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경험과 시원성(3)

조회 수 1153 추천 수 0 2017.08.17 21:15:19

성찬, 빵과 포도주

대구샘터교회는 매월 첫 주일에 성찬식을 거행한다. 성찬식에서 필요한 물품은 빵과 포도주다.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는 예수의 몸과 피로 받아들여진다. 빵이 실제로 예수의 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믿는다. 로마가톨릭교회는 화체설을 주장한다. 사제가 빵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높이 들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는 축성을 하면 실제로 예수의 몸으로 변한다는 말이다. 포도주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개념인 질료와 형상의 관점에서 이런 교리를 내세운다. 빵이라는 질료가 예수라는 형상으로 인해서 실제로 예수의 몸이 된다는 논리다. 이 세상의 사물들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차원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논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예수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소립자가 지금 성찬대 위에 놓인 빵 안에 들어있다고 주장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럴 정도로 세상의 모든 것들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루터교회는 임재설을, 개혁주의교회는 기념설이나 상징설을 주장한다. 어떤 입장이든지 빵과 포도주의 시원적 깊이를 예배에서 경험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오묘하고 신통방통하. 우선 밀이 자라야 한다. 밀이 자라려면 최소한 물과 탄소와 태양빛이 필요하다. 흙은 모든 것의 토대다. 이런 요소들은 다 시원적인 것이다. 여기서 태양빛만 보자. 태양은 지구에서 15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초속 30만 킬로미터의 속도인 광속으로 달려도 지구까지 9분이 걸린다. 빛의 물리적 성질은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하다. 모든 물리적 성질은 이 둘 중의 하나이어야 하는데, 빛만은 다르다. 물은 입자다. 그래서 앞에 유리로 된 담이 있으면 물은 통과하지 못한다. 빛은 앞에 유리가 있어도 통과하다. 그러나 유리가 아닌 장애물이 있을 경우에 빛은 통과하지 못한다. 그래서 입자이면서 파동이라고 한다. 태양은 8개의 행성을 지닌 항성이다. 지구는 세 번째 행성으로 금성과 화성 사이에 자리한다. 지구에서 가장 크게 보이는 행성은 지구와 크기가 비슷한 금성이다. 태양은 은하계 안에 자리한 평범한 별이다. 은하계에는 1천억 개의 별이 모여 있다. 이런 은하계가 우주는 1천억 개가 있다. 우주가 더 큰지는 확인할 수 없다. 밀은 태양빛과 탄소와 물을 흡수해서 영양분을 만들어서 3-4개월 자란다. 태양빛만 받는 게 아니라 밤하늘의 달빛도 받는다. 나비와 벌과 새들이 그들의 친구다. 간혹 요정과도 대화할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싹이 나고 잎이 자라고 이삭이 트며 결실을 맺는다. 이런 과정 전체가 신비다. 오늘의 첨단 과학이라 하더라도 밀 이삭 없이 순전히 실험 도구만으로 실험실에서 밀을 생산해낼 수 없다. 생명 현상은 주어진 것이지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때가 되면 누군가 밀을 추수하고 제분하고 반죽하고 발효시켜서 구워낼 것이다. 성찬식에서 빵을 손으로 받는다는 것은 우주적인 사건이다. 시원적인 것이다. 사물에 들어 있는 시원적 깊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빵 한 조각만으로도 황홀한 기쁨을 맛볼 것이다. 이런 시원적 깊이야말로 성찬의 빵이 예수의 몸이라는 사실의 실질적인 의미다.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오묘하고 신통방통하다. 밀과 마찬가지로 포도 역시 태양빛과 물과 탄소가 필요하다. 여기서 물만 보자. 물은 액체다. 지구에 있는 사물은 세 가지 형태를 띤다. 그것 자체가 신비한 현상이다. 행성이나 위성의 어떤 것들은 기체로만 되어 있다. 물이 있는 행성은 없다. 간혹 금성이나 목성 등에서 물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는 하지만 그게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지구처럼 물이 오랫동안 보존된 행성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 메커니즘은 물을 필수로 한다. 외계인은 물 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구에는 물이 풍성하다. 지구 표현의 대부분이 물이다. 우리 몸도 70% 이상이 물이다. 지구의 물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주장들이 분분하다. 지구 밖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45억 년 전 처음 지구가 만들어졌을 때는 태양처럼 불덩어리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지금의 지구는 상전벽해라는 말도 모자랄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된 행성이다. 생명의 가득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물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물을 경험한다는 것은 시원적인 것이다. 온천욕, 설거지, 커피와 포도주와 맥주 마시기, 밥을 하고 국을 끊이는 모든 일상 행위에 시원적인 깊이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깊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물 한 잔만으로도 황홀한 기쁨을 맛볼 것이다. 이런 시원적 깊이야말로 성찬의 포도주가 예수의 피라는 사실의 실질적인 의미이다. 왜냐하면 성찬의 포도주를 통해서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와 있다는 사실과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참여하게 될 부활 생명을 여기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빵과 포도주는 지구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사물이다. 사물의 시원적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시원적 사유다. 이 시원적 깊이는 창조 신앙이 말하는 핵심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무로부터 창조(creatio ex nihilo)하셨다는 게 창조론의 기초다. 창조는 지금 과학자들이 하는 발견, 발명, 개량과 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창조가 무엇인지를, 즉 세상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아직 모른다. 아마 모른 채 인류 역사는 끝날 것이다. 지금도 창조는 보존되고 있으며, 종말에 완성될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과학철학 교수 장하석은 바로 그 대목을 도형으로 정확하게 설명했다. 전체 검은 부분에서 환하게 빛나는 동전 크기의 원이 과학의 역할이다. 과학적으로 아는 게 늘어날수록 모르는 게 더 많다는 사실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다 아는 이야기다. 그는 물이 100도에 끓는다는 원칙도 당연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하이데거는 노년에 들어서 신비주의적인 관점을 보였다. (, Ding)은 사중자(Gevierte- 넷을 가리키는 독일어)의 회집이라고 표현했다. 잔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부은 것의 선물 속에는 땅과 하늘, 신성들과 사멸할 자들이 체재한다. 이 네 가지는 자체로부터 볼 때 하나이지만 함께 속한다. 그들은 모든 임재자들보다 먼저 와서 하나의 유일한 사중자 속으로 겹쳐져 있다.”(사유와 존재, 234쪽에서 재인용). 여기 내 책상 위에 연필이 있다. 연필의 질료인 나무와 흑연은 땅에서 왔지만 동시에 하늘에서 온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신이 활동했으며, 결국 연필은 해체된다. 이런 네 요소들이 연필이라는 사물에 모여 있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설명이다. 동화처럼 들리겠지만 여기에 사물의 시원적 깊이가 드러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래서 코엘료도 연금술사에서 모래 한 알이 우주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사물의 시원성을 독특한 시적 언어로 표현한 김혜순 시인의 시 음식에 대한 예의의 일부를 소개한다. 그 시는 오래된 영화 <단포포>를 보면 일본 국수 먹는 법이 나온다.’로 시작된다. 이 시인에게 국수 먹는 것은 시원에 대한 경험이다. “ ... 다음은 음식 자체에 대한 예의/ 젓가락으로 국수가 담긴 표면을 어루만진다./ 특히 고기를 건드려 주면서 어루만진다./ 그다음 고기를 국물에 담가준다./ (그러면서 고기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조금 후에 뵙겠습니다, 라고 존칭으로 기도한다./ 면부터 먹는다./ 후루룩 소리를 내어 예를 표한다./ 면을 먹으면서도 애정을 담아, 고기를 응시하는 걸 잊지 않는다.//... 나는 내게 와서 내게 먹는 것이 된 것들의 두려움을 함께 먹는다./ 그들의 두려움은 내 불안이 되었을 거다./ 내 몸 속에 들어와 내 시간이 된 것들의 비명과 공포와 불안을 생각한다./ ... ” 


지구 안의 모든 사물은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무게를 지닌다. 장자는 하루살이와 코끼리의 무게가 동일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물을 숫자로 계량하는 방식으로 대하기 때문에 결국 사물의 시원적 깊이를 놓치고 있다. 그런 깊이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시급한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데만 떨어지는 삶은 결국 의미 충만성을 얻기 힘들 것이다. 특히 하나님을 창조자로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행위로 보아야 한다. 낙엽, 곤충, 거품 등등, 모든 사물이 전혀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 신앙의 중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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