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1년 3월16일, 저녁 8시, 시편 125편

지금부터 영원까지

 

3.11 대지진으로 일본이 국가적인 재앙에 직면해 있다. 해일을 막으려고 세웠던 제방이 해일에 쉽게 허물어졌고, 최첨단의 안전성을 장담하던 원전도 파괴되고 자칫 고농축 우라늄이 방출될 위기에 처했다. 인간의 삶 자체가 위태롭고 불안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고대 성서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불안을 지금 우리보다 훨씬 강하게 느꼈다.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키신다고 고백한다. 근거가 무엇인가?

1절- 여호와를 향한 시편기자의 신뢰는 대단하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시온 산과 비슷하다고 했다. 이런 진술이 지질학적으로 옳은 건 아니다. 산도 자주 흔들리고 언젠가는 바닥으로 가라않는다. 그렇지만 다른 것에 비교해서 보면 산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시편기자가 이를 통해서 말하려는 것은 사람이 영원하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 여호와의 구원이 흔들리지 않고 영원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여호와’와 ‘구원’은 똑같은 말이다. 여호와는 행위로 존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2절- 시편기자는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구원이 얼마나 참된 것인가를 2절에서 다시 강조한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병풍처럼 둘러선 것과 비슷하다. 원래 예루살렘은 천연요새라고 한다. 다윗 시대에 뚫어놓은 수로도 있다. 여호와께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둘러 지키신다고 한다. 예루살렘은 주변의 제국에 의해서 여러 번 함락되었다. 이 시편이 기록되던 시대에도 이미 그런 일들이 벌어졌었다. 이 고백은 몇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1) 지난 시절에는 시련이 많았지만 ‘지금부터 영원까지’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고백이다. 2) 비록 정치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고난당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차원에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3) 이 고백은 어떤 역사적 사실을 말하기보다는 이스라엘의 희망을 담은 것이다.

3절- 여기서는 악인과 의인이 비교된다. 예루살렘을 파괴하려는 이들이 악인이다. 예루살렘이 영원하며, 그 안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흔들리지 않는다는(1,2절) 사실은 3절에서 두 가지 의미로 해명된다. 1) 악인이 권세를 누리지 못한다. 2) 의인들은 죄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악인과 선인이 눈에 보이듯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의인들도 악에 노출된다. 여기서 더 근본적으로 어려운 것은 죄악이 무엇인지 늘 분명하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 전쟁, 음모, 살인 등, 반사회적이고 반인간적인 행위만이 죄악은 아니다. 우리가 눈치 채기 힘든 구조적인 죄악도 흔하다. 경쟁력 제고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비인간적 행위, 가부장적 제도로 인한 정신적 폭력, 어쩔 수 없이 가담하는 군수산업, 판검사 및 변호사 업무에도 그런 위험성이 있다. 각자의 영적 분별력과 사회제도의 변화가 요청된다.

4절-선한 자들과 정직한 자들을 위한 기도다. 이들은 여호와를 찾는 진실한 이들이다. 자신의 인식과 행동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여호와를 찾을 수밖에 없다. 여와와의 도움이 아니면 이들은 그런 길을 갈 수 없다. 여호와를 향한 신뢰에서만 이것이 가능하다.

5절- 불의한 길로 치우치는 이들은 여호와를 찾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면서 자기의 길을 정당화한다. 이들이 겉으로 죄악을 따른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자신들도 정의를 따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인류 역사에서 모든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모두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기 확신에 찬 사람들이다. 이 시편의 마지막은 이스라엘의 평강을 바라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통해서만 샬롬이 가능하다는 고백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