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조회 수 4733 추천 수 4 2006.02.25 14:21:24
요즘 다비아 사이트가 쓸데 없는 것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등록회원이 500명이 넘고,
손님들도 제법 많이 드나들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런 방식은 원래의 방향과 크게 어긋나 있습니다.
극좌에서 극우의 소리까지 여기서 담아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목소리가 그치지를 않는군요.
여기는 기독교의 근본을 공부하고 그것의 지평을 넓혀가는 곳입니다.
기독교 전통 자체를 부정하는 분들은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글쓰기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죠.
여기는 주로 신학생들에게 신학적인 오리엔테이션을 제공하고,
목회의 본질을 추구하는 젊은 목회자들에게 신학적 사유를 제공하는 걸,
그리고 지성적인 평신도들에게 기독교의 본질을 안내하는 걸
목표로 합니다.
자신의 극단적이고 주관적 체험이나
그런 신학적 정보를 사람들에게 선전하는 자리는 결코 아닙니다.
이 공간에서는 그것이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모든 목소리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런 목소리와 공연한 논쟁을 벌일만한 여유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논쟁으로 인해서 정작 중요한 문제들이 뒤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명제가 실감이 나는군요.
이런 점에서 다비아는 일정 부분 닫혀있습니다.
도대체 여기서 어거스틴의 천사 창조론과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끌어들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걸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말하는 사람 자신도 별로 탄탄한 논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말입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통일교 신학자가 나와서 자신들의 변명을 늘어놓게 될 것입니다.
나는 통일교 학자들의 논리나 '영' 님의 논리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그 이외에 요즘 발흥하고 있는 이단들도 아마 한몫 단단히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성산 님이 말했나요?
모두가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구요.
그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말도 없습니다.
인간의 열정이 얼마나 난폭한지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외면적인 폭력만 난폭한 게 아니라 사상만으로도 난폭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영성을 파괴하니까 말입니다.
성화의 열매가 없으면 지옥간다는 말이 난폭한 게 아닌가요?
본인들이 얼마나 엄청난 체험을 했는지 몰라도
그런 주장에는 그 어떤 해석학적 토대를 발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게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것을 여기서 다룰 수는 없습니다.
비유적으로 설명해서
대금을 공부하고 있는 곳에 와서
북을 치라고 한다면 이게 어디 말이 되나요?
만약 본인들이 그렇게 심층적인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면
조용하게 자기의 길을 가는 게 마땅할 것 같습니다.
정말 도를 아는 사람은
절대 도사 연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의 신앙을 굳이 설명하고 싶다면
그리고 자기의 신앙을 점검받고 싶다면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게 옳습니다.
이라크 전쟁, 성적 소수자, 군 대체 복무, 노동, 성, 하늘, 땅,
죽음, 남북문제, 생태계, 결혼과 이혼 등등,
이런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신앙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는 게
어거스틴의 천사 창조론 비판 보다 백배 유익합니다.
우리가 함께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삶의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는 교회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문제를 서로 토론할 수 있겠지요.
물론 신학적인 주제가 안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학 역시 인문학적 보편성에 근거해서 설명해야겠지요.
이 자리에서 루터와 쯔빙글리 사이에 벌어진 성만찬 논쟁이 필요하겠어요?
그건 신학대학 석사 학위 논문으로 가면 되요.
요즘 몇몇 분들의 글을 보면 기독교 신앙, 신학이 아니라
단순히 심리학에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형제들이여, 사랑합시다."
이런 공자왈 말씀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랑은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외치고 있으니 공허하게 들리지요.
물론 이성산 님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틀리지 않았지만 그런 일반론은 무의미한 것이죠.

정리해야겠군요.
1. 다비아에서는 기독교 정통을 전제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걸 아는 일만 해도 우리에게 숨 가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숨 가쁜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일로 말을 걸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앞으로 문제가 발견되면 개인적으로 말씀드리고
글쓰기를 제한하겠습니다.
이건 이 사이트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분들 중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3. 글쓰기의 방식은 질문, 또는 대화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는 도사들의 모임이 아니라 자기의 인식과 체험이
잠정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이 사이트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절하게 교통 정리할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주의 은총이.
정용섭.

[레벨:1]한성영

2006.02.25 18:06:44

목사님 몇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기독교 정통을 전제로한 대화를 해야한다고 하섰는데
무엇이 기독교 정통입니까? 목사님께서 참고하시는 판넨베르크나 칼바르트를 옹호하는
입장입니까? 아니면 이싸이트의 몇몇분들의 판단하에 해석되어진 기준입니까?
저도 목사님의 글들을 꼼꼼하게 읽는 편인데 목사님께서도 딱히 어떤 입장을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더군요. 예수에 관한 입장도 역사적으로 불분명하고 그가 남긴 어록도 불충한다
고 밝히신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은 분들은
항상 고민해야합니다. 이글이 관리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하지않을까? 아니면 또 어떤 신학적
입장에 있는 회원의 심기를 불편해하지않을까? 항상 고민하며 글을 올려야합니까? 제가알기로는
신학계에서는 판넨베르크나 칼바르트를 비판하는 분들도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단지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이곳 필진들의 글을 읽고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하고
글을 올릴때는 겸손한 질문 정도만 하라는 것이 목사님의 입장이십니까? 어느 글에서 목사님은
한국개신교에 담론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담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사람들의 담론만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느 교회나 기독교관련 게시판에 목사님의 글(설교비평이 아님)을 게시한 적이 있습니다. 묵묵히 수용하는 곳도있고 쳐죽이자고 욕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이렇듯
같은 정통기독교 라고 자처하는 곳에서도 여러가지 의식과 수준 신학적 입장이 다름을 보게됩니다.
사랑채는 그야말로 자유게시판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원들이 그야말로 유일하게 글을 독립적으로 자신의
글을 게시할수 있는 곳이지요. 물론 죽비 게시판도 이제 회원들에게 열려있으나 그곳은 글의 방향이
특화된 곳이라 회원들이 잘 이용을 하지않는 것 같군요. 몇개월 동안 이곳의 흐름을 보니 사랑채
자유게시판은 회원들의 다양한 동정이나 생각, 가볍게 읽을수 있는 글등이 올라오고 머 회원들이
그러한 글을 통해 무언가를 배워야 겠다 그러시는 분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유게시판의
성격에 맞게 자유롭게 글들이 오가고 하는 것 같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 토론 게시판을 보니
꼴통 보수주의 자들로부터 심하게는 안티들까지 다양하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더군요. 오히려
한 꼭지 정도 그러한 게시판을 허용한 높은 뜻 숭의교회 관련자들의 안목이 돗보입니다.
자유게시판의 흐름에 대해 이렇듯 관리자들이 개입하게되면 이곳이 상당히 경직되어질 것 같습니다.
통일교신자들마저 이곳에 들어와 글을 올리면 어쩔거냐 하시는데 그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요. 이곳에 드다드시는 분들이라면 그정도는 충분히 웃어 넘기실수 있는 분들이라 보여지고
대화를 통해 그들의 오류도 지적해 줄 수 있겠죠. 머 그것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요. 이제 온라인 상에
대화들이 일상화 되어진 시점에서 싸이트를 개방하게되면 여러가지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게 됨을
봅니다. 또 그것을 당연한 흐름으로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있구요. 그래서 청와대 게시판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욕하는 글들도 올라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남들을 비방하거나 상업적인 글들을 용인하면 안되겠지요.
그러나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려는 운동이라면 그 와중에 여러가지 견해를 피력하는 것마저 몇몇관리자들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인터넷 문화가 만들어낸 지식과 정보와 의사의 프로슈머적 기능을 무시하는 처사라
봅니다. 다비아에 일정한 방향이 있다고 하시는데 물론 큰틀에서 있을 겁니다. 그러나 작은 부분에서마저
시어머니 노릇을 하려고 한다면 말을해도 되는 것과 아닌 것을 조목조목 매뉴얼을 올려서 참조하게하는
것이 어떨까요. 관리자들의 의중까지 파악하여 글을 올려야하는 역량을 발휘하기에는 회원들의 능력이
부치지 않겟습니까? 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는데 도움을 주려는 인문학적 전통과 만인제사장 에큐메니칼
에 기반한 운동이라 하셨는데 이곳 몇몇 필진들과 운영자들의 입장만이 성서를 올바르게이해하시는 것이라 보시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면밀히 조사해서 생각이나 관점이 맞는가 알아보고 비밀리에 이싸이트를 관리하는 것이 옳지않겠습니까? 이곳에 올라오는 몇몇분들의 글들이 대꾸해주기에는 너무 유치해서인지 아니면 무언가 가르치려드는 모습이 같잔아보이셔셔 그러시는지 모르겠으나 안티기독교 싸이트에도
기독교인들이 들어와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합니다. 물론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으나 담론 자체를
봉쇄하지는 않습니다.일일이 대꾸해주고 논리로써 글을 전개해 갑니다. 얼마전에 류상태목사님이 반기독교시민
연대 싸이트에서 대화를 나누셨더군요. 그들도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의 억지스런 주장이 아니라면 열린마음으로
논리와 신뢰할 만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기독교의 근본을 추구해가는 사람들이라면 이와같은 열린대화에 더 앞장서야하며 좀 부족하고 미숙한 글들이라도 함께하려는 인내심을 발휘한다고
보니다. 기독교의 근본에 가까이 가려는 사람들,예수를 길이라 보고 가는 사람들은 그 어떤 사람들의 집단이나
싸이트보다 인내하고 포용하는 내공이 깊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다비아의 회원의 한사람으로서 견해를 밝혀봅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신 점 감사하고 무례를 범한 점이 있다면 사과드리며 너그러히 용서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영완

2006.02.25 20:35:02

한성영님이 싸이트를 하나 만들어 보심도 좋을 듯 함니다.

이성산

2006.02.25 21:32:36

그동안 관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말씀 가감없이 수용합니다.
절제하고 기도하겠읍니다.
목사님과 목사님가정, 이곳의 모든 형제 자매님들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6.02.26 00:08:58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 무엇으로도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짧습니다.
그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길 밖에
우리에게 그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공평한 은혜인지,
아니면 잔인한 형벌인지는 접어놓고
그게 우리의 실존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 사이트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귀를 기울일만한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야겠지요.
그 기준이 뭐냐, 하는 질문이 있군요.
그건 내가 여기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설명이 된 것으로 보고,
어쩌면 아직 결정된 건 없을지도 모릅니다.
회원들의 생각이 함께 모이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요.
그런데 회원들의 생각을 모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아직 없습니다.
다비아의 시작이 겨우 2년뿐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시스템이 작동될 수 있다면
나는 손을 떼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나이도 들은 사람이 매일 일정한 시간을 여기에 투자한다는 게
좀 그렇기도 하지요.
아직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는 시작한 사람이
어느 정도 틀을 잡아나가는 게 바로 그 기준이 아닐까요?
여기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의 진정성은 제가 이해합니다.
다만 그것의 보편적 타당성과 효율성에서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보편성과 효율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이 사이트는 유명무실해질 겁니다.
열린 대화라는 것도 역시 이런 보편성과 효율성이라는 구도 안에서 의미 있을 겁니다.
여기서 서로 말꼬리 붙잡기나,
이단논쟁 비슷한 것이나
종교대화 같은 것들은 무의미합니다.
종교대화를 내가 왜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건 여기 말고 따로 자리가 있겠지요.
이단논쟁도 다른 데 자리가 있겠지요.
여기는 기독교 역사가 구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삼위일체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인간의 미래와 기독교 종말론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교회 일치(에큐메니칼)는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리터지가 있는 예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성서와 신학적 해석학은 무엇인지,
창조론과 자연과학은 어떤 관계인지,
오늘 한국강단의 문제와 그것의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대충 이런 중심 주제를 마음에 담고,
그 이외에 인생에 대해서,
영화와 연극과 음악 , 시,
또는 일반 정치, 사회, 문화와 오늘 우리에게 닥치는 삶의 리얼리티들을
신앙적으로 고민하는 거죠.
이런 일들로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알차게 사용하자는 겁니다.
여기에다가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신앙을 그 바탕에 놓아야겠지요.
이런 것들이 칼로 두부 자르듯이 잘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냥 방향이 그렇다는 거죠.
지금 다비아는 과도기입니다.
저는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라고 정갈한 밥상을 차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특히 후학들을 위해서요.
제가 신학공부를 하던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그 장이 너무 척박했다는 건 잘 알기 때문에
젊은 목사, 신학생들에게 인문학적 토대에서 신학적 사유하는데
약간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거죠.
그들에게 삼단계 칭의론(?)같은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삼위일체에 대한 신학적 사유가 채 정리되기 전에
삼위일체는 성서에 없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기독교 신앙이 추상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마당에
사랑하십시요, 하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신학생들과 젊은 목사들이 '사랑의 리얼리티'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론적 능력인지
인식하고 따라가게 돕는 게 우선적으로 중요하지 않을까요?
모든 분들이 나름으로 삶과 신앙에서 나보다 훨씬 치열하다는 걸 인정합니다.
나는 공연히 신학합네, 하고 독야청청한 듯이 놀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지금 이런 말도 사실 할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설명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서 조금 붙였습니다.

초기 화면이 바뀌었군요.
제가 지금 집에 들어와서 열어보니까 그렇게 바뀌네요.
이 사이트의 기술적인 것은 이길용 목사님이 몽땅 끌어가십니다.
아마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했겠지요.
앞으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모든 시행착오들도 정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분이 나보고 이렇게 걱정했었습니다.
회원들의 참여가 많아지면 목사님이 과부하 걸릴지 모릅니다.
그런 때가 차차 오는 건지.
위에서 내가 개인을 지목하면서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건 단지 그분들에게만이 아니라
여기 다비아에 드나드는 모든 회원들에게 드리는 글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기쁜 주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은총이.

[레벨:7]늘오늘

2006.02.26 05:18:57

어느 틈엔가 최근 게시물과 최근 코멘트 위주로, dabia를 드나들다보니
TV 채널 돌리다가 선정적인 것에 머물듯, 백화점 구경하듯, … ^^;
처음 눈팅하던 때처럼, 각 방에 실린 글들을 순서대로 읽거나,
떠오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이 방 저 방을 뒤지는 방식이,
나의 인식을 심화시킬 수 있는 공부방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커리큘럼을 짜서 공부하고, 사랑방에서 필담을 나누고, … ^^

[레벨:0]riveroad

2006.02.26 08:00:13

회원님들 및 손님들께서 다비아를 운영하는 분들께 완벽한 개방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늘 선택을 강요당하면서 살지 않습니까? 그때, 우리는 완벽한 선택보다는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노력하지요.
인터넷에서는 개방성이 문제가 될 때도 있지만, 그 사이트의 유익함과 효율성이 문제가 될 때가 더 많지요. 게시판에서 우리의 자유를 무한정 보장받기보다 일정부분 절제하는 것이 요구돼겠지요.
꼭 말을 하고픈데 게시판에 적절하지 못한 글은 쪽지로 몇몇 자기 말을 들어줄만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듯합니다.

사실 저는 요즘 제가 이전에 썼던 글들을 지울까 말까 고민도 한답니다. 이게 답이다는 것처럼 단정적으로 쓴 글은 별로 없었겠지만, 오해를 사거나 별로 유익하지 못한 글들을 올렸다는 생각이 드니...

다비아의 모든 것이 완벽하고 사랑스럽지는 않지만, 다비아는 저에게 맹신도 아니요 추상적인 것도 아닌 실체적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사유케 한 곳이랍니다. 아무튼, 다름을 인식하면서도 화합할 수 있는 다비아가 돼었으면 합니다.

정정희

2006.02.26 19:19:23

존경하는 정용섭목사님,

이제 짐작했던것을 확인하게되었습니다

이사이트는 최소한 지성적평신도(?) 정도는 되어야 어울릴수있다는것을..

목사님이 이사이트를 개설하시면서 이미 저같은 사람도 들어와서 기쁘기도하고 오버도하고 그런걸 예상하셨더라면 좋았을걸...그런생각을 해봅니다

목사님, 여기들어오는 회원들 모두 세밀하게 사랑해주는것 조금은 소홀하시기 바랍니다

부탁이 있습니다 사랑채 자유게시판은 계속 열어두어주세요 목사님은 아주 가끔씩 들어오시고요

갈기

2006.02.26 19:54:01

사이트를 개설한 목적과 지향하는 방향성을 최소한은 인정하고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다비아 모습은 상당히 비정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나 혹은 그런 유의 토론을 위해서는 다른 사이트들에서 충분히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이트를 만들고 가꾸어가는 이들의 최소한의 지향점은 용인해 주셔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레벨:1]박한서

2006.02.28 22:29:05

그렇지요, 그렇지요. 결과가 목적을 배반하면 비참해 지는 것이지요. 콩 한 알을 심었는데, 꼭 백개를 거두어야 목적에 부합한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어찌되었던 콩이 열려야 합니다. 팥이 열릴 수는 없지 않겠나요? 다비아의 순수한 의도성에 찬성표를 던집니다. 허탈해지는 것을 가지고 시간 낭비할 수는 없지요. 차별이라기 보다는 구별되는 지혜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남녀가 차별되는 것이 아니라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로서 유별되는 것이듯이 말입니다. 오히려 게시판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더 큰 사랑이 아닌지요. 샬롬.

[레벨:0]riveroad

2006.03.01 02:46:49

글쓰기제한이나 게시판 윤리강령(?)의 등장으로 회원님들이 알게모르게 부담을 느끼시는듯 합니다. 없던 정책이 새로 등장했다기보다는 재천명의 성격이 강하지요? 이런 정책이 있음을 존중하면서도, 글을 쓰실 때 '운영진'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시면 대략난감모드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 건강한 3월 되시길!
-오늘 미국 치과를 처음 가본 치과환자 드림

[레벨:1]한성영

2006.03.01 06:24:49

제가보기엔 다비아가 용이 되려다가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가 된격인 것 같습니다.
정목사님의 붓끝의 대상들에게서 볼수 있는 모순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말꼬투리를 잡아 비아냥 거리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진정으로 길로 생각하며 가시는 분들이라면 기독교인들이 진리의 현현이며 종말론적
구원을 선취하셨다고 보는 예수의 주위에 어떤 구별이 없이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오가며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주목하셨으면 합니다. 시간이 아깝다고 내치는 것을 보셨습니까?
인터넸싸이트의 성격이라는 것이 정보를 확대재생산해가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지 모여서 묵상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와같은 내면의 침전은 그야말로 조용한 곳을 찾아 고요히 행하면 됩니다.
정보를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주목적이라면 사유의 가능성을 획일적 잣대로 구분하지말고 대화의
장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가도록 유도해가야합니다. 이거야 말로 기다림의 영성이지요. 예수님께서
복음을 설파하시는데 효율성을 앞세우셨다면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과 손을 잡으셨을 겁니다.
베드로 같은 이는 명암도 못 내밀었겟죠. 흠많고 속세의 때를 벗지못한 부족한 이들을 제자삼아
비효율적인 가르침을 펴신 예수님의 행적에 큰 뜻이 있음을 읽어내야 할 겁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바쁘다 하기전에 그같은 이야기를 들고와서 대화를 청하는 이의 마음과
현실의 자리를 깊이 있게 주목해보며 나한테 좀 불편하더래도 인내심을 발휘하며 들어주고 한자락
공간을 차지하는 것에 넓은 도량을 펼쳐가는 과정에 예수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 있지 않겟습니까?
그와 같은 모습을 주인장이 보여주시는 모습에 이곳에 올려진 담백한 글들을 읽는 것보다 더많은 것을
이곳에 드나드시는 분들이 깨달을수 있지 않을까요? 일정한 방향과 틀은 그거면 충분하다 봅니다.
내집 사랑채에 찾아온 손님이 제꺔량으로 풍월 좀 읇는 다고 우리집 가풍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내치는
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무색케하는 것은 아릴런지요. 그렇다고 글한자락 좀 올린다고 이집 재산이
축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저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이런 발상밖에는 할수 없으니 어인연고일까요?
다만 깊이 있는 공간이 한계를 드러내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터가 너무 좋은데 그걸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지요.............불편하셨다면 또 사과 드립니다. 용서해주세요.

갈기

2006.03.01 09:01:27

한성영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요. 성영님의 기대는 다비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에도 늦지 않지않을까 싶네요. 한 두 사람이 모여 사이트의 정체성과 목적을 세워가는 마당에 전체적으로 성격 자체가 흐려져 버리는 일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매우 지치게 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깊이 있는 공간이 그나마 온라인에 남아있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인내와 기다림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비아는 이제 겨우 2살입니다.

[레벨:5]오영숙

2006.03.01 12:19:52

이 곳에서 어떤 말이든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겠다는 것에 대하여 , 정목사님이 새롭게 방향성을 지적하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다비아가 지향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했을 따름이고, 우리들은 모두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기에, 그 방향을 잃어버리지 말자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왜 그렇게 불만들이 많은지요?
성영님.
배가 산으로 가도 선장이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요?
정목사님은 이 배의 키를 잡고 계신 분입니다.
성영님의 사이트를 개설하시고, 성영님의 추구하시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드세요.
다만 이 곳에서는 키잡이의 말을 존중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

[레벨:1]박한서

2006.03.01 12:58:48

말을 해도 뜻을 이해 못하게 될 때는 사고에 분열이 있던지

아니면 마음에 큰 상처의 열등감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고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혹시 아주 조금 아픈 것일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헬라어 강사께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헬라어를 배우려고 온 사람들 중에 이단 신비주의자들도 있더랍니다. 그들이 강의가 마칠 때마다 하는 말이 헬라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자기들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잘못된 열심" 오래될 수록 문제가 됩니다.

한참을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성장을 지향하지만 성숙되지 못하여

영~ 아픈 마음을 가지게 되는~ 뭐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레벨:1]한성영

2006.03.01 15:56:12

박한서님 비교적 젊은 분이신 것 같은데 음~ 하시고시프신 마음속의
속내를 완곡하게 포장해서 말씀하시는군요. 좋습니다, 그것이 님의 분석이며
생각이시라면 그것도 인정 하겠습니다. 그러나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어설픈
심리분석은 상대를 편견을 가지고 바라볼수 있게도 만듭니다. 말을해도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사고의 분열과 마음의 상처가 있다, 어느 심리학 이론인가요?
프로이드입니까? 융입니까? 오히려 프로이드와 융은 환자를 진단할때 그렇게 성급하지
않았습니다.환자와 많은 대화를 통해 원인을 찾아갔죠. 또 한번 경험하게 되네요.
사람들이 얼마나 인내심이 부족한지 상대를 이해하려는 이심전심이 우리가운데 얼마나
부족한지,자기안의 마음의 동요를 합리화 하기위해 섣불리 벽을 치는 것,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것
그리고 재빨리 문을 닫아 버리는 것.대화를 해봅시다. 그렇게 섣부른 판단을 남발하지말고요.
이와같은 과정이 다비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한국교회와 강단의
문제는 바로 상대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대화를 거부하고 자기만 옳다 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까?

[레벨:0]강현수

2006.03.03 23:16:31

용이 되려다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가 된격 운운은 참 안될 인간이다란 생각을 들게 하는군요. 님의 바닥이 보일라 합니다. 이제까지 현란하고 예의없는 글소리에 가려져 있던. 상종못할 인간이다. 저는 이런 생각을 예수님이 바리새인에게 가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상종 안하는게 상책이다. 실껏 말해도 인간이 안 될 놈이니까.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님의 윗글을 딱 보는 순간 예수님의 그 짜증과 분노가 확 밀려드는군요.

지나친가요? 님의 글 포장지 다 떼내면 저보다 더 못한 수준인 거 아시죠.

[레벨:0]riveroad

2006.03.04 02:35:31

흠.. 대화가 안 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지 않을까요?
한성영 님의 글을 다 받아주실려면 아주 힘들겠지요? 그러나, 정죄모드로 가지는 맙시다. 완전히 옳은 사람도 완전히 틀린 사람도 없는듯..

허공에다 대고 소리치면 반응이 없으니 스스로 생각하게 되니, 한성영님께 잠시 그런 기회를 주시길..
한성영님도 억지대화를 자꾸 청하지는 말았으면.. 한성영님도 다른분이 바라는 그런 대화를 못해주시면서, 다른분들 보고 한성영님이 원하는 대화를 끝까지 하자고 하면 어쩝니까..

일단은 침묵을 통해서든, 글자수를 좀 줄이시든, 서로의 짐을 좀 덜어가는 것도 한 방법 아닐런지요.

[레벨:1]한성영

2006.03.04 03:10:56

ㅎㅎㅎㅎㅎ 강현수목사님 거 성격한번 화끈하고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군요.
님의 솔직한 모습 보기 좋습니다. 뒤에서 호박씨까는 몇몇 기독교 주류세력들 보다
훨 낮다고 보이는군요. 그러나 목회하실때도 그렇게 화끈하시면 그 남성미에 반한
몇몇 성도들은 좋아하실지 모르나 많은 분들이 상처를 입으실 것같은데요.
바리새인들에 관한 예수님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라면 구미정 박사님이 좋은 글을
올려 주셨더군요. 구 박사님 글을 보니 한국신학에도 희망이보이는 것같군요. 하나님과
재미있게 놀아보자 하시는 걸보니 내면적 성찰을 통한 뛰어난 열림을 확보하신 분 같군요.
강현수님 님은 구박사님에게 여성성의 깊이를 좀 배우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님의 터프한 글발이
속시원해보이기는 하나 조금은 촌스러운 면이 있군요.님의 열정에서 다비아를 꽤 아끼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열정도 성숙으로 다듬어져야 진정한 보탬이 될겁니다. 그러나 그 단계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면 오히려 그렇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게 가식보다는 낮습니다.ㅎㅎㅎㅎㅎ

[레벨:0]강현수

2006.03.04 21:18:17

상처 얘기 잘 하셨네요. 님의 글이 그런 상처를 입히는 글이란 걸 아시면 좋겠네요. 저의 대한 충고-상처, 여성성, 성숙-를 님에게 그대로 해보시는게 좋겠군요. 제 촌발날리는 글은 님의 글에서 흘러나왔으니까. 그리고 오늘 알았는데 호박씨가 주당들에게 인기가 있는가보군요--; 이건 농담입니다. 앞글은 진담이고.

[레벨:1]한성영

2006.03.04 21:33:47

상처를 상처로 갚아라 촌발은 촌발로 갚아라 아니꼬운 놈은 아니꼬운 태도로 갚아라 구약적 패러다임에 아직도 갖혀 사시나요? 님의 충고는 정중히 접수 하겟습니다.ㅎㅎㅎ 머 님같은 분이 왜 안계시나 한편으로 의아해 했었는데 님이 대표주자로 나서 주시는 군요. 인간적인 모습이라 좋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태도를 보이시기전에 저에게 분노가 치밀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을 먼저 날려 주시는게 주님가신
십자가의 길 가겠다 성령의 문신새긴 목사님의 태도가 아닐까요? 젊은 분이라 이해합니다. 머 나이드신 분이라도 이해해 드려야지요. 노추이긴하나 .. 님에게 시비건것도 아닌데 이렇게 오바하시는 것은 젊은 객기가 아니실런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시고 열받지 마시고 제글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시고 문제가 있다 싶은 대목이 있으면 어째서 그러한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고 상대를 이해시키는 크리스챤의 자비를 품으시기를.... 이무기 이야기는 다비아를 아끼는 저만의 표현 방법이니 속내는 모르고 함부로 남을 재단하시는 모습은 목사님이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혹 다혈질 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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