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taSOgRnnJ3Q

조병화

<마음 2>

항시 깊은 물속과 같이 고요한 내 마음에

당신은 끊임없이 불어오는 고요한 바람

 

잠드는 깊은 내 마음 고요한 자리에

당신은 어지러이 불어옵니다

 

당신은 멋대로 다녀가는 나의 귀여운 손님

당신은 내 가슴에 시간을 접어두고 돌아갑니다

 

돌장난하는 아이처럼

연못가에서 돌장난하는 아이처럼

 

당신은 내 마음에 돌을 던지단 돌아갑니다

해 저물면 시간을 던지단 돌아갑니다

 

당신은 멋대로 다녀가는 나의 귀여운 손님

내 마음 좁은 문을 소리 없이 고요히 드나듭니다

 

 

이성복

<편지 1>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었나 생각해 봅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 사랑이 어려워지고

어느새 나는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습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 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편지2> 

그렇게 쉽게 떠날 줄 알았지요

그렇게 떠나기 어려울 줄 몰랐습니다

꽃핀 나무들만 괴로운 줄 알았지요

꽃 안 핀 나무들은 설워하더이다

오늘 아침 버스 앞자리에 앉은 할머니의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무슨 삼줄 훑어 놓은 것 같아서

오랜 후 당신의 숱 많은 고수머리가

눈에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하마 멀리 가지 마셔요

바람 부는 낯선 거리에서 짧은 편지를 씁니다

 

<편지3> 

그곳에 다들 잘 있느냐고 당신은 물었지요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다고 나는 말했지요

전설 속에서처럼 꽃이 피고 바람 불고

십리 안팎에서 바다는 늘 투정을 하고

우리는 오래 떠돌아 다녔지요

우리를 닮은 것들이 싫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나 가까워 졌지요

영락없이 우리에게 버려진 것들은

우리가 몹시 허할 때 찾아와 몸을 풀었지요

그곳에 다들 잘 있느냐고 당신은 물었지요

염려 마세요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