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1일
신학지수
우리의 주장은 이렇다. 첫째, 목회자는 신학자이며 언제나 그래왔다. 둘째, 어떤 의미에서 모든 신학자는 공공신학자, 특별한 종류의 지식인, 특수한 유형의 보편적 지식인이다. 우리 주장의 토대를 이루는 확신은 지식인이 되기 위해 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목회자-신학자는 지능지수(IQ)가 높은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신학지수(TQ, theology quotient)가 높아야 한다. 셋째, 목회자-신학자가 공적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이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안에 든든히 서게 함으로써 그들을 섬기기 위함이다(유 1:3). 이제 나는 이 세 논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보겠다. -39쪽-
위 글은 공저자 케빈 벤후저의 것이다. 공저자 오언 스트래헌은 벤후저의 박사 과정 학생이었다. ‘목회자-신학자가 복음주의권의 기초적인 공적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는 벤후저의 주장에 공감한 오언의 제안에 따라서 함께 책을 쓰게 되었다. 서론, 3장, 4장, 결론은 벤후저가 쓰고 1장과 2장은 오언이 썼다. 그 외에 이 책의 내용을 목회적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중견 목회자 12명이 목회 경험에 근거한 글을 썼다.
위의 글에서 ‘신학지수’라는 말이 새롭다. 신학적으로 사유할 줄 아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게 왜 필요한지를 제시하는 게 이 책의 전체 집필 목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반복해서 한 말이지만, 성경기자들은 다 신학적인 마인드가 예민했다. 성경의 내용도 다 그런 신학적 사유를 거친 것이다. 보통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거나, 신탁을 받았다거나, 말씀이 내게 왔다는 표현들이 다 그런 신학적 사유를 바탕에 둔 것이다. 신학적으로 인간과 세상과 역사를 판단하고 해석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성경을 쓸 수 있겠는가. 이런 성경을 회중들에게 전하려면 당연히 다른 건 몰라도 신학지수만은 높아야 한다.
신학지수가 분명 있을것으로 생각됩니다..
누구는 더 뛰어난 지수를 갖고 있고
누구는 개발되는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