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15일 일상 정지(1)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13:15,16)
위 구절은 마지막 때가 얼마나 위급한지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지붕 위는 한적하게 쉬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거기서 차도 마시고 대화도 하면서 가족끼리, 또는 손님과 더불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집 안으로 내려오지 못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겠지요. 적군이 근처를 포위한 채 “움직이면 쏜다!” 하고 위협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밭은 일터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밭에 나가 일해야 합니다. 밭에서 땀 흘리면서 일할 사람은 겉옷을 안전한 곳에 벗어놓아야 합니다. 일이 끝나면 그걸 입고 집으로 돌아가야겠지요. 이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뒤를 돌아볼 틈도 없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마가복음 기자는 이 장면을 롯의 부인이 소돔성을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창세기 말씀에서 끌어온 것인지 모르겠군요.
위 두 경우는 사람들이 보통 일상에서 겪는 일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전쟁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고대인들에게서 전쟁은 세상의 끝과 비슷한 경험이었습니다. 전쟁 자체가 세상의 끝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세상의 끝이 전쟁에서 경험하는 것과 같은 파멸의 형태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상의 정지를 가리킵니다.
기독교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도 이런 일상의 정지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새롭다는 말은 단지 삶의 형식만이 아니라 그 본질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서가 말하는 영생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일치입니다. 그런 경험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부분적으로, 간접적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일상을 멈춰보십시오. 그리고 영혼의 귀를 기울여보십시오.
창문을 열어놓고 밖에서 들여오는
개구리소리 물소리 이름도 알 수 없는 무수한 풀벌레소리들....
모든 것이 멈춰진 시간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한낮의 뜨거움과 소란함과는 전현 다른 세상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낮에는 들을 수 없는 이 생명의 소리들에
모든 피곤도 잃고 그들의 숨소리와 함께
호흡하고 노래하고 싶은 밤입니다.
아, 일상을 멈추라, 그리고 영혼의 귀를 기울여 보라
들리지 않던 무수한 소리들이 들려오는 밤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주의 평화가 임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