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7일 하나님의 나라 (4)

조회 수 4231 추천 수 35 2006.05.08 00:02:13
2006년 5월7일 하나님의 나라 (4)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우리는 점점 신학적인 사유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중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했다는 말이 됩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이 선포한 그 하나님의 나라와 그 통치를 예수님과 일치시켰습니다. 어느 신학자의 표현처럼 선포자가 선포된 자와 아이덴티파이 되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상으로 선포했는데, 초기 그리스도교에 의해서 그 대상이 주체와 하나가 된 겁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일치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인식은 어떤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예수님이 하나님을 보았다거나 하나님이 자신을 증거 한다는 진술이 이에 대한 증거일 수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런 진술만으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그리스도교의 주장에 어떤 진리론적 근거가 확보되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 일어났던 사건들이 그런 증거일지 모르겠습니다. 병자가 치료된다거나 오병이어의 기적이 발생했다는 사실들 말입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그런 사건들을 설명하면서 분명히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메시아는 곧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고대 시대에 흔한 일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기적은 오늘 우리의 일반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그런 초자연적 사건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기적보다도 십자가가 더 결정적인 사건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인간 구원의 메시아적 징표이니까요. 그러나 십자가는 아주 일반적인 사건 중의 하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로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사건을 예수님과 하나님의 동일화에 대한 절대적인 조건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예수님의 공생애는 새롭게 조명받았습니다. 그 이전까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예수님의 가르침과 십자가 사건이 구원론적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복음서는 부활 이전의 사건보도와 부활 이후의 해석보도로 구분됩니다. 그 밑바탕에는 기본적으로 부활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예수의 부활에 관해서 자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부활체로 경험했다는 사실이 그를 메시아로 고백하고,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단초였다는 것만 확인한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는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이 아직 완전하게 증명되지 못했습니다. 아마 종말까지 이런 논쟁은 계속될 겁니다. 이 문제가 여전히 논쟁적이라고 해서 그리스도교의 진리성이 근본적으로 훼손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자신을 이렇게 진리논쟁의 중심에 내놓을 때만 그리스도교는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은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종교도, 그 어떤 학문도, 그 어떤 과학도 최종적인 진리로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근거이며,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온 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이런 건 “믿습니다.”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진리의 토대에서 해명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사실에 동의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런 진리논쟁에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서 오늘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 예수님이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며, 통치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아멘.

이길용

2006.05.08 00:40:53

저는 요즘 예수의 하느님 나라를 '수양론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마 다음 학기 쯤 되면 논문 하나로 완성하려고 하는데.. 잘 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신학논문은 아닙니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와 수운의 시천주를 수양론적 시각에서 재해석하고자 합니다. 제 의도가 제대로 성공할런지도 잘 모르겠지만.. 존재론적 종교읽기에 치우친 작금의 상황에 조그마한 변화라도 줄 요량으로 그리 해 볼까 합니다.

[레벨:0]riveroad

2006.05.08 07:57:52

목사님의 "하나님 나라"묵상은 비기독교인들에게 보내는 참 진솔한 기독교로의 초대장으로 보입니다. 물론, 초보기독교인인 저도 무지 관심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도 자기 분야를 벗어나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타분야의 연구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면서도 그 깊이와 정확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며 진지한 논문은 아주 극찬을 받는답니다. 제발, 종교분야일수록,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아는 사람은 다른 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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