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다비안 여러분.

극심한 무더위 속에 지친 몸과 마음,

잠시나마 쉬어가실 수 있는 반가운 소식 전합니다.

종교개혁 506주년을 맞이해서 오는 1031,

대구성서아카데미에서 특별한 책을 한 권 내놓게 됐습니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저, 정용섭 역 믿음의 기쁨입니다.

이 책은 2007년에 초판을 인쇄했는데요,

이번에 리뉴얼해서 조금 더 세련된 모습으로 선보입니다.

 

기독교 중심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자 열망하는 이들을 위해,

전국의 신대원 학생들을 비롯해 설교 강단에 서는 사역자들을 위해,

이 책을 판매 및 배포할 예정이오니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요 사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사전 예약 판매

기간 : 815~ 915일(일정 변경됐습니다)

가격 : 15,000(택포)

신청 방법 : 입금 후 희망 부수, 이름, 주소 명기 후 문자 보내기

*사전 예약 기간이 끝나면 권당 20,000(택포)에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기쁨펀딩 안내

기간 : 815~ 915일(일정 변경됐습니다)

펀딩 내용 : 1구좌 10만원, 최대 10구좌

목표액 : 500만원

신청 방법 : 입금 후 이름, 주소 명기 후 문자 보내기

특전 : 책 표지 뒷면에 후원자 명단 소개, 1구좌에 책 5권 증정, 한국 기독교계에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자부심.

*이 책은 한국 설교단의 갱신을 위해 다비안 여러분들의 후원을 받아 제작할 예정입니다.


 

3. 무료 배포 신청 안내

기간 : 815~1030

가격 : 무료(택배비 전액 지원)

신청방법 : 희망 부수, 보내고 싶은 곳 주소지, 이름 명기하셔서 문자 보내기

*전국의 신학대학교나 각 교단 노회 모임 등 예비 설교자들과 현재 사역자들을 위해

이 책을 무료 배포합니다. 본인이 직접 속해 있어도 좋고, 추천을 해주셔도 좋습니다.

(각 개인에게는 무료 배포하지 않습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4. "믿음의 기쁨" 상시 판매 안내

예판 기간이 끝난 후에는 2만원(택포)에 언제든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책이 소진되는 그날까지 접수받을 예정이오니 신청하세요.

자세한 사항은 사랑채 공지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농협 1190-02-006096 박은숙 (010-3135-0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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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은빛그림자

2023.08.16 12:12:00

9월 15일 현재 펀딩 내역입니다.


<1구좌>

이순희, 김기성, 김미숙, 박재진, 김태형, 석호동, 윤혜정, 

박유정, 서장훈, 문혜숙, 이선애, 김기범, 엄철용, 김용성,

김재남, 강윤선, 권택준, 여승훈, 김동호, 이주영, 김부연, 

양선경. 이상 22명 


<2구좌>

박수진, 오유경, 심형규, 현승용, 다비아샘터, 이유선, 김종일, 박은숙. 이상 8명


<3구좌>

박임수. 이상 1명


<4구좌>

이기령 이상 1명


<5구좌>

전영민, 서울샘터교회. 이상 2명


<10구좌>

무명씨 1명


총 650만원



[예약 판매]

황성민 1권, 여승훈 1권, 전영민 2권, 고명훈 3권, 김정미 1권, 이계진 1권, 임대근 1권, 박유정 1권, 이용식 2권, 김효경 1권, 정경락 1권, 무명씨 1권, 황주언 1권, 장수천 2권, 신경자 1권, 김창무 1권,김부연 2권, 공삼조 2권, 장아름 1권, 김성미 1권, 구지석 1권, 최용우 2권 총 3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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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7]김사관

2023.08.30 12:16:21

이번 기회에 판목사님 설교집을 제대로 정독해 보렵니다. 그러기 위해 장비구입, 아니 펀딩 먼저 하죠. ㅎㅎ 김기성사관 1구좌 자발적으로 펀딩합니다. 강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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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은빛그림자

2023.08.30 13:07:59

ㅎㅎ영광인 줄 아십숑. 영업 아무나 당하는 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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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7]김사관

2023.08.30 15:15:36

으음...이 쯤 되면 목사님들 포함해서 구세군 사관인 저는 은빛님 말씀 잘 듣는 편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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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8.30 20:10:31

김 사관님, 잘 생각했습니다. 판 선생 설교집만 소화해도 우리 키가 한뼘은 더 자랄 겁니다. 

각 교단 목사 안수 받는 분들에게 모두 한권씩 선물로 줄수만 있다면 좋겠지요.

졸역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해설> 첫판을 한들출판사가 2000년 5월에 

통합 목사 고시를 보는 후보자들에게 전부 한권씩 선물로 주더군요. 

우리는 힘이 닿는 한계에서 신대원생들에게 제공할 겁니다.

사관심이 제대로 정독하신다고 했는데, 저도 이 책을 유튜브로 강독할 계획입니다.

신학책 강독보다 교인들이 이 설교집이 듣기가 더 좋을 겁니다.

일단 칼 라너 강독을 끝내고 시작해야겠지요. 

강독할 게 자꾸 쌓이네요. 

아무 농작물에도 도움이 안 되는 가을 장마가 이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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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8.30 19:57:24

판 선생의 설교집에는 46편의 설교가 들어있습니다. 두 권 설교집을 한권으로 모은 겁니다.

저의 독일어 실력이 별볼일 없으나 판 선생의 신학과 영성, 그리고 그리스도교 2천년 주류 신학과 영성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서 번역했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ㅎㅎ

여기 설교 제목만 알려드립니다. 제목만 읽어도 가슴이 설렐지도 모릅니다. 


<구약>- 9

아브라함의 믿음(15:1~21)/ 불타는 떨기(3:1~10)/ 유일신 신앙(6:4~5)/ 광야를 건너(8:11~20)/ 기도(143:1~12)/ 하나님의 승리를 향한 길(40:1~5)/ 고난 위로 임하는 빛(52:7~10)/ 너의 하나님은 왕이시다!(52:7~10)/ 하나님의 부재와 현재(36:22~28)


<신약>- 37

회개하라!(3:1~11)/ 여기 계신 하나님의 나라 (4:12~17)/ 권위의 근원(13:10~17)/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기독교인의 십자가(16:24~25)/ 영원한 생명(25:1~13)/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들 (3:20~30)/ 자유와 이성 (5:1~20)/ 빈 무덤 (16:1~8)/ 높은 곳에서 오신 귀한 분 (2:8~20)/ 축복 선언 (6:20~22)/ 이웃으로부터의 자유(14:25~33)/ 도미누스 플레비트 (19:41~44)/ 하나님의 미래와 아기 예수의 오심(21:24~33)/ 마음을 드높이(22:14~23)/ 생명의 의미(1:1~5, 9~14, 16)/ 와서 보시오!(1:45~51)/ 하나님은 영이시다!(4:19~24)/ 생명의 밥(6:48~51)/ 세상의 빛(8:12)/ 고난을 향한 예수님의 길(12:20~26)/ 이웃 사랑의 근원(15:9~14)/ 성령의 약속(15:26, 16:13~15)/ 부활을 증언하는 여자(20:11~18)/ 믿음의 의(3:21~28)/ 세례(6:3~8)/ 죄로부터의 자유(6:3~11)/ 생명의 영(8:1~11)/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11:32~36)/ 삶의 차안과 피안(11:33~36)/ 기독교인다운 삶의 스타일(고전 9:24~27)/ 교회의 토대(고전 10:14~21)/ 그리스도의 몸(고전 12:1~18, 27)/ 사랑의 능력(고전 13:1~10)/ 살아계신 주님(고전 15:1~11)/ 새로운 인간(1)(고전 15:12~22)/ 새로운 인간(2)(고전 15:45~49)/ 하나님의 영광과 계시(고후 3:12~18)/ 자유로의 소명(고후 3:17)/ 예수의 죽음과 속죄(고후 5:19~21)/ 성령 충만(5:15~20)/ 승천(3:1~3)/ 살펴서 붙들라!(살전 5:21)/ 기도에 대하여(딤전 2:1~6)/ 예수의 복종(5:7~9)/ 우리의 희망(10:22~23)/ 굳게 지키시오!(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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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8.30 20:01:19

이 설교집은 200자 원고지 1,700매 분량입니다. 책으로 묶으면 350여쪽이 되겠지요.

요즘처럼 느슨하게 글을 배치하면 2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촘촘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 역자 후기를 올려드립니다.


역자 후기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1928.10.2.~2014.9.5.) 박사는 독일의 현대 개신교 신학자 중에서 학문적 성과가 가장 높습니다. 그의 신학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현대판 교부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두 권의 설교집을 냈습니다. Gegenwart Gottes(1973)Freude des Glaubens(2001)입니다. 앞의 설교집은 제가 번역해서 2002년에 여기 계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뒤의 책은 2007년에 믿음의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대구 성서아카데미>에서 냈습니다. 뒤의 책을 낼 때 앞의 책을 한데 묶었습니다. 전체 설교를 성경 본문 순서에 따라서 다시 배열했습니다. 이제 16년 만에 전체적으로 교정을 새로 보고, 재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설교문에 나오는 성경 구절은 처음 번역문 그대로 <공동번역>을 따랐습니다.

판넨베르크 박사의 설교에 관해서는 월간지 <기독교 사상> 200710월호에 게재한 졸고 설교의 메타노이아에서 나름 충분하게 다뤘습니다. 그의 설교에서 저는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성경 본문의 깊이로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성경 본문과 기독교 교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한국교회에서 활동하는 많은 설교자에게도 전달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백 자 원고지 17백 장이 넘는 전체 내용을 꼼꼼하게 교정을 보신 이는 윤혜정 님입니다. 복더위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인디자인은 김태형 님이 봐주셨습니다. 전업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셨군요. 기획과 알림과 섭외와 배부 등, 전체 총괄은 박은숙 님이 맡아주셨습니다. 무슨 말로 다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요. 이번 출판에 재정적으로 크고 작은 후원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한국교회 설교단의 갱신을 위한 밑거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믿음의 도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2023말복을 앞두고 영천 원당에서

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정용섭 목사


#1)여기 계신 하나님에 실린 판넨베르크의 머리말

 

설교집을 출판하고 싶은 생각이 저에게는 진작부터 있었습니다만 오랫동안 망설였습니다. 제 설교가 내보일 정도로 탁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다르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신학적인 면에서나 교회의 실천적인 면에서 공적인 일을 맡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제 경우처럼 학문적인 작업을 펼치는 일이라면 신학이 설교와 연결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입니다. 저의 관심인 신학 작업이 설교라는 다른 형식으로 결실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하더라도 신학이 반드시 설교로 이어져야만 한다고 제가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설교집에 간추려진 설교는 거의 모두 본문 설교라는 전통 설교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출판의 편집 의도에 따라서 비슷한 주제를 다룬 설교가 선택되었습니다. 본문 설교라는 형식을 유지한다고 해서 하나님 말씀인 성서 본문이 매 순간의 상황 가운데서 같은 방식으로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모든 설교에서 우선 주제를 선명하게 설정하는 작업입니다. 말하자면 설교 본문의 도움으로 구체화하여야 할 기독교 교리의 주제가 핵심입니다. 저의 실천신학 은사이셨던 빌헬름 하안 박사는 전적으로 실용적인 이유에서, 즉 많은 주제 설교가 흐르기 쉬운 추상화와 일반화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본문 설교를 고수하라고 충고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저에게 유효합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설교 본문이 기독교 교리의 한 주제와 철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주제는 일반적으로 각각의 제목을 통해서 암시됩니다. 한 성경 본문의 역사적 내용 그 자체가 설교의 대상이 아니라 그 본문이 연결된 교의학적인 주제가 바로 대상입니다. 이러한 주제는 이미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에서, 그리고 현대적으로 생각하는 언어와 사유 형식에서 파악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 본문으로부터 곧장 설교로라는 형식, 즉 설교를 듣는 이들의 상황에 들어맞아 떨어지는 문제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게 결코 아닙니다. 이런 문제들은 본문에 대한 역사적 주석과 적용 사이에 필요한 조직신학적 인식이 충분하지 못한 곳에서만 긴급한 현안으로 등장합니다. 이 조직신학적 인식은 원래 기독교 전승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관계된 것입니다. 설교에서 구체화하여야 할 본문에 대하여 신학적인 주제가 독립적이라 것은 다음을 의미합니다. 저의 설교에서는 신자들의 현재 상황이 본문과 어떤 유비적 관계에 있는가에 대해서만 질문하는 게 아니라 본문이 말하는 주제에 대한 오늘의 인식이 그 본문 내용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어떻게 대립하는지를 고려해보고, 또한 가능한 한 그 요점을 명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설교의 본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찾아보려는 입장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당연히 설교에서 논박당할 수 없는 그 말씀을 가리킵니다.

저는 제 설교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어떤 특별한 주제들과 상관되었기에 <교리설교>라는 특징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여기에 수록되지 않은 설교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제 설교는 교리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는 본문을 잘못 주석할지 모른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신학을 설교단에 접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설교단에 올라서기보다는 오히려 설교단 아래서 훨씬 자주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설교자들이 신학적인 문제에서 자신을 절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결과가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설교자가 설교 본문과 그 주제에 해당하는 신학 정보를 어느 정도 신자들에게 전달하면 설교의 내용이 풍성해집니다. 이 정보라는 것은 설교자가 자신의 학문적인 전문분야에서 얻은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설교자가 신자들의 지적인 수준이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듯이 생각하고 접근합니다. 그렇게 많은 신학 정보를 신자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설교자가 정말 명심해야 할 사실은 대다수 신자가 지적인 면에서 설교자보다 월등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설교자 못지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잘 훈련받은 신학 교육이 설교단에서 활용되어야 한다는 말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 말은 설교자가 전문적인 신학 용어를 남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신학 용어를 절제 없이 사용한다는 것은 그 신학의 대상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신자들의 일상적 용어로 신학적 목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저는 신학 이론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게 설교의 고유한 과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 기억에 남는 좋은 설교는 제가 그 설교를 들음으로써 생명과 그 의미에 대해 자극받는 설교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제 설교는, 듣는 이들이 자신의 생명과 현재 우리가 경험한 생명의 의미를, 그리고 기독교 전통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런 생명의 의미를 심화하고 숙고하도록 이끌어주고 자극하려는 작은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73년 뮌헨에서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2)여기 계신 하나님에 실린 역자 후기

 

저는 200036일 베를린의 테겔 공항에 발을 디딘 후 일 년 가까이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베를린에서 거주하는 동안 자주 들린 두 곳이 있습니다. 한 곳은 유명한 승리의 여신상을 중심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티어가르텐이라는 공원인데, 대도시 한복판에 그런 공원을 둔 베를린 시민들이 부러웠습니다. 저는 그 공원 작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는 꽃과 나무를 보았고 그 향기를 맡았습니다. 산책 나온 노인 부부, 조깅하는 사람들, 담임 선생님과 함께 소풍 나온 초등학생들, 햇빛 드는 날이면 일광욕을 즐기는 선남선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로 <성서><장자><월든>을 읽었습니다. 봄과 여름을 그렇게 티어가르텐에서 보냈습니다.

가을과 겨울에는 국립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포츠다머 가()를 사이에 두고 베를린 필하모니와 맞서 있는 국립도서관에서 또다시 성서와 장자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손에 잡힌 판넨베르크의 설교집 여기 계신 하나님을 읽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신학서도 아닌 그까짓 설교집이 뭐 대수이겠나 생각하고, 다만 조직신학의 대가가 도대체 어떻게 설교했는지 알아보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대충 훑어볼 요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그의 신학이 생생한 언어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그의 설교를 통해서 그의 신학을 훨씬 실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신학과 사유의 깊이에 다시 한번 더 큰 감동을 하였으며, 또한 어떻게 (조직)신학이 설교로 연결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그의 설교집을 번역하고 나서, 그는 바울과 교부들과 루터와 바르트의 전통에 확실하게 서 있는, 그러나 그들과는 전혀 다른 시대 속에서 기독교의 근본을 설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략>

판넨베르크 박사는 작년 11월에 한국을 처음, 아마 마지막일 것 같은데, 방문했습니다. 그의 방문에 맞추어 역자는 그의 신학과 철학(한들출판사) 번역 출판했습니다. 여기 번역 상재하는 이 설교집 이후의 설교를 모은 그의 두 번째 설교집 Freude des Glaubens(2001)을 가능한 한 속히 번역하고 싶습니다. 한편 대구성서아카데미의 첫 출판작업으로 판넨베르크의 설교집을 낼 수 있게 되어서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바쁜 중에도 이 번역 원고를 꼼꼼히 읽고 직접 교정까지 맡아주신 이신건 박사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기독교계의 큰 스승인 판넨베르크 박사가 여생을 건강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20029월 무학산 아랫동네 하양에서

정용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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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9.07 20:44:43

저는 가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설교나 강독에서 했습니다.

가짜 보석을 구분하려면 먼저 진짜 보석을 가까이 해야 한다고,

위폐를 식별하려면 진짜 지폐를 손에 끼고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스도교 중심을 정확하게 알아야만 가짜가 눈에 보이는 법입니다.

판넨베르크 설교는 복음의 엑기스입니다. 

그 수준이 어떤지를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아는 사람은 압니다.

예를 들어서 <사랑의 능력>(고전 13:1-10)이라는 설교문을 번역했을 때 저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는 사랑이 은사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사랑의 은사'는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믿음과 구제 등등은 은사이나 사랑은 은사가 아닙니다.

은사는 우리가 노력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를 수 있으나

사랑은 우리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이렇게 살아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게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예찬'이라고 말하는 그 고전 13장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현실성이, 또는 현실(reality)이 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야 하듯이

우리가 사랑을 노력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사랑의 능력에 휩싸일 뿐입니다. 

사랑을 손에 넣으려는 모든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판 선생은 고전 13장을 '기독론'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런 설명을 듣는 순간에 저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다비안들에게 있기는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설교집을 다시 만들게 되었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랍니다.

저 설교집이 말하는 그 기독교 영성 안으로 한걸음이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100만원도 아깝지 않고, 그 이상도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설교자에게는 물론이고 일반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도 그리스도교의 원래 세계를 전혀 모르고,

그저 아는 흉내를 내다가 끝마칠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이 설교집을 여러분이 읽고, 출석하는 교회에 목사님들에게 선물로 드리십시요.

제 설교집은 별로겠으나, 판 선생 설교집은 모두 좋아하실 겁니다.

이게 바로 '선교' 아니겠습니까.

지금 전국에 있는 신대원 설교학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책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보는 중입니다. 

집계가 끝나면 인쇄에 들어가겠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사랑의 능력> 설교의 앞대목만 아래에 옮기겠습니다. 

숙독해보십시오. 나중에 강독할 때 제가 보충 설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어떤 진리에 대해서 말할 때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잘 이해되기보다 오히려 오해받을 위험성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그가 하는 말을 아주 정확하게 경청해야만 합니다. 그가 사용한 낱말 중에서 독특하거나, 오랫동안 익숙했던 의미를 재발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근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유명한 사랑 예찬이 바로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곧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게 다가오는 사랑이라는 낱말을 들을 때 주로 무엇을 생각하는가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말을 듣고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적 연대감과 일체감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또는 마음의 빈 곳을 채우고 우리를 완성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없다면 우리 삶은 풍요로워질 수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도 결코 풍요로워질 수 없습니다.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랑에 대해서 이런 정도의 서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말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과 온갖 은사를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랑을 잃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즉 세상의 좋은 것들과 더불어 사랑도 역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바울은 그 이상의 것을 말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 말은 약간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요? 문학적 수사가 아닐까요?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다른 여러 가지 가치 있는 일들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육체의 건강과 외모의 아름다움, 지성적인 능력과 예술적인 재능, 손재주나 감각적인 기능, 순수한 마음이나 단호한 결단력 같은 것들은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런 은사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걸까요? 우리가 이런 은사를 통해서 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음악세계에서 무언가 의미를 추구하는 이들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깊이들을 경험합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멜로디와 하모니가 충만해지는 걸 들음으로써 자신의 고유한 영적 넓이를 발견한다고 말입니다. 또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내적 세계를 개척하며, 더 나아가 그 세계를 한 걸음씩 발전시켜 나갑니다. 음악이 없다면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해질는지요! 다른 은사들도 역시 이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서 본문에서 바울은 이런 자연적 은사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이런 것들이 사랑과 절대로 비교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적 은사의 광채는 우리의 육체와 더불어 스쳐 지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최선의 경우라 하더라도 당분간 남아있는 희미한 기억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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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은빛그림자

2023.10.16 17:05:23

[후원금 사용내역서] 10월 16일 현재


후원금 총액            6.500,000원


인쇄비(1500부)         5,400,000원

택배비(대량,소량)          538,390원

기타(봉투 및 박스)           16,700원

출판기념회(서울샘터)     500,000원


총 지출                   6,455,090원


[대량 배부처]

영남신대 200부, 장신대 200부, 대신대 180부, 목원대 170부,

한신대 140부, 서울신대 100부, 대구성서아카데미 80부,

한일장신대 30부, 총회교육원 20부, 대경목협 30부, 

임마누엘 설교공부 20부, 건강한 작은교회 동역센터 20부, 

순천 중앙교회 10부, 감신대 5부, 여수 안산교회 5부.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3.11.07 20:22:14

지난 주일 서울샘터교회 예배 후 판넨베르크 설교집 출간 기념 특강 모임이 있었습니다.

제목은 "하나님 경험과 판넨베르크 설교"였습니다. 

모임 진행에 관해서는 서울샘터교회 메뉴로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의 특강은 사티아 김현혁 관리자께서 녹화하셨으니까 조만간 유튜브로 올리겠습니다.

지난 8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이번 특강 모임으로 일단락된 셈입니다.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이 작업에 여러 손길이 함께했습니다. 

무슨 말로 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펀드에 참여하신 분들도 여럿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씨를 뿌렸습니다.

그걸 거두시는 분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시겠지요. 

지난 일은 이제 잊고 오늘과 내일, 그리고 올해 남은 두달,

우리 모두에게 생명 충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판넨베르크 설교집 <믿음의 기쁨>을 숙독해보십시오. 

한달에 한번씩, 혹은 두달에 한번씩 하는 방식으로 

5회만 정독해보십시오.

그리스도교 세계가 상당한 수준으로 선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 경험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마지막으로, 설교집 마지막 단락만 여기 다시 올리겠습니다.

판넨베르크가 35살 때 마인트 대학예배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1963년 대림절 둘째 주일이군요.


기독교의 신앙은 예수님이 죽음을 극복했다는 사실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중략) 그분은 다시 오실 분이기도 합니다. 

그는 우리의 죽음 저편에서 우리에게 오실, 그리고 죽음에서 난파당할 우리의 생명을

건져내실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언제, 어떻게 우리 생명과 세상 생명의 미래가 될는지 

아직은 모릅니다. 그가 밤중에 도적처럼 오신다는 말은 어느 시점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오시는 방식, 즉 그의 미래와 현재 살아가는 우리의 이 생명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가 

우리에게 숨겨져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어둠 가운데서도 우리는 기다리고 희망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죽음을 극복하고 살아있는 자로서 그 미래에 존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붙들고 있듯이 예수님도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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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좋은나무

2023.11.07 21:19:38

목사님. 판넨베르크 설교집도 강독하시는군요!! 강독시작하시면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빨리 해주세요 ㅎㅎ 어제 오늘 판넨베르크 신명기설교를 정독했는데 전혀 다른 세계와 세상으로 인도받는 것 같았어요. 번역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도 주변 목사님들께 알리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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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11.08 22:42:01

좋은나무 목사님, 지난 주일 오후에 직접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리스도교 세계 안으로 보다 깊이 들어가봅시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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