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또는 여흥

조회 수 1134 추천 수 0 2016.04.06 22: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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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또는 여흥

 

부활의 증인이라는 말은 비장하게 들린다. 설교에서 설명한 것처럼 헬라어 마르투스는 증인이면서 동시에 순교자라는 뜻이다. 극한의 경쟁에 내몰리거나 삶을 편안하게 즐기려는 현대인들에게 부활의 증인이라는 말은 가슴에 와 닿기 힘들다. 많은 경우에 신앙생활도 교양의 수준으로, 더 심하게는 여흥의 수준으로 떨어진다. 입담 좋은 멘토의 힐링 캠프에 참석하는 기분으로, 또는 티브이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나 프로 야구장에 가는 기분으로 받아들인다.

교양과 여흥은 단순히 재미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살아가는데 재미가 필요하다. 나도 테니스를 재미로 즐긴다. 이런 데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는 이런 데서 반드시 벗어나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재미있게 인생을 살면 안 되나? 안 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사는 분들에게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렇게 사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만 말을 걸 뿐이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도 많은 경우에 교양과 여흥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재미로 교회에 나간다. 중대형교회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도 이런 재미를 상대적으로 많이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재미도 필요하긴 하다. 문제는 거기서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재미는 적당한 선에서 처리하고, 삶의 근본은 철저하게 붙드는 게 좋겠다. 나는 내 삶을 그렇게 받아들인다.


[레벨:18]은나라

2016.04.07 00:22:56

감사합니다..

이번 설교는 제게 굉장한 인싸이트를 주셨는데요..

이글의 마지막 삶의 고백이 너무 좋습니다.

삶을 그대로 글과 설교로 드러내신 거쟎아요..

"부활의 증인" 이 목사로서는 참 힘든가봐요..

제가 아는 목사들은 이해가 안갈 정도로 "죄의 증인" , "세상의 증인" 으로 사는것에 순교하더만..

정목사님의 삶과 설교는 제 믿음의 삶을 계속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도록 이끌어주는 힘이 됩니다.

사람을 보면 안되지만, 자꾸만 봐집니다. 사람들이.. 그래서 자꾸만 발걸음이 주춤거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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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04.07 09:38:40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겁니다.

사실은 가족도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니까요.

영적인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는 좀더 친하게 지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뜸하게 지내면서

자신은 수행적으로 살아가는 게 지혜롭겠지요.

수행적으로 산다는 것은

'부활의 증인'이라는 사태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태도입니다.

생명을 얻는 일에 몰입한다는 뜻이지요.

하여튼 유일회적인 삶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레벨:10]온마음

2016.04.07 08:30:17

금방 지나가는 일시적인 즐거움에 저는 왜이리 감흥이 없을까요. 우울증 증상이 심해서 그런건지. 삶의 근본을 붙잡고 절대적인 것에 생명을 쏟고 싶은데 초심도 금방 회의적으로 바뀌고 삶을 뚫고 나가기에는 제 자아가 너무 약합니다. 우유부단하고 쉽게 피로해지고 냉소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신앙에 삶의 의미를 걸고 자신있게 나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제 자신이 초라해지기도 하고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하나 한탄스럽습니다.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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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04.07 09:51:41

삶의 희열은 반드시 필요한 겁니다.

걷고, 뛰고, 땀 흘리고,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먹고, 마시고,

성의 쾌락을 포함하여 몸의 즐거움을 알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느끼고,

하늘과 땅과 공기, 지구에서 사는 모든 생명체들과 교감하고,

가끔 취기도 느낄 줄 알고,

기쁘거나 슬퍼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책을 읽고 음악 듣고 영화 보고,

아이들과 대화하고,

... ... ...

이 모든 것들이 희열의 근원들입니다.

이런 것들의 총체가 바로 하나님이니

하나님과의 일치가 희열의 근본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위에서 열거한 항목 중에서,

열거할 거는 훨씬 많으나 줄여서 한 건데,

온마음 님이 할 수 있는게 뭔지 보세요.

몇 가지만이라도 가능하면

그 깊이로 더 들어가도록 노력해보세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든 관계 없이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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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산길' https://youtu.be/lsUhCSig6mM 밤새워 고라니가 파놓은 흙 위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이셨다

예수 어록(112) 요 6:27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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