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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8일 눈의 범죄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7)
손의 범죄나 발의 범죄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눈의 범죄도 역시 죄를 범한 인격의 구체성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손이나 발에 비해서 눈은 유혹에 훨씬 민감하다는 점에서 훨씬 유별나 보입니다. 죄와 연관해서 손이나 발은 수동적인 반해서 눈은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가 3장에 인류 최초의 범죄 행위가 등장합니다.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습니다. 뱀은 에덴 동안의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것을 먹어도 죽지 않고 오히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6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최초 인류의 범죄 행위에서 눈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와의 마음이 이미 기울어진 탓이 가장 크겠지만, 만약 그녀에게 눈이 없었다면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눈이 없었다면 손으로 만져보게 했을까요? 어쨌든지 하와는 선악과를 보고 뱀의 말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7절의 보도가 더 재미있습니다.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를 먹자 눈이 실제로 밝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벗은 걸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는 겁니다.
오늘도 대개의 유혹은 눈으로부터 옵니다. 티브이 광고도 대개는 눈을 자극합니다. 성적인 유혹도 눈에서 시작됩니다. 선악과 이후로 눈이 밝아진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유혹이 없는 천국에는 ‘보는’ 행위가 없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살아있을 때부터 눈 없는 삶을 연습하는 게 좋겠군요.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7)
손의 범죄나 발의 범죄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눈의 범죄도 역시 죄를 범한 인격의 구체성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손이나 발에 비해서 눈은 유혹에 훨씬 민감하다는 점에서 훨씬 유별나 보입니다. 죄와 연관해서 손이나 발은 수동적인 반해서 눈은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가 3장에 인류 최초의 범죄 행위가 등장합니다.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습니다. 뱀은 에덴 동안의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것을 먹어도 죽지 않고 오히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6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최초 인류의 범죄 행위에서 눈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와의 마음이 이미 기울어진 탓이 가장 크겠지만, 만약 그녀에게 눈이 없었다면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눈이 없었다면 손으로 만져보게 했을까요? 어쨌든지 하와는 선악과를 보고 뱀의 말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7절의 보도가 더 재미있습니다.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를 먹자 눈이 실제로 밝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벗은 걸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는 겁니다.
오늘도 대개의 유혹은 눈으로부터 옵니다. 티브이 광고도 대개는 눈을 자극합니다. 성적인 유혹도 눈에서 시작됩니다. 선악과 이후로 눈이 밝아진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유혹이 없는 천국에는 ‘보는’ 행위가 없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살아있을 때부터 눈 없는 삶을 연습하는 게 좋겠군요.
영어에서 본다(see)는 것은 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눈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눈으로 보아서 아는 것은 피상적인 앎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보다 깊은 앎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에 방해가 될 수 있겠네요.
성서를 읽을 때도 어떤 사건을 대할 때도 그 문자와 현상을 보고 안다고 생각해선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우리가 보통 화려한 시각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감각으로부터 얻는 세밀한 아름다움을 잘 느끼지 못할 때가 많은데요
목사님 말씀처럼 눈 없는 삶을 가끔씩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눈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눈으로 보아서 아는 것은 피상적인 앎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보다 깊은 앎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에 방해가 될 수 있겠네요.
성서를 읽을 때도 어떤 사건을 대할 때도 그 문자와 현상을 보고 안다고 생각해선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우리가 보통 화려한 시각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감각으로부터 얻는 세밀한 아름다움을 잘 느끼지 못할 때가 많은데요
목사님 말씀처럼 눈 없는 삶을 가끔씩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래도 한 마디 더 해야겠군요.
똑똑한 학생에게는 어쩔 수 없군.
'본다'는 말을 잘 생각해보세요.
천국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본다고 했어요.
바울도 그날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본다고 했구요.
그말은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구요.
이 말은 천국에서의 응시는
지금 여기서의 이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거에요.
창조와 종말을 하나로 보는 거지요.
마치 진드기가 코끼리를 전체로 보듯이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지금 여기서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허물어져야겠지요.
전혀 다른 방식의 생명 세계가 곧 하나님 나라라는 뜻으로
예수님이 거기서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르지요.......
똑똑한 학생에게는 어쩔 수 없군.
'본다'는 말을 잘 생각해보세요.
천국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본다고 했어요.
바울도 그날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본다고 했구요.
그말은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구요.
이 말은 천국에서의 응시는
지금 여기서의 이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거에요.
창조와 종말을 하나로 보는 거지요.
마치 진드기가 코끼리를 전체로 보듯이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지금 여기서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허물어져야겠지요.
전혀 다른 방식의 생명 세계가 곧 하나님 나라라는 뜻으로
예수님이 거기서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르지요.......
광야 님,
큐티 하지 말라는 말은 지금 배우는 어린 학생에게 한 말이에요.
광야 님에게는 해당되지 않지요.
기존의 큐티를 제가 완전히 부정하는 것도 아니구요.
다만 동네바둑에 머물지 않으려면
프로기사의 바둑을 배워야 하듯이
극단적인 실용주의에 떨어진 기존의 큐티를 벗어나려면
기독교 영성의 진수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기존의 습관을 버려야한다는 거지요.
광야 님,
저도 영적으로 아주 미숙하답니다.
간혼 도사 연 하고 큰 소리를 치지만
그게 덜 됐다는 증거에요.
다만 얼핏 스치는 가을바람 같은 영적 현실을 느끼고 있기에
그냥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랍니다.
좋은 하루.
큐티 하지 말라는 말은 지금 배우는 어린 학생에게 한 말이에요.
광야 님에게는 해당되지 않지요.
기존의 큐티를 제가 완전히 부정하는 것도 아니구요.
다만 동네바둑에 머물지 않으려면
프로기사의 바둑을 배워야 하듯이
극단적인 실용주의에 떨어진 기존의 큐티를 벗어나려면
기독교 영성의 진수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기존의 습관을 버려야한다는 거지요.
광야 님,
저도 영적으로 아주 미숙하답니다.
간혼 도사 연 하고 큰 소리를 치지만
그게 덜 됐다는 증거에요.
다만 얼핏 스치는 가을바람 같은 영적 현실을 느끼고 있기에
그냥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랍니다.
좋은 하루.
믿기 위해서 항상 근거를 찾는 순서였는데..
자연스럽게 알게되면 믿어지는쪽으로 삶이 변하는것 같습니다.
조바심이 날때도 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막무가네 봉사보다도 나의 영성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일요예배는 드리고 싶어서 예전예배드리면서 최소한 목사님설교 적은데로 선택해서 가고 있는데..왠지 큰교회보다는 작은교회가 조용히 신앙할수 있는거 같아서..
근데 목사님이 젊은일꾼 왔다고 너무 좋아하는 분위기....아..봉사 선교는 당분간 일시정지 버튼 누르고
나의 영성에 집중하고 싶은데...고민되네요...평소 남에게 싫은소리 잘 안하는 성격이라...
요즘 환율 장난아니네요.. 엔은 자꾸올라가니 저는 엄마용돈 보내기가 수월해졌습니다만..화이팅
자연스럽게 알게되면 믿어지는쪽으로 삶이 변하는것 같습니다.
조바심이 날때도 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막무가네 봉사보다도 나의 영성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일요예배는 드리고 싶어서 예전예배드리면서 최소한 목사님설교 적은데로 선택해서 가고 있는데..왠지 큰교회보다는 작은교회가 조용히 신앙할수 있는거 같아서..
근데 목사님이 젊은일꾼 왔다고 너무 좋아하는 분위기....아..봉사 선교는 당분간 일시정지 버튼 누르고
나의 영성에 집중하고 싶은데...고민되네요...평소 남에게 싫은소리 잘 안하는 성격이라...
요즘 환율 장난아니네요.. 엔은 자꾸올라가니 저는 엄마용돈 보내기가 수월해졌습니다만..화이팅
한절이라도 정확히보고 묵상하는것이 좋네요 ^^)
그런데 질문이있습니다.
그동안 관찰 해석 적용에 길들여져서요 (기존QT책)
어떤방법으로 각 개인이 위의 QT를 할수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