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109) 6:10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우리 삶에는 늘 어려움들이 따른다. 그걸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의 작동방식에만 묶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집단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다. 빌립은 자신의 세상 경험에 근거해서 예수에게 대답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정확한 계산이다. 이 세상에서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연봉 5천만 원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평생 부족하다는 느낌으로 산다. 예수와 빌립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안드레가 다음과 같이 거든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모두가 답답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는 말한다.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은 앉을 줄 모른다. 계속해서 뛰려고만 한다. 설교처럼 들리겠으나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유치원 시절부터 사춘기를 거쳐 청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한발자국이라도 앞서 가려고 모든 삶을 소진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삶이 구조적으로 고착되어서 자리에 앉고 싶은 사람들도 불안해서 앉을 수가 없다. 교회의 선교 사명은 사람들을 향해서 좀 앉으시라. 우리 삶이 얼마나 심층적이고 신비로운지를 보시라.’고 외치는 게 아니겠는가. 그게 안식일 개념의 핵심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오히려 더 빨리 걷고 뛰라고 부추긴다. 게으른 삶을 불신앙적인 것으로 매도한다. 기도도 경쟁적으로 하고, 전도도 경쟁적으로, 헌금과 예배도 경쟁적으로 한다.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거기 앉은 사람들의 숫자가 오천 명이었다고 한다. 예수는 떡을 손에 들고 축사한 뒤에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했고, 모두 배부르게 먹은 다음에 남은 것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표적으로 받아들였고, 이를 행한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고 한다. 예수는 사람들을 피해 산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당시 그 자리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다. 이 사건을 마술로 보면 안 된다는 것만 기억하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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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표적 신앙

  • 2017-01-31
  • 조회 수 1116

1월31일, 화 표적 신앙 고전 1:22절은 다음과 같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예수 공생애 중에서도 유대인들은 예수에게 반복해서 ‘당신이 메시아라는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하나님의 아들 흉내를 내면 곤란한 거 아닌가. 예수는 그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 요나 이야기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요나 이야기도 기적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예수의 부활을 암시하는 것이지 표적 신앙에 대한...

주간일지 12월5일, 대림절 2주 file

  • 20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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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1년 12월5일, 대림절 2주 1) 빈 들- 누가복음 기자는 예수님과 요한의 출가 활동을 ‘빈 들’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말 성경 번역자가 헬라어 ‘에레모스’를 요한 이야기에서는 순수 우리말 ‘빈 들’로, 예수님 이야기에서는 한문 ‘광야’로 번역했습니다. 번역의 일관성이 떨어져서 아쉽습니다. 누가는 요한의 빈 들을 말하기 전에 황제와 총독과 왕과 대제사장들을 언급함으로써 ‘빈 들’을 더 도드라지게 합니다. 황제 같은 이들은 빈 들에서 살지 않으나 선지자는 빈 들에서 삽니다. 모든 선지자가 빈 들에...

예수가 온다(3) [2]

  • 20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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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5일, 금 예수가 온다(3) 생명 완성의 순간이 종말이라는 주장은 크게 이상하지 않다. 교회 밖의 사람들도 인정할 수 있다. 다른 종교만이 아니라 물리학이나 생물학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다. 문제는 여기서 왜 예수가 개입되는가에 달려 있다. 교회는 처음부터 이 주장을 끈질기게 이어왔다. 예수 없는 종말론적 생명 완성은 교회에서는 말이 안 된다. 설교와 신학과 영성을 포함한 기독교의 모든 복음 활동은 바로 이 사실에 대한 변증이다.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 설득력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설득력...

사순절 묵상(21)

  • 201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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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3월13일(금) <본문읽기> 시 107:1-3, 17-22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3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17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18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19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0 그...

예수 어록(342) 요 15:17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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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42) 요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을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사랑하는 말이 예수의 고별 연설을 다루는 이 대목에서 반복해서 나온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 상투적으로 들린다. 요즘도 “성도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 사랑의 열매를 통해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식의 발언을 종종 듣는다. 이런 발언은 아무리 상투적인 발언이라고 해도 우리의 삶과 신앙을 살리는 능력이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면서 삶의 현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우리가 운전면허...

주간일지 11월11일 file

  •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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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2018년 11월11일, 창조절 11주 1)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설교에 가장 큰 은혜를 받는 사람은 설교자 자신이라는 걸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깊이 느낍니다. 이런 점에서는 설교자로 산다는 건 행운이겠지요. 오늘 설교에서 ‘가난하니까 할 수 없는 일과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간략하게 열거했습니다. 만약 가난하게 살아도, 아니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면 굳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삶을 소비하지는 않겠지요. 이게 단순히 논리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합니다. 우리...

예수 어록(389) 요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 2020-08-04
  • 조회 수 1114

예수 어록(389) 요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예수는 발언을 이어간다. “왜 내게 묻느냐?” “내 말을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안나스가 묻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이 수하에 있는 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확실한지 확인하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의 발언에서 실수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추정할 뿐이지 확실한 이유는 우리가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안나스의 질문이 요식 행위라는 것이다. 안나스로 대표되는 산헤드...

바람과 불 [2]

  • 2016-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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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6일, 화 바람과 불 앞 주일 설교 성경 본문인 마 3:11절에 예수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푼다는 말이 나온다. 성령은 헬라어 프뉴마의 번역이고 그 뜻이 무엇인지를 설교 시간에 설명했다. 바람(영)과 불은 고대인들에게 생명의 능력이었다. 이건 물리학적으로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만약 지구에 바람과 불이 없다면 생명 현상은 불가능하다. 고대인들은 지구의 물리 현상을 몸으로 느끼면서 살았지만 오늘 현대인들은 그것을 소외시키고 있다. 인간 자신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오늘 기독교인들이 ...

주간일지, 9월4일 [3]

  • 201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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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9월4일, 창조절 첫째 주일 1) 오늘은 성찬 예식이 거행되는 주일이었습니다. 설교가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성찬은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배의 핵심 요소는 바로 이 두 가지, 즉 설교와 성찬입니다. 저는 성찬 예식을 거행할 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금하지 못합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첫째는 빵과 포도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찬 집행자인 목사가 이 사실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으면 성찬의 의미는 대...

시읽기 018 file

  • 2018-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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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네가 없는 삶' https://youtu.be/qt002tWarkY

누가복음 읽기 003 [2]

  • 2020-11-05
  • 조회 수 1113

대구 성서 아카데미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읽기』 003, 눅 1:5-7 https://youtu.be/yBaV7uGaUxg

예수 어록(347) 요 15:22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 2020-06-05
  • 조회 수 1113

예수 어록(347) 요 15: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세상이 핑계할 수 없는 죄는 21절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이다. 예수 이전에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예수 이후에는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에게서 하나님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을 비롯한 신약성경 기자들과 오늘 우리까지 포함해서 모든 기독교인은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믿는다. 이는 곧 예수가 하나님...

예수 어록(326)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 2020-05-07
  • 조회 수 1113

15장 예수 어록(326)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한복음서만의 특수한 전승인 예수 연설이 15장으로 이어진다. 정확하게는 요한복음 공동체의 신앙고백으로 읽는 게 옳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아버지로 불린다. 하나님은 예수에게 “내 아버지”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아니라 “예수의 아버지”이다. 우리도 하나님이 아들이기에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예수의 경우와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면 예수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이...

베드로전서 강해(36) [2]

  •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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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마지막과 기도에 대해서 말한 뒤에 본문은 이제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 말한다. 서로 사랑하라(8절). 서로 원망 없이 대접하라(9). ‘원망 없이’가 중요하다. 이게 쉽지 않다. 원망이 나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10절에서 은사를 말한다. 은사론은 고전 12장에 자세하게 나온다. 직책에 따른 은사가 있고, 기능에 따른 은사가 있다. 은사론에는 몇 가지 개념이 따른다. 첫째,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둘째, 모든 은사는 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셋째, 은사의 독립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넷째, 은사의 목표는 섬김과 봉사다. ...

예수 어록(120) 요 6:39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 2019-05-25
  • 조회 수 1113

예수 어록(120)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를 보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39절과 40절에 각각 나온다. 비슷한 내용이 문구만 바뀌었다. ‘내게 주신 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 자다.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나타날 수 있는 생명 사건이 예수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식한 자다. 예수의 제자들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인들을 가리킨다. 그들을 ‘내게 주신 자’라고 한 이유는 예수에게서 발생한 하나님의 ...

재앙과 죄

  • 201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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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8일, 화 재앙과 죄 지난 설교 성경 본문인 요 9장은 선천성 시각장애인을 둘러싼 이야기다. 제자들은 ‘누구의 죄냐?’ 하고 물었다. 설교에서 설명했듯이 이건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자네 잘못을 인정하라.’고 한 말과 마찬가지로 당시 유대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재앙의 원인을 죄로 보았다. 그것의 정점은 창세기의 타락 설화에 나온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한 죽음이다. 성서가 인간의 죄로 인해서 재앙과 죽음이 인간 운명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더 깊은 차원...

예수 따름 [1]

  • 2015-10-29
  • 조회 수 1113

10월29일 예수 따름 바디매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그가 즉시 예수를 따른 것이다. 예수가 누군지를 알아본 사람에게서는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신앙은 취미생활처럼 안 해도 되지만 하면 더 좋은 대안적인 것이 아니다. 자신의 영혼 전체와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실존적인 결단이 뒤따른다. 이런 일은 바디매오나 당시 제자들만이 아니라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의 제자가 되어 그의 뜻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

예수 어록(023) 요 2:16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3)

  • 2019-01-03
  • 조회 수 1113

예수 어록(023) 요 2:16 “이것을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3) 하나님을 가장 친근하고 가장 신뢰할만한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야말로 신구약성경의 요체다. 우리가 말로는 이런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어떤 이들은 기도와 예배와 말씀과 봉사를 통해서 일단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정도로 ...

목사 구원(150) [4]

  • 201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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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내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야말로 죄로부터 해방되는 첫걸음이다. 하나님의 선물은 그것 자체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서 내가 거기에 어떤 것을 더 보탤 필요가 전혀 없다. 나의 노력으로 어떤 것을 더 보태야만 완성될 것 같다는 염려가 바로 죄다. 죄로부터의 해방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지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 그걸 모르면 평생 자신이 보충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산다. 보충해봐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불안해지며, 그 불안을 해소하려고 다시 자신의 나머지 ...

목사 구원(66)

  • 2018-04-03
  • 조회 수 1112

(66) 목사의 경우에 죄는 목회 업적의 강요와 유혹에 굴복당하는 것이다. 구원이 죄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한다면 목사 구원은 목회 업적의 강요와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목회 업적의 강요와 유혹은 목사에게 숙명적이다. 여기에는 외부적인 요인도 있고, 내부적인 요인도 있다. 외부적인 요인은 한국교회 구조다. 목사가 순전히 목회 업적으로만 평가되는 구조다. 목회 업적을 이루지 못하면 목사와 가족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 내부적인 요인은 목사 자신이 목회의 업적에 매달리는 것이다. 자신이 담임 목사로 있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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