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1년 11월2일, 저녁 8시, 시편 146편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

 

 

하나님의 통치는 신구약성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이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임박한 하나님 나라도 역시 그것을 전제한다. 하나님이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는가에 따라서 신앙의 수준이 달라진다.

1) 1-2절: 146편 기자는 하나님의 통치가 영원하다는 사실을(10절) 믿었다. 그 사실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친다. ‘내 영혼’으로 찬양한다. 영혼은 삶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움직이는 생명의 능력이다. 영혼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만족이 가능한 차원이다. ‘찬양한다.’는 말은 영혼을 집중한다는 뜻이다. 시편기자는 ‘평생’ 찬송했다. 일시적인 게 아니라 전체 삶과 관계된 것이다.

2) 3-4절: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권능을 자랑하는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귀인들만 의지하려고 애를 쓴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고 한다.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삶에 머물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흙과 소멸이라는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무상성을 기억하는 것이 영성의 기초다.

3) 5절: 흙으로 돌아갈 인간을 의지하는 않아야 한다면,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 그 답은 분명하다. 여호와 하나님이다. 그게 ‘복’ 있는 삶이다.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는다는 말은 하나님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사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일시적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말은 하나님만이 사람의 참된 미래이며, 생명의 근거라는 뜻이다.

4) 6-9절: 우리의 도움이며 소망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시편기자는 자세하게 언급한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한 분이시며 그 천지를 유지하는 분이시다.(6절) 창조자만이 피조물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시편기자는 이 문제를 7절 이하에서 조금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세상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사회적인 약자, 소외된 자들을 하나님이 보호해주신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의 메시야 관과 상응하는 내용이다. 신약의 마리아 찬가 역시 비슷한 관점이다.(눅 1:46 이하)

몇 항목만 추려보자.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서 정의로 심판하시며’ 이것은 시인의 희망 사항인가, 아니면 실제 상황인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당장 일어날 수도 있고, 먼 후일에 일어날 수도 있다. 특히 약자와 악인을 대비하는 9절이 중요하다. 나그네, 고아, 과부를 붙드신다는 말은 당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 통치의 신비한 차원을 가리킨다. 악인에 대한 말도 동일하다. 악한 행위 자체가 그들의 영혼을 굽게 만든다.

5) 10절: 시인은 찬양하라는 의미의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마친다. 여호와는 ‘영원히’ 그리고 ‘대대로’ 통치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찬양할 수밖에 없다. 사람을 의지할 것인가,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인가? 재물을 섬길 것인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마 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