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공부, 20151118일 저녁 7:30, 대구샘터교회

24: 엘리바스의 세 번째 충고에 대한 욥의 답변(2)

 

욥기 24-27장의 내용은 배열이 복잡하게 꼬였다. 욥의 주장과 다른 내용이 욥의 말에 들어오기도 하고, 당연히 있어야 할 소발의 세 번째 주장이 없다. 전체적으로 재배열되어야 한다. 1) 욥의 대답(계속) 24:1-3, 9, 21, 4-8, 10-14b, 15, 14c, 16-17. 2) 빌닷의 세 번째 연설 25:1-6, 26:5-14. 3) 빌닷에 대한 욥의 대답 27:1, 26:1-4, 27:2-7. 4) 소발의 세 번째 주장 27:8-23, 24:18-20, 22-25.

24:1-25

25:1-6

26:1-14

27:1-23

1-17, 21 / 18-20, 22-25

1-6

1-4 /5-14

1-7 /8-23

/ 소발

빌닷

/빌닷

/소발

 

1, 욥은 전능자에게 하소연한다. 전능자는 물론 하나님이다. ‘는 재판날을 가리킨다. 베르디의 <레퀴엠>에 나오는 분노의 날과 같은 개념이다. 그가 재판날을 기다리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도 최후의 심판자리한다. 25:31-46절이 말하는 심판은 우리의 판단을 뛰어넘는다.

 

2-4, 욥이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묘사된다. 땅과 양 떼를 빼앗는다(2). 고아의 나귀와 과부의 소를 볼모로 잡는다(3). 가난한 자와 하층민들을 몰아낸다(4).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난민이 된다. 욥이 가리키는 25백 년 전의 상황이 오늘의 상황과 다를 게 없다. 자신의 안일에만 자족한다면 이런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5, 공동번역은 다음과 같다. “들나귀처럼 일거리를 찾아 나가는 모습을 보게. 행여나 자식들에게 줄 양식이라도 있을까 하여 광야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저 모양을 보게.”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밥벌이를 해야 한다. 밥벌이를 위해서 인간의 품위를 포기해야 하는 시대가 오늘도 반복된다. 대한민국은 더 심각하다. 가장 긴 노동시간, 가장 높은 자살률이 우리 사회의 특징이다.

 

6-12, 생존의 위협에 놓인 이들의 삶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6절은 오늘날 폐지 줍는 이들과 비슷하다. ‘그들은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곡식을 나르나 굶주린다.’(10). 그런데 하나님이 그 참상을 보지 않으신다.’(12). 절대빈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개인의 의지나 도덕심만으로 해결하기는 힘들다. 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 복지 문제를 중요한 정책으로 밀고나가는 정부가 필요하다. ‘복지 병이라는 말도 있지만 인간 생존을 지켜나가는 것보다 우선 되는 가치는 없다.

 

13-17, 21, 이 대목에서는 악인의 행위가 묘사된다.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 사람을 죽이는 자, 간음하는 자, 남의 집을 뚫는 자 등등이 거론된다. 이런 악의 특징은 어둠을 좋아하고 그걸 이용한다는 것이다. 17절을 공동번역으로 보자. “한밤중이 그들에게는 아침인가 짙은 어둠 속에서 온갖 무서운 일을 자행하는 무리.” 악의 본질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다. 더 나가서 여러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합리화한다. 죄가 존재론적인 능력이라고 본 성서의 주장은 인간학적으로도 옳다.