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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가서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나고 복지가 완벽하게 실현된 인생살이를 다시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말했다. 그러나 부활은 믿는다. 나는 다시 살 것이다. 아니 나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생명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 생명으로의 변화는 무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살아있는 동안에 주어졌던 삶의 모든 조건들이 옷을 벗듯이 없어져야만, 이것이 무화(無化)인데, 전혀 새롭고 절대적인 생명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나에게 중요한 것은 죽기 전에 은폐되어 있는 하나님의 생명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가 의지적으로, 책임적으로 거기에 참여할 수 있지만 죽으면 모든 것이 내 책임과 능력 밖의 일이 된다.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생명 통치에 참여하는 길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들과 생명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실제로 믿으며 그렇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게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 집 마당에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이식한지 일 년밖에 되지 않아 생존 확률이 어떨지 모르기에 잘 버텨내라는 마음으로 나는 매일 소나무를 보고 말을 건다. 소나무와 생명 관계를 맺는 것이다. 교회에 갔을 때 어른들만이 아니라 어린아이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그들과 생명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이나 식물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다. 돌이나 연필이나 장갑일 수도 있다. 만물이 그 대상이다. 그들과의 생명 관계에서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죽음을 너머의 영생을 희망한다. 그렇다고 죽음의 공포와 전율을 완전히 떨쳐버렸다는 건 아니다. 죽음을 기꺼이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다음에, 즉 구원받은 목사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