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조회 수 9059 추천 수 152 2006.03.29 23:20:08
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는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고, 그가 인용한 말씀으로 들어갑시다. 무의식적거나 의도적인 작은 실수들은 성서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빠진 사본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런 문제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기 때문입니다.
마가가 인용한 말라기 3:1절은 하나님이 ‘일꾼’을 보내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뜻이겠지요. 조금 더 강하게 표현한다면,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도 일을 하실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하실 때 인간에게 의존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뛰어난 인물이 하나님의 일을 독점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일꾼’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또한 하나님이 세상에서 일하시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자, 즉 하나님의 일꾼이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을 알면 일꾼의 정체성과 그의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한 말라기서가 너무나 간단명료하게 그 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의 일은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준비한다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준비하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직접 하는 것은 물론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것도 역시 아닙니다. 일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가능한 배타적인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배타적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나 조직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민들레꽃을 직접 피울 수 없듯이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스스로 하십니다.  
간혹 하나님의 일을 자신이 대신하는 것처럼 대단한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겠다고 야심찬 꿈을 키우기도 합니다. “젊은이며, 야망을 가져라!”는 식의 선동이 교회의 강단까지 지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생각이야 대견한 일이겠지요. 마가가 지금 염두에 두고 있는 세례 요한처럼 광야에서 청빈하게 살면서 회개의 설교를 선포하는 삶은 격려 받을 일입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그런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분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삶이 아무리 위대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삶 자체는 주님의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을 준비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주님의 신발 끈을 매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만약 오늘의 교회가 주님의 일인 구원 사건에서 전적으로 무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훨씬 바른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자기 칭송과 업적, 자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포기하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레벨:18]눈꽃

2008.10.30 19:40:12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가능한 배타적인 사건이다 ___;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라는말로 이해해도되는지요 여기에서 믿음이라는단어는 -오직 하나님에 게서만 가능하다는 말을 의미함이다 라고 이해해도 되겠는지요?
profile

[레벨:26]사띠아

2008.10.30 19:55:58

눈꽃님,
구원, 믿음 그런 차원이 아니라
다비아 어디에인가 '하나님의 칭의는 상수이고 구원은 변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우리가 하나님의 의롭게하심에 집중하게 될때
구원에 집중되서 일어나는 갖가지 기현상들에서 자유로와 질 수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평화가 있고 자유, 생명이 있었구요.
답글 보는 기쁨에 충만하시라고 한 마디 달았습니다아~~^^*;

[레벨:18]눈꽃

2008.10.30 21:07:09

아!! 사티아님!... 답글보는기쁨 마니마니충만합니다ㅎ ㅎ ㅎ글쓰기도초보 모든것이 초보라......이제서울 동대문시장 가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어서... 사티아님의글 시장다녀와서 다시 읽어보아야지 ..룰루랄라ㅎ ㅎ ㅎ ㅎ

[레벨:18]은나라

2016.07.01 10:37:34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준비하는것일 뿐이라는 거죠?

제가 예전에 배운것은, 기도도 하나님의 일이고, 찬양도 하나님의 일이고, 예배, 헌금, 전도, 봉사,,교회에서 하는일을 비롯한 우리 일상생활 까지도 하나님의 일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항상 노심초사 였죠.. 자유도 평화도 뭔지도 모르고.. 그런 하나님의 일을 하면 얻어지는 기쁨,만족이 성령충만이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와 안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정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해가 안될 수밖에요.. 전혀 딴세계이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계 22:8 new

  • 2024-05-03
  • 조회 수 2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1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글을 쓴 이가 요한이라는 사실은 여기 계 22:8절만이 아니라 계 1:1, 2, 4절 등등에도 나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요즘도 영어 이름으로 ‘존’이 흔하듯이, 당시에도 흔해서 실제로 그가 누군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지도자로 활동하던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만 분명합니다. 그는 ‘보고 들은 자’라고 했습니다. 보고 듣는 행위...

계 22:4

  • 2024-04-29
  • 조회 수 4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7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는 종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라(4절) 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걸 문학적으로 무엇이라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라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출 33...

계 22:5

  • 2024-04-30
  • 조회 수 5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8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불리면서 거룩한 성이자 새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그곳에는 밤이 없다고 합니다. 빛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빛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밤이 없다는 말은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악이 준동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 하나님’이라고 할 때 ‘주’는 그리스어 Κύριος(Lord)이고, ‘하나님’은 Θεὸς(God)입니다. 퀴리오스라는 ...

계 22:2

  • 2024-04-25
  • 조회 수 6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5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 나무가 하나의 품종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열매를 맺는 나무를 포괄하는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생명 나무 열매를 먹고 살겠지요. 매력적입니다. 과일만으로도 영양 공급이 충분할 테니까 말입니다. 육식을 즐기는 분들은 에덴동산도 그렇고 여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계 21:26

  • 2024-04-22
  • 조회 수 7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2 21: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6절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모든 사람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뜻이겠지요. 영광(δόξα, glory)은 요한계시록에 흔하게 나오는 단어입니다. 요한계시록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리켜서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붙일 수 없는 개념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완전히 변화된 세상이라서 사람도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영광...

계 21:27

  • 2024-04-23
  • 조회 수 7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3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27절에 다시 생명책 이야기가 나옵니다. 생명책에는 구원받을 자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적히지 못한 자들은 이 세상의 악한 권력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계 13:8절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그들은 구원에서 영원히 제외...

계 22:7 update [2]

  • 2024-05-02
  • 조회 수 7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0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내가 속히 온다.’라는 문장에서 주어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추정되기는 하나 문맥으로만 보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지금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에게서 말을 듣고 그가 보여주는 환상을 따라가는 중입니다. 이런 문맥에서만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천사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전체 관점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맥락에서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

계 22:1

  • 2024-04-24
  • 조회 수 7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4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우리는 이제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까지 왔습니다. 22장에서도 요한은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를 통해서 묵시적 환상을 경험합니다. 생명수의 강은 창 2:10-14절 내용과 연결됩니다. 창세기가 전하는 에덴동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이 아니라 여러 줄기의 강이 나옵니다. 첫째 줄기의 강은 비손이고, 둘째는 기혼이며, 셋째는 힛데겔이고, 넷째는 유브라데입니다. 창세기...

계 22:6 [1]

  • 2024-05-01
  • 조회 수 8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9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6절부터 21절까지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제가 달렸습니다. 앞에서 묘사된 모든 묵시적 미래가 예수의 오심으로 실현된다는 뜻이겠지요.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라도 해도 괜찮았을 텐데 선지자들의 영이라는 표현을 ...

계 22:3 [2]

  • 2024-04-26
  • 조회 수 13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6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요한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절대적인 생명의 세계로 묘사하려고 온갖 묵시적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이미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나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반복해서 읽다 보면 하나님을 옥황상제나 임금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보좌도 임금이 앉는 최고급 의자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성경 문장은 메타포(은유)이...

계 21:25

  • 2024-04-19
  • 조회 수 16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1 21: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5절 문장이 약간 이상합니다. 거룩한 성에는 밤이 없어서 낮에 성문을 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문은 보통 밤에 닫지 않습니까. 낮에는 원래 열어두는 거고요. 밤에도 성문을 잠그지 않는다고 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인데, 위 구절은 자연스러운 문장이 아닙니다. 아예 문이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

계 19:19

  • 2024-02-19
  • 조회 수 16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39 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지금 요한은 계속해서 묵시적 환상에 사로잡혀서 글을 쓰는 중입니다. 묵시적 환상이라는 표현이 어떤 이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세계관으로 비칠 겁니다. 하늘 보좌, 무저갱, 용, 짐승, 천사, 천군 등등이 등장하니까요. 비록 신화적인 용어가 사용되기는 하나 묵시적 환상은 아주 분명한 역사 인식이고 세계관입니다. 글쓰기 형식은 신화적이나 내용은 역사적이라는 뜻입...

계 19:21

  • 2024-02-21
  • 조회 수 16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1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검에 죽는다거나 모든 새가 나머지 사람들의 살로 배를 불린다고 표현한 19절은 섬뜩한 느낌이 정도입니다. 표현만 그렇지 실제로 그 문장이 가리키는 의미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심층적인 차원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 탄 자’의 검에 나머지가 죽는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심판받는다.’라는 뜻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온...

계 20:3

  • 2024-02-28
  • 조회 수 16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4 20: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당시 사람들은 천년을 세계 역사가 변하는 한 단위로 생각했습니다. 벧후 3:8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시 90:4절입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천년을 날수로 계산하면 365,000일입니다. 하루와 천년은 비교 자체가 ...

계 19:18

  • 2024-02-16
  • 조회 수 16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38 19: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18절부터 새들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끔찍한 명령이 내립니다. 모든 사람의 살을 먹으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모든 자’는 실제로 모든 사람을 가리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지 불분명합니다. 아마 후자겠지요. 어쨌든지 새들이 사람의 살을 먹는 풍경은 끔찍합니다. 우리가 볼 때 끔찍할 뿐이고 새들에게는 ...

계 18:24

  • 2024-01-23
  • 조회 수 17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20 18: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요한이 묵시적 심판을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24절에 나옵니다. 이 말을 하려고 앞에서 동어반복으로 들릴 정도로 길게 심판에 관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죽임을 당한 모든 자가 로마에서 피를 흘렸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것입니다. 실제로 목숨을 잃거나 박해를 피해서 고향을 등지거나 일자리를 잃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교 ...

계 19:10

  • 2024-02-06
  • 조회 수 17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30 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요한은 천사에게 절하고 경배하려고 했습니다. 천사의 아우라는 우리를 무릎 꿇게 할만합니다.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 산악인의 심정을 상상해보십시오. 에베레스트의 위용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초라한지를 절감합니다. 등정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본격 등정에 나서...

계 19:5

  • 2024-01-30
  • 조회 수 17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25 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보좌에서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보좌는 ‘하늘’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거룩한 존재가 거기에 있기에 지금의 생명형식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보좌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요한은 보좌에는 하나님이 앉아 계실 뿐 아니라 이십사 장로들이 앉아있다고 이미 4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이 장로들을 지금 한국교회에서 활동하는 장로가 아닙니다. 보좌에 앉...

계 20:4

  • 2024-02-29
  • 조회 수 17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5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요한은 보좌에 앉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말 <개역개정>은 앉은 ‘자’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틀린 번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매끄러운 번역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

계 19:20

  • 2024-02-20
  • 조회 수 18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0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열리면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힙니다. 그들이 더는 악한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짐승은 ‘무저갱’(계 11:7)에서 올라온 세력이라고 묘사할 수밖에 없는 악한 무리입니다. 계 13:1절 이하에는 짐승에 대한 설명이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뿔이 열이고 머리...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