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4일, 토
베드로의 송영
벧전 5:11절은 앞의 내용에 대한 총괄이다.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 권능은 물론 하나님이다. 그분의 능력은 우리를 강하게 하신다. 그 하나님의 능력이 영원무궁하기를 빌고 찬양한다. 이런 기도와 찬양은 초기 기독교의 기도와 예배에서 반복되었고, 이런 전통은 오늘에까지 이어진다.
현대인들은 세속 권력에서 삶의 힘을 느낀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돈과 명예가 없으면 삶이 피곤해진다. 그것에 완전히 초연해서 살기는 어렵다.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것이 무제한적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교회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순전히 복음에 대한 열정만으로 교회를 성장시키는 목사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교회가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교회를 급성장시킨 목사는 기업을 크게 키운 기업 오너처럼 그것 자체에 만족감을 느낀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권능에 자신의 영혼을 건다는 건 두 가지 경우 중에 하나다. 1) 아무리 세속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해도 잘 안 되니 자기 합리화에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포도가 시어서 먹지 못할 거야, 하고 높은 곳에 달린 포도를 따먹지 못한 여우가 자기 합리화에 떨어진 경우와 비슷하다. 2) 실제로 하나님을 ‘힘’으로 경험하는 경우다. 여기에는 삶에 대한 전혀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고유한 방식으로 행하시는 구원에 영적 감수성이 예민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다시 바르트 버전으로,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랑을 ‘실제로 믿으라.’ 그게 그분의 능력이고, 그 능력이 우리를 강하게 한다. 내일 성령강림주일이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힘을 경험하는 날이 되기를 빈다.
하나님을 실제 '힘'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의 철저한 무력함에서 하나님의 선(하나님의 용납하심)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는게 아닐지.. 저의 경험을 반추해 봅니다.
헨리나우웬은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에서다음과 같은 주옥같은 글을 남겼는데요.
제가 인용해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진정한 도전은, 중심으로 곧 마음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어떤 사람의 목소리도 해줄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인정해 주시는 부드러운 음성을 발견하라는 것이다.모든 사역의 기초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받는 자녀로서 끊임없이 무제한적으로 받아주셨다는 것을 경험하는 일이다.그것은 너무도 충분하고 아주 완전하고 포괄적인 용납이라서, 남의 눈에 띄고칭찬을 듣고 감탄을 얻고자 하는 강박 의식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며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섬김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를 따르게 해준다."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랑의 경험속으로 푹 빠지고 싶습니다. 이보다 더 큰 자유가 있을까요?
내일 목사님 말씀속에서 경험하기를 열린 마음으로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