것은
님 댓글 내용이
“별 근거 없이” 회복 교회를 폄하하며 우기는 주장이었다고 했던 언급이
아니었던 점에 대해 다시 살펴 독해해 보시기 바랍니다.
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님의 근거가 “없었다”는 게 아니라
“있었으되” 그것이 부적절한 것이었음을 짚었었던 것이고
또 그 같은 발언자 입장에서의
그 근거의 도출 “과정”과 근거 제시 자세에 있어서의부적절성도
지적했었던 것임을 확인하시기 바란다는 얘기이죠.
즉 이전 두 댓글에서의 님 발언에 대한 이쪽의 지적은
댓글을 통한 그런 주장에 있어 마땅히 그에 수반되어야 할 근거가
‘부재’하다고 판단해서 그런 판단 내용을 밝힌 게 아니라,
님이 자신의 판단/주장의 근거라며 내놓은 근거 자료들을
도출, 정리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자료/논제에 대한 불성실한/불충실한 접근 자세 및
그 같이 내놓은 근거 자료 “내용”들의 부적절함에 관한 지적이었었고,
그러므로 더 나아가 그에 따라 지적될 수 있는
화제 대상인 회복역 성서에 대한 발언자/비평자(?)로서의 적격성과
그 비평/비방 발언 내용의 신빙성에 대한 언급이었으니,
다른 이들 글에 대한 님 자신의 그런 독해 부분부터
다시 점검해 보시기 바란다는 말씀 드리구요.
 
다시 설명 드려
님의 이전 두 댓글 내용에 의하면,
‘빈이’ 님은 독자로서 회복역 성경의 호평 북리뷰에 대해 영 반대 입장이다
라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님은 그 근거로
 
(님의 근거 1)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살펴 보니 회복역은 축자역에 가까운 번역인 듯하다.
    그런데
    번역본을 만드는 본래의 목적이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라 생각하므로,
    따라서 그런 면에서 볼 때
    축자역 위주의 번역이란
    번역본 집필의 본래 취지와 목적을 놓쳤다고 판단이 된다’는 것이었고
     ( 축자역 위주 번역에 대한 님의 불신이 근거 )
 
(님의 근거 2) 
     ‘번역에 참여한 역자들에 관한 개별 정보 (실명, 학력 정보, 경력 정보 등)가
      일일이 명기되어 있지를 않으니
      번역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고 비난하는 글들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나타나는 있다는 것에 편승해 그것을 또한
      회복역 성서에 대한 님의 폄하 발언 근거로 들었었지요.
        ( 번역팀의 개별 정보(실명, 경력, 학력 배경) 미상에 따른 님의 신뢰도 저하가 근거 )
 
(님의 근거 3)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살펴 보니 각주 관련해 비난한 내용들이 보이고 있는데
그런 걸 보니
문제가 있는 출판물 같다’라는 것도 님의 회복영 성서에 대한 비난 근거였구요.
          ( 인터넷에 떠도는 회복역 각주에 대한 비방성 글들을 통해 형성된,
            화제 대상에 대한 님의 불신이 근거 )
      즉 님에 의하면,
             1) ‘각주 전체를 한 사람 Witness Lee 가 작성했다더라는 얘기도 있더라’ 는 것.
    ( 개인 번역 가능성에 대한 님의 비호감이
  회복역 성서에 대한 부정적 견해의 근거 )
              2) ‘각주의 분량에 관해 지적하는 글들이 인터넷 검색 검색에 보이더라’ 는 것.
                   ( 주석의 “과도한”(?) 분량에 대한 인터넷 비평 글들이
   회복역 성서에 대한 부정적 견해의 근거 )
              3) ‘각주의 내용 표현에 관해 지적하는 글들이 인터넷 검색에 보이더라’ 는 것.
                     ( 주석의 “부적절한/과격한” 내용 표현에 대한 인터넷 비평 글들이
    회복역 성서에 대한 부정적 견해의 근거 )
              4) ‘각주 내용과 회복교회 신학 내용과의 연계성에 대한 비방 언급들도
                   인터넷 검색에 나오더라’ 는 것.
                      ( 회복교회의 신학적 설명들이 단순 “번역이나 해석을 넘어서”(?)
      “교차검증(?) 없이 각주로 제시되고 있다”라고 비방하는 글들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검출되고 있더라 는 것이
       회복역 성서에 대한 부정적 견해의 근거 )
 
    라는 것이었고
 
   그에 대해 이쪽은
 
“님의 근거 1”, 즉 “축자역을 주로 한 번역본에 대한 님의 불신”에 관해서는
 
‘번역본의 집필 목적이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님의 그 진술에 있어서의 타당성부터가 이미
관점의 다양성에 따라 이견들이 있을 수 있는 전제임을 지적했고
 
“님의 근거 2”, 즉
“Editorial Team(편집부)”로 표기된 번역자들의 역자 관련 정보 측면을 놓고
그것을 번역자로서의 적격성 여부에 대한 신뢰도와 연결시켜 님이 제기한 혐의 부분에 대해서는,
역자의 학자로서의 지명도, 학벌 정보, 경력 정보 내용 등등을
해당 번역본의 역자 신뢰도를 좌우하는 표준으로 둔다는 건
그 독자/비평자 나름의 성향이나 관점에 따라 가능할 수는 있을 것이로되
님의 그 같은 성향이나 관점이
성서 번역본/번역자들에 대한 가치 평가에 있어
타당성이나 공정성을 보장 받을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으로서
님 자신의 개인 성향에 근거한 관점에 불과한 것임을 지적했었으며,
 
님의 근거 3, 즉
회복교회 비방 측에서 이전에 인터넷으로 유포해 둔,
회복역 각주 관련한 비방 발언 부분에 관련해서는,
님이 그 같이 화제 대상인 회복역 성서라는 출판물에 대해
나름 비평(?) 발언을 하겠다고 나서려 한다면
인터넷에 떠도는
비방을 위한 비방의, 그 같은 본말전도 식 인용 구절들이 아니라
우선 님 자신이 화제인 회복역 성서란 출판물 전체를 읽어 보고 난 후에
님 자신의 독후 소감을
자신의 독후 소감에 적용된 나름 기준과 근거도 함께 제시하면서
내놓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었지요.
가령
님 표현대로
“과도한 주석에 대한 우려도, 번역이나 해석을 넘어서 특정한 주장을
과격한 언어로 교차검증 없이 전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범위의 주석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거죠”라며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비방 게시물들에 보이는 지적들을
마치 님 자신의 비평(?)의 말인 듯 “철 없이” 공개 게시판에 떡 하니 내놓을 게 아니라
그러면
번역본 성경에 있어 주석 량의 과다에 대한 님 자신의 기준이란 건 어떤 건지,
“과격한 언어”(?)란 모호한(vague) 표현에서 과격성 판단에 대한 님의 척도가 뭔지,
“교차 검증”(?)이란 어휘에 대한 님의 정의와 방법 및 절차란 어떤 건지,
교차 검증의 ‘유무’에 대한 님의 판단 기준이란 건 어떤 거였는지,
님이“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크게 벗어났다”라고
해당 출판물에 관해 비평(?의 말을 내놓으며
님으로선 그처럼 일탈로 간주된다고 할 때, 그 일탈 여부의 기준이란 게 어떤 건지에 대한
제시가 있어야 한다는 점 등등
  ( “많은”이니 “일반적인”이니 하는 어휘부터가 그 지칭 범주가 모호한 개념어들이니까
  님이 구사한 그 발언의 문장부터가
  그런 발언을 한 비방자 쪽의 “특정한 주장”을 위해 동원된
  애매어 포함 문장의 논리적 오류로 지적될 수 있는 말이네요 ^^ )
그 같은 최소한의 기본 전제에 대한 수순이 결여된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발언이었다는 얘기를 이미 했었구요.
따라서
해당 출판물 비평을 한다고 나선 이가
‘자신의 기준, 잣대에 근거한 자신의 평가’란 것도 없이
그저 인터넷 검색해 보고 해당 출판물 비방 측에서 나온 그런 비평들이 있더란 걸 놓고
그에 관해 자신 나름의 최소한의 검정 자세와 노력을 거치는 "과정"도 미비한 상태에서
해당 출판물에 대한 여과 없는 비방 발언으로 던져 내놓았다는 점에서
‘빈이’란 닉네임 쓰는 분의
발언자로서의 적격성 여부에 따른 성실성 및 신뢰도에 혐의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미 이전 댓글들에서 짚었던 것인데..
그 독해가 잘 아니 되신 모양입니다. ^^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하다 못해 별 대수롭지 않은 소설책 한 권의 북리뷰를 쓸 때에도
적어도 그 대상이 된 출판물 서적은 다 읽어 보고 나서
그에 관해 독후 소감 발언이든 뭐든 내놓더라도 내놓는 법이거늘
님 경우는 그 손쉬운 인터넷 검색으로
해당 화제 대상에 관해 남들이 해 놓은 말 좀 읽어 보고 나서 그에 준해
님 또한 그 회복역 성서라는 걸 온라인 상에서 찾아 한 몇 구절 읽어 보는 정도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는
‘이 번역본은 과도한 주석에 따른 문제점이 있는 책이다’ 라느니,
‘일반적 번역이나 해석 수준을 넘어서는 주석이 문제이다’ 라느니,
‘특정 주장이 주석을 통해 그대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 우려된다는 거다’ 라느니
하는 말들을
님 자신의 해당 출판물에 대한 평가(?)처럼 옮겨 놓았다 다는 것 자체가
발언자로서
논의 대상에 접근하는 자세의 성실성과 학적 진지함, 정직성에 있어,
발언 내용에 있어서의 충실도, 타당성, 공정성에 있어,
유감스럽지만
이미 경청해 볼 만한 가치를 상실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전의 댓글들에서 지적했었습니다.
 
 
다음으로,
님 세 번째 댓글에서의
(2)에 대하여 :
 
위의 (2)에 정리한 님 진술에 의하면
님은 그 해당 교회가 “신종 교파인지 아닌지, 이단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별 개의치 않는다 (님 표현에 의하면 “별 감정이 없다”라고 했네요) 면서
주석 내용에 있어 이런 정도 표현이라면 신종 교파를 세울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라고 하는데
거듭 말하지만
우선
적어도 어떤 북리뷰를 대하고 나는 그와는 반대의 북리뷰 견해 쪽이다 라면서
비방, 비난 댓글 게시자로 나서서는
“신종 교파를 세울 수도 있겠구나..”
“그 집필자의 특정 주장이 과격한 표현으로 주석에 노출되니 우려된다”느니 하는 말로,
해당 교회와 교회 출판물(이 경우 번역 성서)을 놓고
상대를 공격이든 조롱이든 하려고 한다면
그 같은 비방의 타당성 있는 근거는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겠거늘
그저‘현 교회에 대한 그런 과격한(?) 진단이라면
신종 교파를 세울 수도 있겠구나… 하고 느꼈던 걸 적은 것 뿐이다’라는군요? ^^
게다가
님 자신은 “그게 신종 교파인지, 아닌지, 이단인지 아닌지,
개의치 않는다” 는 입장이다 라고 하니… 그처럼,
인식과 관심사와 지향 방향에 있어서 그분과 연결된 ‘심장’(빌 1:8, 1:19~20)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에 대해 “감정”/감각을 느끼는 영역에서
그분의 몸을 향한 “느낌”으로 (엡 4:4~6, 5:6~7, 고후 11:29)
교회와 성경을 대하는 상황과는 무관한 영역에 있는 님 경우라면,
님의 글을 대한 독자로서 님의 그런 입장을 십분 이해해
님이 언어학적 관점 내지 뭐 역사적, 문학적 관점 정도에서 영적 생명과는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성경이라는 책의 활자들을 대했던 거고 그에 따른
나름 개인 감상 정도의 발언이라고 받아들일 수는 있을지언정
논의 대상인 텍스트 즉 회복역 성서라고 하는 출판물 자체부터도
그 자신 제대로 살펴 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더욱이 그 자신 번역 성서에 관해 "비평"으로 접근하기에는
기독 신앙의 합당한 위치에서 성경이나 교회를 대하는 입장에 있지도 않은 분이
(히브리어, 헬라어 지식이 성서 비평 자격에 대한 담보는 되지 못하는 거지요)
웬 생각에서 저런 "과격한" 게시글을 해당 출판물에 대한 "비평"이라며 공개 게시판에 내놓은 건지.. 하는
혐의에선 벗어나기 어려울 겁니다. 즉
님께선
이런 저런 번역본 성서에 대한 가치판단의 발언 같은 건 하실 만한
위치에 있지 않은 분인 고로, 님의 그 같은 발언은
경청할 만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 듯하다는 게 상식인 듯합니다.
그분의 몸을 위해 이단인지 아닌지 관심 같은 건 무관한 님 경우라면
번역본 성서에 대한 단순 독해 소감이든 심화 비평이든 간에 이미,
합당한 성경관의 토대 위에서 말씀 번역의 가치 정도를 논하겠다고 나설 입장에 있는 분은
못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음,
님 세 번째 댓글에서의
(3)에 대하여 :
 
회복역이
“사계의 전문가 학자들” 번역진으로 구성된
“복수 참여 번역 작업”이 아닌 듯해 보였기 때문에
회복역‘역자의 적격성’과 회복역 번역 ‘과정’에 관련해
회복역 성서의 가치에 관한 의구심 내지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회복역 비방의 근거(?)를 제시하시면서
(그런 내 생각에 대해) ‘그런 세세한 학문 필요 없어.네가 뭐라고 하든, 회복역은
최고의 번역이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번역 몇 개를 대조해 내 근거를 보여주겠노라며
성경 구절 5개를 가져 와 예를 들면서
이게 바로 자연스럽지 못한(?) 번역이란 근거로 볼 수 있는 구절들이다
 
라고 하시는데,
 
우선
님이 번역자 된 자로서의 적격성과 관련해 근거(?)로 삼은 것이자
님이 번역 성서 출판물에 대한 가치 판단의 준거로 획득하고 싶어한 것은
“세세한 학문”이 아니라
“학벌 정보와 학계에서의 세속적 명성 내지 인지도”란 사실을 보시기 바랍니다.
님이 회복역 성서를 비평/비방 내지 폄하 발언하겠다고 나서면서 보여 준
님의 근거 제시 관련한 태도와 자세부터도 “세세한 학문”적 천착과는 거리가 있는
단순 검색 정보에 기댄 피상적 발췌독 정도가 전부였던 것으로서
도무지“학구적” 운운 하는 것과의 연관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기도 했거니와
또,
성서 번역자로서의 합당한 적격성의 문제란
그 역자들이 그분의 손 안에서 쓰임 받는 합당한 그릇인가, 아닌가가 관건인 것이지
그들이 학계 전문가라는 직함이나 지명도를 지닌 인물들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최우선시 되어야 하는 걸로는 전혀 생각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복수 공동 번역 집필이냐 아니면 주요 핵심 역자 중심의 번역 집필이냐 하는 문제도
번역진이 주요 핵심 역자 중심이냐 아니면 단순히 유명 학계 인사들 복수 취합에 의한 거냐가 아니라
그 번역 과정에 참여한 이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얼마나 동심합의로(빌2:2, 빌 1:27~28)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그 임재하심과 기름 부으심 안에서
수직, 수평의 합당한 동역을 통해 그 출판물을 산출해 낸 것이냐, 아니냐 하는 부분이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님 세 번째 댓글에서의
(4) 에 대하여 :
내가 제시하는 다음 세 구절 행 5:17, 행 13:1, 요 7:39, 요 1:14, 요 3:13로
대조 확인해 보시라
 
하셨는데요.
 
이전의 댓글에서
제가 링크 걸어 놓은 Youtube에서의 대담 장면을 보면
CRI 연구 소장인 Hank Hanegraaff 가
지방교회의 실행 내용 중
다른 기성 교단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을 만한 것들이 많음을 언급하면서
Pray-reading (기도로 말씀 먹기)를 언급하는 걸 들을 수 있지요.
사실상
화제 대상이 된 교회(이 경우, 지방교회)와 그 교회 출판물에 대해
그것이“신종 교파인지 아닌지, 이단인지 아닌지”
개의치 않는다고 하는 (님 표현으로는 “별 감정이 없다”라고 하는) 님과는
영적 유익이 거의 없는 이런 류의 소꿉장난 같은 대화(?)보다는 오히려
성경 한 구절을 놓고 함께 혹은 님 혼자, pray-reading 으로 그 구절을 생명 말씀으로 취하면서
영적 빛 비춤을 받고 내적인 생명 공급을 받는 것이
적어도 백 배는
님을 위해서나 또 대화 답변을 해 드리는 이쪽을 위해서도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예로 제시한 내용들에 관해 다시 이쪽 생각의 일부로 답변 드리자면,
잘 알려진 대로 요 7:39 번역/해석에 관해선 정통 신학 쪽으로 알려진
Andrew Murray 의 <The Spirit of Christ> 등에서도 왜 그 같은 번역이 합당한지 이미 논의가 된 바도 있고
마찬가지로
요 3:13의 전치사와 관계사 관련 용례나 요 1:14의 tabernacled 나 요 1:14의 reality/truth 관련 부분도
그 같이 원문에 가깝게 번역된 성경 본문 구절을 놓고 다시,
아주 이해하기 쉬운 현대 영어 주석들을 통해
그 본래 원문 맥락에서의 의미를 상세히 설명해 놓은 보충 주해들이 있는 만큼,
그런 접근 방법으로 충분히 활용하라고 만들어진 주석 study-Bible 을 놓고
전체 성경의 핵심을 읽어 내는 성경관의 토대 없이 성경 본문 한 구절을 똑 떼어다가
원어 대조해 보니 현대 영어로선 부자연스러운 번역 표현이다 운운 하는 건
합당하지 않은 비난으로 보이고
‘번역본 성경의 목적이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게 하기 위해서이므로
성경의 원 언어가 배우기 쉽지 않고 현재 쓰는 언어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만큼
축자역 번역이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하는 님의 견해에도
저로서는 수긍하기 어렵군요.
주석까지 갈 것 없이 성경 본문만 놓고 보더라도,
이전 댓글에서 링크 걸어 둔 저 북리뷰에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포함, 5개 국어로
여러 주석 성서들을 읽는다고 하는 필자가 하는 말이
회복역 주석 성서(Recovery version Bible)을 알기 전에는 다른 어떤 주석 성경(톰슨 관주 성경)이
최고의 관주 성경이라고 자신은 생각했었는데 회복역을 읽고 난 후론
더 이상 그 주석 성경을 사용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NIV 경우도
처음에는 주의 깊게 읽으며 그 가치도 인정했었지만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한 이후 더 이상 그 성경을 볼 수가 없다고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저도 영문 성경본이야 이것 저것 여러 버전들을 놓고 같이 비교해 가며 보기도 하지만
모국어인 한국어 성경 경우
님의 표현에 의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게 하기 위해” 나왔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성경 버전일수록
한국인으로서 한국어 어법에 관한 한 당연히 문외한일 수도 없는 제 입장에선 오히려,
가장 '쉽고 자연스러운' 현대 우리말로 되었다고 하는 그런 성경이야말로
더 이상 차마 못 보고 또 안 보게 되는 버전들에 속합니다.
'쉽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현대 우리말 성경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진지한 독서(더구나 시시한 한낱 소설 책도 아닌 성서에 관한 접근이라면)를 위한
독해에 지장과 해악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죠.
 
아래 링크해 드리는 교계 기사도
그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듯합니다.
 
 

 

주의 인도하심과 평강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레벨:7]2C120

2013.01.22 20:25:22

 

 
 
'삼송' 님,
 
어제 아침엔가 님 댓글을 대하고 바로 답변 드리려고 했다가 사이트 로그인이 안 되는지라
대구성서아카데미에 문의했더니
기술적 문제로 사이트 접근이 한동안 안 되는 상황이다란 답변을 들었었는데
지금 막 들어와 보니 이젠 다시 로그인 연결이 되는군요..
 
해서,
님 댓글에 대해 짧게나마 제 생각을 말씀 드립니다.
 
 
님께서 또 다른 댓글을 통해 하신 말씀으로는,
 
“첫째,
그 순수성과 인격에 대해서는 배울 점이 많은 웟치만 니가 세운 교회와,
그 후 웟치만 니의 동역자 위트니스 리에 의해 이어진 지방교회는,
서로 엄연히 분리되는 측면이 있다.
 
둘째,
내가 진술한 그들의 신학/신앙 내용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웟치만 니를 이어 현재 위트니스 리를 통해 계승된 지방교회에서 주장되고 있는 신학적 내용이란
기존교단의 신학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셋째,
회복교회 즉 지방교회가 추구하는 사상은 “위트니스 리의 교회”라고 할 만큼
위트니스 리의 사상이 절대 진리로 수용된다 라고 나는 들었다
 
넷째,
위에서 내가 지방교회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밝힌 바,
그들의 신학적 주장 내용을 언급한 그 댓글이란
지방교회를 이단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내용인 것이며, 그것은
2C120님의 댓글에 대한 반박글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라고 하셨는데,
 
 
 
첫째 부분과 관련해 제 생각을 말씀 드리면,
님이,
웟치만 니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와 위트니스 리에 의해 이어진 교회 사이에
엄연한 분리와 차이가 있다고 그렇게 주장하시려면
님이 “분리”해 언급한 그 두(?) 교회의 본질이나 성격, 집회 실행 등등에서의 변별적 양상이
각각 어떠 어떠한 것들이고 따라서
어떠 어떠한 점에서 각각이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 있는지에 관한 님의 판단 내용, 즉
“두 교회”(?)는서로 분리되는, 서로 다른 노선에 있는 교회이다", 다시 말해
사역자로서의 웟치만 니 개인 인격 등에 대해선 배우고 본받을 바가 있을지언정
그 후에 위트니스 리에 의해 이어진 교회는 웟치만 니의 원래 노선에서 일탈, 변질, 왜곡된
별개의 교회이다 라고 님이 말씀하고 싶어하는 그와 같은 님의 주장에 대한
해당 근거부터가
먼저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제가 위에서 댓글을 통해 지적 드린 대로 이 게시판은
게시물 원글 화제에선 빗나간 그 같은
‘지방교회’ 관련 논의를 이어나가기엔
부적절한 것으로 생각되니
정용섭 목사님도 언급하신 것처럼 그런 주장 관련한 논쟁을 원하신다면
“꼭지글을 달리 해서” 밝혀 주시되,
논의의 효율성을 위해
님의 그런 주장에 있어서의 정확한 근거 제시부터 하셔야 한다는 원칙적 수순을
좀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부분에 관해서는,
 
우선,
“기존 교단의 신학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은 것 같다”라는 것이
“그런 고로 해서, 그 교회는 이단이다”가 될 수는 없다는 게
합리적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위 댓글에서 제가 링크로 걸어놓은
Youtube에서의 대담 내용, 곧
CRI(Christian Research Institute) 연구소장인Hank Hanegraaff 이
이단 여부 관련해서 회복교회(지방교회)에 대한 6년 여 동안의 전세계적 검증을 거친 후에
내놓은 대담 내용 중 나오는 진술을 들어 봐도,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은
세부적인 부차적 내용 면에 있어선 나 개인적 관점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과 관련해 지방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요체에 있어서 정통 기독 신앙인 것이며 더욱이
나의 연구와 체험에 의하면
지방교회는 기독 교리 면에서 정통 기독교 신앙을 지닌 교인들의 모임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 실행 면에 있어서도 우리 기존 교단 그리스도인들로서는 배울 것이 많은,
그 어떤 기독교인들보다 모범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라고
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단 운운 하는 분별에 관한 한,
대상 교회의 신앙/실행 내용을 놓고 다방면에 걸쳐
치열하고 철저하게 총체적 조사와 검증을 거치는 노력이 우선 전제로 요구되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그 같은 노력의 결과로
자신의 신학 관점과 100% 일치하지는 않는 입장이나 믿음 내용의 차이를 확인했을 경우
그런 차이가 기독 신앙의 요체를 훼손하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지엽적 신학 관점의 차이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면
기존교단과의 그 같은 부차적 변별성이
그 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타당한 단서가 될 수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는,
Hank Hanegraaff 의그 같은 자세에서
우리로서는 취할 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인데요.
신학 관점이나 판단이 다르다 해서 상대를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단순 흑백 논리나
편파적 파당 형태의 편협한 의식 수준을 벗어난,
보다 성숙한 인식의 모습과 자세에 대해 좀더 고려해 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다음으로,
‘삼송’ 님이
“바로 이것이 기존 교단의 신학적 내용과는 다른, 지방교회의 신학/신앙 내용인 것이다”라면서
댓글로 소개해 놓은 진술 자체가 그 상당 부분에 있어
심지어 해당 전문 지식이 일천한 제가 대하기에도
실제 사실과는 거의 모두가 상당히 다른 것 내지는
지방교회 비방 측에서 비난의 근거로 내놓은 왜곡된 자료 내용을
그냥 그대로 옮겨다 놓은 말들로 지적될 만한 것들이 보입니다.
그런 댓글 내용 모습과 관련해 참고로 제 경험의 한 예를 들자면, 전에
지인인 한 그리스도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그이가 회복교회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과 나름의 고정 관념을 지니고 있는 걸
대하게 되어 왜 그런가? 싶어 더 대화를 해 보았더니..
그이가 지방교회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이라고는,
미주 쪽에서 지방교회를 이단이라며 비난 공격했다가 법정 판결로까지 정리되어서
그 잔여 출판물은 회수 조치되었다고도 하는, 바로 그
그 <갓맨> 운운 하는 황당한 내용인 위트니스 리 비방용 출판물의
한국어판 번역본을 어떻게 입수하게 되어 읽고 이해(?)하고 있던 정보에
근거한 것들었습니다. 즉,
바로 그 황당한 비방의 출판물 서적 한 권이 준 인상이
지방교회에 대한 그런 관념과 시각을 형성하게 했던 것이더라는 얘긴데,
그래서 그때 그이와 대화를 해 나가면서,
사고와 판단 과정에 있어서 이른바 그 어이없는 ‘유비통신’이라고 하는 것들의 위력,
스스로 그분 앞에서 물어 보고 숙고하고 그분의 인도를 받아 확인해 보기도 전에 그저
남들이 떠들어 대는 것들에 의지해 거기에 무조건하고 좇아가려는 맹목적 군중심리의
위력이란 걸
직접 대하고 확인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제 생각에는
이 “매일 묵상” 게시판이
신학적 내용과 관련해 회복교회의 이단 시비에 관한 무슨 토론 공간도 아닌 만큼
그런 논의/논쟁은
이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더 대화를 통해 진행될 수는 있을 것으로도 여겨집니다만,
‘삼송’ 님과의 합리적인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그 전에 ‘삼송’ 님께서 먼저,
“바로 이런 게 기존 교단의 신학적 내용과는 다른, 지방교회만의 신앙 내용인 것이다”라면서
댓글로 소개해 놓은 그 진술 자체부터가 과연
얼마나 님 자신이 스스로 확인하고 검증한 내용인지
아니면
님이 남에게서 그저 “들은 얘기” 곧,
“이단” 운운 하며 비방하는 쪽에서 내놓은 자료(?)들을 그저 그냥 옮겨온 것인지,
바로 그 부분부터
님께서 정리해 두시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야 님과의 대화가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는, 이른바 한국 교파의 ‘이단감별사’들이 내놓은
견강부회 비난과의 대면의 확대 재생산이 아니라
‘삼송’님이라고 하는 분과의 직접적 대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전에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했던 한국의 그 ‘주요/대표 교단’의 핵심 인물 목사였다는 분이
최근에는(2011년) 그 ‘주요/대표 교단’으로부터 그 자신이 도리어 이단으로 규정되었다고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더군요.
그런 부분도 참고할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
 
 
셋째 부분,
“회복교회 즉 지방교회가 추구하는 사상은 위트니스 리의 교회라고 할 만큼
위트니스 리의 사상이 절대 진리라고 들었다”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도
님께서 그처럼 항간에서“들은 얘기”에 근거해 비판에 나설 것이 아니라
 
님이 그분 앞에서 배워 익힌 성경의 “절대 진리”가 무엇이고 아울러
님이 생각하시는 기독 신앙의 그 “절대 진리”와 관련해
님이 파악(?)하셨다는 “위트니스 리의 사상”(?)이란 상대적으로 어떤 것인데,
웟치만 니 혹은 위트니스 리의 그런 “사상”(?) 다시 말해 그런 계시와 가르침이
회복교회 안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것으로
님께선 파악하고 검증하셨다는 건지,
또,
그처럼 님이 확인하셨다는 위트니스 리 사상(?) 내용의 어떠한 부분과
회복교회 실행 모습에 있어서 그런 위트니스 리 사상(?)의 절대적/맹목적 추종 부분이라고
님이 판단한 어떠한 측면이
회복교회를 놓고 특정 교주의 사상을 맹종하는 신종 교파인 것으로 즉,
위트니스 리<“의” 교회> 내지 <위트니스 리에 의한 신종 이단 교파>라는 표현으로
비방할 수 있는 소지를 지니고 있다 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건지,
그분 앞에서 님 스스로 그런 부분을 숙고, 검증하시고 나서
해당 관련 내용에 대한 증거 제시와 함께 대화에 나서는 것이
피차 대화의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 보다 합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넷째로,
님께서는
“지방교회에서 주장하는 신학적 내용이라고 내가 진술했던 내 이전 댓글은
지방교회를 이단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내용인 것이며 그것은
2C120님의 댓글에 대한 반박글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라고
하셨네요...
 
‘삼송’님께서는 님의 댓글이 이쪽의 댓글에 대한 반박글은 아님을 애써 밝히시려 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마는,
 
그러나 그런 말씀을 듣게 된 저로서는 바로 그 같은 님의 발언을 통해
님께서는 게시판에서의 댓글 발언 모습과 그 성격에 대해 뭔가 ‘오해’하고 계신 듯하다..
란 생각을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는데요. 다시 말해,
댓글 필자로서 다른 이의 댓글에 대한 이견이나 반박글을 제시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라거나 피해야 하는 것 쯤으로 여기신다는 말씀인가? 싶어서
다소 의아해진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다른 이들 설교에 대한 “비평”으로 유명해진 분이 주관하는 사이트에서
그분 본인 설교 혹은 회원들 상호간의 댓글들에 대해
회원들 나름의 반박글이나 “비평”은 어떤 형태로든 원천봉쇄되어야 한다는
무슨 신성불가침 원칙이 이 사이트에선 적용된다거나 한다는 건 아닐 터인데 말입니다. ^^
“어떤 개인의 개별적 주견이 제시된 댓글에 대한 다른 개인 회원의 반박글”이란 건
용납되기 어려운 것이라거나 심기 불편한 것 쯤으로 이해하시는 듯한 전제를 깔고
하시는 말씀처럼 들려서 좀 의아해진다는 거죠.
제가 이해하고 있는 상식으로는 인터넷 카페 등에서
(더욱이 신학 마당이니 토론 마당이니 하는 곳에서라면)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명예훼손이 아닌 한은
상대의 관점과 주장에 대한 활발한 반박과 답변들을 통해 오히려
해당 논제가 보다 심화된 논의로 발전될 수 있는 걸로 아는데..
“님의 댓글에 대한 반박글은 아니니 오해 마시라..” 니?
싶네요.. ^^
 
그리고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등 사역자들을 통해 이어진 회복교회의 존재에 대한
일부 한국 교단의 이단 규정과 비방이 만약
그리스도의 몸을“핍박”(행 26:14)하는 심각한 오류이자 폐해라고 하는 상황이라면
그분 몸의 지체 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관심이란
“나의” 댓글 곧 “나의” 생각에 대해 다른 누가 뭐라고 반박하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머리이신 그 분의 몸과 진리 수호를 위해, 즉 이 땅에서의 그분 권익을 위해
“내가” 그런 상황에서 어느 편에 서 있는가, 즉
그분 편에 서서 그분의 몸을 위해 그분과 동역하고 있는가 아닌가 가
되어야 할 걸로 생각하며
그런 동역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라면 오히려 영광이 되겠지요.
부언하면,
적어도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그분의 살아있는 연필”로서의 헌신과 그분과의 동역에 관심을 가지는 이상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분의 손 안에서 “그분의 연필” 된 자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서나(골1:24) 또 세상을 향해서나
제시하고 표명되어야 할 그분 마음의 표현과 그분의 권익을 위해
얼마나 “개인적” 자기중심의 우주를 벗어나
그분 편에 서서 그분의 경륜을 위해 그분과 동역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인 것이지,
개인 댓글 내용의 공방과 승패(?)를 통한 “개인적” 체면(?)에 대한 관심이나
내가 속한 교단/교파의 체면이나 입장이 얼마나 유지되는지 어떤지 하는 관심 부분이
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개별적 존재 입장으로선 세상과 당대 종교로부터 모욕 당하고 조롱 당하셨던
그러한 분의 제자된 사람으로 사는 우리가
그 분의 주권적 안배에 의해 기꺼이 감당의 공과를 거쳐야 할 모욕 상황으로 주어진 것이 아닌 한,
이 세상을 살면서 때로
“개인적” 내지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예의”를 짚어나가는 이유(딤전 4:12, 딛2:15)란 것은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서 우리 각자에게는
그분의 위임과 위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과 관련해서일 뿐일 겁니다.
더욱이,
그분의 위임과 기름 부으심이 만약 님이 비방하는 바로 그 교회에 또한 있다면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그런 사실 무근한 훼방과 핍박(딤전1:13)은
우리가 개별적 관점에서 다른 한 개인의 견해에 대한 “반박글”을 내민 것과는
비할 수도 없이 오히려 더 심각한 의미가 있다는 것도(마 12:30~32, 막 9;38~50, 눅 11:23)
유념되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겸해서 그 어떠한 진리 논쟁이든 그런 논의/논쟁과 관련해
한 가지 밝혀 두고 싶은 제 생각은 우선
저로서는
Simone Weil 의 다음과 같은 관점에 전적으로 공감입니다.
 
“Intelligence can never penetrate the mystery, but it, and it alone, can judge of the suitability of the words which express it. For this task, it needs to be keener, more discerning, more precise, more exact and exacting than for any other.”
 
즉, ‘진리’ 방면에서라면
모든 성경 진리와 이단 시비 논쟁 및
설교 메시지에서의 성경 진리 관련된 부분에 관한 한,
최선을 다해
철저한 논거와 정치(精緻)한 논리적 언어로 정의, 해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진리’ 규명이란 것은 그 논의에 연루된 측 편에서
논의되는 사안에 걸맞은 ‘생명’의 성숙 내지는 ‘생명의 체험’으로 장비되지 못한 상황인 한은
장님코끼리 만지는 얘기밖에는 아니 되는, 즉
영적 생명 자체와 영적 생명 공급으로서의 가치란 거의 없는,
공허한 사변적 ‘논의, 논쟁’으로 떨어질 위험성이 짙다는 점도
아울러 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저로서는,
 
세간에서 하는 남들 말들이 이렇다더라느니 저렇다더라느니,
이단이라더라 느니 삼단이라더라 느니 하는 풍설들을
“새롭게 된 심령”(엡4:23)이 아닌 구변으로 늘어놓기 보다는 먼저,
참 ‘생명’의 노선에서 다만 그분 안에서의 살아 있는 신선한 내면적 관계를 통해
그 분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그 분 안에서의 자신 존재의 진면목, 그리고
그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자신의 기능 등등과 관련해
부단한 영적‘생명’의 성장을 지속해 나감으로써,
그분이 원하시는 그분의 때에,
머리 되신 그분에 대한 순종과 동역으로
그 생명이 그 분의 몸을 위해 자연스럽게 흘러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 및 자신/상대방 개인의 영적 유익과 관련해
피차를 위한 음식 메뉴(히5:13~14)나 상대의 영적 상황(7:6)에 대한
합당한 숙고도 없이
영적 가치 없는 본인 개인의 ‘머리’와 ‘언변’와 ‘소속 교파에 대한 충성’ 따위 만으로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며 '생명'과는 유리된 언쟁에 뛰어드는 모습들보다
훨씬 더 절필하고 요긴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메시지가 그처럼 와 닿는
이 세대에서의 살아 있는 말씀 선포 행위로 이해될 수 있었던 것도
저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런 면에 있어
그 분들의 메시지 안에서
‘진리’ 면에서와‘생명’의 체험 면에서의 양 측면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 즉
말씀 선포를 통해 성경 ‘진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살아 있는 ‘생명 공급’으로 분배되고 있음을
목격했기 때문임도 밝혀 드립니다.
 
 
샬롬.
 

[레벨:11]삼송

2013.01.22 22:16:40

선생님!정말 글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그러나

 쓰신 글이 너무 길어요 글이나 말이 길면 핵심을 이해를 못할때가 많지요

 

제가 너무 날카롭게 글을 적어서 마음이 상했다면 용서하십시요

저는 빙빙둘러서 말을 잘 못합니다. 알고 싶은 것에 대한 핵심을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면 그에 대한 근거를 대실줄 알았기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님께서 적으신 글은 지방교회가 대한 정당성 당위성을 역설하신것 같으시구요

신학적으로는 해명을 잘 못하시군요 

제가 이단이라고 한 자료는 예장 통합에서 만든 자료를 다른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조금 다르게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제가 제시한 글에 대해  정확한 말씀을 하실줄 알았는데요

그냥 진리다 영적이다 생명이다 그리고  본인의 체험만 말씀하면 저와

대화의 진전이 없지요

 

저는 님을 비난하려고 한것이 아니라 알고 싶었습니다. 지방교회에 대해서요

그러나 삼위일체, 기독론, 구원론은 지방교회가 기존교단 교회들과는 해석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점만 설명 부탁드립니다.

기존교단에 대해서 설명하시라는 것이 아니라 간단히 제가 적은 글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만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해다 공부를 안해봐서 그렇다 라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평한다 이런 류의 말은 사양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다른교단은 이단을 철회했다고 하는데요 글쎄요 미국내에서도 정말

논쟁이 많지요 미국은 워낙 종교다원주의 국가라서 미국에서 그런다고 해서 한국에서도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긴글 쓰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레벨:7]2C120

2013.01.26 13:54:26

 
‘삼송’ 님! 정말 글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나
쓰신 글이 너무 어둔해요 글이나 말이 어둔하면 독자/청자 쪽에서 되려
님이 표현하고 싶어하는 글/말의 핵심을 교통 정리해 도와 가면서 대화를 해 나가야 할 때가 많지요
 
님이 너무 어둔하게 글을 적어서 독자 마음이 상했을까 염려된다면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빙빙 둘러서 말을 잘 못합니다. 알고 싶은 것에 대한 핵심을 직설적으로
질문하는 예의도 챙길 줄 모르시는 데다가 근거 없는 가담항설 유언비어를 주장으로 내세우되
그 비방의 근거는 비방 당하는 쪽에서 내놓으라 하시니,
부득이 이렇게 빙빙 둘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님께서 적으신 글에 의하면 이쪽이 지방교회에 대한 정당성, 당위성을 역설한 답변을 읽은 것 같다고
밝히시고 있으니
신학적으로는 해명의 근거 제시도 없는 주장을 기왕에도 하시더니
독해력은 더 난감 수준임을 보여 주시는군요
제가 들어 보시라고 한 시 한 편은, 그저 스마일 모습 이모티콘 하나 붙여 답변하는 것으로 족할 님 글에 그래도
조금 다르게 성심껏 대화해 드린 것입니다.
님은 님이 제시한 글에 대해서도 정확한 말씀을 하실 줄 모르면서
독자가 자신 주장에 대한 정확한 근거을 안 내놓았다고 또 우기시기까지 하시는데요
그냥 이단이다, 변질 종파다, 경계하자, 그리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그런 풍설만 말씀하면 저와
대화의 진전이 없지요
 
저는 님을 비아냥거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알고 싶었습니다. 님 주장의 근거에 대해서요
그러나 님은 근거 제시도 없는 주장을 한 다음 적반하장으로,
상대방더러 그 근거 설명을 내놓아 봐라 고 요구하시니
담화 에티켓으로서는 참 경우 없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점만 설명 부탁 드립니다.
기존 교단에 대해서 설명하시라는 것이 아니라 간단히 님이 적은 글에 무엇이 그 각각의 근거가 되는지만
밝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해다, 신학 공부를 해 보면 이해한다, 다른 사람들과 교단 중심 인물이 그렇게 평한다 이런 류의 말은
사양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다른 교단은 이단을 철회했다고 하는데요 글쎄요 한국 내에서는 정말
논쟁이 많지요 근데 미국은 워낙 종교다원주의 국가라서 미국에서 그런다고 하니까 한국에서도
똑 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 거라고 이쪽은 얘기한 적 없음에도 또 그렇게 독해해 내셔서...
질문이라기보다는 근거 제시도 없는 주장과 비방 발언의 “선언”을,
날카로운 글이라기보다는 개념 정리 안 된 글을,
경우 없는 담화 매너와 함께 보이시는 분과 더불어
대화를 풀어 나가려면
마음을 좀 많이 써 드려야겠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짧고 둔한 비방 글 쓰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PS)”
‘삼송’ 님,
님 댓글 패러디가 어떠신지요, 그럭저럭 패러디 모양새는 된 것 같은가요? ^^
 
엊그제인가 한동안 대구성서아카데미 사이트 댓글 접속이 안 되길래 문의했더니
정용섭 목사님께서 복원 중이라고 답변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사이버’ 공간이라는 게 사실은 ‘사이비’ 공간과 같아서
간추리고 간추리면 손에 남는 게 별로 없으니.. 혹
사이트 복구가 되지 않는다고 뭐 그렇게 속상할 건 없습니다> 하시더군요
언어유희 같은 그 해석에 저는 공감이었는데요 ^^
  
다시 말씀 드려,
상대방을 비방하는 측에서 불특정 다수 독자를 대상으로
“지방교회는 내지 지방교회가 말하는 내용은 이러이러한 것이므로
지방교회는 바로 다름 아닌 이단이니 주의하시라”라면서
“지방교회가 믿고 있는 내용”(?)이라며 황당한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신 분께서 왈,
“저는 빙빙 둘러서 말을 잘 못합니다. 알고 싶은 것에 대한 핵심을 직설적으로
말씀 드리면 그에 대한 근거를 대실 줄 알았기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제가 제시한 글에 대해 정확한 말씀을 하실 줄 알았는데요..
저는...알고 싶었습니다. 지방교회에 대해서요. 그러나...부분은 지방교회가
기존교단 교회들과는 해석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 부분만...밝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니? ^^
“알고 싶었다” 라면 물어 보아야 하는 게 상식이지
어디서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자료를 가져와서는
‘자, 이게 저들이 말하고 주장하는 내용이에요. 이단이에요!’라고,
질문”이라기 보다는 선언으로 읽히는” 웬 황당한 주장을 공개 게시판에 디밀어 놓고서
그 다음에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말씀 드리면, 제가 제시한 글에 정확한 말씀을 하실 줄 알았는데요”라? 하하..
  
이해(利害) 관계에 근거한 부정직한 은폐와 작당(作黨),
적반하장의 무례와 네티즌 개념 없는 황당함,
허명(虛名)과 대중 인기에의 영합,
맹목의 군중심리를 악용한 전횡… 등등이 판치는
‘사이비’ 공간으로 전락될 위험이 다분한 게
사실‘사이버’ 공간이라
저 역시도 그런 ‘사이비’ 공간이라면
그 우수마발 글 흔적 따위에 엮이고 싶은 마음이란
당연히 추호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 “대구성서아카데미” 공간은 “완전히 다른 것”이기를 기대했었는데요. ^^
  
‘삼송’ 님,
‘사이비’ 진술이 범람하는 인터넷 사이버 공간 카페 등에서
제 경우,
님과 같은 글쓰기 하는 분의 댓글을 마주칠 때면,
그저 댓글 자리에 ^^ 하나 붙여 줘서 긴/짧은 말 대신하고 맙니다.
피차를 위해 말 섞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알아 들을 귀 있는 분은 알아 들으시라고
시 한 편 더 첨부해 긴/짧은 말 대신했다가
다시 또 님의 댓글이 들어왔길래 다시 그래도 성의껏 답변 드렸더니..
“신학적으로는 해명을 잘 못하시는군요...저는
제가 제시한 글에 대해 정확한 말씀을 하실 줄 알았는데요..”라시는군요. ^^
님께서“신학”을 한 분이든 신학 할아버지를 한 분이든 간에
우선‘삼송’님은 상호 대화에 있어서의 예의부터 챙겨 익히심이 필요하다는 걸
조언 드리고 싶군요.
 
즉,

첫째,
님이 어떤 의문을 갖게 되셨다면
님 스스로 그분 앞에서 묻고 검토하고 확인 작업을 거치는 게
순서이겠구요. 그런 다음,
그 과정에서 항간에서 떠도는 낭설이나 일부 교단의 교인들이 내놓은 말이 아니라
님 스스로가 확증한 내용,
자신의 말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말만을
자기의 글로 최선을 다해 내놓으려는 자기성실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님 말씀대로 님이 “알고 싶은” 의문 사항이 있었다면
님의 질의 내용에 대해 질문 형태로 해 주시는 게 상식이요 도리이지,
선동이나 사주 모습으로 간주되는, 즉 “선언으로 읽히는” 내용인
‘자, 이게 저들이 하는 신학적 내용이랍니다. 바로 이단 신앙의 무리 중
하나라고 합니다’ 운운 발언을
군중심리 파급효과를 초래할 불특정 다수 대상의 인터넷 공간에
황당한 댓글로 무책임하게 공표하고 나서,
“그렇게 말하면 (반박으로) 그에 대한 근거를 대실 줄 알았기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라니?
무슨 그런 대화 에티켓이 다 있는지요? ^^

셋째,
그리고 나서는 또
“(답변을 읽어 보니) 쓰신 글이 너무 길어요 글이나 말이 길면 핵심을 이해를 못할 때가 많지요”라며
불평을 한 후에,
“님께서 적으신 글은 지방교회에 대한 정당성, 당위성을 역설하신 것 같으시구요”라고
님 자신의 빗나간 독해에 근거한 독해 소감을 피력하신 다음,
“신학적으로는 해명을 잘 못하시는군요.기존 교단에 대해서 설명하시라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교단과 다른 것 같이 보이는 지방교회의 삼위일체, 기독론, 구원론에 대해 설명”해 주시되,
“오해다, 공부를 안 해 봐서 그렇다,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평한다 이런 류의 말은
사양하”니 해당 사항을 “밝혀 주십시오.”라고 하셨네요 ^^
다름 아니라 정작 바로 그 자신이 “기존 교단, 다른 사람들이 평한 것”만을 빌려 와선
“신학적 해명” 한 쪽 없이 불특정 다수가 대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그게 상대방에 대한 진실인 양 “선언”하신 분께서
도리어 상대방더러
‘신학적으로는 해명은 잘 못하시는군요”라?
뿐더러, “기존 교단,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평한다 는 류의 말은 사양한다”라니?
이런 상황을 적반하장이라고들 하는 것 같던데.. 아니던가요? ㅎㅎ

넷째,
“간단히 제가 적은 글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만 밝혀” 님 자신의
상대방에 대한 “이단” “선언”에 아니라는 근거를 대시라 하시는데,
상대방을 놓고 “이러이러하다”라고 그렇게 “선언”한 쪽에서
그런 비방 “선언”, 비방 주장에 수반되는 근거를 제시하는 게 상식인 것이지,
그런 황당한 비방 내용이란 건 “전해 들은 것을 다시 내가 정리해 본 것”이라 하고선,
비방 당한 측에다 대고 도리어 자, 그럼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이런 내 주장에 대한 근거에 관련해 “그 해당 부분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니? ^^
장로교단 목사님 도움을 받아 댓글 내용을 만들었다고 하는 님 쪽에서, 즉
지방교회 신앙 내용이란 것은 이러이러한 거다 라고 그런 황당한 주장을
댓글로“선언”한 쪽에서
그런 주장과 선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셔야지 도리어
비방한 쪽에서는 숨기고 있는 내지 말하지 못하고 있는 그 같은 자신 주장의 근거(?)에 대해
비방 당한 쪽에다가 대고
자, 이게 아니라면 그 근거를 제시해 설명해 놓고 해명해 봐라 하고 요구하는
그런 황당한 대화법은
대체 그 어떤 상식적 대화 예의범절(?)에서 나온 걸까요? ^^
지방교회라고 세간에서 지칭되는 교회가 “이단이다” 운운의 “선언”을 하셨고 또,
그 이단이 믿고 있는 내용이라면서 황당한 댓글 내용을 제시한 분은
다름 아닌 님 쪽인데, 그런 주장을 하신 쪽이 그 근거를 우선
제시하셔야 한다 라고 하는 상식이 안 따라와 주시는지요? ^^

다섯째,
아울러 이 공간에서 ‘삼송’이라는 닉네임 쓰는 분이 “알고 싶다”고 해서
그 답을 아시는 분이 그에 무조건 응해 “설명”을 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당연히 아니라는 걸 아시기 바랍니다.
‘사이비’ 말들이 횡행하는 ‘사이버’ 공간 한 모퉁이에서 튀어나온
한 마디 말 섞을 가치도 없는 댓글로 치부해 ^^”이모티콘 하나 붙여 버리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는 거란 얘기이고,
그럼에도 때로 답변을 하는 것은 불특정 다수 독자에게 미칠 폐해를 고려해서일 것이며
답변에 응하는가 아닌가 하는 건 전적으로 상대방의 선택이란 점에 대해서도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삼송’ 님,
“간단히” 말씀 드려서,
대화를 하시려고 한다면,
대화에 전제되는 기본 합리적 상식과 에티켓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부터
좀 챙겨 보시기 바랍니다.
  
‘삼송’ 님께서
서로간의‘대화’를 위해 요구되는
‘표현-이해’ 과정의 기본 전제에 대한 개념 및
님이
“질문이라기 보다는 (비방) 선언으로 읽히는”
님의 그런 “묻고 싶은 내용”에 대한 질문(?)과
이 게시판 댓글 난에서
님이 실제로 회복교회에다가 하신,
그 근거 제시도 없는 ‘비방’ 선언/주장과의
차이에 관해 개념 정리를 하시고 나서
적절한 다른 게시판에서 대화를 청해 오신다면,
그리고 또 거기에
주님의 안배가 주어진다면,
저는 물론
배우는 심령으로, 또 섬기는 심령으로
기꺼이 님과의 대화에 진지하게 응할 마음이 있다는 점,
말씀 드립니다.
 
 
주님의 인도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profile

[레벨:14]웃음

2013.01.22 21:04:46

저도 대학시절에 BBS(brothers bible study라는 대학선교단체)를 통해서(가입한것은 아니고 이웃서클이었지요)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를 알았습니다.

그당시에 읽었던 '영에 속한 사람'이나 '좌행참'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은 제 기억에도 남습니다.  당시에 저도 BBS에 소속된것은 아니었지만 BBS를 접촉하면서 많은것을 배웠지요...

그때 열심히(?) 기도도 하던 때였던지라 그때의 기도제목중 하나는 가난한 대학생이 갖고 싶었던 책을 가질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지금은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는 위트니스리의 전집이었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을 읽을 당시만 하더라도 워치만 니에 대한 저의 평가는 아주 대단했습니다.

 

사실 다비안들은 대부분 아시고 계시겠고, 정목사님도 잘 아시겠지만, 워치만 니를 몰라도 위트니스 리를 몰라도 다비안은 솔로몬의 예표론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미 성경관이 다르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저도 기독교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서 거의 모든 번역본은 다 읽어봤습니다.  더군다나 몰몬경이나 통일교의 원리강론도 재미로 봤지요...쿠란도 일부 읽어보고 있습니다. 집에는 아직 회복역이 있습니다.  회복역을 원리강론이나 쿠란과 비교하는것은 아닙니다. 

빈이님의 말씀처럼 원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더 날뛰는 킹제임스파도 있긴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사실 일반인들은 성경의 각 번역본의 차이를 단순히 읽어나가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삼위일체를 부인하기 위해서 변개된것인지 아니지를 어떻게 구별하겠습니까?  내용도 이해를 못하는데요...  다만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는것입니다. 

 

바람처럼 강물처럼님의 말씀처럼 BBS분들은 특히나 외형적으로 봤을때는 다른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선량해 보였습니다.  더 부드러웠고 더 공손했었지요...   사람이 겸손하고 진정성이 있다고 해서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이 다 진실이라고는 전혀 확신할수 없습니다. 완전히 별개의 것이겠지요...

 

성경관 하나님에 대한 견해 종교관 등등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워니만 니와 위트니스 리입니다.  당시에는 저도 그들의 영성(?)에 놀라서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가르침에 귀를 귀울였지만, 지금은 전혀 아닌것은 단순히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경험해서 아는 그런 과정을 지나온 흔적때문일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때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를 그대로 믿는것과 그것이 그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그것이 아니고 그것은 좀 다른것이라고 믿는것의 차이라는것을 다비안들은 아실것입니다.

 

솔로몬의 예표론이 마치 하나님의 경륜에 포함되어서 그렇게 미리 정해진대로 흘러진것이라고 믿는 분과

그런 예표론은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서 역사적으로 후대에 형성된것이라고 믿는 차이가  아주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글이 길어질까 걱정입니다. 몇일전부터 스마트폰으로 봤다가 그냥 지나치려다 결국 컴앞에서 몇자 적게 되는군요..

 

2C120 님을 잘못된 신앙이라고 말씀드리는것도 아니고 이단종파라고 말씀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모든 종교가 다 구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더 친해지고 더 재미있는 관계를 형성할수도 있습니다.

 

 

[레벨:12]피트

2013.01.23 10:51:28

웃음님! 안녕하시지요?  

 제가  그당시 형제교회 라고 하는 그 교회에서 느낀것은  그들의 선량,공손, 이런 것뿐만 아니라 예배 형식,

특히 예수님을 생각하는 모든 태도 ,   진정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올바른 모습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제가 느낀 점을 정확히 전달하기가 어려우나   현재 한국교회의 희미한 여러가지 보담은 그리스도를 향한 진정성

은 비교할수 없을만큼 열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profile

[레벨:14]웃음

2013.01.23 11:52:23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지요?

제가 요즘 좀 바빠서 다비아에 들어오는것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니 댓글을 다는 어려움까지 따르네요...

 

바람처럼강물처럼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겠습니다.^^

감사해요^^

[레벨:7]2C120

2013.01.26 14:03:56

 

‘웃음’ 님, 안녕하세요
 
님 자신의 과거 종교적 열정과 “영성(?)”의 “경험” 과정, 그리고
현재의 종교관에 대해 잘 들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셨네요..
 
 
근데
“지방교회 교인들의 ‘영성(?)에 놀라서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지만
지금은 전혀 아닌 것은 단순히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고,
“이미 경험해서 아는 그런 과정을 지나온 흔적 때문”이라고 하셔서..
그 얘기는 바꾸어 말하면,
님이 만났던 지방교회 교인들이 어떠한 이들이었는지는 모르겠으되
그들의 영성(?) 아닌 영성을 영성인 것으로 오인하고 제대로 분별할 수 없었던 님의,
그 당시 생명의 있어서의 미숙함에 관한 얘기일 수도 있겠군요.. ^^
 
“기독교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서” 회복 교회의 한국어 판 번역본 서적들은
많이 읽어 보셨다 하셨습니다만..
 
우선
“기독교에 대한 사랑” 내지 기독교 종교 조직 체제에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서로“완전히 다른 것”이고,
또한
종교적(宗敎的)인 성향의 강도(强度)와
영적(靈的)인 순도(純度) 및 심도(深度)란 것도
서로“완전히 별개의 것”인지라...
모쪼록, 님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님의 영성에 있어서의 진보가
예전에 님이 만났다는 지방교회 교인들의
웬“영성(?) ^^ 에 (님이) 놀라
(님이)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었다”는 그 당시보다는
현재
괄목상대한 것이 되셨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
 
그리고
“성경관, 신관, 종교관 등등이 다비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이다”라고 규정하시면서 그러나
함께“더 친해지고 더 재미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라고 하셨는데
 
“어쩌면 모든 종교가 다 구라일지도 모릅니다”라는“종교관”을 가지고 계신 분들과 나누는
대화의 “재미”에 대해선 저도 대체로 흥미를 느끼는 편이기는 합니다. ^^
 
 
주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길…
 
 
 
 
“(PS)”
“사실 다비안들은 대부분 아시고 계시겠고, 정목사님도 잘 아시겠지만,
워치만 니를 몰라도 위트니스 리를 몰라도 다비안은 솔로몬의 예표론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미 성경관이 다르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성경관 하나님에 대한 견해 종교관 등등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워니만 니와 위트니스 리입니다...”
라 하셨는데,
이 곳 “대구 성서 아카데미(dabia)”에 회원인 사람들을 “다비안”이라고 지칭한다는 걸
님 댓글을 대하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 그런 표현에 의하면
정용섭 목사님 설교는 어떤 걸까 궁금해서 회원 가입을 해 보았던 저도
그러면 “다비안”이 되는 건가요? ^^
하긴 프랑스 파리(Paris) 사람들을 파리지엔(Parisian)이라고들 한다니까
어찌 되었건 일정 공간과 연관을 갖게 된 사람들을 그렇게 지칭할 수도 있겠네요.
물리적 공간 개념 관련해서는 한국에서도 아직
경상도 출신, 전라도 출신 해 가며 “분별”을 한다고도 하지요.. ^^ (고전12:13, 갈 3;27~28, 골 3:11)
이 곳 다비아 회원으로 어쩌다 가입하게 되긴 했습니다만..
공간 영역의 개념 관련해 사실상 저로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엡 2:6, 4:1, 6:11) 있는 한 사람이자
(님께서 웟치만 니의 에베소서 강해인 “Sit, Walk, Stand(좌,행,참)”을 언급하시기도 했군요 ^^ )
“Nazarite(나실인)” (민 6) 이외에는
다른 이름으로 지칭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답니다.
 
“나실인”(민수기 6장)의 “헌신”에 관해서는1989년, 마음 깊은 속에서부터
“나실인”이란 어휘의 의미에 대한 갈증이 있었었는데
 
그 당시에 위트니스 리의 메시지 중
"헌신"(<생명의 체험>에서)과 "나실인의 4중 헌신"(<제사장 직분>에서)에 관한 내용을 대하면서 마찬가지로
빛 비춤의 도움을 입었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 대화를 대하는 저도 감사합니다. '웃음' 님께도 주
()의 평강이 함께하시길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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