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공부, 20151111일 저녁 7:30, 대구샘터교회

22, 23: 엘리바스의 세 번째 충고와 욥의 답변

 

엘리바스는 지금 논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 중에서 최고 연장자이고, 세상살이의 경험도 많아서 논리적으로 빈틈없는 말을 한다. 당대 지혜 선생의 모범을 보인다. 22장에서 그는 세 번째 등장해서 욥을 비판하다. 그에게는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다. 욥도 엘리바스의 말을 따르는 게 편하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끝가지 버틴다(23).

 

22, 엘리바스

1) 1-11: 엘리바스는 욥이 자기의 정당성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비판은 두 가지 논점이다. 첫째는 욥의 의가 하나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2,3). 둘째는 욥도 당시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악을 행한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5-9절이 묘사하고 있는 것들은 사회과학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다. 오늘의 대기업이 어떤 형태로 운영되는지를 보면 된다. 모든 기업이 똑같은 건 아니지만 이런 게 대세다.

2) 12-20: 엘리바스는 악인의 마음을 여기서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사람의 행실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악인이 밟던 옛적 길’(15)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17)이 악인들이다. 결국 악인은 심판을 면치 못하며, 의인은 이를 보고 웃는다. 욥이 당한 재앙이 바로 악인에게 임하는 것이다.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 멀다.’(18)고 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징벌하기 때문이다.

3) 21-30: 여기서 엘리바스는 지당한 말을 한다. 그것 자체로는 옳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불의를 멀리하고, ‘오빌’(24, 금 광산 지역)을 우습게 여기라고 했다. 29절이 백미다. ‘...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23,

욥의 주장은 한결같다.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을 정도로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다. 10절이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다. 공동번역은 이렇다. “그런데도 그는 나의 걸음을 낱낱이 아시다니. 털고 또 털어도 나는 순금처럼 깨끗하리라.” 루터 번역은 그는 내 길이 선하다는 사실을 아신다. 그가 나를 시험하셔도 나는 금처럼 순결한 자로 인정받을 것이다.”

이런 확신이 있지만 친구들을 설득하기가 어렵다. 양쪽이 평행선을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주기를 바란다(3절 이하). 하나님 앞에서는 친구들의 막무가내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의 말을 들으실 것으로 믿는다(6). 그런데 하나님은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않으신다(8,9). 하나님의 침묵이다. 진리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바로 하나님의 침묵이다. 실제로 하나님이 세상을 외면하는 게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늘 이런 경험을 한다. 하나님의 침묵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불안 가운데서도 욥은 자신이 떳떳하다는 사실을 포기하지 않는다(10절 이하). 13,14절은 앞에 나온 엘리바스의 생각과 비슷하다. 하나님의 뜻은 일정하시다. 엘리바스는 그렇기 때문에 욥이 죄인이라는 말이고, 욥은 그렇기 때문에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욥은 그런 확신이 있지만 하나님이 두렵다(16). 차라리 흑암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17). 스올에 들어가는 게 낫다는 말과(14:13, 17:13)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