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간(5)- 비종교화(1)

조회 수 4273 추천 수 1 2010.05.08 23:19:04

 

끊임없이 나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도대체 기독교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며,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다. 이런 질문을 이제 신학적인 말이건, 신앙적인 말이건 말에 의해서 말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내면성과 양심의 시대, 즉 일반적으로 종교의 시대(die Zeit der Religion)도 지났다. 우리는 완전히 무종교의 시대(völlig religionslose Zeit)를 맞고 있다. 이제 자연적인 인간은 이미 단순히 종교적인 인간이 될 수 없다. 종교적이라고 보이는 사람들도 결코 그것을 실제의 행위에서 나타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적이라는 말을 무언가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1900년에 걸친 기독교 선교와 신학은 인간의 종교적 선험성 위에 세워져 있다. 기독교는 항상 종교의 한 형식이었다. 그런데 이 선험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언젠가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제약을 받은 잠정적인 인간의 한 표현 형식이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인간이 정말 철저하게 무종교적으로 된다면, -내가 보기에는 그 시대가 이미 왔는데- 기독교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기독교의 모든 기반이 무너지고, 다만 소수의 ‘최후의 기사들’, 혹은 지적으로 불성실한 사람들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는 종교적으로만 상대할 수 있을 뿐이다. <중략> 내 물음의 핵심은 다음이다. 그리스도는 무종교자의 주(主)도 될 수 있을까? 무종교적 그리스도인이 가능할까? 무종교적 기독교는 무엇인가? 바르트는 이런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한 유일한 사람이지만, 그도 이 생각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지는 못하고, 계시 실증주의로 빠지고 말았다.(1944년 4월30일)

 

     본회퍼 신학의 키워드가 ‘비종교화’라는 사실을 그대는 알고 있을 거요. 일전에 그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소. 위 편지에서 그 문제가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소. 본회퍼는 현대를 ‘무종교의 시대’(religionslose Zeit)라고 정의했소. 그의 진단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또한 그가 말하는 종교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더 논의해야 하오. 일단 방향은 옳소. 지금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대개 종교적인 선험성으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보는 게 맞소. 본회퍼의 설명에 따르면 그런 이들은 대개 지적으로 불성실한 사람들이오. 열광적으로 기독교를 지키려는 ‘최후의 기사들’이오. 그들은 교회에서 떠밀어도 교회를 떠나지 않소. 떠나면 죽는 줄 안다오. 한국교회 안에 이런 이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기에 망령된 발언들이 교회 강단에서 반복된다오. 본회퍼가 비종교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기독교가 끝장났다는 사실을 까발리려는 게 아니라 비종교 시대의 그리스도가 누구냐를 말하려는 데 있소. 이 문제는 앞으로 천천히 더 이야기 합시다. 오늘은 주일 전날이니 주일을 맑은 정신으로 보내기 위해서라도 일찍 주무시구려. 오늘은 한국에서 어버이 날이었소. 다른 나라에서도 어버이 주일을 지키는지 모르겠구려. (2010년 5월8일, 토요일, 후덥지근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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