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4일, 수
하나님의 보복
이사야 선지자는 두려워하는 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와서 ‘보복하신다.’고 선포했다. 시편에는 원수를 갚아달라는 호소도 많다.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도 하나님은 전쟁의 신처럼 묘사되곤 했다.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여호수아를 필두로 유대 백성들이 공격할 때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하나님이 내리신 것으로 성경이 묘사하고 있다. 이런 표현은 성서의 하나님이 사람처럼 희로애락의 성정을 갖고 인간 역사에 참여하는 헬라 신들로 오해될 수 있다.
보복하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려면 고대인들의 신 관념을 전제해야 한다. 그들은 신이 자신들의 생존을 책임져준다고 믿었다. 당시 생존은 전쟁과 직결되어 있다. 전쟁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고, 생존도 위태로워진다. 자신들이 믿는 신이 그걸 책임져 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신을 섬기지 않을 것이다. 고대 유대인들도 이런 신 관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주셔야만 한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고대 유대인들은, 즉 구약성경의 사람들은 당시 신 관념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자신들만 일방적으로 지지해주는 신이라기보다는 더 보편적인 차원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신으로 생각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는 온 세계를 향한 것이다. 구약의 신앙은 유대 민족이라는 특수성과 다른 민족을 포함한 인류 전체라는 보편성의 긴장이 계속 유지된다. 그런 긴장은 예수 사건에서 종결되었다. 예수의 복음은 유대 민족이라는 범주를 완전히 뛰어넘어서 보편적 인류 전체의 구원을 지향했다.
하나님의 보복이라... 번역이 참....개역 성경의 급진성이라고 봅니다.
다른 한글 성경은 대부분 '복수하신다' 또는 '원수를 갚아주신다'로 번역했는데
보복이나 복수나... 같은 의미이지만 어감의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보복은 좀 더 잔인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