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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예레미야 강해』 29장, 2020년일 9월30일 21:00, 대구샘터교회 수요모임 정용섭 목사, 저녁 9시 최초 방송/ 키워드: 기원전 594년, 예레미야 편지, 바벨론 지역 선지자, 아합, 시드기야, 스마야, 스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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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예레미야 강해』 29장, 2020년일 9월30일 21:00, 대구샘터교회 수요모임 정용섭 목사, 저녁 9시 최초 방송/ 키워드: 기원전 594년, 예레미야 편지, 바벨론 지역 선지자, 아합, 시드기야, 스마야, 스바냐
성경공부자료입니다! 참고하세요!
개역 렘 29: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내었는데
2 때는 여고니야왕과 국모와 환관들과 및 유다와 예루살렘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3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의 손에 위탁하였더라 일렀으되
성서해설 렘 29:1-3
이 편지가 이 자리에 들어온 것은 이 편지에도 거짓 예언자들을 주의하라는 경고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27-28장; 14:13-14 참조). 29장의 도입부에서는 주전 597년의 제1차 바벨론 포로 사건을 가리킨다(왕하24:8-16).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에게 보낸 공식 사절단이 이 편지를 바벨론으로 가지고 갔다. 사신들 중에는 예레미야에게 호의적인 사반 집안 사람이 하나 있었다(36:10 해설을 보라). 힐기야 가 왕하22:4-20의 제사장을 가리키는지는 불확실하다. 장로들 과 국모 에 대해서는 각각 '장로*'와 '태후*'를 보라. 여고니야 (=여고냐)에 대해서는 24:1과 해설을 보라.
(용어 해설)
장로 : 장로의 지위는 본디 나이의 존엄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다. 곧 가족이나 씨족 안에서 '노인'들의 권위가 통했던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가장들의 지위가 모두 동등했지만, 부족 공동체 안에서는 가장 힘센 가족들의 우두머리가 전쟁 때에는 지휘관으로서, 평상시에는 판결을 통해 권위를 행사했다. 이들은 일종의 귀족 계층을 이루었다(욥29장). 왕정 초기에는 거듭거듭 '이스라엘 장로들'에 대해서 말한다(삼하3:17; 5:3; 17:4,15; 왕상8:1). 이는 부족들의 장로들을 중심으로 생겨난 위원회를 가리키는 듯한데, 이 위원회는 더 이상 자세히 확정할 수 없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지휘 기능을 맡아 수행했고 왕정 아래에서도 계속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회는 세겜의 옛 성소에서 모였던 것 같다(수24장). 성읍에서는 장로 제도에서 일종의 성읍 귀족층이 생겨나, 이들이 지방 관청으로서 그 지역을 관할하고 재판 업무를 맡아보게 되었다. 왕정기에는 장로들이 영향력을 잃었지만 바벨론 포로기나(렘29:1) 귀환 이후 시기에는 그 영향력을 되찾게 된다('공회*'). 팔레스티나 바깥의 유다 사회에서는 적어도 회당*의 행정은 장로회의 지도를 받았다. 더러는 지난날의 율법 해석가들을 '장로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막7:3,5). 유대교의 모범을 따라서 일부 그리스도교회에서도 처음에는 한 무리의 장로들이 교회를 이끌어 나갔다(행14:23; 20:17; 딤전5:17-22; 딛1:5). 이런 지도층의 형태는 예루살렘 원시교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행11:30; 15:4,6; 21:8). 그 이후의 발전 양상에 대해서는 '교회 지도자*'를 보라. <요한계시록>에서는 24 장로가 일종의 하늘 보좌 회의에 참석하는데, 이들은 임금의 기능과 아울러 제사장의 기능도 수행한다.
태후 : 왕위 세습 때문에 다윗 왕가(와 나라가 나누어진 뒤로는 유다 왕국)에서 현직 임금의 어머니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태후'라는 칭호는 그저 혈연의 정도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칭호이다(왕상15:13; 렘22:26, 또 왕상14:21 다음 해설 참조. 렘13:18에서 '왕후'로 옮긴 히브리 낱말도 오히려 '태후'를 뜻하는 듯하다).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성서해설 렘 29:4-7
여기서 처음으로 여러 가지 실질적인 가르침이 나오는데, 이는 그 때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향이 아닌 낯선 세계에서 또는 궁극적으로 자기들의 통치자가 아닌 낯선 자들의 지배 아래 살아야 할 경우에 거듭거듭 되살려 따랐던 가르침이다(스6:10; 살전4:11-12; 살후3:10-13; 롬13:1-7; 딤전2:1-3; 딛3:1; 벧전2:11-17; 막12:17 참조).
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성서해설 렘 29:8-9
8절 마지막 문장은 문자적으로 "너희가 꿈꾸게 만든 자들의 꿈도 듣지 말라"로 옮길 수 있다. 꿈을 근거로 예언하는 자들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 바로 그런 내용의 꿈을 꾼다.
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성서해설 렘 29:10-14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길은 멸망으로 끝나지 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는 데로 나아간다(11절 끝부분은 문자적으로 "너희에게 장래와 소망을 주려하는 …"으로 번역할 수 있고, 10절의 ' 너희를 권고 한다'는 '너희를 돌본다'는 뜻이다). 물론 그 전제로 백성은 지난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칠십 년 에 대해서는 25:11 해설을 보라.
15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바벨론에서 우리를 위하여 선지자들을 일으키셨다 하므로
16 여호와께서 다윗의 위에 앉은 왕과 이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 곧 너희와 함께 포로되어 가지 아니한 너희 형제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로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게 하겠고
18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 보낸 열방 중에서 저줏거리와 놀램과 치소와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19 이는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성서해설 렘 29:15-19
15절의 내용은 21절에 가서야 다시 이어진다. 16-20절에서는 바벨론에서 등장한 선지자들 이 불러일으킨 망상을 앞당겨 없애려고 한다. 다윗의 위에 앉은 왕 (16절)은 시드기야를 가리킨다. 바벨론에서 예언자가 된 자들은 - 느부갓네살의 총애에 힘입은 것이기는 하지만 - 예루살렘에서 아직 다윗의 후손이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에 큰 희망을 걸었을 것이다(23:6 다음 해설 참조). 악한 무화과 (17절)의 비유는 24장(특히 8-10절)을 생각나게 한다. ' 저줏거리 가 되게 한다'(18절)에 대해서는 25:18 해설을 보라. 종* (19절)에 대해서는 용어 해설을 보라.
(용어 해설)
종 : '종'을 뜻하는 히브리 낱말의 뜻은 매우 넓다. 이 말은 '노예'를 뜻하는 데서 시작하여 '섬기는 사람', '신하', '관리', '봉신'이라는 뜻을 거쳐 '전권 대사'를 뜻하기까지 하므로, 그 각각의 뜻은 오로지 문맥에 따라서 확정할 수 있다. 종이 처한 사회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노예*를 보라. 사회 생활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 앞에서는 예의로 스스로를 그 사람의 '종'이라고 불렀다(창18:3; 19:2; 32:5; 42:10 등).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종'이라고 할 때 이는 자기가 특별히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신들이 숱하게 있는 경우에는 어느 신을 섬기느냐, 곧 기도 드릴 때 어느 신의 이름을 부르고 어느 신에게 제물을 드려 그에게 경의를 표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예배'를 뜻하는 독일 말은 '하나님을 섬김'이란 뜻을 지닌다. 히브리 말에서 '섬긴다'와 '종'은 그 뿌리가 같아서 '섬긴다'는 것은 '종노릇한다'는 뜻을 지닌다). 이리하여 예배 참석자 또는 온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종'이라 불릴 수 있고(시113:1; 사44:1,21; 렘30:10), 다른 한편으로는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욥과 예언자들. 사22:20; 렘29:19 참조). 이럴 경우 '하나님(또는 여호와)의 종'이라는 칭호는 아주 특별한 신뢰 관계를 표현한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종'은 어떤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다. 사40-55장에서는 이 칭호가 그런 뜻으로 자주 쓰인다(거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종'이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사40장 '안내'를 보라). 그렇게 임무를 맡은 사람이 반드시 하나님 백성에 속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어서, 바벨론 임금 느부갓네살도 하나님의 '종'일 수가 있었다(렘25:9).
20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 나 여호와의 말을 들을찌니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22 너희 바벨론에 있는 유다 모든 포로가 그들로 저줏거리를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로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
23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행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니라 나는 아는 자요 증거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였더라
성서해설 렘 29:20-23
21절의 두 예언자에 대해서는 여기 나오는 내용 말고는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 22절의 저줏거리 에 대해서는 18절 참조.
24 ○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네가 네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26 여호와께서 너로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집 유사로 세우심은 무릇 미친 자와 자칭 선지자를 착고에 채우며 칼을 메우게 하심이어늘
27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자칭 선지자라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28 대저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때가 오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29 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 들릴 때에
성서해설 렘 29:24-29
예레미야의 편지는 바벨론에 있는 구원 예언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듯하다. 이들의 대변자로 스마야 가 나서서 예루살렘의 제사장 스바냐 (21:1과 관련 구절 참조)에게 편지를 보냈다. 곧 스바냐는 성전 감독의 책임을 맡은( 유사 ) 제사장이므로 예레미야와 같이 미친 자 (예언자들을 이렇게 부르는 데 대해서는 삼상10:10-12; 왕하9:11; 호9:7 참조)가 더 이상 드러나게 활동할 수 없게 힘써야 한다고 한 것이다( 착고* 에 대해서는 20:2 참조). 여호야다 (26절)에 대해서는 왕하11-12장 참조.
(용어 해설)
착고(차꼬) : 죄인의 몸이 뒤틀리도록 채워놓는 형구(나무 토막)이거나 아랫부분에는 발을, 윗부분에는 손과 머리를 넣고 잠그는 구조물이다(욥13:27; 렘20:2; 행16:24).
30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31 너는 모든 포로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로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32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을 인하여 이 백성 중에 거할 그의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선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성서해설 렘 29:30-32
하나님은 그 거짓 예언자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벌하리니 ). 그리하여 스마야와 그의 자손 은 귀향( 선한 일 )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