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공부, 2015114일 저녁 7:30, 대구샘터교회

20,21장 소발의 충고와 욥의 답변

 

욥기는 바벨론 포로 사건(BC 6세기) 이후에 생성된 기록물이다. 그 이전까지 유대인들은 전통적인 지혜 신앙으로 살았지만 이후로는 그것으로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죄한 자의 고난이라는 딜레마를 통해서 유대인들은 한층 더 깊은 신앙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욥기>는 한 두 사람에게 우연하게 일어난 운명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세상과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20장은 소발이 욥을 비판하는 두 번째 연설이다. 그의 논리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지혜 전통이다. 하나님이 악한 자는 벌하고 의로운 자는 지켜서 복을 내려주신다는 입장이다. 소발은 악인에게 일어날 일을 열거함으로써 욥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한다. 5절 이하에서 악인의 자랑이 한 순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의 아들들은 가난한 자에게서 은혜를 구하겠고...’(10)라는 말로서 악인에 대한 징벌은 후손에게까지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런 표현들은 지혜 전통의 전범이다. 이것 자체로는 옳지만 그것으로 모든 삶이 해명되는 게 아니다. 20절 이하에서는 악인이 결국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한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22절에서 풍족할 때에도 괴로움이 이르리니...’라고 했다. 26-29절은 욥의 운명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에 해당된다. 재앙을 당한 욥이 결국은 악인이라는 것이다.

21장은 소발의 충고에 대한 욥의 답변이다. 욥은 악인의 운명을 소발과는 다르게 해석한다. 7-13절에서 욥은 악인이 망하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한다. 장수하고 후손도 많다. ‘그들의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들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9). 그들은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면서 축제를 벌인다(12). 이것은 바알 축제나 바벨론의 축제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악이 망하고 선이 흥하는 게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되는 경우도 많다. 간혹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서 잘 살고, 동남아는 불교 국가라서 못한다고 말하는 목사들이 있다. 부자 나라라고 해서 선하지 않고, 가난한 나라라고 해서 악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발언들이다.

악인들이 망하지 않고 평안하게 잘사는 경우를 욥의 친구들도 알고 있다. 친구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 후손들에게 임하는 것이라고 둘러댄다. 욥은 그걸 반대한다. 19-21절을 공동번역으로 보자. <19 “하느님께서는 아비에게 줄 벌을 남겨 두셨다가 그 자식들에게 내리신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될 말인가? 본인이 받을 줄로 알아야지. 20 제 파멸은 제 눈으로 보아야 하고 전능하신 분께서 내리시는 사약은 본인이 마셔야지. 21 살 만큼 살고 죽은 뒤에 집안이 어찌 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욥은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서 정의롭게 굴러가지 않는다고 외친다. 23-26절에서는 두 사람의 운명이 대립된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며 잘 살지만, 또 어떤 사람은 고통 가운데서 산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든지 결국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인다.’ 욥은 후반부에서 다시 악인이 재난을 용케 피해간다는 사실을 밝힌다(30). 그런 사람은 죽어도 다른 이들이 장례를 잘 치러주고 무덤까지 지켜주고, 조문객들이 줄을 잇는다.

욥은 지금 친구들의 지혜 전통을 거부할 뿐이지 대안을 제시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지혜 전통으로 다 해결될 수 없는 삶의 수수께끼 앞에서 욥은 망연할 뿐이다. 그래서 친구들을 향해서 강력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향해서 세상이 왜 이러냐? 이해할 수 없다.’ 하고 따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