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란 무엇인가? (4월9일)

조회 수 6338 추천 수 32 2006.04.09 23:23:00
2006년 4월9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막 1:7)

능력이란 무엇인가?

세례 요한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역사에 등장한 인물입니다. 그의 모든 가르침과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언급합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무력한지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예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즉 자기 능력과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세례 요한은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그는 예수보다 더 많은 군중을 몰고 다녔을 겁니다. 요즘의 대중적인 스타 목사들처럼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층이 예수에는 시비를 걸었지만 세례 요한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당대에 세례 요한의 권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어느 정도 내다볼 수 있습니다. 헤롯에 의해서 세례 요한이 참수됐습니다만 헤롯도 바울의 권위를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제수와 결혼한 헤롯을 대놓고 비난한 사람은 세례 요한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헤롯은 요한을 감옥에 가두긴 했지만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민중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헤롯도 역시 심중으로는 요한을 존경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능력이 큰 요한은 무슨 의미로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가 자기보다 능력이 많다고 말한 걸까요? 도대체 그가 말하는 능력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인간이 성취한 업적에 따라서 그의 능력을 평가합니다. 저 사람에게 능력이 있다는 말은 그가 큰 업적을 남겼다는 뜻입니다. 정치력이 큰 사람이나 돈을 많이 번 사람을 그렇게 평가합니다. 심지어 목사의 능력도 그런 방식으로 평가됩니다. 단시일에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이 곧 목사의 능력과 일치합니다. 요즘 이 시대의 화두인 ‘경쟁력’도 역시 외적인 업적으로 사람의 능력을 판단할 때 적합한 용어입니다.
만약 능력을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예수야말로 가장 무능력한 분이십니다. 그가 이룬 외적인 업적이라는 건 아주 보잘 것 없었습니다. 한때 많은 민중이 추종하긴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모두가 흩어졌습니다. 제자들도 역시 이런 민중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성전이 정화되었다는 보장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율법학자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했습니까? 그래서 예수 이후에 율법이 새롭게 해석되었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그런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는 자기 민족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민중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죽었습니다. 십자가는 무능력의 극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능력’이 무엇인지 생각을 정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게 과연 능력인지 돌아보자는 말씀입니다. 참된 능력은 사람과 이 세상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늘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살리기도 하면서 동시에 죽이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성취하기는 했지만 그게 어떤 부분에서는 살리는 능력으로, 어떤 부분에서는 죽이는 능력으로 작용한다면 그건 결코 능력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컨대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이 있다는 말은 나쁜 성적을 내는 팀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일등이 있다는 말은 그것으로 인해서 꼴찌가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문명생활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말은 곧 다른 한편으로 생태계가 손상되었다는 의미이기도합니다. 온전히 살리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결국 참된 능력이 아닙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제가지금 정의와 평화를 위한 인간의 모든 행위까지, 과학과 예술 활동까지 싸잡아 모든 인간 행위를 부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힘닿는 데까지 생명을 살리는 일을 실천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가 계산해낼 수 없을 정도의 깊이와 폭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근본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들이지 이 세상과 맞상대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마당에 우리가 그것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능력은 오직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완성하실 하나님에게서만 나오는 하나님의 존재론적 근거입니다. 예수님에게 바로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 실현되었습니다. 요한의 능력은 아무리 크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역시 예수의 능력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요한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철저하게 의존하는 사람들입니다. 구원 사건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능력한지를 깨닫는 게 칭의론의 기초입니다. 구원 사건 앞에서는 만 명이 모이는 교회의 목사나 10명이 모이는 교회의 목사가 똑같이 무능력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런 사실이 말만이 아니라 실제 삶과 일치될 때 우리는 기독교 영성의 세계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 참된 능력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의 능력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자기 능력에 연민을 느끼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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