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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바울의 생애와 신학을 전반적으로 검토할 필요는 없다. 그의 예수 경험만 따라가면 된다. 사도행전(9장)은 바울이 예수 추종자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의 예수를 환상으로 경험한 뒤에 회심했다고 전한다. 다메섹을 가던 중에 갑자기 나타난 빛 현상과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는 소리에 대한 사도행전의 이 보도는 역사적인 팩트는 아니다. 일종의 종교 경험의 은유다. 바울이 예수 추종자들을 박해하다가 부활의 예수를 만난 경험 뒤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갈 1:13-17 참조). 그는 예수 부활의 증인 목록을 전하면서 자기 이야기도 한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8).
부활의 예수가 자기에게 보였다는 바울의 진술만으로 바울의 예수 경험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내기는 어렵다. 복음서에는 제자들의 예수의 부활에 관한 경험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죽기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갖춘 형태로 제자들에게 예수가 나타났다. 심지어는 부활의 예수가 생선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제자들에게 나타난 바로 그 예수가 바울에게 그대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바울은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에 교회 구성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에 따르면 승천하신 예수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며, 마지막 때 다시 오시기로 되어 있다. 바울에게 나타나기 위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우편 자리를 잠시 비웠을 리는 없다. 더구나 바울은 예수 생전에 예수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부활의 예수 경험은 이미 예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난 사건이었다. 당시 기독교 주류 세력이 바울의 회심과 자칭 사도직 주장을 미심쩍어했다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바울은 정말 부활의 예수를 만난 것일까? 혹은 다른 사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 작은 경험을 과대 포장한 것은 아닐까?
오래전에 한적한 시골에 살때 비오는 날 밖에서 "사모님 사모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나가보니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우산을 쓰고 제 아내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아내가 대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하고 있던때라 "학교에 갔습니다." 하고 말했더니
"그러면 이거를 사모님에게 전해주세요" 하고 봉투 하나를 주시고 그냥 가셨습니다.
저는 문을 닫고 들어왔다가 이름도 안 물어본 것이 생각 나 얼른 다시 나갔더니 할머니가 안 보이셨습니다.
1분? 집에서 큰길이 있는 언덕까지 올라가려면 1분은 훨씬 더 걸립니다. 중간에 다른데로 빠지는 길이 없어서
바로 언덕까지 가야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안 보였습니다.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 찾아보고 큰길을 따라
정류장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할머니는 안보였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가신것일까요?
봉투에는 아침에 아내가 10만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었는데 딱 1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가 '천사'였다고 믿습니다. 이 세상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의 다마스커스 경험이 저는 저의 경험처럼 그렇게 이해가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