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6일, 수
백건우(4)
“저는 본래 질투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가치가 있고 그 사람들이 저와 얼마나 다른지 아니까요. 피아니스트들은 각자 다른 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질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어의 질문이 어리석었다. ‘다른 피아니스트에게 질투를 느낀 적은 없나요?’ 질투는 아주 강렬하고 보편적인 것이라서 평범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예술가와 종교 전문가들에게도 일정하게 나타나기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70이 넘은 노 피아니스트에게 던질 질문은 아니었다. 백건우는 우문현답을 했다. 피아니스트들은 각자 다른 세계를 갖고 있으니 질투를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세계’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겉으로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그 내면으로 들어가면 다르다는 뜻이다. 만약 콩쿠르에서 경쟁하는 관계라면 질투할 수도 있다. 어느 대학교에 교수 채용을 목적으로 한다면 당연히 질투가 일어난다. 서로 똑같은 세계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다르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피아니스트가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일상에서 보자. 모든 사람들이 각각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달라질 것이다. 각자 자기의 세계를 살아가면 되니까 갈등이 벌어질 수 없다. 목표가 같다는 데에서 문제가 일어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독서에서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다면 그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바람 소리에서만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다면 다른 사람을 질투할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늘 모든 사람이 주로 돈만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니 질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교회생활도 그렇다. 목사도 마찬가지다. 그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데서 목회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다면 다른 교회와 경쟁할 필요는 없다. 자기의 고유한 영적 깊이에서 설교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대중 설교자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고수의 북소리에 따라서 춤을 추지 말고 각자 다른 고수의 북소리에 맞춰서 춤을 추게 하라는 소로우의 말이 기억난다. 다 통하는 말이다.
'다른세계' 멋집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궁극의 목적으로 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