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0일 제자 정체성

조회 수 1875 추천 수 2 2008.10.19 23:07:20
2008년 10월20일 제자 정체성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50)

50절에서 글의 흐름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보입니다. 지옥, 구더기, 불이 49절에서 소금과 연결되더니 이제 소금의 짠 맛과 화목 하라는 도덕적인 가르침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옥 운운은 결국 화목을 가르치기 위한 서론이었을까요?

우리는 이 대목을 제자의 정체성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막 9:33절 이하에서 “누가 크냐?” 하는 제자들의 논쟁이 제시되었고, 38절 이하에서는 제자 집단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것도 역시 제자의 정체성과 연결됩니다. 도대체 누가 예수의 제자인가, 제자의 삶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겠지요.

제자는 작은 자들을 실족케 하지 말아야 하고(42절), 손과 발과 눈의 범죄가 없어야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들을 음식에 소금을 치듯이 불로 정화하십니다.(49절) 소금이 소금의 맛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듯이 제자들은 제자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제자의 정체성이 곧 화목입니다. 서로 화목하려면 자기의 주장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하겠지요. 누가 크냐 하는 논쟁에 빠지면 결코 화목할 수 없습니다. 누가 제자 집단에 속했냐 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화목할 수는 없겠지요.

이런 제자의 정체성은 오늘 한국교회에서 가장 시급한 요소가 아닐는지요. 감리교회 감독회장 선거에서 두 사람이 서로 자기가 당선되었다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분들이라고 한다면 감독회장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요. 요즘 많은 교회에서 이런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늘 조용할 수만은 없겠지만, 정도가 지나칩니다. 우리에게 제자의 정체성이 훼손되었다는 증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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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희망봉

2008.10.20 10:53:09

요즈음 다비아QT를 통해
날마다 깨어 지고 부서지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한단계 올라 갔나 싶었는데
여전히 제자리로 옵니다
아니 한순간 바닦에 내려 앉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사람으로
포기하지 말아야 겠다고
오늘도 마음 다잡고
생명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그 희열을 얼핏 보았기에 말입니다
놓칠수 없는 한줄기 생명의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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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10.20 14:46:58

마가복음 묵상이 희망봉 님의 영적 순례에 도움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요즘 금융시장이 불안해서 근무하기가 힘들지 않아요?
다음 목요일에 봅시다.

[레벨:7]시드니

2008.10.20 19:39:58

목사님, 49절과 50절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49절에서 '소금 치듯'이란 구절은 불을 받는 형태를 설명하기위한 것이지, 실제로 소금이 쳐지는 것은 이닌 것으로 보여지구요, 또 50절에서 첫구절은 소금의 맛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둘째 구절에서는 소금 그 자체를 간직하는 것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문자에 집착하는건가요?

이렇게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지금까지 제자로서 살아야 할 삶의 자세를 얘기하셨고, 그러나 우리에게 그것을 이룰 능력이
없음을 아시는 주님은, 49절에서 성령의 불이 소금치듯이 우리에게 내릴것이며,
50절에서 성령을 잃으면, 다른 어떤 것으로도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없으므로,
성령을 가지고 그의 능력으로 서로 사랑(화목)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8월 31일 목사님의 설교 '율법과 사랑'에서 말씀하셨듯이 사랑(화목)이라는 것이 우리가
애쓴다고 이룰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라면, 그 말씀과도 상통하는 해석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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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10.20 23:21:05

시드니 님,
성서텍스트의 깊이로 들어가려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엉켜 있는 부분을 억지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칫하면 자의적으로, 적용 중심으로, 알레고리로 흘러갈 위험이 있거든요.
이 대목에서 성령 운운하는 건 중심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뿐입니다.
좋은 밤.

[레벨:7]시드니

2008.10.21 08:40:57

네, 맞습니다. 분명히 끼워 맞추고 싶은 무리한 마음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 제 마음으 들여다 봤습니다. 문자주의를 비난하지만, 아직도 제 마음의 80%는
그곳에 속해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성경을 경전으로 보는 견해 때문이기도 합니다. (목사님은 성서라고 하시고,
저는 성경이라고 하죠.)
이것은 기존교회의 가르침이나 세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제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솔직하게 대할 때에
얻은 제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포기하거나 뒤로 물러나기가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경전이라고
생각할 때에, 논리가 맞지않고 횡설수설하는 부분을 성경에서 만나면, 무리하게 그것을 끼워 ㅁㅏㅊ추려고하죠.
제 생각속에서 두가지의 입장과 견해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전투에서 잃는 것은
아집이요, 얻는 것은 진리일 것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전투를 치릅니다.
오늘 아침에 저의 지금 현재 서있는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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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08.10.21 12:39:26

막 9:38~50은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그 공동체 내의 대화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인을 위한 말씀이고
그리스도인은 모두 제자라는 의식이
이 내용에 '물타기'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38~50절 까지의 서로 연결하기 힘든 구절들이
계속되는데 열린 대상을 향하지 않고
공동체라는 닫힌 대상을 향한 내용이라고
새롭게 묵상하니 더 와닿습니다.
이건 또 왜 그런지.....^^;
같은 상황이라도 영화의 상황이
감동적인 것과 같은 것인지...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제자인 그들
로 다시 생각하면
늘 대하는 싱거운 말씀이
'물타지않은' 진함으로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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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10.21 23:16:46

자유로운 글쓰기의 경지로 들어가셨군요.
물타기의 음모도 밝혀내시고,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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