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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창세기 읽기 004(창 2:1~3), 대구 성서아카데미 원장 정용섭 목사 강해, 2023년 2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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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창세기 읽기 004(창 2:1~3), 대구 성서아카데미 원장 정용섭 목사 강해, 2023년 2월22일
네 번째 시간입니다. 1장이 끝나고 2장으로 넘어갑니다. 1장에서 창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여섯째 날까지 차례대로 나왔어요. 한 번 검토해 보실까요? 첫째 날에는 빛을 창조했고, 둘째 날에는 궁창입니다. 셋째 날에는 땅과 채소입니다. 넷째 날에는 광명체, 낮과 밤을 주관하는 태양과 달로 추정되는 것들을 창조했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날짐승들입니다. 날짐승과 어류와 새들을 창조했습니다. 빛은 창조했는데 물은 창조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고 원래 있었던 것으로 전제합니다. 특이하죠?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들고, 사람 만들기 전에 가축들 나옵니다. 동물로만 본다면 바다나 강에서 사는 어류가 제일 먼저 창조되고, 두 번째는 공중의 새, 세 번째는 땅에 발을 딛고 사는 가축들, 기는 것들까지 다 포함하고요, 마지막에는 인간이 창조됩니다. 창조 이야기에서 핵심은 생육, 번성, 충만입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땅과 하늘과 바다에서 충만해야 합니다. 이것이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창조의 핵심 즉 본질이죠. 먹을거리로는 채소를 줬습니다. 창세기 1장만 놓고 보면 채식주의가 맞다고 얘기를 했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짐승이나 사람에게 먹을거리로 채소와 곡식을 줬습니다. 사람이 동물을 잡아먹으라는 얘기는 없어요. 여섯째 날까지 이렇게 끝났습니다.
2장으로 넘어옵니다. 2장 1절에서 3절까지는 1장에 속하는 게 맞습니다. 장과 절을 나눈 사람이 신학적인 부분까지 헤아려서 작업한 게 아니라서 구분을 저렇게 했습니다. 여섯째 날까지 창조를 하고 일곱째 날은 안식했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안식일이 연유하는 거죠. 구약성경에 따르면 안식일의 연원은 창조 이야기와 출애굽 이야기입니다. 출애굽 이후 십계명을 받잖아요? 성경에 출애굽 이야기가 몇 번 반복되고, 십계명도 몇 번 나옵니다. 이게 출애굽과 연관되는 겁니다. 안식일 개념은 창조 이야기와 출애굽 즉 해방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네요.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날이죠. 안식일입니다. 유대교에 시간 계산으로 따지면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 되기 전까지를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안식교회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죠. 안식교회는 유대교와 똑같이 안식일을 지키는 겁니다. 그리스도교 정통교회는 주일을 지키죠. 주일이 안식일보다 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그렇습니다. 안식일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예수님 모셨던 무덤에 가서, 정확하게는 여자들이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제자들을 불렀고요, 베드로와 마가인지 누가인지 무덤이 비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요. 안식 후 첫날이니까 주일이죠. 그 당시에 주일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인 거죠.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는 것과 연관됩니다. 그 전부터도 물론 영향을 받기는 했을 겁니다. 일요일이 로마제국 안에서는 더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제 기억에는 그렇습니다만) 유대교는 안식일이 토요일이고, 로마제국은 일요일을 축제의 날로 드린 거죠. 성탄절도 로마의 전통적인 절기와 연관된다는 것은 아시죠? 동지가 지난 다음, 밤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고 낮 길이가 길어지는 그때를 로마제국에서 특별한 날로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그날을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예수님의 탄생일로 생각하게 된 거죠. 동방정교회에서는 다른 전통으로 성탄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쨌든 토요일이든 주일이든 핵심은 쉰다는 겁니다. 그날을 복 되게 하고 거룩하게 했다고 해요. 앞에서 안식일이 출애굽 전승과도 연관된다고 말씀드렸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킨 그 사건과 안식과는 깊이 연관되는 겁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두 가지 핵심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창조 그리고 해방 즉 자유죠. 이 두 가지가 사실은 성경 전체가 얘기하는 하나님 경험에서 핵심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 문제가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창조 문제가 정상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진화론과 쓸 데 없이 논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창조 문제는 계속 우리 신앙의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도신경도 처음 단락이 하나님의 창조를 얘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를 통해서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됐다고 하는 사실도 구약에서 본다고 한다면 출애굽과 연관이 되고요.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창조’되었다는 사실과 ‘해방’되었다는 사실, 이 두 가지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창조의 완성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부활인 거죠. 창조와 부활의 관계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드리면서 창조 신앙과 해방, 자유 신앙 이렇게 이름 붙이기가 쉽지는 않지만 개념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창조의 완성 그리고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일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와 해방이 완성되었다는 말을 여러분들이 조금 더 생각해 주십시오.
창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겁니다. 첫 번 창조와 창조의 완성까지를 다 통합해서 창조라고 얘기하니까 아직까지도 창조 중인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믿는데 이 부분은 또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앙은 쭉 이어져서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끝이 없으니까 어떤 한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느 시점에서는 끝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이 완성되었다는 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 신앙으로 들어간다는 거죠.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핵심에는 예수가 우리에게 생명이라는 사실이 있습니다. 창조 신앙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명을 경험한다는 거예요. 생명의 절정은 영생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연관돼 있어요.
여섯째 날까지 창조 이야기가 끝났어요. 일곱째 날에는 하나님께서 쉬셨다고 합니다. 쉼(안식)이라고 하는 게 창조 신앙 안으로 들어가는 데도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우리가 계속 일만 하면(쫓기면) 창조 신앙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것을 끊어야 합니다. 일상의 과잉으로부터 단절해 내는 신앙적 사건이 바로 안식일인 거죠. 주일이 바로 그것을 가리킵니다. 그날을 복되게 하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두 가지 위기 가운데서 삽니다. 안식 개념과 연관해서 두 가지 위기입니다. 가난해지고 어디 아프면 위기라고 하는데 영혼이 위축되면 위기 아니겠습니까? 연봉이 많이 늘어나도 영혼의 자유가 위축된다면 그게 위기인 거죠.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게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안식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두려운 거죠. 뭘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합니다. 워커홀릭이라는 신조어가 아주 예전부터 있었죠. 특별히 대한민국 사람들은 더 그렇습니다. 아마 평생 일하다 죽을 듯해요. 안식을 모르는 거죠. 현대 사회가 막 그렇게 돌아가니까 같이 따라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불안하잖아요.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연봉 높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영혼의 건강이 중요하니까 나는 일을 할 말큼만 한다, 그렇게 하시라 말은 하지만 쉽지는 않죠. 그게 하나의 위기고, 또 하나는 그 반대죠. 너무 많이 놀려고 하는 겁니다. 지나치게 재미있는 것을 따라다니는 거죠. 이 두 가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쉬셨기 때문에 모든 일이 멈춰야 하는 겁니다. 이러한 전통이 유대교에서는 십계명에서도 나옵니다.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율법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안식일에는 모든 일을 멈춰야 했어요. 이건 잘한 거예요. 어느 학자가 유대 전통이 인류에게 물려준 가장 좋은 유산은 바로 이 안식일 개념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이 두 가지 위기를 극복하는 겁니다. 안식일에 모든 것을 멈춰야 했어요. 너무 지나쳐서 문제가 되기도 했고 율법주의가 돼 버림으로써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아픈 사람 고친 것까지 문제가 되니까 거기서 시행착오가 벌어진 것이지 안식일 개념 자체는 좋은 겁니다. 고대 사회에 무조건 안식일에는 모두가 쉬어야 한다는 법령이 분명하게 그 사회에서 지켜졌다면 좋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노동에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참된 쉼이에요. 앞에서 안식일 근원이 창조와 해방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안식일 전통을 통해서 확인하는 겁니다. 기업의 회장이나 말단 사원이나 똑같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거죠. 그런 것들이 재확인 되는 사회적인 안전장치가 바로 안식일 개념입니다. 정말 역동적인 겁니다. 사회에서 작동될 수 있다면 안식일은 개인과 사회를 살리는 좋은 제도입니다. 안식일 개념에서 안식년 개념이 나왔고요, 거기서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희년 제도까지 갑니다. 희년은 칠 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 그 다음 해(오십 년째)를 희년이라고 합니다. 안식년과 희년이 비슷하기는 해요. 희년 제도가 고대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실제로 실행됐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도는 있었어요. 희년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모든 게 원상복구 되는 거예요. 안식만 본다면 땅까지도 안식년을 해야 합니다. 농사짓더라도 7분의 1로 나눠서 쉬게 하는 거죠. 칠 년마다 한 부분씩 쉬게 하는 겁니다. 이게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실행됐는지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 정신이 있는 거예요. 땅마저도 안식해야 한다는 거죠.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안식 개념이 약해요. 땅을 안식년 제도 한다, 유기농 농사짓는 분들이 가끔 그런 말을 합니다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많이 생산해 내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겁니다. 이러한 제도들이 우리 삶에서 자리를 잡느냐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2장 1절에서 3절까지는 1장에 속하는 이야기에요. 4절부터는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똑같이 창조 이야기인데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1장과 2장 3절까지를 한 묶음으로 해서 한 저자가 기록한 걸로 봅니다. E문서라고 합니다. 엘로힘이라고 하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을 부를 때 쓰는 단어, 그렇게 전부 나옵니다. 여기 2장은 전부 다 하나님이라고 나옵니다. 엘로힘입니다. ‘엘’이라고 하는 게 근동 지역의 신을 가리키는데 ‘로힘’이 붙었어요. 하나님을 엘로힘이라고 부른 어떤 저자가 창조 이야기를 기록한 내용, 그것이 1장과 2장 3절까지의 이야기입니다. 4절부터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건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안식 개념을 설명하다가 시간이 다 갔네요. 한 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주일이 안식일이잖아요?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안식을 해야 합니다. 예배드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교회에 나와서 너무 많이 일을 하는 것, 일반 신자들 중에서는 주일날 안식하는 게 아니라 더 혹사되기도 합니다. 그걸 자꾸 신앙이라고 생각을 해요. 앞에서 현대사회가 영혼의 두 가지 위기라고 했는데 그것과 연관됩니다. 너무 놀러다니면서 그걸 쉰다고 생각하는데 안식이 아니라 영혼이 더 피곤해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어요. 무엇을 하든지 너무 매달리듯이 경쟁하듯이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영혼이 안식을 누리는 게 핵심이다, 우리의 죽음은 영원한 안식이다, 그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려면 살아있을 때 안식을 누려야 되겠지요. 안식을 누리려면 영원한 생명이 뭔지를 이해하고 그 세계 안으로 뛰어들어야 되겠죠. 그럴 때만 안식, 창조, 해방 이러한 경험이 가능합니다. 안식이라고 하는 걸 조금 더 기억해 두십시오.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