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4일, 토
하나님의 연민
지난 성령강림후 둘째 주일에 해당하는 제 3독서의 한 구절인 마 9:36절에서 예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나는 설교에서 그 구절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연민이 바로 힐링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연민이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성서의 하나님이 헬라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처럼 인간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갖고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하나님이 이방인을 징벌하는 분으로 보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서 고통 받게 하는 하나님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도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인 이들이 많았고, 지금도 그런 이들이 없지 않다. 그런 이들은 하나님을 자기의 생각에 가둬두는 것이다.
하나님의 연민은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가리킨다. 사랑의 하나님은 무감정의 신 개념과 대립된다. 세상의 고통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는 신, 기계적인 원리로 작동되는 신과 반대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까지 희생 제물로 삼을 정도로 세상의 고통에 개입한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감정이나 욕망을 초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능력을 포기할 정도로 인간 역사에 개입하는 하나님이다. 이런 점에서 인공지능의 미래는 성서가 말하는 신 개념과 다르다. 하나님의 연민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에서 발견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예수를 재현할 수는 없는 거 아니가. 예수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연민을 아는 사람은 저 영혼 깊이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
저도 나무가 되어 , 시들어가는 꽃과 풀의 마음이 되어 함께 고통스럽고 탄식하게 되네요. 농부의 마음도 타들어가니... 한숨이 절로납니다. 나무와 대지를 향한 인간적인 연민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위의 목사님 말씀 중에 하나님의 연민이라는 단어가 어떤 깊이 일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품으시는 그 깊은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단어에 마음이 고정됩니다.
유독 연약하고 아픔을 동반한 연민의 감정을 몸소 겪어셔서 함께 고통받는 자리에 오셨다는 그 말씀이 관념적인 진리가 아닌 실제임을 알고 경험할 때만이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요?
그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고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