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히 여기소서!

조회 수 1125 추천 수 0 2017.11.15 22: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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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히 여기소서!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멀찍이 보고서 소리를 지른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병환자들의 이런 외침은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들은 예수가 누군지 몰랐을 것이다. 불쌍히 여겨달라는 말은 자신들을 구원해달라는 뜻이다. 그들의 구원은 곧 병 치료다. 누군지 모르는 대상에게 그런 걸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미 그곳에 널리 퍼진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들이 도움을 요청한 것일 수는 있다.

나병환자들은 절체절명의 상황에 떨어진 이들이다. 당시 그들은 인간사회에서 격리되어 있었다. 정기적으로 먹을거리만 배달받으면서 외딴 곳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지냈다. 어쩔 수 없이 마을로 들어와야 할 경우에는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아야 했다. 자기 스스로 피하기도 했지만 나는 부정하다.’는 고함을 쳐서 사람들이 자신을 경계하게 했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부정당한 사람들이다.

고대인들에게 나병은 천형이었다. 문제는 나병과 일반 피부병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었다. 그냥 집에 머물러 있으면 자연 치유될 수 있는 사람도 나병환자들 틈에 끼어서 피부질환이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 당시에 나병이나 피부병의 완치 여부는 제사장이 결정했다. 본문(17:14)에서 예수가 그들에게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마을에서 격리된 나병환자 열 명의 운명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 어디에서도 구원을 기대할 수 없는 실존에 놓여 있었다. 그런 상황으로부터 구원의 빛은 비친다. 예수에게 왔던 이들은 모두 그런 이들이다. 몸의 절망이든지 영혼의 절망을 경험한 이들이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구원의 빛을 경험할 수 없다. 이게 궁극적인 아이러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애를 쓰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구원에서 멀어진다. 그렇다면 구원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도 정망적인 상황에 떨어져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영혼의 문제다.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의 심정,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산다는 세례의 영성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 기댈 대상이 없어서 순전한 마음으로 예수를 향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영혼의 절규를 쏟을 줄 아는 사람, 그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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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톺아읽기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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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톺아읽기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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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276, 눅 15:11~32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1) https://youtu.be/mvTIQvK5RBE

누가복음 톺아 읽기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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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154, 눅 6:20 https://youtu.be/T1hyadVpvIU

예수 어록(107) 요 5:47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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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005)- “와서 보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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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034) 요 3:10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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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3)

  • 201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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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톺아 읽기 317

  • 20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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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317, 눅 21:20~28 인자의 날(2) https://youtu.be/tAF8aJ47x2s

목사 구원(81) [2]

  • 2018-04-24
  • 조회 수 1129

(81)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왜 자유를 얻는 첩경인지에 대한 앞에서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기독교 신앙에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다. 이 질문도 역시 한 번의 대답을 얻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한 끝까지 이어져야 한다. 예수와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서 얻은 자유가 실제 삶의 능력으로 나타나야하기 때문이다. 인식 자체가 능력은 아니지 않은가. 신앙의 연륜을 많이 쌓은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런 질문 과정에 단단히 사로잡히지 않으면, 그가 목회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삶의 능력을 얻지 못...

목사 구원(16)

  • 2018-01-23
  • 조회 수 1129

(16) 삼위일체 개념은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일상에서 경험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양태론으로 떨어지기가 쉽다. 삼위일체 개념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기독교의 중심 교리가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만 해도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삼위일체 개념을 가장 거칠게 한 마디로 하면 아버지, 아들, 영이 위격(페르조나)으로는 구분되나 본질(우시오스)로는 하나라는 것이다. 위격과 본질에 대한 이해가 여기서도 필수다. 어쨌든지 삼위일체 관점에서 기독교가 성령을...

9월9일 오병이어 (46) [1]

  • 2007-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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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9일 오병이어 (46)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어제 묵상에서 묻어두었던 두 질문을 다시 꺼내겠습니다. 첫째,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관심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결국 똑같은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기적 행위자로 복음서에 묘사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이 복음서의 중심은 아닙니다.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말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예수님과 연관된 모든 사건이나 현상을 이해하는 단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

예수 어록(389) 요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 2020-08-04
  • 조회 수 1128

예수 어록(389) 요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예수는 발언을 이어간다. “왜 내게 묻느냐?” “내 말을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안나스가 묻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이 수하에 있는 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확실한지 확인하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의 발언에서 실수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추정할 뿐이지 확실한 이유는 우리가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안나스의 질문이 요식 행위라는 것이다. 안나스로 대표되는 산헤드...

예수 어록(342) 요 15:17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 2020-05-29
  • 조회 수 1128

예수 어록(342) 요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을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사랑하는 말이 예수의 고별 연설을 다루는 이 대목에서 반복해서 나온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 상투적으로 들린다. 요즘도 “성도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 사랑의 열매를 통해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식의 발언을 종종 듣는다. 이런 발언은 아무리 상투적인 발언이라고 해도 우리의 삶과 신앙을 살리는 능력이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면서 삶의 현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우리가 운전면허...

누가복음 읽기 003 [2]

  • 2020-11-05
  • 조회 수 1127

대구 성서 아카데미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읽기』 003, 눅 1:5-7 https://youtu.be/yBaV7uGaU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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