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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8일, 토
영생에 대해
요 3:15,16절에는 ‘영생’이라는 단어가 연달아 나온다. 여기만이 아니라 요한복음에는 곳곳에 영생이나 생명이라는 단어가 다른 공관복음에 비해서 많이 나온다. 요 6:51절에 예수라는 떡을 먹으면 영생할 것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11:26절에도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도대체 영생은 무엇인가?
단순하게 생각해서,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상상해보자. 견디기 힘들 것이다. 삶이 무한정 연장된다면 살아있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은 죽음을 전제할 때만 성립되기 때문이다.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 실제로 자기 가족과 친구들과 동시대 사람들은 다 죽고 자기 혼자만 5백 살 이상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에게 죽음을 간구할 것이다. 그에게는 삶 자체가 지옥으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그런대 성경은 왜 영생을 말하나?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우리의 생명이 시간적으로 무한하게 연장된다는 뜻이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워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질적으로 새로워진 생명이 부활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운명에서 그걸 경험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영원한 생명이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심판이 아니라 구원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은 신성한 생명, 곧 창조되지 않은 생명으로서 시간에 있어서 영구할 뿐 아니라, 본성에 있어서도 영원하며 신성한 것이 아닙니까?
헬라어로 aion(eternal: 영원한)이나 aionios(eternal:영원한)나 aidios(everlasting: 영원히 계속되는)도 그런 의미인 것 같은데요.
우리가 죽고 부활하여 신령한 몸(영적인 몸)을 입으면 질적으로 새로워질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죽고 부활하여 다시 죽는다면 그것이 무슨 구원입니까?
물리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지금 몸은 입자가 주된 몸이므로 죽을 수밖에 없는 몸입니다. 그런데 만약 파동이 주된 몸이 되면 시공을 초월하게 됨으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문이 닫혔는데도 오고 가시고 하실 수 있으셨던 것 아닌가요.
제 생각과 달라서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이 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