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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샘터교회 수요 성경공부 『예레미야』 41장, 정용섭 목사, 2020년일 12월23일/ 예루살렘 함락 후에 벌어진 사건들- 그다랴, 이스마엘, 요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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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샘터교회 수요 성경공부 『예레미야』 41장, 정용섭 목사, 2020년일 12월23일/ 예루살렘 함락 후에 벌어진 사건들- 그다랴, 이스마엘, 요하난
성경공부 자료입니다!
개역 렘 41:1 칠월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한 모든 유다인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4 ○그가 그다랴를 죽인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5 때에 사람 팔십명이 그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에서부터 와서 여호와의 집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6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서 울며 행하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여
7 그들이 성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로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8 그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므로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 형제와 함께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성서해설 렘 41:1-8
칠월 (양력 9-10월)은 전통적으로 큰 명절들이 들어 있는 달이어서, 이 때는 북왕국 주민들도 예루살렘으로 순례했던 것 같다( 세겜 과 실로 와 사마리아 에 대해서는 지도1, 다5를 보라). 성전이 파괴되었어도 사람들은 계속 충실히 이 순례의 관습을 따른다. 깎은 수염 과 찢은 옷 은 슬픔의 표인데, 아마도 예루살렘이 파괴된 데 대한 슬픔의 표였을 것이다('상*'. 48:37과 관련 구절 참조).
(용어 해설)
상(상례, 상복) : 옛 이스라엘에서는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을 조가* 말고도 눈에 띄는 여러 가지 풍습('상례')으로 표현했다.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머리 수건을 내리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다듬지 않았다. 머리 위에 흙이나 재를 뿌리고 가슴이나 허리를 치고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잘라냈다. 이로써 슬픔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이런 풍습들은 부분적으로는 오히려 죽은 자들이 파멸을 가져다 주는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데서나 아니면 일반적으로 귀신의 세력들에서 자신을 지켜려고 자신의 모습을 흐트려 자신을 몰라보게 만드는 행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문둥병의 경우에도 이러한 점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레13:45). 이스라엘의 상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주변 민족들의 상례와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점들도 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에서는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나 할퀴어 피를 내는 것을 금했고, 부분적으로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는 것도 분명하게 금했는데(레19:27-28), 이런 관행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적어도 때때로 행했던 것 같다(렘16:6; 41:5 참조). 하나님은 완전히 생명 쪽에 서 계시므로, 죽은 자들과 접촉할 때마다 사람은 부정하게 되었다('정결한*'). 그러므로 죽은 자에 대한 종교의식도 어떤 것이든 거부했고(신26:14), 무덤 안이나 곁에 오래 머무는 것도 이교적인 것으로 여겼다(사65:4. 막5:3 참조). 죽은 자들을 마술로 불러내는 것은 특히 엄히 금지했다(레19:31; 20:6,27; 신18:11; 사8:19). 시체가 놓여 있는 집은 초상 기간 동안 부정해서 거기서는 어떤 음식도 장만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상을 당한 사람들에게 이웃 사람들과 친구들이 '슬픔의 떡'과 '위로의 잔'을 제공했다(렘16:7; 겔24:17; 호9:4).
9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 죽인 시체로 거기 채우고
10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 하여 떠나니라
성서해설 렘 41:9-10
아사 왕 에 대한 내용은 왕상15:16,22와 관련된다(거기 나오는 '미스바' 참조). 같이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 예레미야와 바룩도 있었다.
11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의 행한 모든 악을 듣고
12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를 만나매
13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한 모든 군대장관을 보고 기뻐한지라
14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에게 포로되었던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15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성서해설 렘 41:11-15
기브온 은 미스바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지도1, 가1). 큰 물가 는 삼하2:13에 언급된 연못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16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하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인과 유아와 환관을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17 애굽으로 가려 하여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무렀으니
18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인을 두려워함이었더라
성서해설 렘 41:16-18
요하난 의 무리는 바벨론 사람( 갈대아인* )들을 두려워하여 모두 달아나려고 한다. 그들은 사태의 전말을 밝히고 그다랴의 죽음에 대해 자기들은 무죄하다는 것을 믿게 만들 수 없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떠나 애굽으로 옮겨갔다(24:8과 해설 참조. 베들레헴 에 대해서는 지도1, 다6을 보라).
(용어 해설)
갈대아인 : 남부 바벨론(바빌로니아*)의 한 지역(지도4, 바-사4)과 그 주민들을 가리키던 이름이 나중에는 온 바빌로니아에 대해 쓰이게 되었다. 반유목민 부족인 갈대아 사람들은 아주 일찌감치 북부 아라비아와 페르샤 만 사이에 자리를 잡았고 성읍 우르(창11:28)를 차지했다. 한동안(주전 800년쯤) 이들은 앗수르(앗시리아*)사람들의 봉신들이었다. 갈대아 제후 므로닥발라단이 일시적으로(주전 721-710년, 703-702년. 사39장 참조) 바빌로니아의 통치권을 휘어잡았다. 유명한 느부갓네살 2세의 아버지인 나보폴랏살(주전 626-605년)이 다스릴 때 갈대아 사람들은 신 바빌로니아 제국을 세웠다. 그 때부터 갈대아는 바빌로니아와 같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바빌로니아의 제사장들은 그들의 천문학적이고 점성술적인 지식으로 이름난 사람들이어서, '갈대아 사람들'이란 호칭을 제사장들과 점성술가들과 학자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쓰게 되었다(단2:10; 3:8; 4:4; 5:7,11의 아람어 본문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