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5일
나태주의 시
여기 아주 짧은 시 한편을 소개한다. 이 시도 ‘외우고 싶은 명시 50편’에 담겨 있는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다. 아주 소박하지만 진실된 행복에 대한 노래다.
행복
나태주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저녁때- 시인들은 아침보다 저녁을 주목한다.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저녁을 특별한 순간으로 주목하지 않는다. 저녁 이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저녁의 어스름과 어둠을 몰아내는 조명이 빛을 발한다. 이걸 문명의 이름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저녁은 조명보다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어떤 이는 잠자리에 들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루의 삶이 끝나는 순간이 바로 평생의 삶을 끝내는 순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란다. 저녁이 없는 현대인들은 돌아갈 집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조차 필요 없다. 여기서 돌아갈 집은 단순히 구체적인 공간으로서의 집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 집의 역사를 가리킨다. 쉴 수 있는 곳,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 나의 체온과 숨과 기쁨과 슬픔이 다 녹아 있는 곳, 잠을 통해서 죽음을 연습할 수 있는 곳이 ‘돌아갈 집’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고향이 바로 돌아갈 집이다. 그런 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리라.
힘들 때- 삶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즐겁게도 하지만 힘들게 할 때가 많다. 전혀 힘들지 않다면 그는 이미 도사이거나, 아니면 정신병동에 들어가야 할 사람이다.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시인은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을 행복의 두 번째 요소로 든다. 그게 누굴까? 오래 함께 삶을 나눈 가족일 수도 있고, 존경하는 스승일 수도 있고, 죽마고우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일 수도 있고, 짝사랑하는 선생님일 수도 있다. 그 대상을 통해서 실제로 삶의 위로가 되는 경우도 있고, 잠시 착각일 수도 있다. 정말 나쁜 경우는 생각하면 할수록 불편한 사람인데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엮이는 것이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니 그 사람과의 관계를 밖으로 드러낼 수는 없으리라. 가장 깊은 삶의 차원을 ‘마음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외로울 때- 시인은 외로울 때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가 보다. 노래를 부를 뿐만 아니라 듣는 것도 좋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명 가수의 노래를 찾는다. 그의 노래를 통해서 자신의 슬픔을 위로받기 때문이다. 외롭지 않다면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좋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인은 노래를 ‘혼자서’ 부른다고 한다. 그렇다. 외로움의 극복은 남의 위로를 받아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기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 노래를 부르고, 어떤 사람은 혼자서 숲길을 걷고, 어떤 사람은 혼자서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혼자서 책을 읽는다.
신학적 인간론에서 보더라도 웃겨 님의 생각이 더 옳습니다.
약간 떨어져 있을 때는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관계를 맺다보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지요.
우스개말로 '100미터 미인'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코로 숨쉬는 인간을 믿지 말라는, 또는 의지하지 말라는 성경의 잠언은
인간을 정확하게 뚫어본 통찰에서 나온 겁니다.
이런 사태를 이상하게 생각할 거도 없고,
불편하게 생각할 거나, 실망할 거도 없어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게 인간이니까요.
상대가 피조물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실망할만한 것까지 포함해서 그 존재 자체를 받아들일 때만
그 사람과의 관계가 유지되고,
또는 더 깊어질 수 있겠지요.
최소한 삶에 대한 이해가 비슷하고 대화가 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짧은 인생 길에서 서로 기대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가까이 갈수도록 더 빛나 보여서 정말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그가 神이겠지요.
쓰다보니 공자 왈이 되었네요.
오!
詩보다 더 詩스러운 ..
..저녁은 조명보다 더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