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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11월6일 생명과 법 (3)

  • 2006-11-06
  • 조회 수 2232

2006년 11월6일 생명과 법 (3)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그들은 앞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일종의 법실증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안식일 법을 문자적으로 수호하는 것에만 모든 것의 무게를 놓는 신앙적 태도가 바로 완악한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죽음 이후, 5월2일, 수 [2]

  • 2012-05-02
  • 조회 수 2232

주님,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젊으나 늙으나 아무 차이도 없이 우리는 모두 결국은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죽음 이후에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육체가 원소로 해체된다는 명백한 사실뿐입니다. 영혼의 운명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지, 어느 쪽이 다른 쪽에 속했는지, 신비한 방식으로 하나인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에 우리의 몸은 없어지지만 영혼만은 하나님 품에 안긴다는 말이 옳은지, 몸과 영혼이 동시에 죽고 종말에 부활한...

7월3일 예수를 팔 자(3) [5]

  • 2009-07-02
  • 조회 수 2233

2009년 7월3일 예수를 팔 자(3)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줄 둥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14:20) “나는 아니지요?” 하는 제자들의 근심어린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이런 문장은 고대 유대인들의 식사 습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헬라어 ‘트뤼블리온’은 접시, 쟁반, 그릇, 수프접시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유월절 만찬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전식입니다. 이 접시에 과일 잼이나 소금물이 담기는데, 사람들은 빵을 거기에 찍어서 먹...

젊은 조안 바에즈 [14]

  • 2016-11-10
  • 조회 수 2233

11월10일, 목 젊은 조안 바에즈 요즘 대중음악이 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유튜브에 들어가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처음 유튜브를 알게 된 건 구 아무개 집사 덕분이다. 그 이전부터 유튜브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 관심 밖이었다가 구 아무개 집사가 다비아에 유튜브 음악을 올리면서 유튜브 메커니즘을 알려주는 바람에 접속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에게 그것의 순 기능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전혀 관심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유튜브를 통해...

12월29일 그가 살아나셨다(12) [2]

  • 2009-12-28
  • 조회 수 2234

2009년 12월29일 그가 살아나셨다(12)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16:6) 복음서에는 부활을 연상시키는 사건이 간혹 나옵니다. 두 군데만 확인하겠습니다. 첫째, 요한복음 기자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 이야기를 전합니다. 나사로가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지 나흘 만에 예수님이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자 죽은 시체가 수의를 그대로 걸...

원당일기(1) [4]

  • 2011-04-06
  • 조회 수 2234

두 딸이 집을 떠나면 들어가 살 작정으로 작년에 시골집을 하나 마련했소. 경북 영천시 북안면 원당리 113-2번지요. 시골이라서 땅값은 얼마 하지 않소. 판넬 조립식으로 16평의 집을 지었소. 아직은 가서 살지 못하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서 글을 쓰거나 마당 손질을 하고 있소. 원래 집이 있던 터라고 하는데, 우리가 땅을 구입할 때는 아무 흔적도 없었고, 이웃집의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었소. 동향 언덕배기에 자리한 땅이오. 바로 앞과 왼편에 집이 한 채 씩 있고, 오른 편은 숲이고, 뒤편은 산이오. 숲과 산이 마음에 들어서 ...

죽음(5)

  • 2010-11-16
  • 조회 수 2235

성서는 하나님이 종말에 세상을 심판하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세우신다고 말하오. 죽음이 없는 영생의 세계요. 성서가 말하는 영생이 도대체 무엇이오?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하게 산다는 말에 실감이 가오? 어제 묵상에서 영생은 곧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소. 죽음을 전제할 때가 삶이 의미가 있다는 뜻이오. 의미는 무슨 의미, 그냥 오래, 아니 영원히 살았으면 무조건 좋겠다고 생각하시오? 오래 전에 읽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소. 어떤 사람이 신으로부터 영생의 선물을 받았소. 세월이 흘러 자...

여행(35)- 영화 찍기 file [6]

  • 2016-10-12
  • 조회 수 2235

10월11일 늦은 저녁을 숙소에서 먹고 잠시 밖에 나가 하늘을 보다가 방금 들어왔습니다. 한창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집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해도 ‘이렇게 춥고 늦은 밤에 나가는 거 싫어. 당신 혼자 갔다 와.’ 할 테니까요. 우리가 묵고 있는 곳이 바덴바덴 시에서 제법 떨어진 곳으로 처음에는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더군요. 이 동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있습니다. 언덕 정상인 셈이지요. 그 위로는 집이 없고, 야산이 이어집니다. 그 너머로 더 가면 공동묘지가 나옵니다. 구름 사이로 달빛이 ...

10월30일 예수님의 질문

  • 2006-10-30
  • 조회 수 2236

2006년 10월30일 예수님의 질문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4) 당신을 고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문이 바로 위의 구절입니다. 선과 악, 생명과 죽임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만들 소지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안식일에 악을 행하는 것이 좋다거나 생명을 죽이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원래 율법의 근본은 선을 사회적으로 구체화하고 생명을 살...

5월6일 하나님의 나라 (3) [4]

  • 2006-05-06
  • 조회 수 2236

2006년 5월6일 하나님의 나라 (3)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문장에서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부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따로 존재하고 그의 나라가, 즉 그의 통치가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는 일치합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로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죠. 앞에서 나라는 곧 통치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결...

2월28일 키리에 엘레이송!

  • 2008-02-27
  • 조회 수 2236

2008년 2월28일 키리에 엘레이송!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는 지 이미 사흘이 자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막 8:2) 예수님은 먹을 것이 없는 무리를 불쌍하게 여기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군중 급식이라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단초입니다. 불쌍하게 여기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 속성이 예수님에게 그대로 나타났다는 것이 오늘 성서기자의 보도입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마가복음의 진술처럼(막 2:5) 예수님의 구원 행위에서 사람들의 ...

죽음(3) [3]

  • 2010-11-13
  • 조회 수 2236

나는 1953년 1월4일 생이오. 그대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나에게도 스무 살 시절이 있었소. 아, 스무 살의 청년 시절이라! 더 어린 시절도 있었소. 부분적으로 기억이 나오. 나의 사춘기와 청년 시절이라고 해봐야 거의 교회에서 보냈기에 뭐 특별한 것은 없소. 그래도 기분은 다른 청년들과 다를 게 없었소. 여자 청년들에 대한 호기심도 똑같이 많았소. 헷세, 루이제린저, 전혜린, 릴케, 도스토예프스키, 에릭 프롬 등의 책을 밤새워 읽던 시절이오. 그 시절이 꿈결처럼 지나갔소. 그리고 지금 이렇게 옛 추억의 그림자를 (아주) 간...

5월16일- 회개와 복음 (3) [1]

  • 2006-05-16
  • 조회 수 2238

2006년 5월16일 회개와 복음 (3)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오늘 본문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면 회개는 복음을 믿는 것의 전제 조건입니다. 혹은 회개가 복음의 선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바꾼다는 의미의 회개 경험이 없다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논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 같은 노파심이 들어, ...

5월24일 사이비의 능력 [3]

  • 2009-05-23
  • 조회 수 2238

2009년 5월24일 사이비의 능력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13:22)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구별하기 힘들다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거짓 선자자의 목소리와 치장이 더 크고 요란하기 때문입니다. 위 구절은 그 사실을 더 적나라하게 묘사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고 말입니다. 이런 능력을 행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정체를 밝혀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적과 기사에 영혼을 빼앗깁니다. 1960년대에 ...

10월7일 안식일 (3) [1]

  • 2006-10-07
  • 조회 수 2239

2006년 10월7일 안식일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막 2:24) 안식일의 기본 개념은 악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한 ‘쉼’입니다. 이 말은 곧 인간이 쉴 줄을 모른다는 뜻이겠지요. 쉬지 못하는 이유는 실낙원 이후의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노동을 통해서만 유지된다는 사실에 놓여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기초적인 생존 조건들이 보장되었지만 실낙원에서는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궁극적인 생존의 문제는 인간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차...

3월6일 작은 세계 (4)

  • 2007-03-06
  • 조회 수 2239

2007년 3월6일 작은 세계 (4)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막 4:31)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큰 사람이 되라.” 하는 덕담을 자주 합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뜻이 담겨 있긴 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학교 교육은 물론이고 교회 교육도 역시 성공해서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인 것처럼 가르칩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기독교인이 사회의 고지를 먼저 점령하는 것이 선교적인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설교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인규 전대검찰철 중앙수사부장 [2]

  • 2011-06-16
  • 조회 수 2239

그대도 아는지 모르겠으나 노무현 정권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한 문재인 씨가 어제 날짜로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을 냈소. 원래 직업이 변호사인 그는 지금 노무현 재단 이사장 일을 맡고 있소. 그 책에서 그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노무현 전(前)대통령과 묶이게 됐는지를 소상하게 설명한 것 같소. 그 내용 중의 한 대목이 노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였소. 당시 일선 수사 당국의 책임자는 이인규 중앙수사부장이었소. 문 이사장은 노 대통령을 검찰청사로 소환한 이인규 당시 중수부장이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

헤셸(10) [4]

  • 2014-03-04
  • 조회 수 2239

우리가 발설한 말, 맹세나 서약이나 약속은 우리에게 의무감을 느끼게 한다. 서약을 하면서, 혹은 명예로운 말을 하면서, 맹세를 하면서, 말로 동의를 하면서, 사람은 말이 의지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며, 말은 그 말을 한 사람과는 별도로 그와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발설한 말은 그 자체로 존재함으로써 그 말을 한 사람에게는 실체가 된다. 그 말의 의미에 관해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해도 그는 그 말의 힘에 생생하게 사로잡히게 된다. 이런 객관성 가운데 말은 기도하는 사람 앞에 있다. 기...

팔복(27) 평화와 한민족의 분단 [2]

  • 2013-07-22
  • 조회 수 2240

성서를 비롯해서 온 인류가 평화를 외치며 살았는데도 평화는 요원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근원적으로 이 세상이 생존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대답이다. 사람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모든 동식물을 경쟁을 통해서 진화해왔다. 예를 들자. 케냐의 세렝게티에 일주일 굶은 사자 가족이 있다. 어미 사자들은 사냥을 나갔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누우 떼를 보았다. 이제 사냥이 시작된다. 세렝게티의 평화는 모든 동물들이 배부를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이유로 평화를 파손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만...

믿음과 확신 [9]

  • 2016-08-09
  • 조회 수 2240

8월9일 믿음과 확신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다음과 같이 개념 규정했다. 믿음은 희망하는 것들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곧 삶의 확신이라는 말이다. 현대인들의 삶은 확신과 거리가 멀다. 겉으로는 확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불안에 가깝다. 자신이 이룬 업적을 확신의 근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으로 삶의 확신은 가능하지 않다. 주식 투자를 생각해보라. 매 순간에 주식의 등락에 따라서 마음이 요동친다. 자식 교육에 몰두하는 경우도 마...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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