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기

조회 수 4605 추천 수 0 2014.01.06 22:46:09

 

1월6일(월)

 

힘 빼기

 

힘 빼기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테니스 구력 35년이 되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테니스에 견주어 설명하는 게 좋겠다.

테니스를 잘하려면 다음의 십계명에 유의해야 한다.

1) 기본기를 정확하게 익힐 것

2) 일정한 기간에는 구장에서 살다시피 할 것

3) 운동 전후 스트레칭을 충분히 할 것

4) 팔만 휘두르지 말고 몸 전체를 쓸 것

5) 공이 오는 길을 예측하고 미리 준비할 것

6) 공의 실밥이 보일 정도로 끝까지 볼 것

7) 근력 운동을 병행할 것

8) 하수와 게임할 때도 최선을 다 할 것

9) 고수와 게임할 때도 주눅 들지 말 것

10) 마지막으로 힘을 뺄 것

 

가장 중요한 항목을 선택하라면 6번이다.

이게 쉽지 않다.

초보자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단계에 오른 분들도,

오히려 익숙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을 대충 본다.

나 역시 지금도 게임을 하는 중간에

‘볼을 봐야지!’ 하고 스스로에게 주문하다.

그게 잘 안 되기 때문이다.

 

10번 ‘힘 빼기’도 아주 중요하다.

이게 실제로는 6번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모든 항목이 힘을 빼는 것과 다 연결된다.

이게 어려운 이유는

힘을 무조건 빼는 게 아니라

뺄 때와 넣을 때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윙의 전 과정에서 힘이 없으면

공이 나가지 않는다.

임팩트 순간에는 힘이 강할수록 좋다.

 

설교의 힘 빼기를 말하려고 하다가

공연히 테니스 이야기만 하고 말았다.

이상하다.

나는 테니스 이야기만 나오면 교만해진다.

뭔가를 잘 아는 것처럼 떠든다는 건

힘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이제 나이도 들고 했으니 테니스를 겸손하게 대해야겠다.

 

설교에서 힘을 뺀다는 말은 청중들을 감동시켜야겠다는,

우리 식으로 말해 은혜를 끼쳐야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청중들이 자신의 설교에 감동을 받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것이

설교자가 빠지기 쉬운 시험이다.

그런 욕망이 앞서다보니 힘이 들어가게 되고.

청중들이 감동받을만한 이야기를 찾게 된다.

한국교회 설교에 예화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감동적인 설교가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스피치 능력도 필요하다.

문제는 인위적으로 설교 행위를 과대 포장하는 데에 있다.

힘 빼고 그냥 말씀의 호흡에 나 자신을 맡기면서

일년 동안 설교 사역을 감당해보자.


[레벨:18]부스러기 은혜

2014.01.07 00:17:11

목회자가 설교를 듣는, 듣고 나가는 교인들의 표정에 초연한 채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온전히 맡겨야 하듯이
설교를 듣는 교인들 또한
그 설교를 통해 감동과 뜨거운 도전을 받기를 고대하고 설교를 듣는것도 건강한 믿음은 아닌지요?

소위 오늘 은혜를 받았느니, 못받았느니
스스로의 판단으로 뜨거워지고, 냉랭해지고...
하는,
설교를 통해 오늘 아무런 영혼의 울림이나
도전 받는것 없이 돌아갈때면
2% 부족한 공허함을 가진채 돌아가게 되지요

오늘 내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그 분이 간섭해주시고 역사해주시기를
고대하는 간절함 또한 자기 열심, 자기 감정에의 도취라 할수있는지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4.01.07 11:31:36

옳습니다. 
설교 행위에는 감동이, 뜨거움이, 은혜가 있어야지요. 
그게 없으면 예배도 아니지요. 
그걸 제가 부정하지 않는다는 건, 아실 거구요. 
아바도가 지휘한 베르디의 <레퀴엠>을 보고 
얼마나 큰 감동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음악에 몰두하면서,
마치 돌고래가 물에서 유영하듯이 음악에서 노니니
자연스럽게 음악적 감동이 청중에게 전달되는 거지요. 
그걸 기대하고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거는 바람직하고, 필요합니다.
 

[레벨:18]부스러기 은혜

2014.01.07 12:15:00

목사님!
부연해서 더 여쭙니다
제 두번째 질문은
간절함으로 당신의 음성을 듣기를 간구하며
설교를 고대하고 왔지만,
아무런 감동과 도전도 못받고
냉랭함속에 공허감속에 돌아갈 경우,
내가 기대하는 느낌과 감동이 척도가 되어
은혜 받고 못받고를 판단하는 모습이
부끄러운 생각인지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4.01.07 22:51:58

소위 말해서 '은혜를 사모한다.'는 건
부끄러운 생각이 아닙니다. 
설교에 대한 기대 없이 교회에 나가는 건
목사에게나 청중들에게만 불행일 뿐만 아니라
죄라고까지 말할 수 있어요.
다만 은혜를 사모한다는 게 어떤 건지는 좀 해명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깊이, 진수, 본질을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고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레벨:18]르네상스

2014.01.07 09:55:27

 제가 인생을 그렇게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교회생활을 5,60년 정도 한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나름대로 '모태교인'으로서 교회생활을 해오면서 느낀 것은,
한국교회 신자들이 설교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목을 맨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선택할 때 신자들은 보통 담임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선택하기도 하고
어느 설교자는 설교를 잘한다 또는 은혜가 있고 능력이 있다, 또 어느 설교자는 설교를 정말 못한다,
또는 은혜가 없고 능력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저는 도대체 설교를 잘하는 게 뭐고
설교를 못하는 게 뭔지 그걸 잘 모르겠고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과연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가 있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설교자들의 책임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100퍼센트 설교자들이 설교를 통해
신자들을 이때까지 길들여(?) 왔기 때문에 신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신자들의 책임도 너무나 크다는 것이 제 나름대로의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자들이 주일에 교회당 가는 것이 마치 음악연주가들의 공연을 보러 가는 것 같고
음악연주가가 잘하면 박수를 치고 못하면 비난을 하는 것처럼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이
문화생활 즐기는 것, 교양을 쌓는 것, 공연 관람하는 것,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 것 그 이상이
못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신자들이 설교 하나로 만족해 버리면 그들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할 신앙생활은 뭐가 되는 것인지, 결국은 '종교적 관객, 청중, 구경꾼'으로서
한평생 '교회당 출입'을 하는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 아닐까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나태한 모습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런 모습이 베드로전서에서 말씀하는
"택하신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전직 전도사'였다고 일방적으로 목회자나 설교자 편을 드는 건 결코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한국교회의 설교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100퍼센트 목회자 책임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타당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 지나치게 낭만적인 생각이 아닌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ㅎㅎㅎ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4.01.07 11:37:12

100 퍼센트 설교자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ㅎㅎ
그래도 목사 자신은 목사의 전적인 책임이라고 생각해야지요. 
그게 실제로 맞기도 하구요.  

[레벨:18]르네상스

2014.01.07 12:29:00

" 목회자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제가 '100퍼센트'라고 표현을 잘못 했네요. ㅎㅎ

말 표현이라고 하는 게 참 정확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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