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8일, 토
하늘나라와 예수
‘하늘나라’는 어떤 공간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걸 근거로 천당을 생각하면 안 된다. 하늘나라는 생명 통치를 말한다. 생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도 끝난 게 아니니 하늘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은 생명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생물학적인 생명이 가장 기본적인 생명 현상인 거만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생명을 다 설명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생물학적으로 건강해도 영혼이 병든 사람도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하늘나라를 선포한 예수를 하늘나라로 받아들였다. 예수를 통해서 생명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믿으라고 주장했다. 예수를 믿으면 의롭다고 인정받기 때문이다.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교회 밖의 사람은 이런 주장을 순전히 기독교의 일방적인 교리로만 간주할 것이다. 기독교 교리는 그들이 생각하듯이 일방적인 게 아니다. 인간의 죽음과 삶, 정말과 희망 등등, 인간에게 나타나는 삶의 과정을 정확하게 뚫어보고 있다.
사람은 사람에게 의롭다고 인정받기 위해서 노심초사한다. 인정받으면 우쭐해하고 받지 못하면 주눅 든다. 이런 방식으로는 사람이 결코 생명을 경험할 수 없다. 기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에 집중한다. 그것은 역으로 사람으로부터의 인정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또한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의 근본적인 질문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왜 생명의 근거로 생각했냐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가 하늘나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