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4일 나를 버리리라(1)

조회 수 2255 추천 수 0 2009.07.14 00:14:39
 

2009년 7월14일 나를 버리리라(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14:27)


마지막 유월절 만찬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사이에 제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매우 심각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만찬 자리에서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 감람산으로 가는 도중에 일어난 대화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스가랴 13:7절의 인용입니다.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제자들은 한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흩어졌습니다. 이런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군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몸으로라도 막지 못했다는 잘못이 제자들에게 있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곧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으니까요. 예수님은 삼일 만에 부활하셨으니 기껏해야 삼일동안만 방황한 거라고 말입니다. 또한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제자들은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합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한 뒤 별로 오래지 않아 강력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형성은 아주 점진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서 삼일이라는 숫자나 부활 이후 지상에 계신 날짜인 40이라는 숫자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아닙니다. 성서기자들은 예수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행위인 그의 운명을 구약에 근거해서 제시하려고 그런 숫자를 말한 것뿐입니다.

어쨌든지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기를 버리리라는 사실을 뚫어 보셨으리라는 건 틀림없습니다. 제자들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으셨을 겁니다. 이것이 단지 십자가 처형이라는 극적인 사건에서만 나타난 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 제자들은 예수님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게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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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9.07.14 09:30:54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끈금없이 서거하신 노무현 前대통령이 생각나네요. 저번주가 서거 49제 이었죠.

대통령 시절에는 그렇게 인기도 없고, 국민들에게 맨날 이야기 안주거리만 되고, 창당한 열우당도 막판에 등을 돌린 정말 초라한 대통령이 귀향에서는 많은 국민에게 응원과 환영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서거를 하자,  수많은 인파의 애도와 그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각 사회단체나 예전의 등돌린 정친들이 참회를 합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  사람의 진실은 죽어서야 알아 주는  걸까요?

 

 예수님 생전에 그렇게 쫓아다니던 군중들도 예수님이 잡히자 뿔뿔히 헤어지고, 나 몰라라 하다가 부활해서 다시 모여드는 군중들의 모습을 봅니다.  이것이 역사의 반복일까요?  아니면 저의 억지일까요?

 

 정말 필요할때, 진실이 바로 알려야 할때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나또한 예수님때의 군중과 별 차이 없음을 시인해봅니다. 조금은 다르고 진리편에 있다고 자부했지만, 요사히 제 주변의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서 침묵하는 방관자들만도 못하다는 자괴감만 듭니다.

 

진리의 영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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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9.07.14 22:37:40

재미있는 비교군요.

재상집 강아지가 죽으면 손님이 미어터지지만,

재상이 죽으면 개미 새끼 한 마리 오지 않는다는 속담과 비슷하지요?

포퓰리즘에 부화뇌동하는 정치인들이야 어쩔 수 없지요.

그것으로 먹고 사니까요.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변함없이 따를 수 있는지

늘 우리 자신을 성찰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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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9.07.14 17:25:05

"너희가 나를 다 버리리라.. "

당신의 길을 묵묵히 가신 예수님이 나의 중심에 계심을

겸허히 받아 드립니다.

주님, 저의 연약함과 소심함을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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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9.07.14 22:40:12

예수님의 실존적인 삶의 무게와 하나님 나라가

예수라는 인격체 안에서 하나가 되었지요.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아닌가가 바로

기독교 신앙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의 기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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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토토

2009.07.30 17:45:59

전 거리를 걸으며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

모른 척 하고 지나칩니다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게다가 없는 척 합니다 그사람이 없는 것처럼.... 신경쓰지 않는 척 합니다

그를 무시합니다 그 존재를 무시합니다  

제 주위에 은폐되어 있는 생명도 그렇게 대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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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2일 새 포도주 (5)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 2:22) 포도주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한국교회의 술 문제를 한번 짚어야겠군요. 정통신앙에 묶인 분들은 일반적으로 술을 그리스도인이 금해야 할 중요한 목록의 하나로 생각합니다. 반면에 이런 정통신앙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십니다. 꽉 막히지는 않았지만 온건한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바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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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솔직한 대화 운운했소. 이건 목사를 비롯해서 교회 지도자들에게 매우 절실한 문제요. 왜냐하면 까딱하다가는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지기 때문이오. 신앙의 연조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런 가능성이 높소. 교회도 사실 관료주의에 물들 수 있소. 그대도 이런 말을 들었을 거요. 젊었을 때는 삶에 대한 이해 수준이 비슷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차이가 심해진다고 말이오. 근원에 대해서 솔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수록 경직되는 건 분명하오. 자기의 경험을 절대화하는 것이오. 이게 신앙의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오. 신앙...

망실(亡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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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7일(목) (오늘은 ‘창작과 비평’ 2013년 가을 호에 실린 시를 한편 소개한다. 시적 운율을 파괴하고 산문처럼 적은 시다. 소리 내어 읽어보니 뭔가 가슴이 남는 게 있다. 문태준은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등이 있음) 망실(亡失) 문태준 무덤 위에 풀이 돋으니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 같아요 오늘은 무덤가에 제비꽃이 피었어요 나뭇가지에서는 산새 소리가 서쪽 하늘로 휘우둠하게 휘어져나가요 양지의 이...

미래를 위한 기도, 7월24일, 화 [3]

  • 2012-07-24
  • 조회 수 2266

주님, 이 세상에서 저의 삶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지난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였던 것처럼 앞으로의 삶도 그렇게 지나가고 만다는 사실 앞에서 저의 미래를 위해 당신께 기도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바로 미래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아무리 생각을 깊이 해도 그 미래가 손에 잡히지는 않습니다. 죽는다는 사실은 손에 잡히지만 죽음 이후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저의 몸이 원소로 해체된다는 것은 알겠으나 그 다음은 모릅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을 수 있으나 그것의 구체적인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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