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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11월15일 영생에 대한 질문(2) [4]

  • 2008-11-14
  • 조회 수 2175

||0||02008년 11월15일 영생에 대한 질문(2)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끓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막 10:17)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는 인간의 적나라한 실존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일종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영생을 꿈꾸고 있습니다. 바벨탑과 피라미드, 파라오의 미라, 중국 황제들의 지하 무덤 등, 인류 문명은 영생을 향한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어디 그런 것들 만이겠습니까? 자식을 ...

1월14일 씨 (2) [3]

  • 2007-01-14
  • 조회 수 2176

2007년 1월14일 씨 (2)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 뿌리는 행위가 곧 예배라는 어제의 말을 뒤집으면, 예배는 곧 씨 뿌리는 행위와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철저하게 자연에 깃든 생명의 능력을 의지하듯이 예배도 역시 철저하게 자신과 구별되는 영에 의존합니다. 그 영은 아버지의 영이고 아들의 영인 성령입니다. 우리가 흔하게 들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예배의 주관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예배의 주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물론 형식적으로 사람이...

12월27일 전통과 계명 [1]

  • 2007-12-26
  • 조회 수 2176

2007년 12월27일 전통과 계명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막 7:9) 오늘 본문 9절은 8절의 강조입니다. 8절은 단순히 사실 전달이라고 한다면 9절은 원인 분석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려다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다는 지적이겠지요. 이런 지적에 따르면 바리새인들의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과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로들의 전통, 즉 바리새인의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을 좀더 구체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이 삶의 모든 문제...

예수님의 시험 (4), 4월28일 [2]

  • 2006-04-28
  • 조회 수 2176

2006년 4월28일 예수님의 시험 (4)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 1:13) 예수님이 사탄에게 받은 두 번째 시험은 다음과 같은 요구였습니다.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마 4:5,6) 만약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

11월23일 병자 (3)

  • 2006-11-23
  • 조회 수 2177

2006년 11월23일 병자 (3)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막 3:10) 병 치료는 거룩한 구원행위입니다. 이런 점에서 의사도 역시 목사요 사제입니다. 그들은 모두 인간의 생명에 자기 실존을 건 사람들입니다. 목회와 의료행위는 생명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경제논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생명이 거룩하다면 그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의 행위도 역시 거룩하니까요. <기독교사상> 11월호 포지인물로 장기려(1911-1995) 박사가 소개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슈바이처, 살...

평창올림픽 유감 [4]

  • 2011-07-12
  • 조회 수 2178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가 강원도 평창으로 결정됐다. 삼수만이다. 독일과 프랑스와의 경합에서, 그것도 1차 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오랜만에 지역의 차이, 여야의 차이, 빈부의 차이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즐거워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유치위원들을 비롯해서 많은 이들이 흘린 땀의 결실일 것이다. 모두가 평창 올림픽 결정 사실에 열광한다. 경제 효과가 50조 이상이라는 말도 나온다. 상징적으로 어느 티브이 방송 앵커는 그 사실을 보도하면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나는 별로 흥이 나지 않...

11월14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4) [2]

  • 2009-11-13
  • 조회 수 2179

2009년 11월14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15:34) 우리의 의문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즉 메시야라고 한다면 어떻게 목말라하고, “엘리 엘리 ...” 운운 하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은 자존자이십니다. 존재의 근거를 내부에 갖고 있는 분이십니다. 무소불위와 전지전능이 바로 그분의 속성입니다. ...

목사공부(9) [2]

  • 2014-04-20
  • 조회 수 2179

앞에서 소명은 한 순간의 어떤 특별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전체 삶에서 심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일상의 소명과 일치하는 이야기다. 삶 전체로서의 소명과 일상으로서의 소명을 연결해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한 사람의 전체 삶은 일상으로 구성되며, 일상은 전체 삶에서 완성된다. 일상이 있어야 전체 삶이 가능하고, 전체 삶 안에서 일상은 의미를 얻는다. 부분과 전체가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다. 이걸 아는 사람은 삶과 일상을 수행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 자신에게 강요하는 것을 억지로 떠맡거나 자...

2월9일 예루살렘 성전에서(8) [7]

  • 2009-02-09
  • 조회 수 2180

2009년 2월9일 예루살렘 성전에서(8)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11:19) 위 구절은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함을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자신을 제거하려고 마음을 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님 일행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을 조용히 빠져나갑니다. 이런 장면만 보면 차라리 낭만적입니다. 날이 저문 시간에 잠잘 곳을 찾아, 추측컨대 베다니로 나갔을 테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가 조금씩 짙어지고 있습니다. 그 단초가 바로 예...

주기도(31)

  • 2010-08-19
  • 조회 수 2180

-일용할 양식(1)- 주기도를 주제로 한 매일 묵상을 시작하면서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 언급했다는 걸 그대도 기억하실 거요. 특히 남한이 몇 년 치씩 먹을 걸 쌓아놓은 채 일용할 양식이 없는 북한을 모른 척한다는 사실을 지적했소. 이런 태도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 볼 수 있소. 부자는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부자의 문지방에 기대서 얻어먹고 살다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하오.(눅 16:19-31) 어떤 목사는 나사로는 하나님을 잘 믿었고, 아브라함은 믿지 않...

12월17일 사탄이 분쟁하면?

  • 2006-12-17
  • 조회 수 2181

2006년 12월17일 사탄이 분쟁하면?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막 3:26)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사탄을 인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도 역시 “시대의 아들”이니까 그 당시의 세계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생각과 판단에 오류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인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현실에서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알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오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보통 인간들과 ...

12월30일 그는 살아나셨다(13) [10]

  • 2009-12-29
  • 조회 수 2181

2009년 12월30일 그는 살아나셨다(13)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16:6) 부활에 관한 설명에서 어려운 점은 우리가 그것을 아직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확인해볼 수 있겠지만, 그는 이미 하나님의 우편으로 옮기셨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단 한번 일어난 그 부활을 우리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

오지 선교 [4]

  • 2011-09-05
  • 조회 수 2181

오지 선교를 하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셨소? 그분들은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에 가기 위해서 며칠을 고생하기도 한다오. 돈을 주고 그렇게 하라면 못하겠지만, 오직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 하나로 그렇게 견디오. 재미있는 나의 오지 선교 이야기를 하니 들어보시오. 어제 서울샘터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집까지 오는 과정이오.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모든 모임이 마친 시간이 저녁 7시 25분이오. 대방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4정거장만에 서울역에 도착했소. 저녁 8시 출발 KTX를 탔소. 자리에 앉아 성찬식을 하고 남은 모닝 빵을 ...

누가복음 읽기 023

  • 2020-12-03
  • 조회 수 2181

대구 성서 아카데미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읽기』 023, 눅 1:38 https://youtu.be/IrikoqkZr7M

4월13일 귀신들린 사람 (9) [1]

  • 2007-04-13
  • 조회 수 2182

2007년 4월13일 귀신들린 사람 (9)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막 5:7)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마치 만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에게 자기를 괴롭히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말은 누가 하는 걸까요? 이 사람 안에 들어있는 귀신이 하는 건가요? 아니면 이 사람 자신인가요. 저는 귀신을 실체나 인격체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변할지는 몰라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이해하...

5월4일 익명의 무리

  • 2007-05-04
  • 조회 수 2182

2007년 5월4일 익명의 무리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막 5:24) 예수님이 야이로의 요구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씀이 없었지만 따라나서신 걸 보면 받아들이신 것 같습니다. 그가 처한 절박한 상황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겠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에게 이런 요구를 한 사람이 어디 야이로 한 사람뿐이었겠습니까. 성서 기자는 그중에서 특별하게 기억되거나 전승된 사건만을 보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큰 무리가 따라가면서 에워싸 밀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큰 무리 속의...

6월26일 예수, 헤롯, 요한 [2]

  • 2007-06-26
  • 조회 수 2182

2007년 6월26일 예수, 헤롯, 요한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막 6:14)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는 BC 4년에 아버지 헤롯 대왕이 죽자 16세에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다스리는 군주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결국 예수님의 전(全)생애 동안 군주였다는 말이 된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으리라는 건 자연스럽다. 그런데 예수님과 헤롯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고 그 사이에 다른 한 사람...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주일 [1]

  • 2010-08-11
  • 조회 수 2183

돌아오는 주일(8월15일)이 성령강림절 후 12째 주일이면서, 동시에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주일'이라는 사실을 그대에게 전하고 싶소. 남한교회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북한교회를 대표하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 지난 7월 하순 경에 아래와 같은 공동기도문을 발표했소이다. 어떤 이들은 북한의 교회는 가짜라고 주장하고 있소.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궁극적인 판단은 성령의 몫이오. 그들이 노골적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비록 우리와 다른 교회 형태를 ...

3월25일 잔잔해진 바람

  • 2007-03-25
  • 조회 수 2184

2007년 3월25일 잔잔해진 바람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9) 어제 쓴 묵상을 읽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광풍을 제어한 게 아니라 제자들이 그렇게 인식했을 뿐이라는 말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게 성서읽기에서 매우 어려운 대목입니다. 성서 시대에는 아주 명백한 사실로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오늘의 독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들이 성서에 많습니다. 홍해가 갈라졌...

신발끈 (4월10일)

  • 2006-04-10
  • 조회 수 2184

2006년 4월10일, 신발끈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막 1:7)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요한의 고백은 자신을 가장 낮은 곳으로 낮출 때 사용하는 그 당시의 관습적 용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떤 사람의 신발끈을 풀려면 본인은 일단 허리를 구푸리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선을 신발에 두어야 합니다. 몸의 위치를 가장 낮은 곳에 두고, 시선을 아래로 깐다는 것은 극단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자신을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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