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0년 6월30일, 저녁 8시, 시편 97편

의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구약성서기자의 가장 일반적인 해명 중의 하나는 ‘의’이다. 정의, 또는 공평이라도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세상은 이와 다르다. 오히려 불의와 부정이 지배한다. 성서도 세상이 죄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의로우신데 세상이 불의하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건가? 세상은 계속 하나님의 의와 불의가 투쟁하는 자리인가? 이런 질문은 개인의 차원에서도 유효하다. 어느 쪽에 삶의 무게를 놓는가에 따라서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성서는 물론 하나님의 의에 절대적으로 기울어진다.

 

1) 하나님의 의

시편 97편 기자는 ‘의와 공평’이 여호와의 보좌의 기초라고 했으며,(2) 하늘이 여호와의 의를 선포한다고 했다.(6) 1-6절은 시내 산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구름과 흑암(2)이나 땅이 밀랍 같이 녹았다는 것은 화산 폭발을 가리킨다. 고대 유대인들은 이런 엄청난 자연 현상 앞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자연 현상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적인 힘이 곧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경험이 의로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님 경험 앞에서는 인간의 모든 차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쉬운 예를 들자.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는 공평하다. 돈이 많고 지식이 많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게 아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다.(6)

 

2)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사람은 우상을 섬기고, 허무한 것을 자랑한다. 그런 이들은 모두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한다.(7) 여기서 우상과 허무한 것을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세상에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들을 가리킨다.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것처럼 보인다. 돈, 집, 명예, 지식 같이 지금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 자극시키는 것들이다. 이런 것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문제는 이것을 섬기고 자랑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수치를 당하게 된다. 여기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이런 것 자체가 우리의 영혼을 배부르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빠른 시일 안에 이런 것들을 다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궁극적이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는 것들을 신처럼 섬기면 결국 영혼이 타락하게 되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심판이다.

 

3) 기뻐하라

시편기자는 이런 심판을 듣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말한다.(8) 남이 망한 것을 즐거워한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이 드러났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이 의롭다는 사실에 대한 확증이다. 하나님의 의, 그의 심판, 그의 통치를 아는 사람은 기뻐할 수밖에 없다.(1, 12)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편기자의 영적 시선이 하나님을 향했다는 사실이다. 자기에게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었다면 분노, 좌절, 걱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이게 우리의 일반적 삶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의와 그의 통치에 집중될 때만 우리 삶은 놀라운 영적 깊이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