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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1월13일 먹을거리(2) [3]

  • 2008-01-12
  • 조회 수 1490

2008년 1월13일 먹을거리(2)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막 7:15) 우리는 지금 바리새인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꽤나 까다롭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실정에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사 음식이고, 다른 하나는 술과 담배입니다. 아직도 제사 음식을 부정하다고 먹지 않는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필요는 하나도 없습니다. 제사를 신앙적인 이유로 드리지 않는 분들도 있더군요. 특히 명절 때마다 시집 식구들과의 마찰을 불사하면...

1월12일 먹을거리(1) [3]

  • 2008-01-11
  • 조회 수 1545

2008년 1월12일 먹을거리(1)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막 7:15)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은 채 밥을 먹는 사건에서 시작된 전통에 관한 논쟁이 이제 마지막 단계에 돌입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 제기는 터무니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요즘처럼 위생이 철저한 시대에도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거나 밥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고대 시대는 위생관념이 얼마나 나빴겠습니까? 이런 건 아예 법으로 묶어 놓아야만 사람들이 지키게 마련입니다. 원칙...

1월11일 깨달음(4) [3]

  • 2008-01-10
  • 조회 수 1699

2008년 1월11일 깨달음(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막 7:14) 깨달음과 관련해서 저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깨달음이 해석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성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칼빈 방식으로 바꿔 말해서 성령의 조명이 영적 깨달음의 관건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칼빈이 말하는 성령이 조명이 무슨 뜻인지 우선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아무런 해석학적 준비가 없다 하더라도 성령이 주술적으로 이끌어 주기만 하면 성서 텍스트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

1월10일 깨달음(3) [4]

  • 2008-01-09
  • 조회 수 1629

2008년 1월10일 깨달음(3)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막 7:14) 지난 이틀 동안의 묵상 내용을 읽고 다음과 같이 따지고 싶은 분이 있겠지요. 당신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신학 공부를 많이 해야만 성서를 깨우칠 수 있단 말이냐? 신학공부가 깨우침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서 바둑의 깊은 수읽기에 들어가려면 정석을 정확하게 배워야 합니다. 정석을 배우지 않거나 설렁설렁 대충 배워도 바둑을 둘 수는 있지만, 그런 이들은 모두 아마추어를 벗...

1월9일 깨달음(2) [3]

  • 2008-01-08
  • 조회 수 1569

2008년 1월9일 깨달음(2)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막 7:14) 어제 깨달음의 문제를 한번 짚었는데, 충분하게 전달되지 않은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오늘 부연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성경의 진리를 단지 듣는 데 머물지 말고 깨우침의 단계로 나가야 한다는 말은 어떤 신비한 비술(秘術)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깨우침은 오히려 보편적인 해석학에 속합니다. 해석을 할 줄 안다는 것이 곧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해석할 줄 안다는 것은 말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이구요. 그렇습...

1월8일 깨달음(1) [7]

  • 2008-01-08
  • 조회 수 1619

2008년 1월8일 깨달음(1)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막 7:14) 예수님은 회중들에게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들으라고만 하지 않고 깨달으라고 하신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마틴 루터는 “fassen”(붙잡으라.)고 했고, 공동번역은 두 명령어를 하나로 묶어서 “새겨들어라.”고 번역했습니다. 전체 문맥에서 이 명령문만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언어의 뉘앙스에서 어떤 영적 의미를 포착해낼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단순히 듣는 것과 그것을 새겨듣...

1월7일 말씀에 집중하는 훈련 [3]

  • 2008-01-06
  • 조회 수 2043

2008년 1월7일 말씀에 집중하는 훈련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막 7:14) 고르반을 예로 들어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따끔하게 지적하신 예수님은 이제 결론을 내리십니다. 그 내용은 15, 16절인데, 결론에 앞서 이렇게 충고하셨습니다.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예수님의 이 충고에서도 우리는 바른 신앙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우리의 영적인 태도가 어떠해야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깨닫는다는 말은 새겨듣는다, 또는 집중한다는 뜻도 포함합니다. 새겨듣고, 집중할 때만 깨달음이 ...

1월6일 고르반(7) [3]

  • 2008-01-05
  • 조회 수 1476

2008년 1월6일 고르반(7)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막 7:13)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는 예수님의 비판은 과격하면서도 날카롭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과격하고, 그것이 아주 정확하다는 점에서 날카롭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비판은 오늘 우리 한국교회 설교자들에게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닐는지요.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문적으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설교자의 모든 실존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

1월5일 고르반(6) [6]

  • 2008-01-04
  • 조회 수 1599

2008년 1월5일 고르반(6)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막 7:13) 이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직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했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주장에 바리새인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 누구보다도 잘 지킨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들의 전통은 말씀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교단헌법이나 교회질서를 세워나가듯이 말입니다. 바로 이게 전문적인 종교인들이 빠지기 쉬운 자...

1월4일 고르반(5) [4]

  • 2008-01-04
  • 조회 수 2124

2008년 1월4일 고르반(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막 7:12) 다시 예수님이 지적하는 대로 고르반에 관한 바리새인들의 오용 문제로 돌아갑시다. 그들은 연로한 부모님들에게 드려야 할 물품이나 돈을 고르반 되었다고 선언함으로써 당연한 보모 공경의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이들이 처음부터 부모 공경을 피하기 위해서 고르반을 악용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제도나 습관이든지 개혁되지 않고 도그마로만 남아 있을 경우에 근본정신을 놓치게 ...

1월3일 고르반(4) [6]

  • 2008-01-02
  • 조회 수 2414

2008년 1월3일 고르반(4)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막 7:11)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고르반(제물)이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런 말은 우리가 너무 자주 들었기 때문에 상투적인 질문처럼 들리겠군요. 어떤 사람은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것을 생각하겠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 가족을 모두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희생을 생각하겠지요. 기독교 역사에는 그렇게 자기를 ...

1월2일 고르반(3) [4]

  • 2008-01-02
  • 조회 수 1574

2008년 1월2일 고르반(3)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막 7:11) 오늘 본문에 따르면 고르반(제물)은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뜻입니다. 그 고르반에는 돈이나 양식이나 패물처럼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들이 포함되겠지요. 이런 소중한 것들을 하나님에게 바쳐진 것으로 여긴다는 것은 우리 삶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나오는 신앙적 태도입니다. 우리의 소유 중에서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

2008년 1월1일 고르반(2) [1]

  • 2007-12-31
  • 조회 수 2143

2008년 1월1일 고르반(2)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막 7:11) 오늘부터 2008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중간에 특별한 사고만 없다면 우리는 오늘을 포함해서 365일 동안 이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겠지요. 참으로 소중한 시간입니다. 마가복음 묵상에 참여하는 독자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금년 한해에도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우리 모두 마가복음의 세계 안으로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합시다...

12월31일 고르반(1) [5]

  • 2007-12-30
  • 조회 수 1755

2007년 12월31일 고르반(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막 7:11)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자신들의 전통에 사로잡힘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놓쳤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데 사실 이걸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의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본인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12월29일 부모 공경이란? [6]

  • 2007-12-28
  • 조회 수 2626

2007년 12월29일 부모 공경이란?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막 7:10)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수호하려다가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짚기 위해서 하나의 사례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부모 공경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인 모세오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핑계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입니다. 우리는 오늘 바리새인의 이율배반적인 문제로 들어가기 전에 모세오경이 ...

12월27일 전통과 계명 [1]

  • 2007-12-26
  • 조회 수 2171

2007년 12월27일 전통과 계명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막 7:9) 오늘 본문 9절은 8절의 강조입니다. 8절은 단순히 사실 전달이라고 한다면 9절은 원인 분석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려다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다는 지적이겠지요. 이런 지적에 따르면 바리새인들의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과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로들의 전통, 즉 바리새인의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을 좀더 구체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이 삶의 모든 문제...

12월26일 버림과 지킴 [3]

  • 2007-12-25
  • 조회 수 1840

2007년 12월26일 버림과 지킴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막 7:8)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는 걸 보고 트집을 잡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은 앞에서 우리가 여러 번에 걸쳐서 묵상을 나누었던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한 후 이렇게 정곡을 찔러 말씀하십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아마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의 계명을 가장 바르게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자부...

12월25일 헛된 예배(10) [9]

  • 2007-12-24
  • 조회 수 1777

2007년 12월25일 헛된 예배(10)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영과 진리로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는 무엇일까요? 그 준비에 첩경은 따로 없습니다. 헛된 예배와 반대되는 걸 배워야겠지요. 사람의 계명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의 예배가 아무리 열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공부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공부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분들이 있...

12월24일 헛된 예배(9)

  • 2007-12-23
  • 조회 수 1728

2007년 12월24일 헛된 예배(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앞서 말씀드린 영에 이어 참된 예배를 위한 또 다른 요소는 진리입니다. 진리가 무엇인가는 동서양 사상의 화두입니다.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시던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고 말하자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되물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진리라는 사실을 변증하는 문서라고 할 수 있...

12월23일 헛된 예배(8)

  • 2007-12-22
  • 조회 수 1605

2007년 12월23일 헛된 예배(8)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어제 저는 우리가 영에 관해서 모든 걸 아는 게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르는 부분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영을 잘 알고 있는 듯이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 오늘 보충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보통 교회에서 영, 성령, 영성 등등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합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말도 곧잘 합니다. 난치병이 치료되거나 부도날 사업이 기사회생했다거나 절망 중에 있던 사람이 기쁨에 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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