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11
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위 구절이 가리키는 모습은 정말 끔찍합니다. 왕과 왕족과 장군과 부자와 권력자들과 종과 자유인이 모두 굴과 바위틈에 숨었다고 합니다. 표정이 두려움으로 일그러졌겠지요. 앞에서 묘사된 우주론적 대파멸이 눈앞에 닥쳐왔기 때문입니다.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며, 하늘의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별이 떨어지고 산과 섬이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제대로 몸을 숨길만 한 피난처도 없습니다. (각자 죽음의 순간이 이런 현상으로 경험될지도 모릅니다.) 오늘날도 가끔 일어나는 자연재해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대지진, 쓰나미, 토네이도, 화산 폭발 등등입니다. 과학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습니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대재난 앞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자의 구별이 없습니다. 권력자나 일반 사람의 구별도 없습니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도 모두 똑같습니다. 시체는 살았을 때의 신분과 전혀 상관없이 소립자로 해체되는 형국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작은 차이로 희희낙락하거나 자포자기에 떨어지곤 하나 근원적인 차원에서는 그 운명이 거의 비슷합니다. 우주 안에서 작고 희미하게 빛나는 푸른 별인 지구에서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을 뿐입니다. 권력자를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할 일도 없고, 약한 자를 무시할 일도 없습니다. 모두 굴과 바위틈에 숨어서 사는 중이니 서로에게 연민을 바탕에 깔고 관계를 맺는 게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