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조회 수 9597 추천 수 99 2006.03.26 23:13:33
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제사장입니다. 왕과 제사장이 제도권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선지자는 재야에서 이 제도권을 비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왕, 제사장,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에서 이런 관계를 형성한 것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 선지자들이 왕정 가까이서 책사 역할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만, 전반적인 흐름에서 볼 때 이런 구분이 가능합니다.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보다 결정적인 요소는 선지자들의 활동 방식에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말’로 먹고 산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왕과 귀족을 향해서, 그리고 이스라엘 민중을 향해서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 말들이 구약성서입니다. 구약성서의 중심을 차지하는 소위 예언서들이 그것입니다. 모세오경과 성문서를 제외한 모든 문서가 예언서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룬 전기 예언서와 선지자들의 설교를 담은 후기 예언서가 모두 선지자들의 말입니다. 모세오경도 역시 근본적으로는 선지자들의 작품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성문서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오경과 성문서의 내용에는 선지자들의 역사 해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서신학적인 문제들은 제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가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활동한 선지자들 중에는 우리가 구약에서 그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름도 없이 활동하다가 사라진 사람들도 꽤나 많습니다. 그들의 말이 역사에 남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요. 그들의 말이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거나 아니면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수준이 높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또는 그들의 말을 문서로 남겨줄만한 제자들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또는 괜찮은 글로 남기는 했지만 그걸 기분 나쁘게 생각한 왕에 의해서 분서갱유(焚書坑儒)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역사는 진행되어 지금 우리에게는 주로 후기 예언서라고 불리는 그런 문서가 주로 선지자들의 예언, 혹은 설교로 남아있습니다.
선지자, 혹은 예언자들은 자신들의 말과 글을 야훼 하나님의 계시라고 주장했습니다. 본인 스스로 그렇게 주장하기도 했겠지만 후대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일들이 많았겠지요. 혹은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그런 방식의 말과 글쓰기가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지 그들은 야훼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들려준 말씀을 선포한다는 태도로 이스라엘을 향해서 말하고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역사를 읽고, 분석하고,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를 읽는다는 건 곧 해석한다는 말인데, 역사를 해석하는 행위에는 영감이 필요했습니다. 그 영감은 물론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말은 곧 계시이며, 예언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점에서 선지자들의 말은 다시 역사적으로 비평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를 해석한 예언이 다시 역사적으로 비평받는다는 말은 이런 행위가 영적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역사해석은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다.”는 수학명제와 다FMS 것입니다. 역사해석은 오히려 모차르트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해석의 층들이 거의 무한정으로 겹쳐있기 때문입니다. 모차르트 음악을 흉내만 내는 음악가가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하나님의 계시를 흉내만 낸 선지자들이 많았습니다. 아니 구원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 당시에 각광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지자들이 나름으로 종교적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군중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매끄럽게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은 그때가 지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유혹입니다. 비록 당시에 극찬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실체는 역사에 의해서 엄정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에 대해서 불안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교회가 왜 이 따위야, 하고 핏대를 올릴 수도 있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을 내어 쫓으신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우상숭배 하는 듯한 교회 앞에서 분노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조급하게 생각할 건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는 사이비 선지자가 없던 때가 어느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혁명의 기운으로 잠시 무언가 새로운 공동체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혁명이 성공하면 그 혁명의 주체들은 아주 빠르게 무늬만 바뀐 거짓 예언자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그런 경우를 자주 경험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status quo>(현실유지)가 우리의 대안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은 결국 역사에 의해서 평가된다는 사실을, 혹은 그런 희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역사의 흐름에 순종하면서, 동시에 그런 개혁과 변혁 운동에 역동적으로 참여해야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더 결정적인 문제는 우리의 예언이, 우리의 설교가, 우리의 역사 해석이 결국 역사적으로 검증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예언도 결정적인 것이 못됩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역사해석도 역시 잠정적일 뿐입니다.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 뿐이지, 혹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진리와 일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말은 곧 진리의 기준이 결코 우리 내부에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는 역사를 끌어가는 진리의 영과 일치할 수 있도록 최선으로 우리 자신을 열어놓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를 참된 선지자로 평가하고 그렇게 선택했습니다. 그들의 평가와 선택을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도 따라가고 있습니다.

[레벨:18]눈꽃

2008.10.30 18:52:36

정목사님! Q,T 따라 가다보니 공부마니 하게되네요 "예를들러서 포퓰리즘..이게뭐꼬 사전찿아보랴 ..궁금증도 마니나니풀리고 ..,시작이겠지만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으며 왜 비평의 대상이 되어야하는지도....우리 자신을 열어놓는 것밖에 다른길이 없습니다! 근데 너무나니 열어놓았다가 엉뚱한것이 들어오면 감당하기힘든사람은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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