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과 죄

조회 수 1116 추천 수 0 2017.03.28 21: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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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과 죄

 

지난 설교 성경 본문인 요 9장은 선천성 시각장애인을 둘러싼 이야기다. 제자들은 누구의 죄냐?’ 하고 물었다. 설교에서 설명했듯이 이건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자네 잘못을 인정하라.’고 한 말과 마찬가지로 당시 유대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재앙의 원인을 죄로 보았다. 그것의 정점은 창세기의 타락 설화에 나온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한 죽음이다.

성서가 인간의 죄로 인해서 재앙과 죽음이 인간 운명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더 깊은 차원에서는 다른 것을 말한다. 그 차원은 인간의 재앙과 죽음이라는 운명은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걸 숙명주의로 보면 안 된다. 숙명주의는 거기에 완전히 예속되고 말지만, 그래서 삶을 어둡게 보지만, 성서가 말하는 죄 개념은 오히려 그것에 대한 저항을 말한다. 그래서 삶을 밝게 보는 것이다.

인간의 삶과 거기에 얽힌 사연들은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불문하고 너무 깊어서 우리가 다 밝혀낼 수가 없다. 칼 융이 말하는 무의식의 그림자가 그것일지 모른다. 성서는 나쁜 일의 그 심연을 가리켜 죄라고 말한다. 예수는 시각장애를 고침으로써 재앙과 죽음을 숙명주의가 아니라 은총의 차원으로 돌렸다. 그 예수를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은총의 빛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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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안개, 가을비 file [5]

  • 2016-11-18
  • 조회 수 1135

11월18일, 금 안개, 가을비 오늘 아침 평소처럼 7시에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우리집 식당은 거실 겸해서 가족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거실이 우리집에는 없다. 한 마디로 우리집 구조는 해괴하다.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카페도 아닌 것이, 일반 주택도 아니고, 연구소도 아닌 것이, 수도원도 아니다.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순서 없이 짓다보다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고, 나름으로 운치도 있다. 몇 군데 리모델링을 마음먹고 있는데, 집사람과 의견이 달라서 시작을 못하...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3]

  • 2016-10-24
  • 조회 수 1135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10월23일, 창조절 여덟째 주일, 10월23일 1) 저는 아내와 함께 9월19일에 출발해서 10월20일에 돌아오는 한 달간의 안식월 독일 여행을 마쳤습니다. 교우들의 기도와 염려 덕분으로 아무런 사고 없이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독일 교회 예배에 회중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다가 오늘(10월23일) 설교자로 서니 부담감도 컸고, 기쁨도 컸습니다. 우리말로 예배를 드린다는 게 이렇게 편안한 건지 새삼 더 절감했습니다. 찬송도 그렇습니다. 독일 교회에서 회중들은 찬송을 부르는 둥 마는 둥 합니...

씨의 현재

  • 2015-06-16
  • 조회 수 1135

6월16일 씨의 현재 식물은 대개 씨가 있다. 씨가 없는 식물도 있는지, 나는 모른다. 꽃이 있으면 씨가 맺힌다. 아카시아도 꽃이 피고 씨가 맺힌다. 씨는 식물과 나무가 생명을 연장하는 통로다. 씨를 통해서 자신을 복제하는 거다. 사람도 역시 씨를 통해서 후손을 번식시킨다. 인간의 난자와 정자도 결국 씨가 아닌가. 씨도 모양과 크기가 가지각색이다. 내가 지난봄에 구입한 해바라기 씨는 제법 컸다. 러시안 해바라기는 1.5센티 정도 되어 보였다. 작년 가을에 몇 종류의 씨를 받아두었다. 봉숭아, 분꽃, 코스모스다. 씨는 생...

교양, 또는 여흥 [4]

  • 2016-04-06
  • 조회 수 1134

4월6일 교양, 또는 여흥 ‘부활의 증인’이라는 말은 비장하게 들린다. 설교에서 설명한 것처럼 헬라어 ‘마르투스’는 증인이면서 동시에 순교자라는 뜻이다. 극한의 경쟁에 내몰리거나 삶을 편안하게 즐기려는 현대인들에게 부활의 증인이라는 말은 가슴에 와 닿기 힘들다. 많은 경우에 신앙생활도 교양의 수준으로, 더 심하게는 여흥의 수준으로 떨어진다. 입담 좋은 멘토의 힐링 캠프에 참석하는 기분으로, 또는 티브이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나 프로 야구장에 가는 기분으로 받아들인다. 교양과 여흥은 단순히 재미를 우리에게 제...

누가복음 톺아읽기 276

  • 2021-11-23
  • 조회 수 1133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276, 눅 15:11~32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1) https://youtu.be/mvTIQvK5RBE

누가복음 톺아 읽기 154

  • 202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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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154, 눅 6:20 https://youtu.be/T1hyadVpvIU

예수 어록(034) 요 3:10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 2019-01-18
  • 조회 수 1133

예수 어록(034) 요 3:10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니고데모는 예수에게 성령으로 거듭하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고 다시 질문한다. 니고데모가 실제로 알아듣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개념에 대한 설명을 더 정확하게 듣고 싶어서 일부러 질문한 것인지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대충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지만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지식인답게 대화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한복음 뒤편으로 가면 니고데모가 몇 번 ...

초청 거절 [1]

  • 2016-09-02
  • 조회 수 1133

9월2일 초청 거절 눅 14장에는 잔치와 식사 초대에 대한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세 가지 나온다. 앞의 두 가지가 설교 본문이었다. 세 번 째 이야기는 앞의 두 이야기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어떤 사람이 잔치를 열고 미리 초청장을 보냈던 이들을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종들을 보냈다. 그들은 다 참석할 수 없는 핑계를 대고 점잖게 거절했다. 나는 밭을 샀으니 거기 가봐야겠다. 나는 열 마리 소를 샀다. 나는 장가를 들었다. 다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다. 이런 일들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

공적 시선 [4]

  • 2016-10-28
  • 조회 수 1132

10월28일 공적 시선 한국 물리학회 정기 학회가 열리는 자리에 목사가 초청받아서 창조를 주제로 강의, 또는 설교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거기 모인 사람들은 빅뱅과 우주 팽창설과 초끈이론과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목사는 그들처럼 우주와 물리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지만, 그리고 그들이 그런 걸 목사에게 원하지 않겠지만, 성서가 말하는 세계와 우주와 그 기원과 완성에 대해서 오늘날 밝혀진 과학 이론에 어긋나지 않도록, 그러나 고유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무로부터의 창조’와 요한계...

모두 죽는다(5)

  • 2015-10-12
  • 조회 수 1132

10월12일 모두 죽는다(5) 사람은 ‘모두’ 죽는다. 예외가 없다.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나 못사는 나라 사람이 다르지 않다. 착한 사람과 못된 사람 사이에도 차이가 없다. 부자라고 해서 죽음이 피해가지 않고, 거꾸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죽음이 피해가지 않는다. 교황도 죽고, 노숙자도 죽는다.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실하게 인식할 수만 있다면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삶이 피곤한 사람들도 이 사실로 인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거꾸로 삶이 즐거운 사람들도 이 사실로 인해서 교만하지 ...

9월9일 오병이어 (46) [1]

  • 2007-09-08
  • 조회 수 1132

2007년 9월9일 오병이어 (46)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어제 묵상에서 묻어두었던 두 질문을 다시 꺼내겠습니다. 첫째,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관심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결국 똑같은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기적 행위자로 복음서에 묘사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이 복음서의 중심은 아닙니다.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말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예수님과 연관된 모든 사건이나 현상을 이해하는 단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

예수 어록(005)- “와서 보라!”(2)

  • 2018-12-08
  • 조회 수 1132

예수&로고스 005- 요 1:39(2) “와서 보라!”(2) ‘와서 보라.’는 문장은 동사 두 개의 결합이다. 하나는 ‘오라.’다. 기독교 신앙의 시작은 일단 예수에게 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것도 옳다. 예수의 복음 전하려면 일단 그 복음 공동체로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 한다. 예수에게 온다는 말은 더 근본적인 것이다. 참된 것에 대한 열망이다. 이것이 없으면 교회에 나오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냥 교회 구성원이 늘었다는 의미일 뿐이다. 예수에...

누가복음 톺아 읽기 317

  • 20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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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317, 눅 21:20~28 인자의 날(2) https://youtu.be/tAF8aJ47x2s

목사 구원(122) [2]

  • 2018-06-20
  • 조회 수 1130

(122) 요한 시대는 로마 황제가 창조주나 마찬가지였다. 도미티아누스 황제(기원후 51-96년)로 알려져 있다. 도미티아누스만이 아니라 여러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했다.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황제숭배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았다는 데서 기독교와 로마 제국과의 갈등을 이미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 의해서 4세기에 국교로 지정되면서도 매 주일마다 예배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문장을 신앙고백으로 바쳤다. 당시 ...

목사 구원(16)

  • 2018-01-23
  • 조회 수 1130

(16) 삼위일체 개념은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일상에서 경험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양태론으로 떨어지기가 쉽다. 삼위일체 개념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기독교의 중심 교리가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만 해도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삼위일체 개념을 가장 거칠게 한 마디로 하면 아버지, 아들, 영이 위격(페르조나)으로는 구분되나 본질(우시오스)로는 하나라는 것이다. 위격과 본질에 대한 이해가 여기서도 필수다. 어쨌든지 삼위일체 관점에서 기독교가 성령을...

성탄절(3)

  • 2017-12-28
  • 조회 수 1130

12월28일, 목 성탄절(3) 성탄절을 우리가 특별하게 기념하는 이유는 예수가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호칭한다. 이런 표현이 어떤 이들에게는 어색하게 들릴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기에 자녀를 둘 수 없다. 그런데도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라든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종종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밀착된 관계가 부모와 자식이다. 자녀는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적이다. 예수가 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될 정도로 특별한 존재인가? 근거가 무엇인가? ...

예수 어록(389) 요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 2020-08-04
  • 조회 수 1129

예수 어록(389) 요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예수는 발언을 이어간다. “왜 내게 묻느냐?” “내 말을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안나스가 묻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이 수하에 있는 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확실한지 확인하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의 발언에서 실수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추정할 뿐이지 확실한 이유는 우리가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안나스의 질문이 요식 행위라는 것이다. 안나스로 대표되는 산헤드...

목사 구원(81) [2]

  • 2018-04-24
  • 조회 수 1129

(81)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왜 자유를 얻는 첩경인지에 대한 앞에서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기독교 신앙에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다. 이 질문도 역시 한 번의 대답을 얻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한 끝까지 이어져야 한다. 예수와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서 얻은 자유가 실제 삶의 능력으로 나타나야하기 때문이다. 인식 자체가 능력은 아니지 않은가. 신앙의 연륜을 많이 쌓은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런 질문 과정에 단단히 사로잡히지 않으면, 그가 목회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삶의 능력을 얻지 못...

예수 어록(342) 요 15:17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 2020-05-29
  • 조회 수 1129

예수 어록(342) 요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을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사랑하는 말이 예수의 고별 연설을 다루는 이 대목에서 반복해서 나온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 상투적으로 들린다. 요즘도 “성도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 사랑의 열매를 통해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식의 발언을 종종 듣는다. 이런 발언은 아무리 상투적인 발언이라고 해도 우리의 삶과 신앙을 살리는 능력이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면서 삶의 현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우리가 운전면허...

누가복음 읽기 003 [2]

  • 2020-11-05
  • 조회 수 1128

대구 성서 아카데미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읽기』 003, 눅 1:5-7 https://youtu.be/yBaV7uGaU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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