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489
2008년 8월7일 믿음의 능력(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어제의 묵상에서 짚은 대로 한국교회 신자들이 승리주의, 성공주의에 빠진 이유는 성서를 그런 방식으로 전하는 목사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서를 일종의 성공 후일담이나 무용담처럼 전합니다.
일단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특히 구약성서의 인물들이 크게 성공한 사람들로 그려진다는 건 사실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모두 그런 성공신화의 주인공들입니다. 다윗과 솔로몬도 권력, 재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입니다. 어떤 목사는 솔로몬의 재산을 요즘의 돈으로 계산해 보이기도 하더군요. 빌 게이츠 저리가라 정도의 재산가랍니다. 그 이외에도 야베스나 욥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공한 인물로 제시됩니다.
우리는 성서의 표면이 아니라 내면을 읽어야 합니다. 그 내면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 하고 생각할 분들이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방점을 둔 사람들에게는 승리와 실패가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축복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승리만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약성서에서 사람들의 승리와 성공만을 읽으려고 한다면, 결국 하나님은 망각되고 말 것입니다.
더구나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신약성서가 중요합니다. 구약을 읽더라도 신약의 관점으로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신약성서에는 승리와 성공 이념을 끌어낼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신약성서가 기록되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실제로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세계로부터 무시당했습니다. 이런 공동체에 뿌리를 둔 오늘의 기독교가 어떻게 승리주의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어제의 묵상에서 짚은 대로 한국교회 신자들이 승리주의, 성공주의에 빠진 이유는 성서를 그런 방식으로 전하는 목사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서를 일종의 성공 후일담이나 무용담처럼 전합니다.
일단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특히 구약성서의 인물들이 크게 성공한 사람들로 그려진다는 건 사실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모두 그런 성공신화의 주인공들입니다. 다윗과 솔로몬도 권력, 재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입니다. 어떤 목사는 솔로몬의 재산을 요즘의 돈으로 계산해 보이기도 하더군요. 빌 게이츠 저리가라 정도의 재산가랍니다. 그 이외에도 야베스나 욥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공한 인물로 제시됩니다.
우리는 성서의 표면이 아니라 내면을 읽어야 합니다. 그 내면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 하고 생각할 분들이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방점을 둔 사람들에게는 승리와 실패가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축복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승리만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약성서에서 사람들의 승리와 성공만을 읽으려고 한다면, 결국 하나님은 망각되고 말 것입니다.
더구나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신약성서가 중요합니다. 구약을 읽더라도 신약의 관점으로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신약성서에는 승리와 성공 이념을 끌어낼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신약성서가 기록되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실제로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세계로부터 무시당했습니다. 이런 공동체에 뿌리를 둔 오늘의 기독교가 어떻게 승리주의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
모태신앙이고 수십년 동안 교회를 집이나 학교보다 더 좋아한 제가
몇년 전에 에릭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를 읽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복음서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무신론자로부터 소유와 존재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창피한 마음도 듭니다.
저도 못 배웠고 주일학교에서 저에게 배운 많은 중고등부 학생들도
저에게 못 배웠지요.. 누굴 욕할 것도 없이 저 자신이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예수님은 "존재"라는 철학적인 용어 없이 존재를 잘 가르치신 것 같습니다..
꼭 존재라는 어려운 용어가 없이도 가르침이 전수되는
교회공동체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몇년 전에 에릭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를 읽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복음서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무신론자로부터 소유와 존재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창피한 마음도 듭니다.
저도 못 배웠고 주일학교에서 저에게 배운 많은 중고등부 학생들도
저에게 못 배웠지요.. 누굴 욕할 것도 없이 저 자신이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예수님은 "존재"라는 철학적인 용어 없이 존재를 잘 가르치신 것 같습니다..
꼭 존재라는 어려운 용어가 없이도 가르침이 전수되는
교회공동체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찾아내는 혜안이 부럽기도하고 열심히 베끼고 있습니다.
승리와 실패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
color of the cross라는 영화에서 흑인 예수님이
백인 제자인 토마스와 마지막으로 주고 받는 대사장면이 생각납니다.
백인제자 "선생님 다르다는 느낌은 어떤 것입니까?"
흑인예수 "토마스야!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는 모두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단다"
승리 주의의 결과는 하나님이 망각되어 지는 것...
구약의 말씀이 신약의 그리스도와 그 공동체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그리고 승리주의와 자기집중의 방식들이 만연한 이 시대에서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집중해야 할지 ...
알면서 잘 안되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잘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아침부터 너무 길게 써버렸습니다. ^^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