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41)- 베를린 한인식당에서

조회 수 2295 추천 수 0 2016.10.18 06:01:08

1017()- 베를린 한인식당에서

 

오늘 아침에 집사람과 제가 동시에 눈을 떴습니다. 보통 때는 제가 먼저 일어납니다.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온 탓에 집사람이 숙면했기 때문인지, 또는 거꾸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와서 일찍 잠이 깬 건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묵은 숙소 중에서 이번에 얻은 숙소가 가장 조용합니다. 마을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어서 한쪽을 제외하고는 주변이 온통 숲과 밭입니다. 지역 자체가 한적한 곳입니다. 지역의 역사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느낌만으로 보면 뿌리가 있는 지역으로 보입니다. 통독 전에는 당연히 동독에 속했겠지요. 베를린 중심에서는 거리가 너무 멉니다. 이런 곳에 동양 사람이 숙박한 적은 30년 팡시온 역사에 나오지 않을 겁니다. 오늘도 베를린 시내에 들어갔다가 왔는데, 멀기는 멀더군요. 내비에서 확인해보니 시내 중심에서 2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어쨌든지 저는 조용해서 만족스럽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 날로 정했습니다. 크게 준비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챙겨야 할 것들이 좀 있습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몸입니다. 지금까지 정신력으로 버텼을 겁니다. 집사람도 잘 버텼습니다. 감기도 걸리지 않았고, 두통도 없었고, 오래 차를 탔어도 멀미를 하지 않았습니다. 33년 전이나 16년 전보다 더 건강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모르지요. 한국으로 돌아가서 긴장이 확 풀리면 여행 후유증으로 힘들어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좋습니다. 오늘 시내에 나가서 소소한 물건 몇 개를 샀습니다. 한국에서 출국할 때 기내에 갖고 들어가려다가 공항 검색대에서 빼앗긴(?) 맥가이버 칼을 하나 살까 하다가 포기했습니다. 생각보다 비싸더군요. 원당에 가면 같은 종류의 맥가이버 칼이 한 개 더 있습니다. 그 회사에서 나온 것 중에서 가장 간단한 겁니다. 다섯 개 정도의 공구가 달려 있는 칼이지요. 빼앗긴 칼은 아마 열 개 이상의 공구가 달려 있을 겁니다. 심지어 비상용 이쑤시개도 달려 있었지요. 그것만 있으면 집안일만이 아니라 여행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손톱에 박힌 가시도 빼낼 수 있고, 간단한 톱질도 가능하지요. 쓸데없는 말이 길어지는 군요. 오늘은 피곤하지도 않고 시간도 남아서 늘어지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겁니다. 그래도 과유불급이겠지요.


오늘 아주 우연한 일을 겪었습니다. 이런 일은 일어나기 정말 어려운 겁니다. 그래도 일어났다면 그건 필연이겠지요. 오늘 점심을 먹기 위해서 베를린 한인식당에 들렸습니다. 식당 분위기는 지난번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아르바이트 여자 청년도 그대로였습니다. 한국말이 통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언어의 자유를 만끽하는 겁니다. 지난번에는 두 사람 다 육개장을 먹었습니다. 이번에는 나눠서 시켜보자고 했습니다. ‘여기 육개장 하나, 비빔밥 하나, 그리고 맥주 한 병 주세요.’ 한국말로 해도 알아듣는다는 게 신기하네요. 홀에 다섯 팀 정도가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한국사람 세 팀, 중국사람 한 팀, 독일사람 한 팀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는 중에 몇 개의 테이블 손님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사람 한 팀은 대충 여섯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말에서 뭔가 익숙한 단어가 들리는 겁니다. 일단 페르가몬 박물관에 가보는 게 좋겠고, 시간 되려나, 목사님이 어쩌고... 하는 소리입니다. 베를린 한인교회 교인들이 점심 먹으러 왔나, 했습니다. 우리가 막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한인교회 교인들로 보이는 사람들 중에 한 젊은 남자가 저에게 오는 겁니다.

 

- 목사님, 안녕하세요? 정용섭 목사님이시지요? 저는 임 아무개 선교사라고 합니다.

- , 그러세요? 근데 저를 어떻게 아세요?

- 제가 언젠가 대구샘터교회도 한번 방문해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독일로 안식월 여행을 오셨다는 소식도 알고 있습니다. 요즘 쓰시는 여행일지도 읽고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 있어서 혹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식당에 들어와서 보니 목사님과 사모님이 앉아 계시는 겁니다.

- , 우연 치고 대단한 우연입니다. 베를린 한인 식당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말입니다.

- 글쎄 말입니다. 우리도 여기 식당에 꼭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추워서 일단 몸을 피한다는 생각으로 들어온 겁니다.

- 반갑습니다. 제가 선교사님을 기억하지 못해서 죄송하구요. 여기는 어떤 일로 오신 건가요?

- 제가 관여하고 있는 선교회의 종교개혁지 탐방 사전 답사 차 나왔습니다.

- 그렇군요. 지금 어디서 활동하시나요?

- 대구에 있습니다.

- 그래요? 그럼 대구에 가서 한번 볼 수 있겠네요. 나는 이번 수요일에 비행기를 타는데, 언제 돌아가십니까?

-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금요일까지 있다가 영국으로 돌아가서 비행기를 탑니다.(여기서 날짜와 장소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서 대충 썼습니다. 프랑스 파리로 들어간다고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 그렇군요. 지인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가서 식사 하세요.

- . 한국 가면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점심 식사 값을 제가 계산했습니다.

- 아니, 그럴 수가 있나요.

- 당연하지요. 제가 다비아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에 선교사님이 다시 내 자리로 왔다.)

- 사진 한 장 함께 찍어도 될까요?

- 좋지요. , 옆에 앉아요.

(선교회에서 간사로 일하는 분이 사직을 찍는다. 그에게 내 사진기를 전하면서...)

- 내 사진기로도 한 장 찍어주세요.

 

우리는 다시 악수하고 헤어졌습니다. 우연 치고 재미있는 우연이지요? 서로 다른 일정에 따라서 독일 여행을 하다가 같은 시간에 한인식당에서 만나게 되는 일은 좀체 일어날 수 없는 겁니다. 날씨가 춥지 않았다면 선교사님 일행이 그 식당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며, 그쪽이나 우리 쪽이 다른 한인식당에 들어갈 수도 있었건 겁니다. 시간대도 일치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요. 영화 같은 이야기지요?

 

오늘 다른 이야기로 여행일지를 정리하겠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는 게니쎈’(geniessen)입니다. 향유하다, 경험하다, 마시다 등등의 뜻입니다. 한 마디로 삶을 누리는 것이지요. 제가 30대에 2년 정도 살았고, 40대 후반에 1, 그리고 지금 60대 중반에 한달 머물면서 그 사실을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삶을 게니쎈 하고 있었습니다. 방식은 다 다릅니다. 최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아우토반을 시속 200킬로로 달리는 사람도 있지만,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궁화 다섯 개 짜리 호텔에서 럭셔리하게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두 개 짜리 호텔이나 팡시온에서 만족스럽게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조건에서 살든지 최대한 자기의 삶을 게니쎈 한다는 것만은 그들에게 유보될 수 없는 삶의 철학입니다. 따뜻한 햇빛에 자기 몸을 최대한 노출시키는 것도 게니쎈입니다. 커피나 와인, 맥주 한잔 앞에 놓고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도 삶의 향유입니다

 

이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어필되기 힘듭니다. 한국사회도 점점 그렇게 될 것입니다. 삶의 향유와 기독교 신앙은 양립될 수 없는 것일까요? 이게 앞으로 기독교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이건 자연철학과 기독교신앙의 관계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창조신앙과 기독론과 종말론의 관점에서 이런 문제를 해석해내야 하는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도 그런 문제를 철학적 언어로 붙들고 있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은 결국 도태되거나 삶의 변두리에 밀려난 사람들의 공허한 피난처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저는 게니쎈을 신앙적 화두로 붙들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어쩌면 상투적인 대답일지 모르겠지만, 한마디 한다면 하나님 경험이 생명 게니쎈의 정점이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왜냐구요? 답을 A4 용지 다섯 장으로 요약해보세요. 뻔한 답 말고, 근거가 있는 답을 찾아보세요. 문화와 역사를 정확하게 뚫어보는 답을 찾아보세요.

 

IMG_1736.JPG

정말 우연히 베를린 한인식당에서 만난 다비안 선교사님과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언젠가 대구에서 만나게 되겠지요.


아래는 마지막 3일 동안 머물던 베를린 변두리 팡시온 풍경입니다.

IMG_1719.JPG

가지런히 놓인 돌을 밟고 숙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IMG_1722.JPG

우리 숙고 뒤편 정원인데, 뒷집과도 공간적으로 트여 있습니다.


IMG_1723.JPG

투숙객이 머무는 집 현관문


IMG_1730.JPG

팡시온 앞 길, 주차된 차가 한달 동안 렌트 한 폭스바겐 골프입니다. 아주 작은 차이고, 연비가 좋았습니다.

차가 작으니 승차감은 떨어지지요. 운전하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하루에 650킬로미터를 달린 적도 있으니까요. 미쳤지요. 이제 이런 순간은 저에게 오지 않을 겁니다.


IMG_1738.JPG

팡시온 숙소에 방이 세 개가 있는데, 우리가 머물던 가운데 방의 문입니다. 동독 시절에 지은 아주 평범한 농가입니다.





[레벨:21]주안

2016.10.18 09:05:56

아침 기상은 저희와 반대네요.

아내가 항상 먼저 일어나는 편이지요. 늘 피곤하다면서도요.

지금 숙소의 분위기가 옛날 제가 뉴질랜드 갔을 때의 그런 분위기인가 봅니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지내셔서 고맙습니다.

많은 이들의 기도도 힘이 되셨겠지요.

육개장과 비빔밥, 저도 먹고싶습니다.

임 선교사님을 만난 것도 하나님의 일이라고 봐야겠죠?

참 반가왔겠습니다. 아이돌 급이 되셨습니다.

저는 요즘 다비아에서 '게니쎈' 하고 있습니다.

ㅠㅠ또 A4, 저는 한장도 못 쓸거에요.

오늘도 저를 독일 베르린 현지로 안내하고 재미난 영화를 보게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모든 이에게 있기를 빕니다.



 

profile

[레벨:23]모래알

2016.10.24 02:24:24

참 멋진 여행기입니다.

식당에서 이렇게 누군가를 마주친다는 것도 대단하구요.

게니쎈이라는 단어 잘 기억하고 싶습니다.

기독교 신앙과 같이 못 간다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A4 용지 다섯장이면? ㅎ 숙제 안 낸다고 뭐 큰 일이야 나겠어요? ㅎㅎㅎ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1364 1월26일 마가복음 후기(5) 2010-01-26 2251
1363 2월5일 마가복음 후기(15) [1] 2010-02-05 2251
1362 목사공부(18) [2] 2014-04-29 2251
1361 7월14일 나를 버리리라(1) [5] 2009-07-14 2252
1360 하나님에 관한 질문(15) [3] 2010-12-08 2252
1359 팔복쓰기를 마치며... 2013-07-27 2252
1358 4월11일 다윗의 발언 [6] 2009-04-10 2253
1357 예수 어록(105) 요 5:45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2019-05-04 2253
1356 10월14일 안식일과 사람 (3) 2006-10-14 2255
1355 목사공부(117)- 신학과 철학 [8] 2014-08-22 2256
1354 목사공부(141)- 교회의 사도성(2) 2014-09-19 2256
1353 10월21일 안식일과 인자 (7) 2006-10-21 2258
1352 12월13일 서기관들의 비난 2006-12-13 2259
1351 12월26일 그가 살아나셨다(9) [2] 2009-12-25 2259
1350 망실(亡失) 2013-10-17 2259
1349 대림절에 대해서(2) 2010-12-18 2260
1348 착각 2013-12-30 2260
1347 미래를 위한 기도, 7월24일, 화 [3] 2012-07-24 2261
1346 믿음과 수행 [3] 2010-03-19 2263
1345 하나님에 관한 질문(11) 2010-12-03 2263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