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1년 9월7일, 저녁 8시, 시편 138편

주의 오른손

 

 

시편은 문학적인 완성도가 높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표현 능력이 뛰어나다. 오랜 세월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듬어진 결과다. 이런 텍스트일수록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본문을 오해하거나 본문의 주변적인 것에 관심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시편의 용어를 상투적으로 받아들일 위험성이 높다는 뜻이다. 예컨대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문장이 그렇다. 그냥 좋은 문장으로만, 은혜가 넘치는 문장으로만 받아들인다. 주의 ‘오른손’(7b절)도 마찬가지다. 시편기자는 왜 주의 오른손이 자기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하는가?

1절- ‘신들 앞에서’라는 말은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상징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이 주관하는 천상법정이라는 그림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원래 다른 신들을 없지 않은가. 또는 신으로 자처하는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1절은 오직 하나님만 찬송을 받을 분이라는 뜻으로 새기면 충분하다.

2절- 예배의 근거는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다. 여기서 인자하심을 단순히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는 심성으로 보면 안 된다. 우리에게 잔인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은 인자하심을 그 본질로 하신다. 성실하심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깊이 인식할 줄 아는 사람은 주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후반절의 번역은 매끄럽지 않다. 난외주는 이렇다. “주의 모든 이름대로 주의 말씀을 크게 하셨음이라.” 공동번역은 이렇다. “언약하신 그 말씀, 당신 명성보다 크게 퍼졌사옵니다.”

3절- 시편기자는 주님을 응답하시는 분이며, 힘을 주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응답을 어떻게 경험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이 달라진다. 하나님은 공중에서 유유자적하는 분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 예민하신 분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은 모두 그분의 응답이다. 그분이 주는 힘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이것도 주님의 인자와 성실에 속한다.

4절-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이 더 강조되는 구절이다. 세상의 모든 왕들조차 주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주의 인자와 성실을 가리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시적인 표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라.

5절-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노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표현한다.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 영광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만 해도 성서의 모든 것을 아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영광(카봇)은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가리킨다. 하나님 자체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얼굴이기도 하다.

6절- 영광이 크신 분이시기에 여호와는 높은 곳에서도 낮은 자를 살펴보시고, 먼 곳에서도 교만한 자를 아신다. 놀라운 표현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파악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7절- 시편기자의 영성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이 구절에 잘 나타난다. 그는 하나님을 환난 가운데서도 경험한다. 원수들의 분노 가운데서도 경험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실제로 환난과 분노를 피했다기보다는 극복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오른손으로 경험한다. 오른손은 권능의 표징이다. 부활의 예수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

8절- 시편기자는 마지막 구절에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한다. 그것이 그분의 영광이다. 여기서 그 손은 오른손이다. 권능의 손이다. 권능의 손에서 나온 것은 권능의 주님이 책임지시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