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시선

조회 수 1127 추천 수 0 2016.10.28 21: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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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시선

 

한국 물리학회 정기 학회가 열리는 자리에 목사가 초청받아서 창조를 주제로 강의, 또는 설교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거기 모인 사람들은 빅뱅과 우주 팽창설과 초끈이론과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목사는 그들처럼 우주와 물리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지만, 그리고 그들이 그런 걸 목사에게 원하지 않겠지만, 성서가 말하는 세계와 우주와 그 기원과 완성에 대해서 오늘날 밝혀진 과학 이론에 어긋나지 않도록, 그러나 고유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무로부터의 창조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조리 있게 설명하면 그들이 모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외면하지도 않을 것이다. 남북통일 문제와 동성애 문제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전쟁과 폭력 문제에 대해서도 성서와 기독교 신학에 근거해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듣고 교회 회중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공의 삶과 기독교 신앙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작업이 간단한 게 아니다. 아무도 완료된 답을 아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신학공부는 계속 필요하다. <목회자라는 무엇인가>의 저자들은 그걸 공적 시선이라고 말한다

 

목회자-신학자가 된다는 것, 즉 공중 앞에서 하나님에 관해 말한다는 것은 공적 시선을 직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목회자-신학자가 처한 곤경이다. 즉 공적 담론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하나님에 관한 진리 주장을 하는 것이다. 목회자-신학자인 칼 바르트는 이 곤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목회로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며, 따라서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여기서 바르트는 인간 언어와 이성의 한계에 대해 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주장을 할 만한 권위를 설명하고자 할 때의 어려움에 대해서 지적한다. 어떤 피조물이 창조주에 대해 말할 만한 자격을 갖출 수 있겠는가? 감히 우리가, 아니 그 누가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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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웃음

2016.10.28 23:03:05

목사님 저는 생각이 약간 다릅니다.

그들중에 목사님처럼 말씀하시는 공적시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은 인문학적인 생각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공연하게 그렇게 말합니다. 

인문학적 생각을 공공연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적생각은 과학적생각과 다르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적인 질문이나 답변을 상당히 무시하며 반대합니다.

우리입장에서나 공적시선이지 그들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인문학적 상상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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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10.29 21:16:53

웃음 님이 말하는 '그들'은 자연과학자들을 가리키지요?

그들이 만족할만한 대답을 목사-신학자가 제시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우리쪽에서는 계속해서 그런 대답을 찾아나서야 할 겁니다.

그런 보편적인 대답을 통하지 않고서는 선교는 불가능할 테니 말입니다.

원래 기독교 신학은 그런 보편적 변증의 길에서 시작했어요.

자연과학자들이 인문학적 사유를 거부한다는데,

과학철학도 있잖아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은 결국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하고 완성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라고 한다면

이런 융합의 길에 마땅히 한몫 해야겠지요.

[레벨:21]주안

2016.10.28 23:30:30

하나님은 진리이기에,

신학자든 과학자든 결국 거기에 도달하겠지요

지금은 탐구과정이기에

서로 다른 주장이 있는게 당연하겠지요.

공적 시선도 누구나 가져야 하는데

바른 시선(공의)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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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10.29 21:19:51

예, 하나님은 진리이고,

거꾸로 진리가 하나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연과학으로 하나님의 자리가 흔들린다면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닐 것이며,

그런 하나님이라고 부정되어야겠지요.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더라도 그런 때는 오지 않을 겁니다.

자연과학은 세상을 규정하려고 하는 반면에

하나님은 그런 규정에서 벗어나는 존재이니까요.

우리가 해를 등지고 달려갈 때

아무리 빨리 달려도 자기 그림자를 앞설 수는 없는 거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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