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나가는 이유(3)

조회 수 4089 추천 수 2 2010.06.28 23:59:20

 

     그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나가는 것 같소. 교회에 여러 종류의 모임이 많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소.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은 크오. 더구나 종교적으로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더 크오. 믿는 사람들끼리의 친교를 부정할 수는 없소. 교회 전통도 그걸 무시하지 않소. ‘코이노니아’(친교)는 초기 기독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신앙적 덕목이었소. 코이노니아는 신앙의 근본이라고 봐야 할 거요.

     사람과의 관계에 치중하다보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소. 양쪽의 관계가 서로 상승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그게 쉽지 않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그 대답을 하기 전에 이 문제를 좀더 정확하게 정리해야겠소. 사람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명쾌하게 구별될 수 있는가, 하는 것 말이오.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셨소. 그렇다면 믿는 사람들의 관계가 하나님 나라의 근본이 된다는 뜻이오.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고 했지 ‘너희’가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하지 않으셨소. 예를 들어 설명하겠소. 여기 합창단이 있소. 합창단원이 없으면 노래를 부를 수 없소. 그들이 화합하지 않으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없소. 그들 가운데 음악이 있소. 그러나 그들이 바로 음악은 아니오. 그들은 음악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오. 단원들끼리의 화합이 중요하다고 해서 친교에 치우치면 결국 그 합창단은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거요. 교회는 영적인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이오. 온전히 노래에 관심을 집중하지 않으면 합창단원끼리의 친교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오. 이 설명이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소. 신자들끼리의 친교에 떨어지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축소되는 거요. 양쪽의 관계가 대립적이지 않고 상호적으로 창조적인 결과를 맺으려면 지금 교회 공동체가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성찰해야만 하오.

     내 이야기가 좀 복잡해졌소. 간단히 정리하겠소. 사람 만나러 교회에 나가지는 마시오. 그렇게 습관이 붙어서 어쩔 수 없다면, 조금씩 고쳐 나가보시오. 사람 만나는 것에 너무 큰 비중을 두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오. 첫째,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 실망하게 되오. 자칫 신앙마저도 흔들릴 거요. 둘째,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만의 ‘끼리집단’이 생기오. 예수 믿는 사람끼리만 몰려다닌다면 ‘세상의 소금’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소. 사람은 세상에 널려 있으니 정 사람이 그리우면 세상 사람들을 만나시오. (2010년 6월28일, 월요일, 꾸물꾸물한 날씨)


[레벨:17]아셀

2010.06.29 11:10:44

안녕하세요 목사님!

 

서울샘터 교회 예배후 인사를 드렸지만

다비아에서는 처음 인사 올립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치중하다보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소."

 

요즘 사람들에게 예전예배에 대한 저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교회마다 너무 가벼운 분위기에 영 예배드리는 느낌이 안듭니다.

샘터교회에서 경건하고, 진중한 예배를 맛 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매일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행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0.06.30 00:02:15

아셀 님,

안녕하세요?

그렇군요.

다비아에서는 처음이군요.

웬만하면 오래 남아 계십시오. ㅎㅎ

다비아와 샘터교회 홍보 대사로 위촉해도 좋겠네요.

기독교 영성의 진수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해볼까요?

profile

[레벨:38]클라라

2010.06.30 00:02:57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지 '너희"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하나님 나라는 우리모두 함께 가는 나라 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되는데요, 

그러나 먼저 우리가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서 있을 때서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로 교회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예배는 얼마나 멋진 '합창곡' 이 될까요?

 

[레벨:19]The One

2010.06.30 09:35:36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샘터에서.....

하나님의 관계와 사람의 관계가 서로 상승될 수 있는

희망을 봅니다. 그동안 신앙적으로 통하는 즐거움에

너무 목말라 했기 때문일까요? 아직 접하지 않은 다비아의

글들이 한참 동안 영혼의 보고에 한 켜씩 쌓이는 기쁨이 되길

소망 합니다.

[레벨:3]비오는저녁

2010.07.06 13:22:02

어쩌다 교회들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각종 (?)행사 사진들이나, 목사님들의 단체사진,

그리고 게시판들을 보자면, 어김없이 어떤 전형이 보여지곤 합니다.

비슷비슷한 언어들, 표정들, 게다가 어떨땐 패션까지.

모모 한다는 교회는 그것대로 세련된 카페같은 분위기, 이민교회들은 또 그것대로의 그 분위기.

하나님 만드신 각개 각인의 야성(생명)을 찾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니면, 오랜 세월 종교적이고 피상적인 삶 때문에, 그 생명력들이 오히려 희미해 진 것인지.

 

우리 정체성이

'피조물' 이라는 것만 제대로 알아도,

외로움과 결핍들 속에서도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짦은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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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일- 권위 있는 가르침 [1]

  • 200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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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2일 권위 있는 가르침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막 1:22) 마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교훈에 놀란 이유를 그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서기관들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게 좀 이상합니다.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전문적으로 가르치던 사람들이었거든요. 오늘의 신학 박사쯤 되는 그들의 가르침이야말로 권위가 담보되어 있고, 거꾸로...

6월2일- 권위 있는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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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3일- 귀신들린 사람 [1]

  • 2006-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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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3일 귀신들린 사람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막 1:23)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이 들어왔다는 건 그 당시에 회당의 업무 중에 축귀까지 포함된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과 연관해서 특별하게 벌어진 상황이었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이런 귀신들린 사람을 치료하는 축귀 사건이 자주 벌어졌다는 걸 감안한다면 전자보다는 후자가 쪽에 가까운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마가는 이 귀신이 더럽다고 묘사했습니다. 더럽지 않은 귀신도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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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4일- 예수의 행위와 정체

  • 200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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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4일 예수의 행위와 정체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막 1:24)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던진 말은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행위에 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것입니다. 그의 행위는 귀신을 멸하는 것이며, 그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 기독론에서 예수님의 행위와 정체성은 서로 변증법적으로 맞물러 있습니다. 그의 메시아적 행위는 그 메시아적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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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5일- 잠잠하라. [3]

  • 200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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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5일 잠잠하라.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막 1:25) 귀신들린 사람에게 예수님은 두 가지 말씀으로 꾸짖으셨습니다. 하나는 “잠잠하라.”이며 다른 하나는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입니다. 이런 표현에 의하면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이 아니라 귀신을 꾸짖으신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 예수님은 귀신의 실체를 인정하셨다는 말이 되는군요. 귀신의 실체 문제는 앞에서 잠간 다루기도 했고, 또 뒤에서 축귀, 치유,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다시 언급하게 될 테니까 여기서는 이만 접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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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6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 200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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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6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막 1:25)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을 향해서 잠잠하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귀신들린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자리하고 있는 귀신을 향한 말씀이겠지요. 이런 묘사만을 근거로 본다면 결국 귀신은 장소 이동이 가능한 어떤 실체인 셈입니다. 군대귀신(레기온) 들린 사람 이야기에서도 그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 떼에게로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의 이런 ...

6월6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 200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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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6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막 1:25)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을 향해서 잠잠하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귀신들린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자리하고 있는 귀신을 향한 말씀이겠지요. 이런 묘사만을 근거로 본다면 결국 귀신은 장소 이동이 가능한 어떤 실체인 셈입니다. 군대귀신(레기온) 들린 사람 이야기에서도 그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 떼에게로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의 이런 ...

6월7일- 귀신 발작

  • 2006-06-07
  • 조회 수 3883

2006년 6월7일 귀신 발작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막 1:26) 귀신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지만 옛날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요즘도 어린아이들, 특히 소녀들이 귀신 이야기를 자주 하긴 합니다. 심지어는 가족사진에 오랜 전에 죽은 사람이 나타났다는 식의 이야기들은 공중파를 타기도 합니다. 그런 걸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삶이 불안하기도하고, 불확실하다는 의미이겠지요. 오늘 이야기도 ...

6월7일- 귀신 발작

  • 2006-06-07
  • 조회 수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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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8일- 서로 묻다.

  • 2006-06-08
  • 조회 수 4088

2006년 6월8일 서로 묻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 1:27) 오늘 본문의 구조는 22절과 흡사합니다. 두 구절이 모두 예수님의 권위에 사람들이 놀랐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22절의 가르침과 27절의 명령에 권위가 있었다는 건 곧 기존의 것과 달랐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다른 걸 가르치셨으며,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축귀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전혀 다른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6월8일- 서로 묻다.

  • 2006-06-08
  • 조회 수 1982

2006년 6월8일 서로 묻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 1:27) 오늘 본문의 구조는 22절과 흡사합니다. 두 구절이 모두 예수님의 권위에 사람들이 놀랐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22절의 가르침과 27절의 명령에 권위가 있었다는 건 곧 기존의 것과 달랐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다른 걸 가르치셨으며,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축귀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전혀 다른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6월9일- 귀신이 순종하는 언어의 능력 [4]

  • 2006-06-09
  • 조회 수 3638

2006년 6월9일 귀신이 순종하는 언어의 능력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 1:27) 마가복음이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건 중에서 시몬 형제와 안드레 형제를 제자로 삼은 것 말고는 최초의 이야기가 바로 이 회당 사건입니다. 이 회당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이걸 한 마디로 줄이면 ‘언어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언어는 앎의 새로운 지평을...

6월9일- 귀신이 순종하는 언어의 능력 [3]

  • 2006-06-09
  • 조회 수 1957

2006년 6월9일 귀신이 순종하는 언어의 능력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 1:27) 마가복음이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건 중에서 시몬 형제와 안드레 형제를 제자로 삼은 것 말고는 최초의 이야기가 바로 이 회당 사건입니다. 이 회당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이걸 한 마디로 줄이면 ‘언어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언어는 앎의 새로운 지평을...

6월10일- 예수의 소문

  • 200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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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10일 예수의 소문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막 1:28) 21절부터 시작한 예수님의 회당 사건이 이제 28절에서 끝납니다. 마가복음 기자가 여기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핵심이 바로 28절 말씀이겠지요.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갈릴리의 한 촌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에 관한 소문이 아직 유대까지는 못 내려갔지만 공생애 초기 단계에서 갈릴리에 전 지역에 퍼졌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그만큼 예수 사건이 쇼킹했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은 어떻게 비쳤을...

6월10일- 예수의 소문

  • 200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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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1일- 시몬 형제의 집 [1]

  • 200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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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11일 시몬 형제의 집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막 1:29) 회당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야고보 형제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앞서 17,18절에서 시몬 형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물을 버려두고 따라나섰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를 위해서 세속적인 세계를 버리는 일종의 출가(出家)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적인 진리를 선택한 사람들은 출가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종의 구도는 자신의 온 영혼을 투자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입...

6월11일- 시몬 형제의 집

  • 2006-06-11
  • 조회 수 1717

2006년 6월11일 시몬 형제의 집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막 1:29) 회당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야고보 형제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앞서 17,18절에서 시몬 형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물을 버려두고 따라나섰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를 위해서 세속적인 세계를 버리는 일종의 출가(出家)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적인 진리를 선택한 사람들은 출가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종의 구도는 자신의 온 영혼을 투자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입...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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