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나가는 이유(3)

조회 수 4078 추천 수 2 2010.06.28 23:59:20

 

     그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나가는 것 같소. 교회에 여러 종류의 모임이 많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소.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은 크오. 더구나 종교적으로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더 크오. 믿는 사람들끼리의 친교를 부정할 수는 없소. 교회 전통도 그걸 무시하지 않소. ‘코이노니아’(친교)는 초기 기독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신앙적 덕목이었소. 코이노니아는 신앙의 근본이라고 봐야 할 거요.

     사람과의 관계에 치중하다보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소. 양쪽의 관계가 서로 상승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그게 쉽지 않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그 대답을 하기 전에 이 문제를 좀더 정확하게 정리해야겠소. 사람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명쾌하게 구별될 수 있는가, 하는 것 말이오.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셨소. 그렇다면 믿는 사람들의 관계가 하나님 나라의 근본이 된다는 뜻이오.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고 했지 ‘너희’가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하지 않으셨소. 예를 들어 설명하겠소. 여기 합창단이 있소. 합창단원이 없으면 노래를 부를 수 없소. 그들이 화합하지 않으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없소. 그들 가운데 음악이 있소. 그러나 그들이 바로 음악은 아니오. 그들은 음악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오. 단원들끼리의 화합이 중요하다고 해서 친교에 치우치면 결국 그 합창단은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거요. 교회는 영적인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이오. 온전히 노래에 관심을 집중하지 않으면 합창단원끼리의 친교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오. 이 설명이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소. 신자들끼리의 친교에 떨어지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축소되는 거요. 양쪽의 관계가 대립적이지 않고 상호적으로 창조적인 결과를 맺으려면 지금 교회 공동체가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성찰해야만 하오.

     내 이야기가 좀 복잡해졌소. 간단히 정리하겠소. 사람 만나러 교회에 나가지는 마시오. 그렇게 습관이 붙어서 어쩔 수 없다면, 조금씩 고쳐 나가보시오. 사람 만나는 것에 너무 큰 비중을 두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오. 첫째,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 실망하게 되오. 자칫 신앙마저도 흔들릴 거요. 둘째,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만의 ‘끼리집단’이 생기오. 예수 믿는 사람끼리만 몰려다닌다면 ‘세상의 소금’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소. 사람은 세상에 널려 있으니 정 사람이 그리우면 세상 사람들을 만나시오. (2010년 6월28일, 월요일, 꾸물꾸물한 날씨)


[레벨:17]아셀

2010.06.29 11:10:44

안녕하세요 목사님!

 

서울샘터 교회 예배후 인사를 드렸지만

다비아에서는 처음 인사 올립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치중하다보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소."

 

요즘 사람들에게 예전예배에 대한 저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교회마다 너무 가벼운 분위기에 영 예배드리는 느낌이 안듭니다.

샘터교회에서 경건하고, 진중한 예배를 맛 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매일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행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0.06.30 00:02:15

아셀 님,

안녕하세요?

그렇군요.

다비아에서는 처음이군요.

웬만하면 오래 남아 계십시오. ㅎㅎ

다비아와 샘터교회 홍보 대사로 위촉해도 좋겠네요.

기독교 영성의 진수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해볼까요?

profile

[레벨:38]클라라

2010.06.30 00:02:57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지 '너희"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하나님 나라는 우리모두 함께 가는 나라 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되는데요, 

그러나 먼저 우리가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서 있을 때서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로 교회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예배는 얼마나 멋진 '합창곡' 이 될까요?

 

[레벨:19]The One

2010.06.30 09:35:36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샘터에서.....

하나님의 관계와 사람의 관계가 서로 상승될 수 있는

희망을 봅니다. 그동안 신앙적으로 통하는 즐거움에

너무 목말라 했기 때문일까요? 아직 접하지 않은 다비아의

글들이 한참 동안 영혼의 보고에 한 켜씩 쌓이는 기쁨이 되길

소망 합니다.

[레벨:3]비오는저녁

2010.07.06 13:22:02

어쩌다 교회들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각종 (?)행사 사진들이나, 목사님들의 단체사진,

그리고 게시판들을 보자면, 어김없이 어떤 전형이 보여지곤 합니다.

비슷비슷한 언어들, 표정들, 게다가 어떨땐 패션까지.

모모 한다는 교회는 그것대로 세련된 카페같은 분위기, 이민교회들은 또 그것대로의 그 분위기.

하나님 만드신 각개 각인의 야성(생명)을 찾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니면, 오랜 세월 종교적이고 피상적인 삶 때문에, 그 생명력들이 오히려 희미해 진 것인지.

 

우리 정체성이

'피조물' 이라는 것만 제대로 알아도,

외로움과 결핍들 속에서도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짦은 생각을 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하나님 나라(31)- 신학과 설교

  • 2010-06-09
  • 조회 수 4132

사람들이 깊이 생각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경우에 설교는 이미 권위주의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본질적 진리를 새롭게 규정하는(再定式) 시도가 된다. 이런 새로운 규정은 인간 실존의 모든 차원에 놓인 현실성(realilty)에 대한 현대적 경험과 이해의 맥락에서 수행된다. 그것은 특히 새로운 규정에 참여하도록 초청된 공동체의 삶과 관계되어야 한다. 그래서 설교는 공동체의 성원들이 기독교 신앙과 그 현대적 진리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어떤 지침을 제공한다.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

장로 [12]

  • 2013-08-15
  • 조회 수 4127

8월15일(목) 장로 한국교회의 외적 성장에 가장 크게 공헌한 제도는 당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회는 시무 장로와 담임 목사로 구성된다. 교회에 따라서 부교역자도 참여하기도 하는데, 아마 발언권 회원에 머물 것이다. 당회 제도는 칼뱅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로마가톨릭의 성직자중심주의를 넘어서서 나름으로 민주적 질서를 세우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지금의 장로교회는 모두 칼뱅의 후예들이다. 그래서 당회 제도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감리교회, 성결교회, 하나님의 성회(순복음), 침례교회 등등은 전통적으로 당회제도가 없...

5월15일 회개와 복음 (2) [1]

  • 2006-05-15
  • 조회 수 4125

2006년 5월15일 회개와 복음 (2)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회개는 이 땅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하늘로 관심의 축을 옮기는 신앙적 태도이며 결단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주 공간의 어느 한 지역을 복음서가 말하는 그런 하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하늘은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곧 하늘이 가까이 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까이 온 그 하늘은 우주 물리학적인 차원에서의...

예수님의 시험 (5), 4월29일

  • 2006-04-29
  • 조회 수 4122

2006년 4월29일 예수님의 시험 (5)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 1:13) 사탄은 예수님에게 온 세상의 영광을 모두 보여주고 다음과 같이 요구했습니다. 이것이 사탄에게서 받은 예수님의 세 번째 시험입니다.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 앞에서 제기한 두 번의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확신 내지는 의혹과 연관된 것인데 반해서 마지막 시험은 세상의 명예와 소유에 관한 것입니다. 전자는 비교적 영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

5월8일 하나님의 나라 (5) [2]

  • 2006-05-08
  • 조회 수 4120

2006년 5월8일 하나님의 나라 (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고, 따라서 하나님을 아직 명료하게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를 그런 차원에서 알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는 앞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짚었을 때 이미 드러난 사실입니다. 금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적으로, 전체적으로, 명료하게 알 수 없다면 결국 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무의미한 게 아닌가, 하는 주장이 ...

김사인 시(4)- 아무도 모른다 [5]

  • 2014-02-04
  • 조회 수 4115

아무도 모른다 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품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

성탄 전야의 기도, 12월24일(월)

  • 2012-12-24
  • 조회 수 4113

주님, 오늘은 성탄 전야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높은 곳을 버리시고 땅의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영과 육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과 속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의 성육신(成肉身)입니다. 주님, 마리아는 자기 몸에 일어난 사건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평범한 한 여자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다는 사실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는 세상 물정이나 이치도 알기 힘든 어린 여자였기에 더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마리아는 ‘주...

5월19일- 말의 힘 [2]

  • 2006-05-19
  • 조회 수 4101

2006년 5월19일 말의 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6) 예수님은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 형제들을 보시고 이렇게 말을 거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예수님이 구체적인 사람을 보고 말씀하신 첫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군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소리를 내어 말씀하셨답니다. 인간은 언제부터 말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를 위해서는 고고학의 도움을 받아야하겠지만, 우리는 정확한 시대를 알 필요가 없으니까 대신 신생아를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

탈리다 쿰!

  • 2015-06-29
  • 조회 수 4092

6월29일 탈리다 쿰! 어제 설교 제목은 <‘달리다굼’ 말씀하시다>였다. 달리다굼을 원어에 가깝게 발음하면 ‘탈리다 쿰!’이라고 설명했다. 원어는 아람어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혹시 모르는 분들도 있을 거 같아서 성서 언어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겠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히브리어는 사어(死語)였다. 제사장이나 율법학자 등, 전문가 집단만 히브리어를 사용할 줄 알았다. 나라 없이 오랜 세월을 지낸 탓이다. 기원전 8세기부터 아람 사람들이 크게 활동함으로써 그들의 말이 그 지...

하나님의 영광, 1월22일(화) [4]

  • 2013-01-22
  • 조회 수 4087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문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을 가리킬까? 하나님과 영광은 하나다. 하나님은 어떤 실체로가 아니라 영광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뜻이다. 출애굽기에 따르면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수여받았다. 이 사건이 유대교의 출발이자, 뼈대다. 모세는 하나님께 ‘당신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을까 염려해서 당신 자신의 영광을 보여줄 수 없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못보고 등만 보았다고 한다. 하나님을 본 자는 죽기 때문이다...

나무 잎사귀 닦아주기 [3]

  • 2010-09-03
  • 조회 수 4081

그대는 집에서 나무를 키우고 있소? 아니면 개나 고양이는 키우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아파트요. 그래서 다른 생명체를 돌보며 살기가 쉽지 않소. 아파트 베란다에 화초 몇 그루와 나무가 하나 있소. 1미터 정도의 기둥으로 뒤에 잎사귀가 우선처럼 펼쳐있는 나무요. 집사람이 키우는 것들이오. 나도 간혹 물을 주곤 하지만 주로 집사람 몫이오. 화초는 물만 제 때 주면 자라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나무는 좀 다르오. 벌써 오랜 전부터 잎사귀들이 말라가고 있었소. 내가 이름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린 탓이오. 작은 반점과 솜...

교회에 나가는 이유(3) [5]

  • 2010-06-28
  • 조회 수 4078

그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나가는 것 같소. 교회에 여러 종류의 모임이 많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소.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은 크오. 더구나 종교적으로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더 크오. 믿는 사람들끼리의 친교를 부정할 수는 없소. 교회 전통도 그걸 무시하지 않소. ‘코이노니아’(친교)는 초기 기독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신앙적 덕목이었소. 코이노니아는 신앙의 근본이라고 봐야 할 거요. 사람과의 관계...

6월8일- 서로 묻다.

  • 2006-06-08
  • 조회 수 4078

2006년 6월8일 서로 묻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 1:27) 오늘 본문의 구조는 22절과 흡사합니다. 두 구절이 모두 예수님의 권위에 사람들이 놀랐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22절의 가르침과 27절의 명령에 권위가 있었다는 건 곧 기존의 것과 달랐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다른 걸 가르치셨으며,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축귀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전혀 다른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이사야와 아하스 [2]

  • 2013-12-22
  • 조회 수 4053

12월21일(토) 이사야와 아하스 이사야는 고대 8세기 유다의 선지자이고, 아하스는 이사야 당시의 유다 왕이다. 이사야는 종교인이고 아하스는 정치인이다. 이사야는 신탁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아하스는 정치권력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고대 이스라엘(유다)는 정교일치의 사회였기에 이 두 사람은 서로 협조해야 할 관계다. 정교일치라고 해서 모든 부분에서 일치되는 건 아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선지자는 왕의 잘못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모든 선지자가 늘 비판적이었던 것은 아...

5월12일- 하나님의 나라 (9)

  • 2006-05-12
  • 조회 수 4052

2006년 5월12일 하나님의 나라 (9)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이 땅의 나라에서 경험하는 생명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묘사되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면서 사는 게 곧 그리스도교 신앙의 토대라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하나님 나라의 속성이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할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는 게 아니라는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일단 정의, 평화, 기쁨, 자유 같은 정신적인 ...

지성적 기독교인의 정체 [11]

  • 2010-04-10
  • 조회 수 4049

오늘은 약간 불편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좀 참고 들어주시구려. 오늘 한국교회의 지성인 기독교인들에게 푸념 비슷한 말을 하려는 거요. 혹시 그대도 지성적 기독교인이오? 지성인들은 오늘 한국교회에서 찬밥 신세라오. 한국교회가 반(反)지성주의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라오. 지적인 인식 활동을 부정하고 무조건 믿기만 하라고 강요하는 교회 풍토에서 지식인들이 견뎌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오. 이런 사태 앞에서 지성적인 신자들이 취하는 태도가 서로 다르오. 가장 대표적인 이들은 교회를 뛰쳐나가는 이들이오. 지금 사...

부부싸움 [7]

  • 2010-10-12
  • 조회 수 4048

그대는 결혼하셨소? 아니면 아직 미혼이오. 내가 청년 시절엔 남자들도 서른만 되면 혼기가 지났다고들 했소. 여자는 두 말 할 것도 없소. 요즘은 웬만하면 남녀 불문하고 서른을 넘기기가 예사요. 좀더 옛날에는 조혼이 일반적이었소. 내 아버님도 한 살 더 많은 어머니와 열아홉 살에 결혼하셨다고 들었소. 좀더 올라가면 십대 중반에 결혼하던 시절도 있었소. 결혼 적령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니 어린나이에 하든지 나이 든 뒤에 하든지 무슨 문제가 있겠소. 여하튼 그대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면, 또는 결혼한 지 20년이 채 안 ...

5월28일- 영성과 소유 (2)

  • 2006-05-28
  • 조회 수 4048

2006년 5월28일 영성과 소유 (2)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막 1:20)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는 그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하던 거상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외아들인지, 큰 아들인지, 또는 여러 아들 중의 하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후계자였다는 소문이 많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 2세였던 셈이지요. 프란시스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출가합니다. 그리고 탁발수도회를 창설합니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도 준비하지 않은 채 오직 구걸의 방식으로 살아가...

설교의 집중력 [2]

  • 2014-01-04
  • 조회 수 4046

1월4일(토) 설교의 집중력 집중력이야말로 타고나는 능력이다. 청중들과의 교감을 계속 유지하면서 설교를 끝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곧 표시가 난다. 청중들은 눈치 못 챌지 몰라도 본인은 금방 느낀다. 연설 능력이 뛰어난 분들에게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 차이가 있다면 집중력을 놓치는 순간이 상대적으로 적고, 다시 복원하는 능력이 뛰어난다는 것이다. 집중력을 잃게 되는 요인은 많다. 우선 외부적인 요인을 보면 이렇다. 청중들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경우다. ...

찰과상 file [23]

  • 2016-09-08
  • 조회 수 4039

이런저런 일로 기회를 놓치고 있다가 6일만에 오늘 테니스 장에 나갔습니다. 둘째 딸 20분 동안 레슨 해주고 동호회원들과 게임을 했습니다. 요즘 테니스 감각이 좋아졌습니다. 평소에도 늘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좀더 확실하게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테니스가 아주 미세한 운동이라서, 다른 운동도 사실은 비슷하지만 아주 작은 느낌으로 운동 능력에 큰 차이를 보입니다. 1) 백스윙부터 팔로우스윙까지를 한 묶음으로 처리한다. 부드럽게. 2) 라켓을 밀지 말고 휘두른다. 임펙트 지점에서 가장 큰 힘이 작용하도록...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