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공부, 2015122일 저녁 7:30, 대구샘터교회

27,28: 소발과 지혜

 

27장은 개역개정에 따르면 세 친구에 대한 욥의 말로 되어 있지만 정확하게 분석하면 욥의 말과(1-7) 친구들의 말(8-23)로 구분해야 한다. 친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하나님이 악한 사람은 벌하고, 선한 사람은 복 준다고 주장한다. 물론 겉으로 복 받은 것처럼 살고 있는 악한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곧 망할 것이라서 유대인들의 지혜 전통은 옳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결국 욥은 악한 사람이다. 이에 반해서 욥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삶의 심연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설득시킬 수 없어서 차라리 하나님 앞에서 직접 따지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스올에 들어가는 게 차라리 낫다고 여길 정도로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욥은 신앙적 결기를 잃지 않고 친구에게 맞섰다.

 

<27:8-23> 욥기의 전체 구조는 앞뒤의 간단한 서사를 빼고 보면 친구 세 명과 욥이 번갈아 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방식이다. 개역개정에 따르면 엘리바스, 빌닷은 세 번 등장했지만 소발은 두 번만 등장했다. 학자들은 27:8-23, 그리고 24:18-20, 22-25절을 소발의 말로 간주하는 게 전체 구조로 볼 때 자연스럽다고 설명한다. 그 내용을 봐도 이런 설명이 옳다. 27:13절 이하에는 악인과 포악자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운명은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19절에 따르면 그들이 비록 부자로 살다가 죽어도 허망한 것밖에는 남는 게 없다. 20절이 말하는 두려움과 폭풍이 그들의 운명이다. 23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손뼉치고 그의 처소에서 그를 비웃으리라.’는 욥의 운명에 대한 친구들의 주장에 맞닿아있다. 24:18-2120-25절은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 자리한다.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18). 유대의 지혜 전통은 아주 진지하다. 이런 지혜 전통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그걸 무조건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욥기는 그것 너머의 신앙을 말한다. 이런 관점은 오늘 기독교에도 해당된다. 하나님이 누군지, 예수 재림이 무엇인지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종말론적 사건이다. 일단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교리를 바탕에 두고 새로운 차원으로 생각을 넓혀가야 한다.

 

<28:1-28> 우리말 성경에 28장의 소제목이 지혜와 명철로 달려 있다. 이게 욥의 이야기인지 친구들의 말인지가 불분명하다. 지혜를 강조하는 이들은 친구들이다. 욥도 그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28장은 욥기 전체로 볼 때 약간 이질적인 텍스트라고 한다. 28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지혜가 인간 세상에서 최상의 것이며, 그 지혜를 알기 위해서는 경건이 필수라는 것이다. 1-12, 고대 광산업을 예로 들어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대목이다. 고대인들에게 은, , , 동이 들은 돌을 캐고 제련하는 일련의 행위는 신비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의 근본이 어디 있느냐고 그는 묻는다(12). 13-20, 여기서는 상거래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짚는다. 20절은 12절과 같은 문장으로서, 일종의 후렴구다. 21-28, 창조(21)가 바로 하나님의 지혜이므로 지혜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감춰진 것이다. ‘죽음의 세계’(22)도 모른다. 그분의 지혜는 바람의 무게를 정하고 물의 분량을 정하며, 비와 구름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는 능력이다. 28절에서는 다시 본래의 지혜 개념으로 돌아와 경외의 삶과 악을 떠나는 삶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