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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누가복음 톺아읽기 232

  • 2021-09-22
  • 조회 수 1126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232, 눅 11:1~4, 주기도(2) https://youtu.be/v0dtfoEhWno

예수 어록(222) 요 10:15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2019-12-26
  • 조회 수 1125

예수 어록(222)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는 양을 위해서 포식자와 싸우다가 죽을 수 있는 목자처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의 싸움과 목자의 싸움이 같은 건 아니다. 목자의 싸움은 자기 양을 살리기 위한 싸움이지만 예수의 싸움은 인류 전체를 살리기 위한 싸움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다면 인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어떤 이들은 기독교로 인해서 인류가 더 불행해졌다고 주장할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전쟁과 식민지 전...

목사 구원(81) [2]

  • 2018-04-24
  • 조회 수 1125

(81)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왜 자유를 얻는 첩경인지에 대한 앞에서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기독교 신앙에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다. 이 질문도 역시 한 번의 대답을 얻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한 끝까지 이어져야 한다. 예수와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서 얻은 자유가 실제 삶의 능력으로 나타나야하기 때문이다. 인식 자체가 능력은 아니지 않은가. 신앙의 연륜을 많이 쌓은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런 질문 과정에 단단히 사로잡히지 않으면, 그가 목회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삶의 능력을 얻지 못...

하나님의 연민 [2]

  • 2017-06-24
  • 조회 수 1125

6월24일, 토 하나님의 연민 지난 성령강림후 둘째 주일에 해당하는 제 3독서의 한 구절인 마 9:36절에서 예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나는 설교에서 그 구절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연민이 바로 힐링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연민이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성서의 하나님이 헬라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처럼 인간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갖고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하나님이 이방인을 징벌하는 분으로 보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서 고통 받게 하는 하...

안개, 가을비 file [5]

  • 2016-11-18
  • 조회 수 1125

11월18일, 금 안개, 가을비 오늘 아침 평소처럼 7시에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우리집 식당은 거실 겸해서 가족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거실이 우리집에는 없다. 한 마디로 우리집 구조는 해괴하다.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카페도 아닌 것이, 일반 주택도 아니고, 연구소도 아닌 것이, 수도원도 아니다.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순서 없이 짓다보다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고, 나름으로 운치도 있다. 몇 군데 리모델링을 마음먹고 있는데, 집사람과 의견이 달라서 시작을 못하...

사순절 묵상(36) [2]

  • 2015-03-31
  • 조회 수 1125

36) 3월31일(화)- 성 주간 <본문읽기> 사 49:1-7 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

예수 어록(387) 요 18:11 칼을 칼집에 꽂으라 [1]

  • 2020-08-01
  • 조회 수 1124

예수 어록(387) 요 18:11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일단의 무리가 예수를 체포하러 왔을 때 제자들은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예수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 같다.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휘둘렀다는 이야기가 네 복음서에 다 나온다. 요한복음에만 칼을 휘두른 제자의 이름이 명시적으로 시몬 베드로(요 18:10)로 나온다. 요한복음 공동체에서 베드로의 권위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가 휘두른 칼에 맞은 대제사장 종의 귀가 떨어져 나갔다. 천만다행이다. 만약 귀가 떨어져 나가는...

목사 구원(152) [1]

  • 2018-08-01
  • 조회 수 1124

(152)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인다는 말에 오해가 따를 수 있다. 삶을 느슨하게 대하거나 허투루 대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이 물건은 내가 돈 주고 산 게 아니라 선물로 받은 거니까 대충 쓰다 버리면 된다.’는 식이면 곤란하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는 바울의 권면은 삶이 하나님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 통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매 순간을 삶의 절정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삶의 절정에 서려면 바울의 권면처럼 공연한 것에 자기의 삶을 소비하지 않아야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인은 ...

물(物) 137- 잔디 위 버섯 file [2]

  • 2022-09-09
  • 조회 수 1123

비가 자주 온 탓인지 마당 잔디 위 여러 곳에 이름 모를 버섯이 자라기 시작했다. 저 버섯 포자를 이곳까지 실어나른 이는 분명 바람이리라. 지구에 바람이 있기에 생명 현상이 발생하니 바람을 생명의 ‘영’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목사 구원(122) [2]

  • 2018-06-20
  • 조회 수 1123

(122) 요한 시대는 로마 황제가 창조주나 마찬가지였다. 도미티아누스 황제(기원후 51-96년)로 알려져 있다. 도미티아누스만이 아니라 여러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했다.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황제숭배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았다는 데서 기독교와 로마 제국과의 갈등을 이미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 의해서 4세기에 국교로 지정되면서도 매 주일마다 예배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문장을 신앙고백으로 바쳤다. 당시 ...

적폐 [2]

  • 2017-08-29
  • 조회 수 1123

8월29일, 화 적폐 요즘 적폐 청산이라는 말이 나돈다. 대선 기간부터 그랬다. 아니 대통령 탄핵 때부터다. 적폐(積弊)라는 말 자체만 놓고 보면 뭔가 불편하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라는 의미로만 본다면 별 것 아니지만 어감 상으로는 너무 강해 보인다. 박멸해야 할 해충을 대하거나, 또는 단죄해야 할 반동분자를 대하는 느낌이 든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아마 이런 걸 크게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직접 해당되는 분들만이 아니라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

주간일지, 대구샘터교회 11월6일 [3]

  • 2016-11-06
  • 조회 수 1123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11월6일, 창조절 열번째 주일 1) 요즘 대한민국 국내 정치 상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나라라고 한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순실이라 이름 하는 여자와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국정을 농락했습니다. 앞으로 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예배 후 식사 자리에서 오랜 만에 방문한 아무개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구성서아카데미 사이트에 이 사태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을 글로 올려주...

하나님의 아들 [1]

  • 2016-01-06
  • 조회 수 1123

1월6일 하나님의 아들 엡 1:3-14절에 ‘그리스도 안에’라는 문구가 열 번이나 나온다고 설교에서 언급했다. 그 단락에서 언급되는 모든 것이 다 이 문구에 걸린다. 이렇게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명하는 걸 가리켜 신학 용어로 ‘기독론’(christology)이라고 한다. 바울이 말하는 기독론적 해명에서 나는 세 가지를 짚었다. 첫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5절).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하나님...

누가복음 톺아 읽기 053, 눅 1:80

  • 2021-01-14
  • 조회 수 1122

대구 성서 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053, 눅 1:80 https://youtu.be/6Qrfpx-zGTQ

예수 어록(099) 요 5:39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 2019-04-26
  • 조회 수 1122

예수 어록(099)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앞에서 짚었지만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긴 연설은 예수가 직접 한 게 아니라 요한복음을 쓴 사람에 의해서 편집된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기의 생각대로 편집한 게 아니라 요한복음 공동체가 간직하고 있던 전승과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하여 확대 해석하고 설명한 것이다. 일종의 설교문이라고 보면 된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 주제는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

목사 구원(139) [7]

  • 2018-07-13
  • 조회 수 1122

(139) 존재 신비라는 말에서 ‘신비’는 오해받기 쉬운 단어다. 특히 개신교회에서는 그런 오해가 잦다. 신비를 산신령에게 나타나는 속성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는 마술 비슷한 것으로 여긴다. 한국교회에서는 기도원 운동이 이런 왜곡된, 또는 정통 기독교 사상과는 구별되는 신비주의와 결합되었다. 방언, 입신, 축귀 등의 능력도 신비로 받아들여진다. 기독교 정통신학에서의 신비는 그런 것과 전혀 차원이 다르다. 나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같은 중세기 신비주의자에게서 기독교의 정통 신비주의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

예수 어록(231)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 2020-01-10
  • 조회 수 1121

예수 어록(231)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드디어 가장 위험한 발언이 나왔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이게 예수의 실제 발언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요한복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아무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예수가 실제 이런 자구로 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발언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만한 생각은 했을 것이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영혼 전체로 느끼고 있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하...

목사 구원(142)

  • 2018-07-18
  • 조회 수 1121

(142)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삶에서 생생한 현실(reality)로 느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수준이 떨어지는 주장은 예수를 믿으니 복 받아서 가정이 화목하고 자식들의 인생도 잘 풀린다는 것이다. 소위 ‘삼박자’ 축복이라는 말까지 유행어처럼 한국교회 안에서 회자되었다. 이런 종류의 간증이 한국교회에서 주를 이룬다. 성경에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때문에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이들은 욥기 이야기도 주관적으로 읽는다. 이유 없는 재난과...

위로하라(5) [2]

  • 2017-12-09
  • 조회 수 1121

12월9일, 토 위로하라(5) 내일 대림절 둘째 주일 예배의 헌금찬송과 마침찬송은 105장 ‘오랫동안 기다리던’ 1절과 2절을 각각 부른다. 나이가 든 이들은 이 찬송가를 처지는 속도로 부를 텐데, 찬송가 악상으로는 조금 빠르게(1분에 사분음표 100번의 속도) 부르는 게 좋다. 대림절 찬송이니 기쁜 마음으로 가볍게, 뭔가를 치고나가는 느낌으로 불러야 한다. 가사를 읽어보자. 1절: 오랫동안 기다리던 주님 강림하셔서 죄에 매인 백성들을 자유 얻게 하시네 주는 우리 소망이요 힘과 위로되시니 오래 기다리던 백성 많은 복을 ...

새로운 현실

  • 2015-12-19
  • 조회 수 1121

12월19일 새로운 현실 설교 마지막 구절은 다음이다. ‘그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현실이 되었으니 우리가 어찌 기뻐하고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설교 제목을 다시 강조한 결론이었다. ‘새로운 현실’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을지 모른다는 염려가 있었지만, 과감하게 그대로 그 단어를 사용했다. 일상에서 익숙한 다른 마땅한 단어를 찾기 힘들었다. ‘하나님의 구원이 실현되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실현과 현실은 비슷해보여도 다르다. 현실, 또는 현실성은 실현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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